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적과의 동침
성배는 자신의 어깨를 잡은 존재를 향해, 뒤로 돌면서 강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어디서 뒤치기야!”
성배가 강하게 휘두른 배트를, 나라는 간발의 차로 몸을 숙여 피했다.
“성배 씨, 저에요! 권나라에요.”
좀비들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해서, 잠시 흥분해있던 성배는 두 번째로 배트를 휘두르려다, 나라를 보고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피며 나라를 붙잡고, 근처에 있던 옷가게로 들어갔다.
성배는 옷가게에 긴 행거를 이용해서 바깥에서 잘 안보이게 가게 안을 가렸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배트를 들어 나라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한다.
“아니, 뭐야. 네가 왜 여깄냐! 설마 나 잡으러 온 거냐?”
나라는 눈빛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지금 상황에 성배 씨 하나 도망간다고 무슨 일이 더 생길게 있나요. 그런 거 아니니깐 걱정 마세요.”
“어제 짭새들 얘기론 네가 아주 대단한 집안 따님이라던데, 왜 도망 안 가고 이 동네에 있는 거냐?”
“저는 성배 씨가 생각하는 그 대단한 집안 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경찰입니다. 어제 이 근방에서 좀비 소탕 작전에 투입됐는데….”
나라가 말끝을 흐리자 성배가 재촉한다.
“투입됐는데 왜 거리가 이 모양이냐?”
나라는 씁쓸한 표정과 난처한 표정이 뒤섞인 얼굴로 힘없이 대답한다.
“그게… 밤새 좀비들의 숫자가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늘어서 대부분 죽거나 도망갔어요. 제 팀원들은 모두 죽고, 저 혼자만 근처 주차장에 숨어 있다가 나와 보니, 성배 씨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길을 건너려고 하길래, 이렇게 된 거죠.”
이 말을 들은 성배가 긴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한다.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보네. 우리 엄마 시체라도 거둘까 했는데, 저것들이 길을 비켜 줄 리가 없지.”
“어머님이 저기서 장사하셨나 보죠? 혹시 집에 가 계실수도 있으니 전화라도 해보시죠.”
나라의 말에, 성배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가게에 딸린 방에서 먹고 자고 하는데 집이 어디 있겠냐. 내가 그렇게 아파트에 모신다고 해도, 드러운 돈으로 산집이라고 거들떠도 안 보셨는데.”
성배는 표정이 굳고 눈동자가 초점 없이 흔들리며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나라는 그런 성배를 섣불리 위로하지 못했다.
그렇게 무거운 정적이 몇 분간 계속됐다.
한참 가게 밖을 쳐다보던 나라가, 성배에게 먼저 입을 열었다.
“성배 씨, 일단 상황이 위험하니 같이 움직이죠.”
성배는 나라의 제안에 헛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넌, 내가 안 무섭냐? 내 전과기록 봤으면 알 텐데 내가 어떤 놈인지.”
“전과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때 문제가 되는 것이죠.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성배가 바깥을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나 때문인 거지? 이 사태는….”
나라는 선뜻 말을 하지 못했다.
성배는 고개를 돌려 나라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 바깥을 응시하며 말한다.
“다 안다. 내가 씨발 그딴 걸 이 나라에 갖고 들어오는 게 아닌데. 돈에 눈이 멀어서….”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솔직히 성배 씨가 잘못한건 맞지만…,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 보단 살아남는 게 우선입니다.”
성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라에게 말한다.
“그래, 어차피 피로 물든 세상인데 내가 귀하신 집안 딸내미라도 구해줘야지.”
성배의 말에, 나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성배를 바라본다.
“전, 제가 알아서 지킵니다. 성배 씨나 제 발목 잡지 마세요.”
순간 성배가 나라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나라는 성배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뒤로 한발 물러났다.
“왜 그렇게 보세요?”
“보기는 개뿔. 너 그런 불편한 복장으로 저런 괴물들하고 싸우니깐, 부하들 다 잃고 도망이나 치는 거지.”
성배는 가게 한편에 걸려있던 편해 보이는 면바지와 티셔츠를 나라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갈아입어라. 이게 훨씬 움직일 때 편할 거 같은데.”
나라는 성배의 의외의 모습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나라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성배가 나라에게 물었다.
“근데 어디로 갈 거냐? 이제.”
“일단 근처 경찰서로 가서 무기 좀 챙겨야 할 거 같은데요.”
“아, 나 진짜. 경찰서를 또 가야 되냐!”
“경찰서 무기고엔 경찰특공대가 쓰는 기관단총과 산탄총이 있어요. 지금 좀비 처리하는 데는 총만 한 게 없죠.”
“그래, 마땅히 갈 때도 없는데, 그럼 어디 가보자. 대신 남대문 경찰서는 죽어도 안 간다.”
옷을 다 갈아입은 나라가 나오자, 성배가 계산대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올려놓았다.
그 장면을 지켜본 나라는 자신의 옷에 붙어있던 가격표를 확인해봤다.
“저기, 성배 씨.”
“왜?”
“칠천 원이 모자라는 데요….”
“뭐?”
“티셔츠가 칠천 원이고, 바지는 만 원인데요.”
성배는 기가 차다는 듯, 나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나라는 왜 저런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지, 이해 못하는 듯 멀뚱하게 서 있었다.
“나 참. 그럼 네가 더 내던가! 그 옷 내가 입냐!”
성배의 말을 들은 나라는, 자신이 갖고 있던 권총에 잔탄을 확인하며, 가게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럼 일단 가죠.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나중에….”
왠지 모르게 당당하게 앞장서는 나라의 뒤로, 성배가 구시렁거리며 따라갔다.
그 시각 진모는 골목을 나와서 큰길까진 자기가 앞장서겠다며 천천히 걸어갔고, 한이는 뒤를 경계하며 진모를 따라갔다.
그들이 좁은 골목길을 몇 번 꺾어 들어갔을 때, 그들의 눈앞에서 뚱뚱한 좀비 두 마리가 사람을 뜯어 먹고 있고 있었다.
진모와 한이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한이가 먼저 자기가 공격하겠다는 눈짓을 한다.
진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으로 요리 포크를 더욱 꽉 쥐었다.
한이는 뚱보 좀비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자세를 낮추고 살금살금 좀비 뒤로 걸어갔다.
진모도 한이의 옆에서 나란히 또 다른 뚱보 좀비를 노리고 걸어갔다.
한이가 뚱보 좀비의 바로 뒤로 가서 왼손에 쥔 식칼로 좀비의 뒤통수를 강하게 찔렀다.
푹!
뒤통수에 식칼이 박힌 뚱보 좀비가 뒤돌아 일어나려고 하자, 한이는 발로 강하게 뚱보 좀비의 배때기를 걷어찼다.
걷어차인 좀비는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바닥에 찧었고, 박혀있던 식칼이 더욱 깊게 박히며 즉사했다.
옆에서 진모는 또 다른 뚱보 좀비의 정수리에 날카로운 요리 포크를 박아 버렸다.
후욱!
요리 포크가 턱을 뚫고 튀어나오며, 그 좀비는 그대로 엎어져 피를 쏟아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한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 이건 재차 경험을 해도 기분이 찝찝하네요.”
“그러게… 나도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 그래도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지 뭐.”
둘은 서로의 몸에 튄 피를 닦아주며, 좀비의 머리에 박힌 무기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진모와 한이는 골목을 빠져나가 큰길가로 나왔고, 진모는 한이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다시 한이가 앞장서 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비교적 수월하게 좀비들을 따돌리며 진모의 가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을지로 3가역 근처에 많은 공구 가게 가운데, 유독 골목 깊숙이 있는 아주 작은 가게가 진모의 가게였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한이는 코를 막고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치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진모는 한이에게 의자 하나를 대충 털어 내어주고 앉으라고 권한 뒤 가게의 셔터를 내리고 불을 켰다.
주황색 전구 하나로, 가게는 대부분 빛을 받을 정도로 아담했다.
한이는 아무리 봐도 도무지 뭔지 모를 부품들과 장비들이, 뒤죽박죽으로 진열 돼있는 게 신기한 듯 계속 가게를 두리번거렸다.
진모는 가게 진열장 이곳저곳에서, 날이 서있지 않은 큰 칼과 창을 꺼내며 말한다.
“일단, 이것들을 다듬어야 무기로써 제대로 사용 할 수 있으니깐 여기 이걸로 한 군도 좀 갈아줘. 아주 날카롭게!”
한이가 창 하나와 사포를 받아 들며 대답한다.
“아, 이걸로… 기계를 돌리면 시끄러워 좀비가 들을 수 있으니 수작업으로 해야 되는군요.”
“바로 그거지. 역시 똑똑해 한 군!”
“네…, 뭐 똑똑한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한이는 진모의 칭찬이 쑥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띠며 사포질을 시작했다.
창은 1미터가 채 안 되는 짧은 길이었지만, 오히려 휴대하기 간편하고 좀비의 머리통에 박아버리기에, 긴 창보다 훨씬 유리했다.
칼은 밀림에서 야자수를 자를 때 쓰는 칼처럼 손잡이 위쪽으로 50센티미터 정도 긴 칼날이 서있었다.
그들은 더운 여름날 작은 가게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사포질로 무기의 날을 세웠다.
두 시간 정도 작업하고 나서야, 대충 십여 개의 칼과 창이 무기로서 모습을 드러냈다.
한이는 두꺼운 종이로 사람이 다치지 않게 무기들을 감싸고, 빨랫줄로 무기들을 한데 묶어 한쪽 구석에 잘 챙겨놓았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이는 손이 아픈지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피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새로운 소식을 확인해 봤다.
서울 중구 지역에 이어 강남구도 좀비 발생 비상!, 물린 후 수 시간 이후에도 좀비로 변하는 사람 있다!,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 무리에 용산 주민들 불안 등의 기사를 몇 개 골라 읽었다.
한이가 휴식하며 기사를 보고 있는 사이에, 진모는 선반 몇 개를 뒤져 투박하게 생긴 장난감 자동차를 꺼냈다.
“한 군, 이거 쓸 만하겠지.”
“그거 RC카에요?”
“RC카라고 할 수가 있나? 하여간 내가 만든 건데, 움직이긴 해. 일단 여기선 잘 안보이니깐 편의점으로 부품 몇 개 가져가서 이놈한테 음악 재생장치를 장착해서 좀비들 유인용으로 써볼까 하는데.”
“진모 아저씬, 정말 별걸 다 만들 줄 아시네요.”
“뭐, 평생을 부품이나 만들고, 이런 장난감이나 만들고 그랬는데 별로 남는 게 없는 장사인줄 알았는데 이런 날이 오니깐 쓸 만한 것들이 많네.”
“네, 진모 아저씨가 만든 무기들이나 그 RC카도 만약의 사태엔 정말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해 볼까. 소희양도 걱정 할 것 같고, 어두워지기 전에 우리도 가는 게 안전하겠지.”
“네, 그럼 빠진 거 없이 챙겼나 확인해보고 출발하죠.”
진모는 가게에 있던 큰 가방에 남은 창과 칼, 그리고 RC카와 조종 기를 챙겨 넣었다.
그리고 진모는 잠시 가게 이곳저곳을, 애잔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이제 나가면 다신 못 보는구나. 우리 예지가 가끔 놀러오면 참 좋아했는데.’
진모는 자신이 팔던 부품과 자신이 만지던 기계들에 앉은 먼지를 입으로 몇 번 불고 나서,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한이와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편의점으로 돌아오는 길엔 별다른 일은 없었다.
곳곳에 좀비가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진모가 동네의 지리를 워낙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그것들을 피해 올수 있었다.
그들은 적은수의 좀비를 죽이는 덴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아직까지 그 행위가 썩 내키진 않아 보였다.
최대한 좀비를 피해가며 그들은 편의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을 열어준 건 소희가 아니라 정배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배의 얼굴색은 많이 창백했다.
“정배야, 형이랑 진모 아저씨 왔다.”
한이와 진모가 정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한이는 편의점으로 들어와서 주위를 둘러보며 정배에게 물었다.
“정배야, 소희 씨는 어디 갔어?”
정배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어두워지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형, 미안해요. 내가 갑자기 열이 너무 많이 나서, 누나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약국에 간다고 나갔어요.”
한이는 일단 정배를 안아주며 안심시켰다.
“괜찮아 정배야. 너 지금 많이 아파 보여. 네 잘못 아니야.”
진모도,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을 정배를 달래주며, 통유리창 틈새로 바깥을 살펴본다.
“정배야, 혹시 소희 양이 어디로 간다던가 하는 얘기 없었어?”
“이 상가건물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바로 약국이 있다고 했어요.”
정배의 말을 들은 한이가 진모를 보며 묻는다.
“진모 아저씨, 혹시 정배가 말하는 약국이 어디쯤 있는지 아세요?”
“근처에 꽤 큰 데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거기로 갔을 거 같은데.”
한이는 정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정배는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진모의 표정도 소희를 많이 걱정 하는 듯 보였다.
한이는 소희가 있던 빈자리를 한 번 바라보며, 진모의 가게에서 챙겨온 무기들을 꺼냈다.
“저 그럼 제가 다녀올게요. 아저씬 정배를 돌봐주세요.”
“한 군, 혼자 괜찮을까?”
“정배를 또 혼자 둘 수도 없고, 셋이 같이 움직이기엔 너무 위험해요.”
“그래, 그럼 꼭 소희 양을 데리고 와줘. 절대 다치지 말고.”
“네, 걱정 마세요.”
진모는 소희가 갔을 걸로 추정되는 약국의 위치와, 근처 두 군데의 약국 위치를 약도로 그리고 있었다.
한이는 냉장고에서 사이다 한 캔을 까서 벌컥벌컥 들이켜며, 자신이 진모의 가게에서 정성스레 날을 세웠던 칼을 쳐다보았다.
그는 순간, 자신이 처음으로 좀비를 죽였을 때 느꼈던 묘한 죄책감이 떠올랐다.
그 죄책감은 지금 상황에선 사치라고, 한이는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래, 저것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저건 그냥 좀비다.’
한이는 가장 날카로워 보이는 칼을 하나 꽉 움켜쥐고, 진모와 정배에게 소희를 꼭 안전하게 데려오겠다며 편의점을 나섰다.
한이의 굳은 결심만큼이나, 한이가 바라보는 건물 밖의 세상은 유독 단단해 보였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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