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로 뒤덮인 세상-5화 (5/36)

5화 - 피로 물든 시내

한편, 라운지로 조심조심 걸어가던 김 경장의 눈앞에, 좀비 한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권총의 특성상 웬만큼 가깝지 않고서는 명중하기 어려운 만큼, 김 경장은 좀비의 시선을 피해 조금씩 좀비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 김 경장의 뒤를 신참이 얌전히 뒤따랐다.

‘조금만 더. 이 경장의 목숨 값은 내가 받아주마!’

제법 근거리까지 다가간 김 경장은 사격 자세를 취하며, 신참에게도 눈짓을 보냈다.

신참도 진지하게 총구를 좀비 쪽으로 겨냥했다.

그때였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순간 신참의 뒤쪽에서 또 다른 좀비가 달려오며, 낮은음의 울음소리를 냈다.

“크으으으으!”

신참은 재빨리 좀비의 가슴 쪽에 총을 쐈지만, 팡 소리와 함께 발사된 건 첫발에 장전된 공포탄이었다.

달려든 좀비는 그대로 신참의 어깨를 물어뜯으며, 신참과 함께 넘어졌다.

김 경장은 재빨리 공포탄을 소비하고, 신참을 물어뜯는 좀비의 머리를 정확히 조준한다.

탕!

발사된 총알은 정확히 좀비의 머리를 관통했고, 좀비는 그대로 신참의 얼굴에 피를 퍼부으며 축 늘어졌다.

‘아차!’

긴박한 상황 속에 애초에 김 경장의 타겟이었던 좀비를 잊고 있었다. 다행히 이 좀비는 뛰질 못 했다.

하지만 이미 김 경장 바로 앞까지 다리를 끌며 다가온 좀비는 김 경장의 팔을 물어뜯으려고 양팔로 김 경장의 오른팔을 잡았다.

김 경장은 필사적으로 팔을 흔들어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탕! 탕!

좀비 밑에 깔려있던 신참이 간발의 차이로 좀비를 향해 총을 쏴, 한 발은 빗나가고, 한 발은 좀비의 가슴을 관통했다.

가슴에 총을 맞은 좀비의 몸이 뒤로 밀리며 균형을 잃은 사이, 김 경장의 권총이 좀비의 미간을 정확히 조준했다.

“잘 가라, 이 괴물아.”

발사된 총알이 뒤통수를 뚫고 나가자, 좀비는 그대로 맥없이 쓰러졌다.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김 경장은, 좀비의 피를 잔뜩 뒤집어 쓴 신참을 향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이 자식아, 내가 맞으면 어쩌려고, 총을 함부로 쏴!”

신참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김 경장님. 그래도 명색이 경찰인데 총은 한 번 쏘고 죽어야죠.”

김 경장은 쓰러져 있는 신참을 일으켜 세워, 옆에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상처는 어떠냐?”

“이까짓 거 별거 아닙니다.”

김 경장은 애써 괜찮은 척하는 신참의 어깨를 매만지며,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세 마리라고 했는데….”

김 경장은 라운지를 구석구석 살피다, 라운지 끝 쪽에 있는 오픈형 주방 쪽을 한참 쳐다봤다.

“방금 소리 못 들었냐?”

“네? 무슨 소리요?”

김 경장은 오픈형 주방 쪽을 가리키며, 신참에게 엄호 하라는 손짓을 했다.

신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살며시 일어나, 주방의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김 경장은 상체를 숙이고 사격 자세를 취하며, 주방의 정면으로 걸어갔다.

딸그락 딸그락

소리는 확실히 주방 뒤쪽에서 나는 듯했다.

김 경장은 주방 바로 앞까지 와서, 살며시 상체를 세우고 주방 뒤쪽을 확인했다.

그곳엔 요리사 복장을 한 좀비가 여자의 다리를 뜯어 먹고 있었다.

짭 짭 짭 짭

여자의 다리 살을 씹어 먹는 소리가 김 경장은 유독 거슬렸다.

‘역겨운 짐승 같은 놈들.’

오른쪽에서 엄호를 하던 신참이 살며시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었다.

김 경장과 신참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가벼운 고개 짓으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탕! 탕! 타다 탕! 탕!

여러 발의 총성이 질서 없이 귓가를 자극했다.

요리사 좀비는 머리와 목 쪽이 관통 당했고, 머리통이 반쯤 날아간 상태로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김 경장은 주변을 좀 더 살핀 후, 신참을 부축해서 라운지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신참의 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고, 김 경장은 머잖아 닥쳐올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라운지를 빠져나와 이 경장이 있던 로비로 되돌아왔을 때, 이미 앰뷸런스와 지원 병력이 도착해 있었다.

경찰특공대 몇 명이 주변에 돌아다니던 좀비를 정리하고, 호텔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이 경장은 이미 들것에 실려 단단히 묶여 있었고, 신참 역시 구급대원이 넘겨받아 들것에 눕히고 완전히 몸을 묶었다.

그리고 그 둘은 앰뷸런스에 실렸다.

그들이 앰뷸런스에 실리는 모습을 보던 김 경장이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근데 좀비한테 물린 사람들은 어디로 갑니까?”

구급대원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지금 이 일대가 아비규환입니다. 광장 쪽이랑 명동 쪽까지 좀비들이 계속 생기고 있어서, 일단은 근처 병원으로 전부 이송은 하는데….”

김 경장은 이 경장과 신참을 실은 앰뷸런스가 출발하자, 그쪽을 한번 쳐다본 후 말한다.

“물리면 좀비로 변하는걸 알면서도 병원으로 보내는 군요.”

“보내긴 보냅니다. 근데 치료가 목적이 아니고 감금이 목적입니다.”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트린 김 경장이 혼잣말을 한다.

“역시 치료할 순 없구나.”

옆에서 구급대원이 큰 한숨을 쉬며, 김 경장의 어깨를 다독여준다.

“친구 분하고 후배가 저렇게 되셨으니,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 경장은 구급대원과 인사를 나눈 뒤 자신의 순찰차로 돌아왔다.

잠시 앉아서 담배 한 대를 피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그의 오른팔이 욱신거렸다.

라운지에서 좀비에게 팔을 잡혔을 때, 어수선한 틈에 팔을 살짝 물린 것이었다.

‘이런 씨발!’

그는 순찰차 조수석 서랍을 열고 붕대를 꺼내서 팔에 감기 시작했다.

몇 번을 돌려 감아도 곧 흐르는 피로 인해 붕대는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상처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면역력이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게 나일수도 있지 않을까.’

‘아냐 아냐, 그냥 딸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러 집으로 당장 가볼까….’

‘아니지, 그랬다간 영지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긴 한숨을 쉬며, 천천히 차에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켰다.

서울 광장 근처를 지나면서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좀비들은 특유의 낮은 괴성을 내며,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뜯어 먹었다.

완전히 뜯어 먹히지 않고, 신체가 비교적 멀쩡한 채로 죽은 사람들은 수분 내에 일어나, 그들이 당한대로 사람들에게 되돌려줬다.

편의점 앞에서는 여자 한 명이 양 팔을 좀비에게 잡힌 채,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좀비 몇 마리가 김 경장의 순찰차로 달려들었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차로 들이받으며 계속 전진했다.

차는 광장을 빠져나가 한적한 도로에 인적이 드문 골목 안으로 들어가 멈춰 섰다.

김 경장은 차의 시동을 끄고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한 모금을 들이켠다.

그의 눈에 들어온 대시보드 위에 있는 사진 속 딸의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보였다.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사진을 집어 가까이서 바라보며 흐느꼈다.

“미안하다 영지야. 아빠가 지켜주지 못할 것 같다.”

그는 딸의 사진을 자신의 상의 윗주머니에 넣고, 의자에 기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조용히 가져갔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김 경장의 머리는 힘없이 축 늘어졌다.

조용함 속에 울린 총성에, 주변에 있던 좀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광장에선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지만, 벌써 좀비들은 이곳까지 불어나 있었다.

낮은 괴성을 내며 몰려든 좀비들은, 차 안에서 죽어 있는 김 경장을 조용히 보내지 않았다.

편의점 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기회를 보던 한이는, 좀비가 한산해진 틈을 타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왔다.

주변에 한, 두 마리의 좀비가 한이를 보고 쫓아왔지만, 다행히 뛰지 못하는 좀비들이었다.

한이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 피해가며, 정배에게로 달려갔다.

소희는 편의점에서 계속 한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무사하길 빌고 있었다.

‘제발 아이를 구해서 무사히 돌아오세요.’

한이가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조심스레 뛰어 넘고, 잔디밭에 있는 긴 벤치를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가죽바지를 입은 좀비 한 마리가 그를 발견하고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주로 정면에 있는 좀비만 경계하던 한이는, 미처 가죽바지 좀비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고 잠시 숨을 고르려고 멈춰 선 사이에, 가죽바지 좀비가 뒤에서 그의 머리채를 잡아 당겼다.

“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한이의 머리가 뒤에 서있는 좀비 쪽으로 잡아당겨졌다.

하지만 한이는 단거리 선수였던 만큼 몸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았고, 유연함은 물론 어마어마한 다리 힘을 갖고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끌려가 뒤로 자빠졌을 테지만, 그는 잽싸게 오른발을 뒤로 쭉 빼서 몸의 균형을 잡은 뒤, 몸을 180도로 회전시켜 좀비와 마주하는 자세를 취한 뒤, 좀비를 힘껏 밀어 버렸다.

좀비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벤치 모서리에 머리통이 찍혔다.

“크으으으으으”

좀비는 초점 없는 시뻘건 눈으로 한이를 노려보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래, 이 좀비 새끼야. 붙어보자.”

한이는 좀비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좀비의 가슴을 발로 강하게 차버렸다.

좀비의 양 손이 미처 한이의 다리를 붙잡을 겨를도 없을 정도로, 한이는 빠르게 좀비를 짓밟았다.

여러 차례 가슴을 밟았지만 좀비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 터라 한이만 지쳐 갈뿐이었다.

한이의 약해진 발길질을 버티며 좀비가 서서히 일어나자, 한이는 숨을 고르며 뒤로 물러났다.

“후우, 이건 뭐 어쩌라는 거야.”

좀비를 피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그의 발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재빨리 살펴보니 작은 창이었다. 진모가 팔던 장난감 창이었던 것이다.

날카롭진 않았지만 좀비를 상대로 강하게 찌르면 무기로서 충분할 것 같았다.

그는 망설일 겨를도 없이 창을 잡아 그대로 좀비의 입에 박아 버렸다.

푸욱!

입으로 들어간 창이 좀비의 뒤통수를 뚫고 피와 함께 튀어 나왔다.

피를 흘리며 자신 쪽으로 쓰러지는 좀비를, 한이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난생처음 무언가를 죽여 본 그는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영화에서나 존재하던 좀비가 실제 자신의 앞에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는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의 얼굴에 튄 피를 손으로 문질러 닦으며, 그는 다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정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근처에 좀비 한 마리가 그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그 좀비를 자극해서, 그 좀비는 그 사람을 물어뜯어 버렸다.

그렇게 한이는 간신히 가판대 앞까지 다다랐다.

가판대 아래에 숨어 있는 정배는, 한이를 보고도 무서워서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이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꼬마야, 형은 사람이야 사람.”

“거짓말 마요. 형을 어떻게 믿어요.”

정배는 한이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한이는 주변에서 다가오는 좀비가 있는지를 계속 살피면서 정배를 설득했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정배에요. 박정배.”

“그래 정배야, 형은 좀비가 아냐. 저것들은 사람을 물어뜯잖아. 근데 난 널 구하려고 일부러 목숨 걸고 온 거야.”

“어떻게 믿어요?”

“그… 그건 형 모습을 봐. 형이 괴물 같니?”

정배는 한이를 위아래로 자세히 훑어봤다. 확실히 정배의 눈에도 한이는 좀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형, 진짜 괴물 아니죠?”

“그래. 꼬마야 이제 좀 나와. 형이랑 저쪽 편의점으로 가서 경찰 아저씨들 올 때까지 숨어있어야 돼.”

그제서야 정배는 한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이는 정배의 손을 잡고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가로질러 가기엔 좀비의 숫자가 꽤 되어 보였다.

좌측으로 돌아가려면 중앙 무대를 돌아가야 해서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았고, 우측은 차도를 타고 쭉 가면 바로 편의점 옆에 치킨 집으로 갈수 있을 것 같았다.

한이는 우선 정배를 데리고 좀비들이 거의 없는 우측 차도 쪽으로 달려갔다.

걸음이 느린 8살짜리 꼬마 아이와 함께 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이동속도가 느렸다.

다행히 근처에 뛰는 좀비가 없어서 큰 위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작은 위험이라도 생명과 직결될 수 있기에, 한이는 더더욱 긴장이 됐다.

최대한 조심스레 정배의 손을 잡고 큰 트럭 옆을 지나가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저기! 저 좀 도와주세요.”

한이가 주변을 둘러 봤지만, 한눈에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요. 트럭 아래.”

정배가 트럭 아래를 들여다보더니 외쳤다.

“어! 장난감 아저씨!”

그 소리에 한이도 몸을 숙여 트럭 아래를 쳐다봤다.

진모였다. 그는 좀비들이 사람들을 공격하자, 좀비들을 피해 트럭 아래 숨어있었다.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요?”

한이는 편의점을 바라본 후, 다시 진모를 바라보며 긍정의 표현을 한다.

“네, 저쪽 편의점에 숨어서 경찰이 올 때까지 버티려고 해요.”

한이는 진모의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고마워요. 이 아래서 꼼짝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네요.”

“잘 숨어 계셨어요. 아저씨, 제가 앞장설게요. 조심해서 따라 오세요.”

“그래요. 조심히 따라 갈게요.”

한이는 정배의 손을 잡고 최대한 자세를 낮추며 계속 이동했고, 그 뒤를 진모가 바짝 따라갔다.

광장과 차도엔 수십 마리의 좀비가 사람을 뜯어 먹고 있었지만, 다행히 한이 일행보단 눈앞에 있는 맛있는 사람이 더 흥미 있는듯했다.

물론 아주 크게 소릴 지르면서 도망가거나, 좀비를 건드리면 좀비는 먹던 사람을 버리고 자신을 자극시킨 사람을 따라갔다.

한이와 정배, 그리고 진모는 좀비들을 잘 피해서, 편의점 길 건너편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편의점 바로 앞에는, 좀비 두 마리가 여자 다리 한쪽을 갖고 서로 먹겠다고 힘겨루길 하고 있었다.

다리에 신겨진 검은 스타킹은 이미 전부 뜯어져서, 다리 위로 얼마나 잔인하게 물어 뜯겼는지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한이는 진모에게 특별히 주의 하라고 신호를 보낸 뒤, 그 두 마리의 좀비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치킨집 옆으로 지나갔다.

치킨집을 지나가자, 바로 상가의 입구가 보였다.

한이는 정배를 먼저 들여보내고 진모 역시 들여보낸 후, 주위를 한 번 살피고 들어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약속대로 소희는 편의점 뒷문을 열어 그들을 맞아 주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걱정 했어요.”

“네, 소희 씨. 아이도 구하고 아저씨 한분도 같이 왔습니다.”

“고생 했어요. 빨리 들어오세요.”

소희는 정배, 진모와도 인사를 나눈 뒤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녀는 잠시 뒷문 쪽에 서서 뭔가 생각하더니 한이에게 말을 한다.

“이 건물을 한 번 살펴보고, 아예 바깥쪽 건물 입구를 전부 막아 두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한데, 경찰이 곧 오지 않을까요? 설마 좀비 영화처럼 세상이 좀비로 뒤덮이진 않겠죠.”

소희가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그러네요. 맞아요. 경찰이 와서 우릴 구해 주겠죠, 제가 너무 앞서 갔네요.”

“네. 우리 그렇게 까진 상상도 하지 말아요.”

한이는 그렇게 말한 뒤, 편의점 한편에 쌓여있는 종이 박스를 잘라서 편의점 통유리창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경찰이 올 때까진 저 광경을 보고 싶진 않네요.”

편의점 앞에서 여자 다리 하나를 갖고 으르렁대던 좀비 두 마리가, 이빨을 강하게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며 한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이는 좀비들의 시선을 일부러 피하며, 박스 조각들을 유리창에 붙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조각을 붙이기 전에, 좀비들의 눈을 쳐다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편의점 통유리창의 마지막 뚫려있는 부분을 막아버렸다.

통유리를 대부분 막았지만, 여전히 바깥에서는 종이 틈새로 빛이 들어왔고, 그곳을 통해 바깥을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옥 같은 바깥의 괴성들이 들려왔다.

좀비가 내는 소리인지, 인간들이 내는 소리인지 조차 구분이 안갈 정도로 괴성은 난잡하고 복잡하게 계속 이어졌다.

편의점 안에 있는 네 사람은 의식적으로 그 소리가 안 들리는 척 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귀엔 그 소리들 밖에 들리질 않았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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