8화 - 그들 vs 좀비군단 (2부. 나비효과)
미친것들의 저택에도 날이 밝았다.
지난 밤 서로 틀어진 세 사람은 간혹 발걸음 소리만 들릴 뿐, 대화를 나누거나 성배에게 관심을 주진 않았다.
성배는 의자에 묶인 채로 불편하게 쪽잠을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도통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야, 야! 밖에 아무도 없냐!”
성배의 외침에 누군가 빠르게 걸어와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뭐야, 왜?”
성배는 짜증내며 들어온 지연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한다.
“아니, 잠은 씨발 의자에서 재워도, 밥은 주고 화장실은 가게 해줘야 될 거 아냐. 똥 여따 싸?”
“아오! 저 골칫덩어리 진짜!”
다시 밖으로 나간 지연은 정도와 함께 들어왔고, 정도는 산탄총을 들고 성배에게서 두 걸음 떨어져서 계속 성배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지연이 성배를 묶은 줄을 풀자, 성배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루 종일 묶여있어서 몸이 뻐근했는지, 성배는 꽤 긴 시간 기지개를 쭉 켰다.
기지개를 켜던 성배는 순간적으로 정도와의 거리를 곁눈질로 확인한 후,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안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며 성배는 생각했다.
‘아, 저 미친놈이 은근히 신중하네. 일단 저것들도 나한테 함부로 하지 않는 거 보니깐 긴장은 하고 있다는 건데…, 기회가 한 번은 오겠지 그때까지는 좀 참자.’
성배는 일단 자신의 건빵 주머니에 있던 낚시칼을 꺼내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고 화장실을 나갔다.
밖에선 정도가 역시나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산탄총을 성배의 머리 쪽을 향해 겨누고 있었고, 지연도 근처에서 배트를 들고 성배를 주시하고 있었다.
성배는 언젠가 올 한 번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순순히 자신이 묶여있던 방으로 걸어갔다.
그때 지연이 성배를 불러 세웠다.
“야, 가만 있어봐.”
성배가 멈추자 지연이 성배의 엉덩이를 보며 다가갔다.
“이 새끼, 엉덩이에 이거 뭐야.”
‘아 씨발, 걸렸나. 저 여우 같은 년.’
성배는 여차하면 지연을 공격할 생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누런 거 묻었어. 하하하! 이 새끼 바지에 똥 싼 거야? 뭐야?”
성배는 낚시칼이 발견된 게 아니라 바지에 뭐가 묻은 것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자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었다.
“야, 녹색 티. 바지에 누런 거 묻으면 다 똥이냐? 얼굴 들이대고 자세히 봐봐 그럼 확실히 보일 테니깐.”
“아냐, 됐어. 다시 의자에 가서 처 앉아. 밥은 알아서 갖다 줄 테니깐.”
지연은 콧방귀를 끼며 성배에게 명령하다시피 말했고, 성배는 나중을 기약하며 순순히 지연의 말에 따랐다.
지연은 다시 성배를 의자에 묶었고, 성배는 다시 혼자 방 안에 남겨졌다. 그러나 성배는 더 이상 불안하진 않았다.
저 미친것들은 자신을 당장은 죽일 마음이 없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혜정이 된장국밥을 들고 들어왔다.
“이거 제가 먹여드릴게요.”
“아이씨, 난 아침에 무조건 빵만 먹는데.”
성배의 투정에 혜정은 움찔하며, 멀찌감치 서서 다가오지 못했다.
그런 혜정을 보며 성배는 조금 편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냐, 그거라도 먹여줘라. 이 와중에 빵이 어딨겠냐.”
성배는 일단 주는 밥은 제대로 먹어둬서 결정적인 순간에 단단히 대비하기로 했다.
혜정이 살며시 다가와 성배 앞에 서서 천천히 성배에게 밥을 떠먹여 줬다.
한참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여주던 혜정이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저기 성배 씨.”
“왜?”
“어저께 여기 올 때요. 왜 저희를 돕고 싶으셨던 거예요?”
“말했잖아, 좀비를 자기가 만들었다고 떠드는 미친놈을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제 복수도 해주신다고 했잖아요.”
성배는 혜정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럼 씨발, 여자가 강간 당 할 뻔 했다는데, 그런 놈을 그냥 두냐? 잡아서 확 잘라버리던가 썰어버리던가 해야지.”
그때 밖에서 지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김혜정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데이트 하냐!”
혜정은 남은 밥을 대충 성배에게 먹여주고 황급히 나가려다, 고개를 돌려 성배를 다시 바라봤다.
성배는 무표정한 얼굴로 혜정을 쳐다봤고, 혜정은 성배를 보던 시선을 천천히 돌리며 방을 나갔다.
다시 방 안에는 성배 혼자 남았다. 그러나 이 방안에, 이 의자에 묶여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성배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꼈다.
“자, 그럼 어디 플랜B를 한번 짜볼까!”
진모의 말에 모두들 다시 지도를 펼치고 둘러앉았다.
그들의 계획은 간단해졌다. 더 이상 안전하게 들어갔다 안전하게 나오는 계획은 필요 없어졌다.
“일단 병원 주변은 전부 철제 바리케이드로 둘러 싸여있고, 철조망으로 감겨있었지. 물론 중간 중간 틈새가 있어서 좀비들이 드나들긴 했지만, 그 틈새로 모든 좀비를 유인 할 순 없고.”
진모의 말을 듣던 한이가 의견을 제시했다.
“어차피 정면 돌파하기로 한 거, 그냥 차로 바리케이드 앞까지 가서 바리케이드를 차에 묶은 다음에 끌어서 해체 해버리죠. 그럼 좀비들이 일단 상당수 밖으로 나올 거고요. 우린 기동성을 이용해서 천천히 유인함과 동시에 총으로 처리 할 수도 있고요.”
다들 한이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어서 나라도 추가 의견을 제시했다.
“자 그건 일단 좋아요. 근데 최소한 이백 마리는 거뜬히 넘어 보였는데, 지금 우린 산탄총 한 정과 기관단총 세 정이 있지만, 이것도 소희랑 정배를 제외하면 총 세 정밖에 안돼요. 이걸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어요. 뭔가 한꺼번에 좀비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럼, 차로 바리케이드를 제거한 후에요. 차로 좀비들을 밀어 붙이는 건 어때요?”
소희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한이가 고개를 저었다.
“하아, 그건 좀 힘들 거 같아요. 뭐 수십 마리 정도 상대 할 때는 분명히 밴 정도 튼튼한 차면 가능한 얘긴데,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자칫하면 좀비들한테 둘러싸일 수도 있어요.”
소희가 멋쩍은 듯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진모가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두어 번 긁더니 입술을 거의 다문 채로 숨을 날카롭게 들이켰다.
“스으으읍, 이게 가능 할런 지는 모르겠는데. 가스통에다 기름통을 붙여서 좀비들 중간 중간에 던져 넣고 총으로 쏴서 터뜨리는 건 어떨까?”
“오! 아저씨 그거 좋은 방법인데요. 아까도 오면서 가스 판매점 두 군데 정도 본 거 같은데, 구하기도 쉬울 것 같아요.”
나라는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진모의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들 나름대로의 완벽한 계획을 세운 뒤,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정배가 진모에게 다가왔다.
정배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정배야, 왜 그래?”
“아저씨, 근데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왜 예지를 못 보게 하는 거예요?”
“흠, 글쎄다. 아저씨도 그게 궁금한데, 난 예지만 무사하면 뭐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 같아.”
“만약 예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그 나쁜 사람들 가만 안 둘게요!”
“그래, 정배야 고맙다. 네가 있어서 아주 든든하다.”
진모는 어린 정배의 듬직함이 대견한 듯, 정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 시간을 보낸 후, 그들은 가스 판매점과 주유소를 들려 작은 가스통과 작은 기름통을 테이프로 둘둘 말아 떨어지지 않게 50개 정도의 가스폭탄을 만들었다. 우선 차에 20개를 먼저 실고 나머진 가스 판매점 안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세밀하게 각자의 역할을 나눴다.
“자 마지막으로 점검 해보자. 우선 차로 바리케이드 근처로 가면 한 군이 내려서 묶고, 그 다음 바리케이드를 치우면, 좀비들을 최대한 병원에서 먼 곳으로 유인해서 가스폭탄을 던져 놓고 나랑 나라 양, 한 군이 총으로 쏘면 끝이야. 물론 맞추기가 쉽진 않겠지만.”
진모의 말이 끝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싸워온 정도의 좀비가 아니라 좀비군단을 상대해야 하는 전쟁 같은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들 모두의 긴장감은 그들 각자의 인생에서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소희는 핸들을 여러 번 휴지로 닦아내고 있었고, 진모는 자신의 옆에 잡기 편한 위치에 산탄총의 총알들이 담긴 상자를 놓았다.
한이는 처음 잡아 보는 기관단총의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계속 어깨에 견착해보고 장전도 해보고, 탄창도 빨리 제거했다 다시 삽입해보기도 하고 있었다.
나라는 길거리에 지형지물을 좀비라 생각하고, 그들 사이에 떨어진 가스폭탄을 맞추는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정배는 차안에서 가스폭탄이 이리저리 굴러다니지 않도록 넣어둔 상자들을 혹시라도 움직이면 바로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덧 태양은 그들의 눈을 가장 괴롭히는 위치까지 지고 있었다.
각자만의 방법으로 긴장감을 떨치던 그때, 소희가 운전석에서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우리 팀명 정해요!”
다들 황당한 듯 소희에게 집중했다.
소희는 늘 그렇듯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냥, 영화 같은데 보면 악당들 물리치는 정의의 주인공들은 팀명이 있잖아요. 고스터 바스터즈, 판타스틱4, 엑스맨 같은 거요.”
그들 모두는 소희의 제안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서로 좋은 팀명을 짓기 위해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정배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외쳤다.
“어벤져스요!”
“아냐, 정배야 탈락. 그건 너무 표절이잖아.”
소희의 엄격한 기준에 정배는 곧바로 다른 팀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점잖게 있던 한이가 슬쩍 손을 들었다.
“진모와 아이들 어때요?”
“땡! 한이 씨도 너무 쉽게 가려고 하지 마세요.”
소희는 엄격했다.
이번엔 나라가 지나가는 투로 툭 던져본다.
“좀비 바스터즈?”
“땡! 아, 언니!”
“미안.”
소희의 엄격한 잣대에 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던 진모가 좋은 이름이 떠오른 듯, 소희를 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건 진짜 멋진 이름인데, 예전에 엄청 유명했던 만화책에 나와서 더 유명해지기도 한 거야.”
“뭔데요?”
“북두칠성!”
“북두칠성? 칠성 사이다가 연관 되는데요?”
“아냐! 소희 양,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으로 생긴 일곱 개의 별을 뜻하는 이름이야. 우리가 예지까지 하면 총 일곱 명이잖아.”
“땡!”
“왜? 이유가 뭐야?”
“그냥 너무 촌스러워요.”
소희의 엄격함에 진모도 당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모두들 소희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럼, 소희 양이 한번 지어봐!”
“그래, 소희야 네 작명 솜씨 좀 보자.”
“소희 씨의 냉정함에 솔직히 섭섭했습니다.”
소희는 모두의 반발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천천히 치켜세우며 말했다.
“해피엔딩스.”
“해피엔딩스? 소희 양, 그게 뭐야 실망인데. 무슨 투자회사 이름 같잖아.”
“그래 소희야, 해피엔딩스가 뭐야? 좀비 바스터즈가 낫지!”
“설마 그 스는 우리가 여러 명이라서 복수의 의미로 넣은 건가요? 아, 정말 소희 씨한테 실망했스!”
“소희 누나, 왜 어벤져스 따라했스?”
모두의 공격에 소희는 처절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다들 왜 그래요? 이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은 팀명인데!”
결국 그들을 마땅한 이름이 나오지 않자, 팀명은 나중에 짓기로 하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처음엔 웬 황당한 소린가 했던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이 많이 완화됐다.
소희가 몰고 온 작은 소란은 긴장이 극에 달했던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약이 됐다.
모두들 다시 각자의 역할을 떠올리며 좀비군단과의 전쟁 준비를 마쳤다.
소희가 드디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오늘따라 밴이 내지르는 엔진음은 성난 황소의 울음소리처럼 거칠었다.
밴은 곧장 병원 근처로 전진했다. 병원 주변을 돌며 바리케이드 사이에 틈새가 없는 곳을 찾았다.
마땅한 곳을 발견한 소희는 천천히 차를 바리케이드 앞쪽으로 후진 시켰다.
다가오는 밴의 뒷모습에 좀비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미쳐 날뛰는 좀비들을 잠시 쳐다보던 한이가 심호흡을 한 후, 밴에서 잽싸게 내렸다.
진모와 나라는 혹시라도 다가오는 좀비가 주변에 있는지 철저히 경계하고 있었고, 한이는 쇠사슬 체인을 밴에 연결한 뒤 바리케이드에도 연결하기 위해 그쪽으로 다가갔다.
“크악! 크으으 크으윽”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바리케이드 사이사이로 손을 뻗으며 한이를 잡으려 했고 좀비들이 바리케이드 쪽으로 몰리자 바리케이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이는 최대한 좀비들의 손에 잡히지 않게 조심하며 쇠사슬 체인을 바리케이드에 연결했다.
연결을 마친 한이가 잽싸게 밴에 올라탔다.
“소희 씨! 달려요!”
“오케이!”
소희는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밴이 전진하자 밴과 바리케이드 사이에 연결된 쇠사슬 체인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처음엔 잘 안 끌려오는 듯싶더니 소희의 완급 조절에 탄력 받아 바리케이드가 끌려오기 시작했다.
바리케이드 하나가 끌려오자 철조망으로 연결돼있던 바리케이드가 양쪽에서 두 개씩이 더 끌려왔다.
총 다섯 개의 바리케이드가 시끄러운 마찰음을 내며 밴에 달린 채 한동안 끌려왔다.
앞을 가로막던 바리케이드가 사라지자 좀비들은 목줄 풀린 사냥개처럼 앞쪽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뛰는 좀비, 걷는 좀비, 다리를 끄는 좀비, 기는 좀비까지 이제까지 그들이 봐온 모든 좀비들이 다 모여 있었다.
키와 덩치도 각양각색이고 팔, 다리의 온전함도 각양각색인 좀비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몰려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상당한 거리까지 이동한 밴에서 한이가 내려 잽싸게 쇠사슬 체인을 풀고, 괴성을 내며 몰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부터가 본 게임 시작이구나!”
한이의 말에 그들 모두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다시 밴에 올라탄 한이는 칼을 집어 들었고, 진모는 가스 폭탄을 집어 들며 외쳤다.
“다들 시작해보자. 소희 양, 나라 양, 한 군 그리고 정배야! 인간이 좀비 따위보다 강하다는 걸 보여주자고!”
진모의 파이팅에 모두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소희는 밴을 좀비들 쪽으로 출발 시켰고, 나라는 보조석 창문을 열고 기관단총을 들어 견고한 조준 사격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그들과 좀비군단은 격돌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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