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그들 vs 좀비군단 (1부. 플랜B)
철컥!
좀비떼를 넋 놓고 바라보던 진모가 산탄총을 장전했다.
소희가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 봤고, 한이와 나라도 걱정하는 눈빛으로 진모를 바라봤다.
진모는 당장이라도 차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산탄총을 꽈악 움켜쥔 진모의 팔을 정배의 작은 손이 다가와 살며시 감쌌다. 진모는 그런 정배의 얼굴을 보며 산탄총을 움켜쥔 손에 힘을 풀었다.
“소희 양, 일단 여길 벗어나자. 바리케이드가 있다고 해도 언제 우릴 보고 달려들지 모르니깐.”
소희는 기운 없이 들리는 진모의 목소리에 덩달아 기운 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네, 일단 이곳을 벗어날게요.”
차는 조용히 후진해서 좀비떼가 우글거리던 지역을 벗어났다. 진모는 고개를 들고 계속 골똘히 뭔가를 생각 중이었고, 한이는 창문에 이마를 기댄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라는 애꿎은 기관단총만 계속 만지작댔고, 정배는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한동안 도로를 달리던 차는 조용한 길가로 가서 멈춰 섰다.
차안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좀비의 유무를 파악한 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천천히 좀비처럼 차에서 내렸다. 좀비가 나타난 이후 매일이 그랬지만, 오늘은 그들 모두에게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소희가 천천히 내리던 모두를 보고 분위기도 전환할 겸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방금 전부 좀비 같았어요.”
“그러게, 나도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게 내가 좀비 같다.”
나라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입은 웃고 있었지만, 천천히 고개만 끄덕일 뿐 다들 말은 없었다.
가장 기운 없어 보이는 진모가 맥없이 입을 열었다.
“뭐, 일단 근처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지?”
“네, 아저씨 그게 좋겠어요.”
한이는 대답함과 동시에 바로 옆에 있는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간혹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도 보였지만, 한이가 선택한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빈 집이었다. 한이가 들어가자 일행 모두는 또다시 어슬렁거리며 좀비처럼 따라 들어갔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잠시 긴장을 하며 집 안을 살폈지만, 좀비가 없는 게 확실해지자 일행 모두는 바로 마루에 다 같이 누워 버렸다.
그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전부 골아 떨어졌다.
다음날이 밝았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여는 한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바닥에 붙어있었다.
스트레칭을 마친 한이는 모두를 위해 목숨 걸고 발견한 라면을 끓이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라가 일어나서 한이를 돕겠다고 나섰고, 소희와 정배, 진모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던 세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소희였다.
“근데 아저씨,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병원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복과 군복 입은 좀비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 있다는 건, 다시 말하면 그 곳이 좀비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한 안전구역이 아니었을까요?”
“어, 그러네. 그래 맞아!”
“그리고 어제 분명히 병원 정문이 닫혀 있었어요. 그러니깐 병원 안에 사람들이 살아있을 확률도 있는 거잖아요?”
진모의 표정에 생기가 돌며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정배와 소희도 따라 일어났다.
“그래, 내가 어젠 너무 불안해서 그냥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는데, 소희 양 말을 듣고 보니 가능성은 충분해. 왜 그 많은 경찰과 군인들이 좀비가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병원 안에도 병력과 의료진이 있었을 거야.”
소희는 갑자기 집 안을 뒤지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작은 방에서 컴퓨터를 발견한 소희는 보라매 종합병원을 검색해서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일단 검색을 좀 해봤는데요. 제 예상이 맞았어요. 규모가 큰 병원들은 모두 대피소로 지정해서 운영하고 있었데요.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전화를 해볼게요.”
“그래, 제발 그 안에 모두가 무사해야 될 텐데.”
소희는 마루 한편에 놓여있던 전화기를 들고 보라매 종합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소희는 진모의 얼굴을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의 신호음이 울렸지만, 이번엔 아예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그러나 소희는 방금 전 분명히 전화를 받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끊지 않고 계속 기다렸다.
여러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또 다시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도 아무런 말이 없자 소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여보세요.”
상대는 대답 대신 긴 한숨을 쉬었다.
소희는 잠시 전화기를 들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다.
한참을 말이 없던 상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누구시죠?”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소희는 곧바로 상냥하게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 보라매 종합병원 맞죠?”
“네, 그런데요.”
이상하리만큼 냉소적인 여자의 반응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희는 다시 차분히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윤소희라고 하는데요. 예지의 아버지랑 같이 다니는 일행이에요.”
“네. 그런데 왜요?”
계속되는 여자의 냉소적인 반응에 소희는 어쩔 줄을 몰랐고,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진모가 전화를 이어받았다.
“아, 전화 바꿨습니다. 제가 예지 아빠입니다.”
“예지라뇨? 무슨 소리들을 하시는 거죠?”
“아니, 우리 집 냉장고에 메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예지를 보라매 종합병원으로 데려가겠다고요.”
그 말을 들은 여자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침묵하더니, 다시 긴 한숨을 쉬었다.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고요?”
“네, 위험할까봐 예지를 데려간다는 메모였어요. 그래서 어저께 병원으로 갔었는데 주변에 좀비들이 너무 많아서.”
여자가 진모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이곳에 오셨었다고요?”
“예, 어제 밤에 근처 까지만 갔었어요. 그 안에는 괜찮은 건가요?”
“네, 병원은 안전합니다. 그리고 예지라는 아이는 없네요. 이제 전화를 끊을게요.”
여자가 통화를 마치려고 하자 진모는 다급해졌다.
“아뇨! 왜 끊으시려고요 하세요? 거기 지금 누구누구 계신 거죠?”
“하아, 여기 의사 선생님하고 간호사가 있죠.”
“그럼 다른 분들한테 물어 보세요. 분명히 예지를 데려 간다고 메모지에 적어 놓고 갔다니까요.”
“그럼 잠시 만요.”
진모에겐 더 없이 초조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조용하던 상대측에서 이번엔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아, 네! 예지 아버님이시라고요?”
“예! 예! 예, 제가 예지 아빱니다. 우리 예지 잘 있나요?”
“아 하, 그게 그러니깐 예지를 데리고 있긴 한데요.”
진모는 예지를 데리고 있다는 남자의 말에 아주 밝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우리 예지 살려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근데 아버님, 예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네? 왜요. 무슨 일 있나요?”
“예지는 좀비한테 물렸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병원 안에 좀비는 없는 것 같은데, 안전한 병원 안에서 좀비한테 물렸다고요?”
잠시 조용하던 남자는 들릴 듯 말 듯한 아주 작은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여기 못 오시잖아요. 좀비로 변한 예지 직접 죽이고 싶으셔서 그래요?”
진모는 남자의 황당한 얘기에 점차 언성을 높여갔다.
“이봐요,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당신 의사야? 좋은 말로 할 때 우리 예지 바꿔. 목소리 듣게 바꿔 씨발!”
“아이, 진짜로 아버님, 가슴 아프게 왜 그러세요. 올 수 있으면 한번 와 보시던가.”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진모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선을 뽑아 논 듯 아예 신호조차 가지 않고 계속 뚜 뚜 뚜 하는 통화중 소리만 들렸다.
옆에 있던 소희와 정배 역시 많이 놀라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고, 부엌에 있던 나라도 어느 새 진모의 뒤에 서서 걱정하듯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바닥만 쳐다보던 진모가 갑자기 일어나서 한이에게 물었다.
“한 군, 라면 멀었어? 배가 많이 고프네.”
“아저씨, 라면은 다 됐어요. 근데….”
“다 끓였으면 빨리 먹자. 다들 배고프잖아.”
집 안을 굴러다니던 두꺼운 책을 받침삼아 냄비를 올려놓고, 모두 마루에 모여 앉아 말없이 라면만 먹기 시작했다.
모두가 조심스레 진모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오히려 진모의 표정은 덤덤했다.
한동안 말없이 라면을 먹던 진모가 천천히 운을 뗐다.
“이제부터 우리 헤어져야 될 거 같은데.”
진모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 놀라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한마디씩 한다.
“아니, 왜요?”
“아저씨, 왜 그러세요.”
“하아, 아까 통화 대충 알잖아. 그 병원 안에 예지는 분명히 있어. 당연한 얘기지만 난 구하러 가야 돼.”
진모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라가 바로 대답한다.
“당연히 우리도 가야죠. 보통 때라면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고 그냥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지금 우리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을 같이 넘겨온 가족이나 마찬가지에요.”
한이도 옆에서 거들었다.
“아저씨, 섭섭해요. 예지를 구하러 가자고 처음 말한 것도 소희 씨였고, 저 역시 빨리 예지를 보고 싶다고요. 이건 나라 씨나 정배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리고 성배 형도….”
한이의 말에 다들 잠시 잊고 있었던 성배가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시급한 건 예지 쪽이었다.
“좋아, 일단 다들 너무 고마워. 그런데 거기 좀비 숫자 봤잖아. 거길 같이 가자는 건 모두한테 같이 죽으러 가자는 거나 마찬가지야.”
“아뇨. 분명히 따로 입구가 있을 거예요. 가장 먼저 지하 주차장 입구요. 보통 그런 큰 병원은 지하 주차장 입구가 반대쪽에 있잖아요. 우린 어제 정문 쪽에 모인 좀비떼만 보고 차를 돌렸으니깐 그 병원 주위를 크게 한번 돌아봐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라의 계획에 동의했다.
“고마워 다들. 날 살려준 성배 군도 아직 못 찾았는데, 또 이렇게 나만 도움 받는 게 너무 미안해.”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진모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한이는 그런 진모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어제 제가 쓰러졌을 때 좀비에게 대신 물릴 각오를 하고 저를 보호해준 게 아저씨라고 정배한테 들었어요. 저는 이미 죽었다 살아난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미안하단 말씀 하지 마세요. 여기 있는 모두는 모두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거예요.”
한이의 말에 다들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어떤 인간들은 좀비가 나타난 이후 급격히 인간성을 상실하고 괴물이 되어갔지만, 적어도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욱더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했다.
대략적인 계획이 세워지자, 그들은 서둘러 그 집을 떠나 어저께 성배와 헤어졌던 곳으로 먼저 갔다.
그들은 큰 종이에 성배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적었다.
‘성배 형, 일단 어디로 가신 건지, 어디 계신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성배 형은 이곳으로 돌아올 거라고 모두가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지를 구하러 갑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돌아와서 기다리겠습니다. 혹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늦게라도 돌아오겠습니다. 형도 이 메시지를 보시면 꼭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큰 종이에 큼지막하게 글씨를 써서 10장 정도를 주변 매장 창문과 전봇대에 단단히 부착했다.
마지막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벽에 붙인 나라는 그 종이에서 한동안 손을 떼지 못하고 계속 종이를 문질렀다.
‘제발 성배 씨가 돌아와서 봐야 할 텐데.’
한참을 주변을 서성이던 나라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30분쯤을 달려 그들을 실은 밴은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우선 근처에 높은 빌딩을 찾은 그들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병원을 보며 대략적인 주변상황을 파악해서 종이에 지도를 그려나갔다.
그렇게 근처에 고층빌딩을 돌아다니며 병원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병원 주변을 꼼꼼히 탐색하여 드디어 지도를 완성시켰다.
지도의 서쪽이 병원 정문, 동쪽이 지하 주차장 입구, 북쪽은 낮은 담장의 야외 주차장, 남쪽은 높은 담장으로 이루어진 벽이었다.
그들은 다시 밴으로 돌아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나라 양, 말대로 지하 주차장 입구가 반대쪽에 있긴 했는데, 뭐 그 앞에도 역시 좀비들이 둘러싸고 있었으니 거기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이쪽은 어떤가요?”
한이는 지도에서 북쪽을 가리켰다.
“아까 보니깐 의외로 좀비가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하고 또 담장도 낮고 심지어 벽이 아니라 창살처럼 된 곳도 있어서 넘어가기도 수월하겠던데요.”
진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그래 맞아. 그 앞쪽에 차들도 많고 분수대나 벤치 같은 구조물들 때문에 좀비들이 거의 없었어. 근처에 차를 대고 속전속결로 좀비들 처리하고 담 넘어가면 의외로 쉽겠는데.”
“근데 그쪽이 오히려 젤 위험할 수도 있어요.”
나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그녀에게 집중했다.
“우선 넘어가긴 쉽겠죠. 근데 거기도 좀비가 다른 곳에 비해 적다뿐이지 못해도 수십 마리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어요.”
자신의 뺨을 두어 번 긁은 뒤 나라는 말을 이어간다.
“우리가 아무리 신중히 돌파한다고 해도 분명히 좀비들은 울음소릴 내지를 텐데, 그럼 주변 좀비들이 그곳으로 몰려올 거예요.”
궁금한 게 있는 듯 소희가 나라에게 질문을 던진다.
“언니, 그럼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되잖아요. 어차피 벽 중간 중간에 창살로 된 담장도 있던데 정배랑 저도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어요.”
“바로 그게 문제야. 그 창살로 된 부분은 우리가 넘기 쉽지만, 좀비들이 떼로 몰려오면 그 부분이 부서질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처럼 뛰어넘진 못해도 자기들끼리 밀고 밀리다 넘어 올수도 있어.”
“그러네요, 창살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우리 가슴보다 낮은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에요.”
한이의 말을 이어받아 나라가 다시 말한다.
“설사 운이 좋아 담장이 굳건히 버텨주고, 단 한 마리도 담장을 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가 탈출할 곳이 사라져버려요.”
나라의 말에 모두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동의했다.
“맞다. 언니, 진짜 대단해요. 역시 엘리트 경찰은 다르네요.”
“나라 양, 없었으면 우린 아마 그쪽으로 들어가서 병원에 갇혔을 거야.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다들 나라의 현명함을 칭찬했지만, 정작 나라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나라는 미간에 인상을 쓰며 지도를 꼼꼼히 살폈다.
“아무튼 북쪽은 우리가 탈출할 때 이용해야 될 거 같고….”
나라의 이 말을 끝으로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지도를 아무리 봐도 딱히 마땅한 방법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잠시 쉬면서 점심도 먹을 겸 지도를 치우고 근처에서 구한 근사한 빵과 커피를 꺼냈다.
“의외로 아직까진 곳곳에 먹을거리가 많아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어제 마트는 정말 깨끗이 털어갔던데, 또 이 근처는 이렇게 맛있는 빵도 많이 구하고 캔 커피도 엄청 많고, 물론 언제까지 영원하진 않겠지만요.”
나라와 한이는 짧은 대화를 마치고, 빵과 커피를 먹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정배는 캔 커피를 따려다 손가락 힘이 부족해서 캔 뚜껑의 손잡이만 떼어버렸다.
그걸 본 진모는 자신의 커피를 정배에게 내밀었고, 자신은 조금 밖에 안 따진 캔의 뚜껑을 엄지로 힘을 주어 안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저거다!”
갑자기 소희가 외쳤다.
모두는 갑자기 소리친 소희를 바라봤다.
“저거에요! 저거.”
“응? 뭐가 저거야?”
나라가 묻자 소희는 진모가 방금 딴 캔 커피를 가리켰다.
“물론 캔 뚜껑이 깔끔하게 따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든 뚜껑을 밀어 넣어서 커피만 마시면 되잖아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소희가 말하는 의미를 파악하진 못했다.
소희는 모두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며 말했다.
“힘으로 정면 돌파하자고요. 아까 옥상에서 다들 눈치 챘잖아요. 그나마 북쪽이 해답 같았는데 그곳도 탈출을 위해 남겨놔야 한다면 그냥 힘으로 밀고 들어가자고요.”
소희의 당당한 말에 다들 조금씩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가 무슨 특공대냐 작전은 무슨 작전 그냥 힘으로 뚫자!”
나라의 말을 받아 한이도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우린 이미 편의점에서 백 마리 넘는 좀비들을 상대 해봤잖아요. 이번엔 그때랑 달리 한판 붙어야 하지만 저런 미개한 좀비들과는 다른 우린 인간이에요!”
진모도 밝은 표정으로 소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소희 양! 좋았어. 단순하게 가보자.”
모두가 소희의 말에 사기가 올라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것처럼 떠들던 그때, 정배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번엔 아무런 작전 없이 그냥 쳐들어가요?”
소희와 나라, 한이와 진모는 정배의 질문에 흥분했던 마음이 식으며 다시 차가운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모두들 좀비를 피해 병원으로 들어간다는 작전을 버리고, 정면 돌파하기로 한 마음은 식지 않았다.
그들은 서둘러 남은 빵과 커피를 먹었다.
곧바로 플랜B를 짜야 했기 때문이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