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로 뒤덮인 세상-18화 (18/36)

5화 - 예지

진모의 발걸음 소리가 바로 뒤에 있는 나라의 귀에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는 계단을 하나하나 조심히 밟고 올라갔다.

“후우, 후우.”

4층까지 올라가는 길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긴 진모나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둘은 4층에 올라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리저리 복도를 살펴보던 나라가 진모에게 물었다.

“저 반대편에도 계단이 있나요?”

“아냐, 계단은 우리가 올라온 이 계단 하나 뿐이야.”

“그렇군요. 부디 별일 없기만을 바라야겠네요.”

순간 위쪽 계단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났다. 진모의 작은 손전등이 곧바로 소리가 난 위쪽 계단을 비췄다. 나라와 진모는 숨죽인 채 서로의 얼굴과 계단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진모는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며 한동안 위쪽의 반응을 살폈다.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예민했나봐. 이제 집으로 가보자.”

진모의 말에 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기관단총을 들어 사격자세를 취하고 진모를 따라갔다.

진모의 집은 복도 중간에 있는 406호였다. 진모와 나라는 자세를 낮추고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406호의 문 앞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진모는 현관문 옆에 있는 작은 창을 살며시 열었다.

오래된 집의 작은 창은 귀에 아주 거슬리는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열렸다.

“아, 젠장 이걸 깜빡했네.”

“괜찮아요. 주변에선 반응이 없어요.”

진모는 잠시 멈춰 주변을 살피다 다시 일어나 작은 창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창문 바로 앞 쪽 가까이에 있는 화분에 집의 열쇠가 담겨 있었다. 그는 열쇠를 살며시 집어 꺼낸 후, 현관문을 열었다.

나라는 문 밖에 남아 망을 보기로 하고, 진모는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집 안에 불을 켜고 조용히 예지를 불렀다.

“예지야, 예지야.”

집 안은 고요했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모의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눈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안방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

“예지야, 아빠 왔다.”

안방은 진모의 옷가지들이 지저분하게 놓여있었다. 진모가 좀비 사태가 일어나던 날 시청으로 떠날 때 모습 그대로였다. 진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옷장을 열어봤다. 옷장 안은 역시 비어 있었다. 진모는 서둘러 예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예지는 자기 방에 있을 거야. 예지야, 아빠 왔다.’

예지의 방문을 황급히 열고 들어간 진모의 눈엔 두 평 남짓한 작은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지가 좋아하던 곰돌이 푸우 침대가 외로이 놓여있었고, 그 위엔 예지의 장난감 인형들만이 누워있었다.

진모는 다시 마루로 나가 주방의 큰 수납공간들을 열어봤다.

예지는 없었다. 이번엔 화장실로 달려갔다. 역시 예지는 없었다.

진모는 작은 집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집안에 예지가 없는 걸 알면서도 그는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 멈추면 그는 다시는 일어날 힘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진모의 머릿속으로 수 만 가지 안 좋은 상상들이 동시에 몰려오자 그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시 예지의 방으로 가서 잠시 예지의 침대를 보던 진모는 이내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밖에서 망을 보던 나라는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진모가 나오질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오는 집이었지만, 집의 크기가 작아서 한눈에 진모가 어딨는지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나라는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진모에게 다가가서 그냥 진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섣불리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묵직한 기운이 예지의 방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라는 진모에게 물이라도 떠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방에 있는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냉장고의 문을 열려는 순간, 그녀의 눈에 냉장고 문에 붙어있던 작은 메모지가 들어왔다.

‘좀비를 피해 집 안으로 무작정 들어왔다가 여자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아이는 아빠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너무 위험해서 제가 데려갑니다. -보라매 종합병원-’

나라는 메모지를 들고 바로 진모에게 달려갔다.

“아저씨, 예지 찾을 수 있어요! 이거 보세요.”

“뭐? 나라 양, 그게 무슨 말이야?”

진모는 나라가 내민 메모지를 얼떨결에 받아들고, 내용을 확인했다. 예지가 살아있다는 확신이 서자, 진모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라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픈 감정이 확 올라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잠시 울던 진모는 눈물을 닦고 서둘러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음료수와 식빵 등을 챙겨 다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나라도 마음을 추스르고 진모를 따라 나섰다.

입구에서 기다리던 소희와 정배는 어두운 주변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소희는 아까부터 소변이 급했지만, 진모와 나라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주변이 음산해서 계속 참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자 정배에게 주변감시를 철저히 부탁하고 급하게 볼일을 보러 가장 가까운 연립주택 1동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정배는 큰 밴 안에서 운전석 쪽과 가장 뒤쪽 창문 쪽을 번갈아 이동하며 좀비가 오는지 살피고 있었다.

정배가 막 운전석 쪽을 확인하고 반대쪽 한이가 누워있는 뒷좌석으로 가는데 한이의 팔이 슬쩍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 한이 형!”

그러나 한이는 대답이 없었다. 정배는 분명히 한이의 팔이 움직였다고 생각하고 잠시 그의 주변에 서 있었다. 하지만 한이는 미동도 없었다. 정배는 한숨을 쉬며 다시 차 밖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정배의 귀에 차의 왼쪽에서 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정배는 애써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이번엔 분명히 들렸다. 하지만 정배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차마 가보지 못하고 한이의 옆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쿵!

이제 정배는 소리가 나는 것이 확실하며, 소리를 내는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린 정배에게 그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정배는 조심스럽게 차의 왼쪽 창문으로 움직였다.

‘이 차는 튼튼하니까 괜찮겠지….’

정배는 창문을 닫아둔 채로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창밖을 살폈다. 그러나 정배의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때 또 한 번의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차의 왼쪽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질 않자 정배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정배는 다시 한이 곁으로 돌아가 한이의 손을 꼭 잡고 소희가 들어간 연립주택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쿵! 쿵! 쿵!

소리가 커졌다. 진동마저 느껴진다.

정배는 자신도 모르게 무기 가방에서 창을 꺼냈다. 하지만 8살의 정배는 창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배가 어쩔 줄 모르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 소희가 연립주택에서 나와 차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배는 안도하는 마음이 생김과 동시에 소리를 내는 정체가 소희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배는 뭐가 옳고 그른지 따지기 전에 일단 어른인 소희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창문을 열고 외쳤다.

“누나! 차 왼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요.”

소희는 정배가 다급히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아보였는지 그 소리에 집중하려고 더 빨리 달려갔다.

그때 차 밑에서 빠른 속도로 좀비 두 마리가 기어 나왔다. 한 마리는 양쪽 무릎 아래쪽이 뼈만 남아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두 다리 모두 멀쩡했지만 아마 생전에 장애가 있었던 것 같았다.

“크아악”

소희는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 뒷걸음질 치려다 걸음이 꼬여 어정쩡한 자세로 넘어졌다.

“정배야, 창문 닫아!”

소희는 그렇게 외친 뒤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기어오는 좀비를 피하기 위해 우선 오른쪽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엄청난 속도로 기어온 좀비는 소희를 아슬아슬하게 잡지 못하고 지나쳤다. 좀비들의 기는 속도는 빨랐지만, 방향 전환은 느렸다.

소희는 잽싸게 일어나 다시 차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차 바로 앞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좀비 한 마리가 창문 너머에 있는 정배를 향해 낮은음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크으으으으”

소희는 다시 자신을 지나쳐 갔던 기는 좀비를 쳐다봤다.

그것들은 이제 방향을 바꿔 다시 소희 쪽으로 맹렬히 기어왔다.

소희도 그 동안 좀비들을 맞닥뜨리며 조금의 내성이 생겼는지 두려움에 맞서 잘 대처하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자신에게 거의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곳으로 재빨리 움직여서 기는 좀비들을 잘 피하고 있었다.

문제는 차 앞에 있는 좀비 때문에 차로 돌아 갈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소희는 하는 수 없이 기는 좀비들을 몇 번 피하며 정배 쪽의 상황을 보다가 진모와 나라가 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몇 동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진모와 나라를 빨리 만나야 되기 때문이었다.

‘제발, 나라 언니, 진모 아저씨 빨리 나오세요.’

소희는 한이처럼 빠르진 않았지만 숨을 헐떡이면서도 멈추지 않고 연립주택 단지 깊숙이 들어갔다.

‘여기가 끝인데, 8동.’

소희가 연립주택 단지 끝에서 뒤를 돌아 자신에게 기어오는 좀비를 다시 확인했다.

한 마리는 두 팔로 땅을 힘차게 짚고, 자신의 몸을 끌었으며, 한 마리는 팔꿈치를 이용해서 빠르게 기어왔다. 좀비들이 기어온 자리엔 피와 뼛조각, 살덩이들이 섞인 자국이 남아있었다.

소희는 우선 계단 위로 피하기로 생각했다. 그녀가 8동의 입구로 들어가려는 순간, 진모와 나라가 1층으로 내려왔다. 소희의 모습을 본 진모는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했다.

“소희 양! 괜찮아?”

“네, 하악, 제 뒤에 좀비 두 마리….”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소희는 바로 뒤에 쫓아오는 좀비의 존재를 진모와 나라에게 알렸다. 진모는 소희를 자신의 뒤로 숨긴 뒤, 산탄총을 장전한다.

철컥!

그리고 과감히 발사했다.

앞서 기어오던 좀비의 머리통이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진모는 처음 느껴본 산탄총의 반동에 오른팔이 얼얼했지만, 곧바로 뒤이어 기어오는 좀비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발사했다.

눈앞에 사태가 진정되자 소희는 곧바로 밴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아, 지금 정배 혼자 차에 있는데 좀비가 한 마리 붙어 있어요.”

“이런, 빨리 가보자.”

소희의 말에 진모가 바로 달려갔고, 나라는 소희와 함께 속도를 맞추며 정배와 한이가 있는 차로 달려갔다.

먼저 달려간 진모의 눈에 어렴풋이 정배가 차 밖에 나와 있고, 그 옆에 좀비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진모는 시력이 좋지 않아 눈가에 인상을 쓰며 실눈을 뜨고 정배 쪽을 바라보며 산탄총을 장전했다.

“정배야, 엎드려!”

그 순간 정배가 양손을 벌리고 진모 쪽으로 달려오며 외쳤다.

“아저씨! 안돼요. 한이 형이에요!”

정배의 말에 진모는 산탄총을 내리고 한이에게 달려갔다.

“한 군, 깨어났구나! 깨어났어.”

한이 발 옆에는 좀비의 목이 덩그러니 뒹굴고 있었다.

“네, 아저씨.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뒤이어 달려온 나라와 소희도 깨어난 한이를 보고 기쁨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소희는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한이를 덥석 끌어안았다. 소희의 행동에 다들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둘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라는 끼어들 틈이 없어 한이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깨어나서 다행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이 역시 어설프게 웃으며 나라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저…, 저기 소희 씨, 저 괜찮아요.”

한이는 부끄러운 듯 말까지 더듬으며 소희에게 말했다. 소희도 너무 기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격한 표현을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민망했는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깐 전 저기….”

이 어색한 상황을 연륜이 있는 진모가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둘이 피 끓는 나이인 건 알겠지만, 지금은 마땅히 둘이서 따로 갈 만한 데가 없을 거야.”

진모의 농담에 모두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 아니 진모 아저씨 무슨 말씀이에요.”

한이는 민망함에 괜히 큰소리를 쳤고, 소희는 고개를 숙인 채 곧바로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잠깐의 농담이 이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줬다. 마치 잠시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을 5명 모두가 느꼈다. 그러나 나라의 한마디에 그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근데, 한이 씨, 성배 씨는 도대체 어디 간 거예요?”

“저도 방금 정배한테 얘기 들었는데, 성배 형은 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제가 쓰러진 다음에 바로 근처를 찾아 보셨다면 못 만날 리가 없었을 텐데.”

한이는 왠지 성배가 행방불명 된 게 자신의 잘못 같아 말을 끝마칠 수가 없었다.

일행은 일단 성배를 찾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예지부터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전에 한이가 목숨을 걸고 발견한 생수와 라면을 챙기러 모두 같이 마트부터 들렸다.

보라매 종합 병원은 마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한이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두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그 검은 고양이가 좀비에게 먹힌 거죠. 전 그때 이성을 잃고 좀비들을 처치했고요. 그러다 체력이 다해서 도망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완전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거든요.”

한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폰은 완전히 부서져있었다.

“폰도 이젠 못쓰게 됐네요.”

나라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제 것도 배터리가 없어서 있으나 마나에요.”

“어차피 이 상황에 폰으로 뭘 할 수 있겠어. 나도 배터리는 진작에 닳았지.”

진모 역시 폰의 잔여 배터리는 없었다. 한이는 운전을 하고 있는 소희에게 물었다.

“소희 씨는 배터리 있어요? 뭐, 암담하겠지만 뉴스라도 확인해보고 싶은데.”

“저도 이미 배터리 나갔어요.”

“아…, 그럼 우린 이제 뉴스는 못 보겠네요.”

잠시 폰을 들여다보던 한이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근데 참 재밌네요.”

그걸 본 나라가 옆에서 궁금한 듯 묻는다.

“뭐가 재밌어요?”

“그냥,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고, 현대인이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때론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론 최고의 장난감이 되기도 해주던 이 스마트폰이 지금은 가장 쓸모없는 짐이잖아요.”

자신의 폰을 쳐다보던 한이는 창문을 열고 폰을 밖으로 던져 버렸다.

나라와 진모도 잠시 자신들의 폰을 쳐다보다가 창밖으로 폰을 던져 버렸다.

소희는 갑자기 자신들의 폰을 던져 버린 그들을 황당한 듯 룸미러로 바라보다가, 이윽고 자신의 폰을 잠시 보며 헛웃음을 짓다가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모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운전에만 집중하던 소희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앞에 심상치 않은데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밴의 속도를 천천히 낮췄다.

소희의 바로 뒤에 있던 한이가 먼저 고개를 내밀어 앞쪽을 확인했다.

그들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돼있었고, 살아있을 때 군인과 경찰이었을 걸로 보이는 좀비들이 개떼처럼 바글거리고 있었다. 못해도 백 마리는 거뜬히 넘어 보였다. 진모와 나라도 모여 있는 좀비떼를 보며, 잠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앞으로 가는 건 자살행위겠죠. 일단 돌아갈게요.”

소희는 차를 천천히 후진하기 시작했다.

그때 진모가 크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근데 어쩌지 보라매 종합 병원은 바로 저 좀비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진모의 말에 일행 모두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좀비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니 바글거리는 좀비떼로 둘러싸인 담장 안 쪽 건물외벽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병원간판이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한이는 푸념 섞인 혼잣말을 했고, 그 옆에서 나라도 기가 차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 이런. 우리 이제 어쩌죠.”

소희는 진모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고, 진모는 아무런 말없이 개떼처럼 바글거리는 좀비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수많은 좀비들의 괴성은 서로 뒤섞여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나오는 잡음처럼 들렸지만, 그마저도 한이를 비롯한 모두의 귀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차안에 있는 그들은 넋을 놓고 좀비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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