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미친놈
나라는 일행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선뜻 마트로 간 성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에휴, 그냥 내가 더 참을 걸. 성배 씨, 말투 원래 그런 거 알면서도 내가 왜 그렇게 반응했지.’
밴의 창가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는 나라가 맘에 걸리는지, 소희가 다가가서 나라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나라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언니, 아까 성배 오빠랑 싸운 것 때문에 그래요?”
나라는 소희의 밝은 미소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 그냥 별거 아닌데 내가 너무 날카롭게 굴었나 해서.”
소희는 표정이 밝아지는 나라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성배 오빠는 말투만 그렇다고 언니가 말해 줬잖아요.”
“그러게, 이 중에선 그래도 성배 씨에 대해선 내가 젤 잘 아는데.”
잠시 말끝을 흐리던 나라가 계속 이어갔다.
“인상 쓰면서 보낸 게 좀 미안하네.”
“성배 오빠는 또 금방 잊을걸요. 아마 돌아올 땐 화가 다 풀려서 올 거예요. 한이 씨랑 있으면 이상하게 차분해 지거든요.”
소희의 긍정적인 생각에, 나라는 꽉 막혔던 기분이 조금 풀렸다.
“소희 넌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건데, 정말 영혼이 맑은 사람 같다. 누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부러워.”
“언니, 부끄럽게 왜 그래요. 지금 전 일행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모두에게 미안함이 있어요.”
소희의 말을 듣던 나라는 손을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아냐, 소희야 그렇게 생각 하지 마.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너한테 엄청난 에너지를 받고 있어.”
“네? 저한테요?”
소희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한이 씨도 성배 씨도 그리고 진모 아저씨랑 정배, 그리고 나까지 모두 너의 그 긍정적인 힘에 알게 모르게 많은 힘을 얻고 있어.”
그 말을 들은 소희의 표정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쑥스러움을 잔뜩 드러내고 있었다.
나라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방금도 난 성배 씨랑 싸운 것 때문에 기분이 아주 이상했거든. 미안함도 있지만 또 화도 나고, 짜증에 찝찝함까지 온갖 부정적인 기분으로 휘감겨 있었어. 근데 네가 와서 내손을 잡으면서 한마디 하는데,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싹 사라지더라. 소희 네 표정만 봐도 기분 좋아져.”
소희는 민망함에 자신의 양손을 마구 비볐다.
“아, 언니 그러지 마요. 전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나라는 민망해하는 소희가 귀여운 듯, 흐뭇한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봤다. 나라와 소희의 대화가 막 끝나갈 무렵이었다.
똑 똑
진모가 차의 왼쪽 창가로 와서 창문을 두드렸다.
“나라 양, 내가 눈이 안 좋아서 멀리 있는 게 잘 안 보여서 그러는데 저쪽에서 뛰어오는 게 사람이야?”
진모의 말을 들은 나라와 소희는 진모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명의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진모 아저씨, 일단 타세요. 정배야 벨트 매.”
뒷좌석에 누워있던 정배가 벌떡 일어나서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진모는 근처 옷가게에서 챙겨온 옷가지들을 차에 대충 던져놓고 황급히 올라탔다.
소희는 내리지 않고, 바로 운전석으로 건너가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라는 곧바로 기관단총에 잔탄을 확인하고, 우선은 밖에서 보이지 않게 팔을 아래쪽으로 내려서 들고 있었다.
“근데, 저게 좀비라면 어떻게 저 멀리서 우릴 발견한 거지?”
진모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좀비랑은 다른 점이 몇 개 있어요. 적어도 제 생각에는요.”
나라의 말에 소희를 제외한 차 안에 있던 모두가 나라를 바라본다.
“그러니깐 우리가 흔히 좀비영화를 보면, 일단 좀비로 변하면 개성이 없어지잖아요. 그런데 현실에 좀비들은 각각의 개성이 남아있어요. 뛰는 놈들도 있고, 그냥 걷기만 하는 놈들도 있고요.”
진모가 옆에서 끼어든다.
“그래, 맞아. 아주 약한 좀비도 있고, 정말 힘이 센 좀비도 있고, 저번에 소희 양을 힘들게 했던 좀비는 분명히 자동차가 중간에 있는 걸 인지하고 돌아서 가기도 했고, 그런데 어떤 놈은 앞에 뭐가 있어도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전진만 하는 놈도 있었어.”
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니깐 지금 저것들은 시력이 좋던가, 아니면 후각이 발달했던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하여간 우릴 발견한 거죠. 물론 좀비라면요.”
나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희가 살며시 액셀을 밟았다.
“좀비가 맞네요! 일단 후진할게요.”
“크아아아아아아!”
어느새 코앞 까지 뛰어온 그 누군가의 정체는 좀비였다. 세 마리 모두 뛰는 속도가 엄청났다.
소희는 황급히 차를 후진하기 시작했고, 나라는 창문을 열고 좀비들을 향해 바로 사격을 가했다.
“으아!”
나라의 예고 없는 사격에 총소리를 처음 듣는 소희가 순간적으로 놀라, 반사적으로 운전대에서 손을 땠다가 황급히 다시 잡았지만, 균형을 잃은 차는 우측으로 돌며 전봇대에 부딪쳤다.
쾅!
소희는 황급히 다른 사람들이 괜찮은지 물었다.
“으으, 다들 괜찮아요?”
진모와 정배를 빠르게 살펴본 나라가 소희에게 말했다.
“다들 괜찮은 거 같아. 미안해, 소희야 너무 급해서.”
“아뇨, 제가 죄송해요.”
쾅! 쾅!
잠깐의 사고로 좀비들은 차를 둘러쌌고, 한 마리는 운전석 앞으로 그대로 뛰어들며 머리로 운전석 앞 유리를 가격했다.
소희는 역겨운 좀비의 모습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곧바로 차를 전진 시키며 속도를 높였다.
끼이이익!
순간적으로 가속한 후, 급브레이크를 밟아 운전석 앞에 있던 좀비를 떨어뜨린 후, 소희는 차를 다시 뒤로 뺐다.
“저 죄송한데, 다들 꽉 잡으세요. 차로 좀비를 받아버릴게요.”
“크아아아”
소희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차로 좀비에게 돌진해 그대로 받아 버렸고, 좀비는 몸이 심하게 꺾여 차에 붙은 채로 잠시 이동 후 건너편에 있던 약국의 통유리창을 뚫고 그대로 약국 속에 처박혔다.
“저기 있는 두 마리는 어쩌죠?”
나라와 진모는 동시에, 좀 떨어진 곳에 있던 좀비를 확인하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받아버려!”
어느새 성배와 한이는 목적지 근처에 다다랐다. 한이는 앞서가던 성배를 불러 세웠다.
“성배 형, 일단 여기까진 안전하게 왔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근처 한 바퀴 돌아볼게요.”
성배는 어깨에 걸쳐들었던 배트를 내려서 똑바로 잡은 후, 휘두르는 행동을 취하며 한이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 거만한 표정이었다.
“너 저번에 트럭 위에서 뒤질뻔했을 때, 내가 구해준 거 기억 안 나냐?”
한이는 성배의 표정에서 이미 다음 할 말을 읽은 듯,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때 이 형님이 산탄총으로 대략 스무 마리 조지고, 맨몸으로 자동차 위에 날라 다니면서 쇠파이프 하나로 거진 백 마리는 조졌던 거 같은데.”
성배의 무용담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이가 입을 열었다.
“물론 알죠. 성배 형이 없었으면 진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우선 여기서 담배 한 대 피고 계세요. 제가 금방 주변만 둘러보고 올게요.”
성배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아, 한이 이 자식 진짜 맘에 든단 말이야. 너 나중에 형이랑 같이 일 안 할래? 너 취직 못했다며.”
한이는 강렬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아뇨! 저는 그냥 평범하게 회사 다니면서 월급 받고 살래요.”
“그래, 그 얘긴 뭐 나중에 차차하고, 이 형님은 담배로 전투력을 충전하고 있을 테니깐 넌 조심해서 다녀와라. 뭔 일 생기면 바로 소리쳐라.”
“네, 뭐 이 근처나 한번 돌아보는 건데 뭔 일 있을라고요.”
한이는 칼을 든 손을 한 번 돌린 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집들은 서울시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단독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밴이 세워져 있는 큰 도로 보다는 시체의 수가 적었지만, 신림동도 이미 좀비들이 크게 휩쓸고 지나간 듯 곳곳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하, 진짜 처참하네.’
한이는 시체들을 멀리 돌아가며, 주변을 계속해서 살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듯해서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네, 계속 뭔가 쫓아오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한동안 가만히 서서 뒤쪽을 경계하던 한이의 오른쪽에 있던 집 담장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한이는 재빨리 몸을 낮추고 소리가 난 집의 담장에 몸을 붙였다.
‘좀비가 이렇게 숨어 있을 리도 없는데.’
한이는 칼을 단단히 움켜쥐고, 집의 대문 쪽으로 살며시 이동했다. 대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주위를 잔뜩 경계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키야악!”
“아오 씨!”
그 순간 검은 물체가 한이의 얼굴로 날아들며 한이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 한이는 왼팔로 얼굴을 보호하며 바로 뒤를 돌아, 칼로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를 찌르려고 했다.
“야옹”
한이의 얼굴에 상처를 낸 것은 다름 아닌 검은 고양이였다. 한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굴에 난 피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고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휴, 형이 놀랐잖아.”
“야옹”
“너 가족은 어디 갔니?”
“야옹”
“그래그래. 무슨 소린지 알겠다. 너도 잘 살아남아라.”
“야옹”
한이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빵을 하나 꺼내 고양이에게 주고 그 집을 나왔다. 고양이는 그런 한이가 고마운 듯 담장 위로 뛰어올라가 한이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한이는 고양이를 두고 가는 게 내심 걸렸지만,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과 앞으로 얼마나 더 마주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통제가 안 되는 동물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그는 고양이에게 손을 두어 번 흔들어 주고 뒤를 돌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안가 곧바로 마트가 한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이는 성배가 말한 마트 앞에 잠시 서서 안쪽을 들여다봤다. 주변만 둘러보고 성배와 같이 들어가기로 했지만, 한이의 호기심은 순간을 참지 못했다.
‘먹을 게 있나 없나만 확인하고 나오자.’
한이는 그렇게 마음먹고 마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편, 혼자 담배를 피며 한이를 기다리던 성배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담배를 튕겨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거 씨발놈아, 숨어 있지 말고 겨 나와라.”
주변은 고요했다. 성배는 배트를 들어 옆에 있는 집의 대문을 두드리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대문을 강타하는 소리가 조용한 골목에 울려 퍼졌다.
“나오라고 이 씨발놈아! 용건이 있으면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라고!”
기세등등한 성배의 외침에 근처의 한 집 대문이 열리며, 여자 둘이 뭉그적거리며 걸어 나왔다.
“쏘지 마세요.”
“뭐야, 아가씨들이었어?”
얼핏 보기에도 왜소하고 마른 여자 둘이 성배 쪽으로 다가왔다.
한명은 녹색 티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었고, 다른 한명은 흰색 티에 핑크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흰색 티를 입은 여자는 유독 표정이 어두웠다.
성배는 다가오는 여자들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다, 그녀들 쪽으로 가래침을 뱉었다.
캬악 퉤!
여자들 발 앞에 침이 떨어졌고, 성배는 배트의 끝으로 그 침을 가리켰다.
“거기까지만 와. 자기소개는 거기서.”
두 여자는 서로 불안한 시선을 교환하며 망설이더니, 녹색 티를 입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요.”
“오호, 이거 봐라. 자기소개하랬더니, 날 미행한 걸 자백하고 있네.”
성배가 콧방귀를 끼며 살벌하게 말하자, 녹색 티를 입은 여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손을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미행한 게 아니고, 저흰 당신하고 아까 같이 있던 남자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성배는 아무 말 없이 흰색 티 입은 여자를 쳐다봤다. 흰색 티 입은 여자는 성배의 강렬한 눈빛을 차마 보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 나 이 진짜.”
성배는 짜증을 내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두 여자는 180 이 훨씬 넘는 큰 키에 드넓은 어깨, 맨살이 보이는 곳은 문신으로 뒤덮인 성배가 다가오자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어이, 아가씨들 너무 겁먹지 마.”
성배는 뒷걸음질 치는 여자들을 안심 시키며, 그녀들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미녀가 먼저 남자한테 말을 걸면 대부분 둘 중 하나지.”
여자들은 조심스럽게 성배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성배는 그녀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간절히 부탁할 게 있거나, 혹은 꽃뱀이거나.”
꽃뱀이란 말에, 녹색 티를 입은 여자가 완강히 부인했다.
“아니에요. 저희는 꽃뱀 같은 게 아니에요.”
“그럼, 우리한테 간절히 부탁할 게 있다는 건데.”
“네, 맞아요. 저희 좀 도와주세요.”
성배는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후볐다.
“무슨 부탁?”
잔뜩 경계심을 드러낸 성배의 모습에 그녀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성배는 두 여자를 번갈아가며 한참을 쳐다보다, 옆에 세워져 있던 차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 대 꼬나물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무슨 부탁인데 이 위험한 상황에 오해받을 짓을 하면서 까지 날 따라왔는지.”
녹색 티를 입은 여자가 손으로 자신과 흰색 티 입은 여자를 가리켰다.
“우선 전 유지연이라고 하고요, 이 친구는 김혜정이에요.”
성배는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스읍, 후우우우. 난 차성배.”
“네, 성배 씨, 저희는 지금 미친놈한테 잡혀 있다가 도망쳐 나왔어요.”
성배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감도는 듯 했다.
“계속해.”
“그러니까 4일 전이죠. 종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좀비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요.”
“그게 벌써 4일이나 됐나?”
말끝마다 끼어드는 성배가 신경 쓰이는 듯, 지연은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으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성배는 약간은 미안해하며 웃어 넘겼다.
“아, 미안하다. 이제 닥치고 있을게.”
지연이 주도적으로 성배에게 계속 이야기했고, 혜정은 조금씩 옆에서 거들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성배의 표정은 심각해져만 갔다.
근처만 돌아보고 온다던 한이가 벌써 10분이 넘게 돌아오지 않는 것이 성배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피어올랐지만, 그것보다 지금 당장 성배의 귀를 타고 들어오는 지연의 이야기가 성배는 더 신경 쓰였다.
지연의 이야기가 끝난 후 성배는 눈을 두어 번 깜빡 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미친놈이 지금, 세상을 피로 물들이면서 돌아다니는 좀비를 자기가 만들었다고 했다고?”
지연과 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분명히 그랬어요.”
성배는 담배를 조용히 발밑으로 떨어뜨리고 정확히 담배의 불똥에 침을 뱉어 불을 끈 후, 발로 여러 번 뭉개버리며 일어났다.
“아 나, 그 씨발놈 재밌네. 좀비를 자기가 만드셨다.”
성배는 차에 기대 놓았던 배트를 들고 어깨를 두어 번 돌리며 말했다.
“가자. 그 새낀 오늘 뒤졌어. 니들은 운이 좋았다. 나 같은 사람 만나서”
“저, 아까 먼저 가신 분은 같이 안 가나요?”
“뭐, 내가 없으면 알아서 차 있는 데로 가서 기다리겠지.”
지연이 뭔가 난처한 듯 재차 말했다.
“아니, 그래도 같이 가야 더 안전할 거 같아요. 기다렸다 같이 가죠.”
성배는 지연과 혜정을 번갈아 쳐다보며 배트를 들어 앞쪽을 가리켰다.
“걱정 말고 앞장 서. 내가 1초라도 빨리 그 새끼 면상이 보고 싶어서 그래.”
지연과 혜정은 계속해서 난처함을 드러냈지만, 성배의 재촉에 하는 수 없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성배는 조금 걷다가 잠시 멈춰 한이가 달려간 방향을 바라봤다.
뜨거운 태양빛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서 그런지, 한이가 달려간 길은 이상하게 흐릿해 보였다. 성배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근처에 좀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한이도 강한 남자라고 생각한 성배는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지금 당장 정체가 궁금해 미칠 지경인 그 미친놈을 만나기 위해 그녀들을 계속 따라갔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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