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로 뒤덮인 세상-9화 (9/36)

9화 - RUN!!

나라와 성배는 남대문 시장에서 을지로 3가 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중부 경찰서로 가서 무기고에 있는 기관단총과 산탄총을 가지고 무장을 할 생각이었다.

나라가 앞서 걸었고, 성배는 배트를 어깨에 걸쳐놓고 껄렁한 자세로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직선거리로는 1km 남짓 되는 거리였지만, 남대문 시장이나 명동거리처럼 좀비가 어마어마하게 깔려있을 곳을 피해 가느라, 둘은 아주 멀리 돌아가며 좀비 밀집 지역을 우회해 나갔다.

간혹 덤벼드는 좀비는 성배가 배트로 머리통을 부숴버렸고, 나라는 오는 길에 외국물건을 이것저것 파는 가게에서 구한 스웨덴제 낚시칼로 나머지 좀비를 처리했다.

낚시칼은 얼핏 보기에 회칼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아주 날이 가늘고 날카로웠다.

마침, 나라가 좀비 하나를 처리하고 칼을 빼서 피를 털어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성배가 실실 쪼개며 비아냥거린다.

“넌, 권총은 폼으로 들고 다니냐. 그냥 총을 쏴라.”

“총알이 두 발뿐인데, 혹시라도 총소리에 좀비들을 자극 할까 봐요.”

“그래, 기관단총인지 뭔지 라도 들고 있으면 모를까 고작 그 귀여운 권총 하나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성배가 나라에게 다가가 칼을 건네받아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이 칼 죽이지. 나도 소싯적엔 꽤 가지고 놀던 놈인데, 날이 아주 시리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가죽이 살벌하게 벌어져.”

성배의 말에 나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피가 제 손에 너무 튀어서 싫지만, 권총을 함부로 쏠 순 없으니 어쩔 수 없네요.”

성배는 다시 나라에게 칼을 쥐어주고 배트를 들어 전방을 가리켰다.

“또 가보자. 슬슬 어두워지는 거 같은데, 해 지기 전에 중부 경찰서는 우리가 접수 해야지.”

“이제 조금만 가면 돼요. 경찰서 안에 좀비만 없으면 거기서 며칠 지낼 수도 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깐 경찰서는 정말 가기 싫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거기가 젤 안전 할 수도 있겠다. 식당가면 음식도 있을 것이고, 총도 있고, 문만 잘 잠그면 잠도 마음 편히 잘 수 있고.”

“네, 일단 좀비가 없길 바라야죠.”

나라와 성배는 어느 덧 중부 경찰서 정문 앞에 도착했다.

남대문 경찰서도 그랬지만, 이상하게 경찰서 주변엔 좀비의 숫자가 눈에 띄게 적었다.

“이상하네…. 남대문 경찰서에서 나올 때도 주변에 좀비 한 마리 없더니, 여기도 주변에 좀비 한마리가 없네.”

나라는 경찰서 주변을 둘러보며 성배에게 얘기했다.

“음, 혹시 좀비가 돼도 아주 조금의 기억이나 습관 같은 게 남아 있는 게 아닐까요? 원래 경찰서 주변엔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진 않잖아요. 반대로 남대문 시장이나 명동 거리엔 좀비들이 엄청 몰려있었고요.”

“그 말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네. 남대문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경찰 좀비가 오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거기 갇혀 있을 텐데, 그놈이 떡하니 열쇠를 허리에 차고 들어오더라고.”

“하여간 좀비들은 인간이랑 달라서 종잡을 수가 없네요. 진짜 기억이나 습관이 남아 있는 건지… 어떤 놈은 아주 약하고, 어떤 놈은 아주 빠르고, 영화 보면 대부분 거기서 거기던데 우리가 보는 좀비는 너무 달라요.”

“난 오히려 인간하고 비슷한 거 같은데, 좀비들 말이야.”

“네? 인간 같다고요.”

“그래, 인간이 얼마나 종잡을 수 없는 동물이냐. 돈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인을 죽이고, 정치색이 다르다고 서로 헐뜯고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심지어 늙은 부모 때려죽이는 자식새끼들도 있잖아.”

“아…, 성배 씨 말 듣고 보니, 인간이 좀비보다 나을 게 없네요.”

성배의 말에, 나라는 표정이 굳으며 씁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성배가 나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뭘, 또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해. 그거야 또라이 같은 인간들 얘기고, 적어도 보통의 인간은 이렇게 세상을 피로 물들이진 않잖아.”

나라는 성배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요. 인간은 세상을 이렇게 지옥으로 만들진 않죠.”

자신의 말에 바로 수긍하는 나라를, 성배가 빤히 바라봤다.

“근데 넌 처음 봤을 땐 뭔가 되게 날카롭고, 똑 부러져 보였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좀 그렇다.”

나라가 정색을 하며 성배에게 대꾸한다.

“뭐가 그래요?”

“아니다. 들어가자.”

경찰서 정문 바리케이드는 잘 닫혀 있었고, 검문 대 옆문만 열려있었다.

나라와 성배는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완전히 닫아, 좀비가 들어 올수 없게 방어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경찰서 안으로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한이는 상가를 나와 진모가 그려준 약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행히 가깝구나.’

소희가 갔을 걸로 추정되는 약국은 편의점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나오는 큰 사거리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얼마안가 바로 사거리가 나왔고, 약국도 한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거 설마!’

길 건너 약국 주변엔 십여 마리의 좀비들이 약국을 둘러싸고 있었다.

특히 문 주변으로 좀비들이 밀어붙이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문이 부서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한이는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약국 근처로 걸어갔다.

‘안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가 않아. 근데 불안하다.’

차도에 서있던 자동차 뒤에 숨어 약국 쪽을 살펴보던 한이는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지만, 딱히 좋은 방법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 어차피 내가 잘하는 건 달리는 것뿐이다. 저것들이 약국 문을 부수기 전에 내가 유인해야 돼. 그게 최선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약국을 쳐다본 후, 크게 숨을 내쉬며 자동차에 경적을 울렸다.

빠아앙! 빠아아앙!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 약국을 둘러싸고 있던 좀비들이 한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이는 자동차 위로 뛰어 올라가 좀비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썩은 내 나는 새끼들아. 나 잡으면 오늘 니들 포식하는 거다.”

“크으으으아아아아아!”

경적소리와 한이의 외침에 좀비들이 한이를 향해 일제히 몰려들었다.

그중에 두 마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아이씨, 저것들은 뭐가 저리 빨라.”

한이는 차에서 뛰어 내려와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한이의 뒤로 좀비 두 마리가 무섭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좀비가 빠르다 한들 단거리 선수인 한이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한이는 인간인 만큼 계속 지치기 마련이었다.

반면, 좀비들은 지치지 않고 계속 한이를 따라 갈수 있었다.

계속 직진으로 뛰던 한이는, 우측에 좁은 골목길로 방향을 틀어서 들어갔다.

좀비 무리 중에 앞장서서 뛰던 좀비 두 마리는, 한이가 골목으로 사라진 걸 놓치지 않았다.

둘 중 조금 더 빠른 좀비가 먼저 한이를 따라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수욱!

골목 바로 앞에서 기다리던 한이는 두 손으로 칼을 잡고, 자신을 따라 들어온 좀비의 머리를 수직으로 그어 버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좀비의 정수리부터 입 부근까지 날카로운 칼날이 비집고 들어갔다.

곧바로 따라온 좀비가 특유의 괴성을 지르며 한이에게 덤벼들었다.

“크으으으으으아”

한이는 재빨리 먼저 처리한 좀비를 발로 차서, 얼굴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냈다.

그리고 뒤이어 접근하는 좀비의 목을, 시뻘겋게 물든 칼로 찔러 버렸다.

푸욱!

칼이 약간 어긋나면서 좀비의 목을 반 정도 썰어냈고, 목의 남은 반과 머리는 몸뚱이에 달린 채 반대쪽으로 기울어 보기 역겨운 장면을 연출했다.

좀비의 목에선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고, 한이는 정면으로 그 피를 뒤집어썼다.

“아아아아아아!”

한이는 괴로움과 두려움, 죄책감과 분노가 뒤섞인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옷소매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뒤늦게 쫓아온 좀비들이 골목길로 몰려들었다.

“크으으으으으 크으으으악 크으으으”

두 놈은 처리했지만 아직 열 마리가 넘는 좀비가 한이를 쫓아오고 있었다.

한이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좀비들을 좁은 골목으로 유인했다.

좀비들은 서로 한이를 뜯어먹고 싶은 듯, 좁은 골목으로 앞다퉈 밀려 들어왔다.

한이는 아주 근접하는 좀비 한 마리의 눈을 칼로 찔러서, 또 한 마리를 처리했다.

좁은 지형을 이용해서, 한 번에 자신을 둘러싸지 못하는 점을 활용해, 한이는 근접하는 좀비들만 골라 머리통이나 입, 눈을 썰거나 찔러서 좀비의 숫자를 줄여 나갔다.

다섯 마리의 좀비가 골목 이곳저곳에 피를 뿜으며 쓰러져갔다.

하지만 골목 끝으로 몰릴수록 좀비들은 더 거세졌고, 한이는 너무 지쳐버렸다.

한이는 있는 힘껏 앞서 접근하는 좀비의 중심을 걷어차 쓰러뜨린 후, 뒤를 돌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싸우는 건 무리다. 이것들을 따돌려야겠어.’

한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좀비들이 자신을 쫓아올 정도로 속도를 유지한 채, 약국에서 먼 방향으로 달려갔다.

좀비들은 한이에게 받은 자극이 강해서인지, 보통 때보다 훨씬 집요하게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쫓아갔다.

마치 한이를 꼭 씹어 먹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듯, 좀비들은 멈추지 않았다.

“크으으으악 크으으으”

약국에서 꽤 멀어진 한이는 비교적 복잡한 구조의 상가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상가는 5층이었고, 곳곳에 계단과 밖으로 통하는 출구가 있었다.

좀비들은 기어코 그 건물로 한이를 쫓아 들어갔다.

한이는 복도 끝에 서있다가, 좀비들이 상가 입구로 들어오자 다시  한 번 소릴 질렀다.

“여기다! 여기!”

좀비들은 한이를 무섭게 노려보며 상가 복도를 괴성으로 가득 채웠다.

“크으으으악”

한이는 좀비들이 다가오자 잽싸게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좀비들은 한이를 쫓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이는 3층까지 좀비들을 쫓아오게 만든 뒤, 반대쪽 계단으로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좀비들의 속도에 맞춰 뛰면서 체력을 비축해뒀다가, 찬스가 날 때 완벽히 떼어놓으려는 작전이 제대로 먹혀 들어간 것이었다.

좀비들은 그를 따라 다시 반대쪽 계단으로 갔지만, 한이는 좀비보다 훨씬 빨리 계단을 내려와 그 상가를 빠져나가 버렸다.

‘됐어! 소희 씨 조금만 기다려요.’

상가를 나온 그는 다시 약국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약국 근처에 있던 좀비는 전부 한이를 따라 갔었기 때문에 약국 근처엔 좀비가 한 마리도 없었다.

약국 입구에 도착한 한이는 약국의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쾅! 쾅! 쾅!

“소희 씨! 소희 씨 저에요 한이!”

약국 계산대 아래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울고 있던 소희가 한이의 목소릴 듣고 고개를 들었다.

소희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꼼짝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다며, 한이를 보자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한이 씨, 죄송해요. 정배가 열이 너무 심해서, 약국도 가까워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소희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였던 공포심이 컸는지,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한이는 그런 소희를 다독여주며 따스하게 위로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저라도 정배가 아프면 어떻게든 약을 구하러 갔을 거예요.”

소희는 자신을 구하러 온 한이가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모습에 계속 미안해했고, 한이는 괜찮다며 소희를 안심시켰다.

한이는, 언제 또 좀비가 올지 모르는 위험지역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소희에게 말했다.

“기왕 약국에 온 김에 약이나 이것저것 챙겨가죠.”

소희는 말없이 그녀가 숨어있던 계산대로 가더니, 묵직한 가방을 들고 와서 한이에게 내밀었다.

“제가 종류별로 미리 챙겨 놨어요.”

한이는 그 와중에도 가방에 꽉꽉 약을 채워 넣은 소희가 귀여운 듯 흐뭇하게 웃으며 가방을 받아들었다.

“그래도 약은 잘 챙기셨네요. 이제 돌아가요.”

소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몸은 아직도 많이 굳어 있었다.

편의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희가 한이 옆으로 오더니, 그가 쥐고 있던 칼을 잠시 보여 달라고 했다.

“네? 칼은 왜요?”

“그냥 잠시만 볼게요.”

칼을 건네받은 소희는 한참 칼을 쳐다보다가, 한손으로 칼을 높이 들어보더니 무거운지 바로 내리며 한이에게 묻는다.

“저도 무기를 들어야겠죠….”

“…”

한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곧 경찰이 와서 구해줄 거라고 믿었지만, 그 하루 사이에 한이가 처리한 좀비의 숫자가 열 마리를 넘어갔다.

얼굴과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한이를, 말없이 쫓아가는 소희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좀비는 두렵지만, 그렇다고 계속 피할 수만은 없다고 소희는 생각했다.

어느새 굳어 있던 소희의 몸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갔다.

한이가 메고 있던 가방도, 소희는 자신이 들겠다며 피곤한 한이를 조금은 편하게 해줬다.

한이는 자신보다 훨씬 작은 여자에게 무거운 가방을 들게 하는 것이 조금 꺼려졌지만, 자신의 체력도 바닥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소희에게 가방을 맡겼다.

그들은 그렇게 편의점에 도착했다.

피를 뒤집어쓴 한이의 모습에 진모는 물수건을 들고 나와 한이를 닦아 주었고, 몸이 아픈 정배에겐 바로 해열제를 먹였다.

소희는 피곤한 듯 잠시 바닥에 누워 있다가, 편의점 한편에 놓여있는 무기들을 보고, 그쪽으로 가서 창을 하나 들었다.

창을 한손으로 높이 들어봤다가 내리고, 두 손으로 잡고 찌르는 시늉도 해봤다.

“이건 쓸 만하네.”

그 광경을 진모와 한이, 정배가 동시에 바라보다가 진모가 입을 열었다.

“저기, 소희 양. 오늘 힘든 일이 있었던 건 알겠는데 만약 좀비와 싸워야 한다면 우리한테 맡겨줘. 연약한 아이와 여자까지 좀비들과 싸우게 하고 싶진 않아.”

소희는 계속 창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네, 저도 알지만 혹시 몰라서요.”

소희는 그 뒤로도 계속 창에 관심을 보였고, 그걸 바라보는 진모와 한이의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웠다.

그 둘은 그저 이 지옥 같은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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