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불청객들
“으아아악!”
쿵!
잠자던 성배가 악몽이라도 꾼 듯 비명을 지르며 뒤척이다, 책상에서 떨어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나라는 반사적으로 기관단총을 집어 들며 일어나 성배를 향해 겨눴다.
성배는 자신을 향한 총구를 보자 버럭 짜증을 냈다.
“아, 깜짝이야. 총 좀 치워라. 어제 좀 친해진 줄 알았더니 하룻밤 사이에 총을 들이 대냐!”
나라는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든 터라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아, 성배 씨였군요. 죄송해요 제가 워낙 반사 신경이 좋아서요.”
반쯤 감은 눈으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하는 나라의 눈을, 성배가 손으로 감겨주며 다시 눕혔다.
“나라야, 더 자라. 넌 그냥 더 자.”
나라는 다시 누워, 몇 번의 중얼거림을 남긴 후 다시 잠이 들었다.
성배는 잠시 악몽을 꾸긴 했지만, 밤새 푹 자고 일어나서인지,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상의를 벗은 후 기지개를 쭉 켜는 그의 몸에는 수많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주인을 알 수 없는 면도기와 칫솔을 가지고, 며칠 만에 개운하게 양치질과 세수를 끝냈다.
거울 앞에 잠시 서서 자신을 한동안 바라보던 성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에 새겨진 수많은 문신을 일일이 만져본다.
‘이게 처음 새겼던 도깨비, 이건 용, 이건 충의(忠義), 이건 독사…, 씨발 참 많이도 새겼네.’
성배는 새삼 자신의 올바르지 못했던 과거가 후회라도 되는 듯, 감상에 젖어 있었다.
거기다 불현듯 떠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그의 감정을 흔들어 놨다.
성배는 거울을 보며,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따진다.
“후우, 인간아 인간아. 왜 이렇게 살아온 거냐!”
그때 화장실로 나라가 들어왔다. 그녀는, 거울에 대고 혼잣말을 중얼거린 성배를 보며 덤덤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혼자 영화 찍으세요?”
“영화는 개뿔. 그냥 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지. 근데 넌 그새 일어났냐?”
“한 번 깨서 그런가, 다시 잠이 안 와서요.”
나라는 성배의 옆에서 거리낌 없이 세수를 했다.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포장을 안 뜯은 새 칫솔로 깨끗이 양치질까지 마쳤다.
나라는 양치질을 끝낸 후, 손에 남은 물기를 닦지 않고 손을 흔들어 털어냈고, 그녀의 손에서 날아간 물방울은 옆에 있던 성배에게 튀었다.
성배는 가만히 눈을 감고 물을 맞다가, 나라에게 한소리 했다.
“근데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 넌 왜 여기서 씻냐?”
나라는 거울을 통해 성배를 보며,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뭐, 어때요. 이 상황에 그런 거 따질 필요 있나요?”
어제만 해도 나라는 성배가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하루사이 많은 일들을 겪으며 그녀도 그가 많이 편해진 것 같았다.
“그건, 그런데…. 왜 예의 없이 물을 그렇게 남의 얼굴에 튀기냐.”
“아, 튀었어요? 죄송해요. 근데 생긴 건 험상궂게 생겨서 은근히 소심하시네요.”
성배는 아무 말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나라는 그런 성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성배 씨, 일단 아침이나 먹으러 가죠.”
성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화장실을 빠져 나갔다.
“아니, 난 원래 아침은 무조건 빵만 먹는다. 너나 가서 먹고 와.”
나라는 곧장 식당으로 향했고, 성배는 1층을 돌며 TV가 있는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성배는 모든 방송에서 좀비 뉴스만 나오자 짜증을 내며 투덜댔다.
“이 나란 이게 문제야. 씨발 뭐하나 터졌다 하면 모든 방송사가 하루 종일 똑같은 것만 쏟아내.”
마땅히 볼만한 채널을 찾지 못한 성배는, 그냥 뉴스를 하나를 틀어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금 이 시각 현재까지 좀비 사태는 진정이 되기는커녕,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틀 전 중구에서 처음 시작된 이번 사태는 현재 서울시에만 종로, 명동, 을지로 등의 중심가 일대는 물론 강남, 홍대, 이태원 등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지역과 용산, 여의도 까지도 심각하게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성배는 씁쓸한 표정으로 채널을 돌렸다.
이런저런 채널을 잠깐씩 보다가 좀 색다른 뉴스를 발견한 듯, 성배는 담배를 한 대 꼬나물며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앵커 외에도 안경을 쓴 깐깐해 보이는 나이 든 남자 한명이 더 앉아 있었다.
앵커가 먼저 운을 뗐다.
“주로 2,30대 청년들로 구성된 집단들이 자신들이 좀비를 처리 하겠다며,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 청년들 취지는 좋은데요, 문제는 군부대나 경찰서 앞으로 몰려가서 자신들에게 무기를 지급해 달라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데요. 글쎄요,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요? 사회 심리학 전문가 한분을 모시고 말씀 나눠 보겠습니다.”
“자, 소식은 들으셨죠?”
나이 든 전문가란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카랑카랑했다.
“예, 하도 급하게 연락을 받아서,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런 현상이라고 해야 됩니까? 아니면 이것도 사태라고 봐야 될까요? 앞서 말했듯이 취지는 좋습니다. 좀비를 잡는 걸 돕겠다. 그런데 꼭 총기를 갖고 싸우겠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죠?”
“사실 이 젊은이들은 박수를 쳐줘야죠.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태를 겪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런 집단이 나타날 거라는 건 예상은 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나왔어요.”
전문가의 말을 듣던 앵커가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왜 불과 삼 일 만에 이렇게 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집단이 형성된 거죠?"
전문가는 자신의 오른쪽 안경다리를 만지며 답한다.
“요즘 청년들이 그만큼 정신적으로 뭔가 쌓여있던 거죠. 취직하기도 힘들죠, 취직해도 요즘은 평생직장도 없으니까 불안하죠, 그런 것들이 쌓이기만 하고 풀어 버릴 때가 없었는데, 지금 영화처럼 좀비가 등장했거든요.”
전문가는 자신이 생각해도 좀비의 존재가 어이없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은 후 말을 이어갔다.
“이건 전쟁이랑은 또 다른 개념이잖아요. 좀비라는 건 어찌됐건 아주 위험하고, 또 빨리 죽여 없애야 하거든요. 만약 이번 사태가 좀비가 아니라 전쟁이었다면 과연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빨리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진 않았을 겁니다.”
전문가는 앞에 놓인 물을 한잔 마신 후,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아무튼 선뜻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건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다만, 우리 주변에도 무기는 많거든요. 칼이라던가, 도끼라던가….”
앵커가 끼어든다.
“그렇죠, 하다못해 집안에만 뒤져봐도 칼이 여러 개씩 있잖아요.”
“네, 근데 꼭 총기를 지급해 달라는 건 잘못된 방향으로 다수의 의견이 몰린 거죠. 아마 저 집단들 중에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총에 대한 집착을 보였을 겁니다. 처음엔 다들 좀비들과 맞서 싸우자고 모인 좋은 집단이었을 텐데, 지금은 총기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하고 있는 철없고 무서운 집단이 돼버린 거죠.”
고개를 끄덕이던 앵커가 전문가에게 묻는다.
“자,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들이 원하는 대로 총을 지급하고, 좀비와 싸우게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다른 무기를 지급해서 싸우게 해야 하는 건지, 전 정확히 뭐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는 점점 격앙된 목소리로 말한다.
“일단, 총기를 지급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죠. 저들이 좋은 뜻을 갖고 모인 건 맞지만, 군중심리라는 것도 무시 못 하거든요. 만약에 총기를 전원 지급했는데, 그 총을 가지고 꼭 좀비를 죽인다는 보장을 누가 합니까?”
“네, 맞습니다. 그 점이 군경에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죠.”
“그리고 만약에 총기를 몇 명만 지급하겠다고 하면, 또 총기를 못 받은 청년들은 형평성 운운하면서 시끄럽게 할 게 뻔하거든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총기를 지급하는 건 안 됩니다.”
두 사람은 잠시, 청년 집단들이 서울시 이곳저곳에서 총기를 달라며 시위하는 현장을 찍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성배는 혀를 차며 TV를 꺼버렸다.
“미친것들 집에 있는 과도를 들고 좀비랑 싸우라고? 염병들 하고 자빠졌네. 니들이 마이크 들고 나가서 싸워 보던가! 꼰대 새끼들 하여간.”
“그렇다고 함부로 총기를 지급할 순 없죠.”
어느새 나라가 뒤에 와있었다.
성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라에게 다가가서 담배 하나를 나라에게 내민다.
“식후땡?”
성배의 행동에, 황당한 듯 코웃음을 치며 나라가 거절했다.
“전 담배 안 펴요.”
성배는 실없이 웃으며 말한다.
“알지, 그냥 장난친 거야. 근데 넌 저 꼰대들하고 같은 생각이냐?”
“뭐, 일리는 있으니까요. 총기를 함부로 지급했다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나요?”
“2, 30대면 우리랑 같잖아. 네가 20대, 내가 30대. 우리처럼 이렇게 잘 쓰면 되지.”
“글쎄요. 그래도 저 많은 사람들한테 총을 쥐어주는 건 위험해요.”
성배는 옆에 있던 산탄총을 들어 창밖을 겨냥한다.
“그래…, 하긴 이 무시무시한 놈을 불특정 다수의 인간들한테 뿌려대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통제가 안 되겠다.”
대화를 마친 성배는 제자리에서 몇 번 뛰더니, 푸쉬업을 하기 시작했고, 나라는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켜고 뭔가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검색하던 나라는 숨을 크게 한번 쉬더니 성배에게 말한다.
“성배 씨, 아무래도 우리 여기서 나가야 할 거 같은데요.”
“뭐? 왜?”
“제가 혹시나 해서 트위터에서 총이나 좀비라는 단어로 반응을 좀 찾아 봤는데, 지금 중구 지역 경찰서가 상대적으로 한산하다고, 이 지역 경찰서 무기고를 털러 가자는 트윗 들이 상당히 많이 보이는데요.”
“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성배도 심각한 사태라는 걸 직감한 듯 보였다.
“근데 나라야.”
“네.”
“트위터가 뭐냐?”
나라는 뜻밖의 대화에 잠시 머뭇거렸다.
“아…, 그건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 심상치가 않아요. 군경이 오는 거는 환영이지만, 무기를 달라고 시위하던 집단이 오는 건 피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성배가 푸쉬업의 속도를 높이며 대답한다.
“나라야, 어제 나 싸우는 거 못 봤냐? 그까짓 놈들 몇 명 와봤자, 한두 놈 잡아서 족치면 나머진 꼬리 내리고 도망간다, 걱정마라.”
성배가 위풍당당하게 말했지만, 나라는 푸쉬업하던 그를 다급히 불러 컴퓨터 화면을 보여줬다.
거기엔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중구 지역 경찰서를 털러 가자고 생각을 모으고 있었다.
성배도 천천히 화면을 보며,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느꼈다.
트위터엔 이런 내용들이 쓰여 있었다.
'서툰어택초고수 @SAPRO22 - 2시간
말 필요 없음. 지금 남대문 경찰서나 중부 경찰서 주변 좀비 거의 없음. 가서 무기고 털면 끝임.'
'남자는샷건 @JOTISSHOTGUN - 2시간
니가 어찌암?'
'서툰어택초고수 @SAPRO22 - 2시간
거기가 최초 좀비 발생지역이라 민간인 경찰 다 뒤진 듯. 뉴스에서도 아예 언급 안 되는 지역임. 좀비들은 당연히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므로 그 지역 경찰서가 가장 비어있을 확률이 큼.'
'좀비크러쉬 @ZOMBIEC8 - 2시간
좆같은 논리지만, 총만 있다면 우리 애들 전부 간다고 함.'
'광기어린발광기 @FETISH588 - 2시간
씨발 가서 총 구한 담에 방송국 가서 여자들부터 ㅋㅋㅋㅋㅋㅋㅋ'
성배와 나라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라야.”
“네?”
“아까 내가 한말 취소다.”
“어떤 말이요?”
“저것들한테 총 지급 안 한다고 꼰대라고 한 거.”
“알았어요. 일단, 짐 챙겨서 나가죠. 방금 본 화면은 2시간 전에 대화한 건데, 언제 올지 몰라요.”
나라는 우선 무기고로 내려가서 무기고 문을 잠가 버렸다.
어차피 무기도 없는 상태였지만, 문을 열어놓을 경우 무기가 없는 것을 알고 바로 다른 곳으로 갈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들을 묶어둘 심산이었다.
‘좋아, 그 바보들 이 앞에서 고생 좀 해봐라.’
나라는 다시 1층 성배가 있는 사무실로 가서, 기관단총 하나는 손에 들고, 하나는 어깨에 멨다.
성배는 산탄총을 들고, 무기 가방을 어깨에 멘 후, 나라에게 물었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냐 이제?"
나라도 딱히 계획 같은 건 생각해 두질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좀비가 없는 곳을 찾아 피하는 게 지금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디로 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듯, 나라의 눈동자가 잠시 방황하다 제자릴 찾으며 성배에게 말한다.
“일단 이곳을 나가서 너무 멀리 갈 필요는 없어요. 아까 저 괴집단의 트윗 중에 좀비들이 이 지역에 가장 적다고 한건 일리 있는 말이에요. 그러니 저 인간들만 잘 피해서 숨어 있으면 돼요.”
성배는 나라의 빠른 판단력에 감탄하며, 그녀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칭찬을 했다.
“오호호, 권나라 역시 경찰 대학 수석 졸업한 엘리트는 다르구나.”
별것 아니라는 듯 옅은 미소를 띠며, 성배를 한 번 바라본 후 앞서서 당당히 걸어가는 나라의 뒤를 쫓아가며, 성배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야, 근데 저 새끼들이 여기서 허탕치고, 이 동네 싸그리 뒤지고 다니면 우리 위험할 수도 있지 않냐?”
성배의 날카로운 질문에 정곡을 찔린 나라는, 애써 못 들은척하며 1층 로비로 나갔고, 성배는 눈치 없이 뒤쫓아 가며 계속 말을 걸었다.
그때였다. 로비 입구 앞에서 나라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성배는 계속 말을 하며 걷다가, 갑자기 멈춘 나라와 살짝 부딪혔다.
“뭐야? 왜 안 나가고 멈춰 섰어?”
나라는 손가락으로 경찰서 정문 쪽을 가리켰다.
“성배 씨, 저기 벌써….”
나라가 가리키는 곳엔 수십 명의 남자들이 못을 박은 배트와 칼을 갖고, 경찰서 정문 쪽에서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성배는 어쩔 줄 모르고 멍 하니 서있던 나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뭐해, 바보야. 뛰어!”
나라는 성배의 손을 꽉 잡고, 그를 따라 건물 뒷문으로 뛰어나갔다.
경찰서 뒤쪽 담장은 꽤나 높아 보였다.
아무리 성배라도 쉽게 넘어갈 순 없을 것 같았다.
성배는 나라를 데리고, 담장을 따라 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라야, 저것 좀 여기다 쌓자.”
성배는 음료수 박스들이 쌓여있는 곳을 가리키며, 나라와 함께 가장 낮은 담장 앞에 음료수 박스들을 쌓았다.
“성배 씨, 이 정도면 될 거 같아요.”
“그래 그만 쌓자.”
성배는 나라를 번쩍 들어 가장 높은 박스에 올려주었다.
“빨리 넘어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나라는 높이 쌓은 박스 덕에, 쉽게 담장 반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뒤이어 성배가 담장을 뛰어 넘었다.
둘은 담장을 넘자마자 바로 좁은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느 정도 뛰어가다 성배가 멈춰 서자 나라도 따라 멈춰서며, 숨을 몰아쉬었다.
상체를 숙이고, 양쪽 무릎위에 양손을 얹고 헐떡이던 성배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연다.
“하아, 저 새끼들 뭐야. 무슨 SF 영화에나 나오는 또라이들 같아…. 그 뭐더라, 그 영화… 그거 있는데.”
나라도 잔뜩 구겨진 얼굴로 숨을 거칠게 쉬며 대답했다.
“무슨 영화인지 몰라도 대충 알거 같네요.”
“아, 씨발 쪽팔려. 이 차성배 체면이 말이 아니네. 좀비들 몰려 있는 거 돌아가는 것도 스타일 구기는데, 저런 한심한 새끼들마저 피해야 하다니.”
“어쩔 수 없어요, 성배 씨. 지금 저 사람들은 군중심리 때문에 뭔 짓을 해도 죄책감이 없을 거예요. 물론 좋은 쪽으로 뜻을 나누면 좋겠지만, 트위터의 내용으로 보아 별로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진 않은 거 같아요. 부딪혀서 좋을 게 없죠.”
“아무튼 저런 새끼들이 늘어나면 진짜 골치 아프겠네. 그 새끼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배트에 못까지 박아서 들고 다니던데.”
성배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라도 뒤쪽을 한 번 확인한 후, 성배를 따라 걸었다.
둘은 일단 경찰서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차도가 있는 큰 거리는 피하고, 동네 안쪽으로 들어가서 근처에 보이는 5층짜리 빌딩 건물로 들어갔다.
근처에 더 있을지도 모르는 괴집단을 피해 우선 몸을 숨기기로 한 것이다.
건물 3층에 잠겨있던 문 하나를, 성배가 손잡이를 박살내며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수많은 박스와 테잎, 모자나 옷 따위가 너저분하게 쌓여있었고, 창문은 대부분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다. 컴퓨터 작업하는 책상 몇 개와 벽 쪽에 붙어 있는 소파 몇 개도 눈에 띄었다.
나라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벽에 붙어 있던 소파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온라인 쇼핑몰이었나 보네요.”
성배도 의자 하나를 가져와서 나라의 근처에 놓고 앉아서 담배 한대를 물었다.
“하필 의류냐, 먹거리 쇼핑몰이면 더 좋았을 텐데.”
성배가 사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 나라는 자신의 발목이 이상한지 손으로 발 앞부분을 잡고 발목을 돌리고 있었다.
그걸 본 성배가 나라에게 다가갔다.
“아프냐? 이리 줘봐.”
나라는 부끄러운 듯 괜찮다며 한사코 사양하다, 되려 성배에게 한소릴 들었다.
“누군 네 발 만지고 싶은 줄 알어! 괜히 다친 발로 기어 다니다 너 때문에 나까지 피해 볼까봐 그러지.”
그제서야 나라는 성배에게 자신의 다친 발을 내밀었다.
“아까 담 넘다가 좀 삐끗 한 거 같아요.”
성배는 능숙한 손길로 이리저리 발목을 돌려가며 나라에게 아픈 곳이 있는지 물었다.
잠시 나라의 상태를 듣던 성배는 다행히 별거 아니라며, 잠시 근육이 놀란 거라고 나라를 안심시켰다.
“잠시 쉬면 괜찮아 질 거야. 소파에 좀 누워 있어 땅에 발 디디지 말고.”
“네, 고마워요.”
성배는 나라를 쉬게 한 후, 블라인드 처진 창가로 나가 바깥을 살피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힌 차도 위에 차들을 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 하던 성배의 시야에 멀리서 피 흘리는 여자를 안고 달리는 남자와 그 뒤를 버겁게 따라오는 중년의 남자 그리고, 아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수십 마리의 좀비떼가 그들을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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