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로 뒤덮인 세상-4화 (4/36)

4화 - 피로 물든 호텔

무전기를 집으려고 몸을 숙인 지배인의 등 뒤로 열린 404호에서는, 금발의 늘씬한 미녀 두 명이 외출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지배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무전기를 다시 뒷주머니에 꽂으며 일어났다.

미녀들은 지배인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지배인도 답례로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

‘캬! 몸매가 그냥 환상이구만. 위아래가 다 10점이네 그냥.’

미녀들의 뒤태를 감상하던 지배인은 잠시 넋을 놓았고, 그녀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지배인은 다시 403호에 귀를 기울여 보다가, 아무래도 찝찝한 모양인지 살며시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똑똑똑!

이때였다. 403호 안에서 다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안에 무슨 일 있으십니까?”

지배인은 403호에 대고 물었다. 그러나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신 정체불명의 소리는 문 바로 앞쪽으로 다가왔다.

‘이건 분명히 문에 뭐가 부딪히는 소린데.’

정황상 뭔가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 지배인은 403호의 문을 열었다.

순간, 지배인은 문안에 있던 무언가를 보고 크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눈알과 눈동자는 경계선 없이 시뻘겋고, 초점이 없었다. 얼굴과 목 주변은 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얼굴색은 하얀 종이처럼 창백했으며, 유독 핏줄만이 두드러지게 진한 녹색을 띠었다.

어깨에는 손님들이 조식으로 자주 먹는 빵을, 자르는 칼이 박혀있었고, 문에 계속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서 그런지 이마 위쪽은 뼈로 보이는 하얀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태를 했지만,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지배인은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것은 바로 좀비로 변한 김준호였다.

그 순간 지배인의 시야에, 좀비의 뒤쪽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오전에 사라진 청소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팔과 다리는 살점이 뜯겨나가 피가 범벅이 된 하얀 뼈가 드러나 있었다.

지배인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좀비는 두 손으로 지배인의 어깨를 잡고 목을 물어뜯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지배인의 목에서 터져 나온 피는 스프레이처럼 호텔 벽과 복도에 분사됐다.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지배인은 몸이 축 늘어져 복도에 쓰려졌다.

지배인의 비명소리를 듣고, 몇몇 객실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복도로 나왔다.

사람들은 벽과 복도를 적신 새빨간 피를 보고 하나같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우씨! 저거 뭐야, 벽에 다 피잖아.”

“저거 좀비야 뭐야! 자기야, 일단 문 닫아!”

놀라서 도망치다가 복도에 넘어진 사람과, 바로 문을 닫아 버린 사람 가운데, 객기를 부리며 남자 하나가 좀비에게 다가갔다.

“세상에 좀비가 어딨어! 내가 저 미친놈 잡을 테니깐 누가 경찰에 신고 좀 해줘요.”

남자는 언뜻 보기에도 몸집이 크고, 운동 꽤나 한 사람 같았다.

“너 이 새끼야, 임자 잘못 만났어!”

남자는 좀비의 멱살을 잡고, 벽에 밀어 붙였다.

쿵 소리와 함께 좀비는 벽에 몸이 붙은 채로 피가 흥건히 묻은 이빨로 딱딱 소리를 내며 남자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누구 없어요. 씨발! 누가 신고 좀 해달라고.”

복도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방안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아래층으로 피신을 해서 복도엔 남자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왼쪽 팔꿈치로 좀비의 목을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폰을 꺼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순간 좀비는 양손으로 남자의 팔꿈치를 잡고 남자의 왼쪽 팔을 물어뜯었다.

아무리 힘 좋은 사람이라도 한쪽 팔로 좀비를 제압하려는 건 큰 오만이었다.

좀비를 무시한 대가로, 남자의 팔꿈치 바로 위쪽 살점이 양껏 뜯겨 나갔다.

화가 난 남자의 오른쪽 주먹이, 좀비의 왼쪽 관자놀이를 정확히 타격했다.

퍽 소리와 함께 좀비의 머리가 심하게 반대쪽으로 돌아가면서 머리에 힘이 빠진 듯 축 늘어졌다.

남자는 그래도 분이 안 풀린 듯, 좀비의 머리를 붙잡고 벽에 강하게 찍어 버렸다.

좀비는 몇 차례 쿵 소리를 내며 벽에 머리를 찍히다가, 그대로 남자의 허벅지를 물어뜯는다.

그 과정에서 좀비의 머리털이 거의 다 뽑혀 나갔지만, 좀비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바지가 피로 흠뻑 젖은 남자는, 주머니에 있던 폰을 꺼내 좀비의 머리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남자는 멈출 수가 없었다. 좀비의 머리는 점점 함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좀비의 머리통이 완전히 부서졌다.

탈진한 남자는 그대로 천장을 보고 누워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헉, 헉, 이 미친놈 진짜 좀비야 뭐야.”

현실적이지 않은 이 상황이 이해하기 힘든 듯, 남자는 계속 흥분 상태였다.

잠깐 동안 천장을 바라보던 남자의 시야에, 좀비로 변한 청소 아주머니의 얼굴이 다가왔다.

“이런 씨…ㅂ… 아아아아악!”

미처 욕을 끝내기도 전에 청소 아줌마 좀비는 남자의 입과 코 사이를 물어뜯었다.

남자는 이제 저항할 힘도 없었다. 호텔 복도에 깔려있는 붉은색 카펫 위로 남자의 피가 잔잔히 퍼져가며, 그 색은 더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그 피를 밟고 청소 아줌마 좀비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죽기 전까지 청소부였던 좀비는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 안에는 1층으로 도망간 사람들의 구조 요청에,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4층으로 올라온 직원 둘이 타고 있었다.

직원들은 처음 보는 좀비의 그로테스크함에 그대로 얼어붙었고, 좀비가 탄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히며 1층으로 내려갔다.

한창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에 112로 다급한 신고 전화가 들어왔다.

“저기요 여기 BH호텔인데요. 좀비가 나타났어요.”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점잖은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 긴급전화 112입니다. 이런 장난 전화하시면 벌금 받습니다.”

전화를 끊은 상담원은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찬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어휴, 하다하다 이젠 좀비냐.’

그때 옆자리 상담원이 또 다른 전화를 받는다.

“네, 긴급전화 112입니다.”

“여기 시청 광장 인근에 있는 BH호텔 앞 차도입니다. 여기 괴물 같은 사람이 있어요. 빨리 경찰 좀 보내줘요.”

“네, 저기 좀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아니 지금 BH호텔 앞에 차도에요. 어떤 괴물인지 사람인지가 사람들 뜯어 먹고 있다고, 뭘 더 설명해 빨리 경찰 보내!”

“흥분하지 마시고요. 여기 경찰서입니다. 장난 전화하시면 벌금 받습니다.”

수많은 장난전화에 내성이 생긴 상담원들은, 장난 전화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한, 두 번의 전화가 순차적으로 오더니, 어느 샌가 거의 30대나 되는 모든 상담원 전화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벨이 울린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예, 긴급전화 112입니다.”

“좀비라고 좀비! 장난 전화 아니 으으으아아악!”

전화건 여자는 말을 끝내지도 못한 채 비명소리를 질러 댔다.

모두 비슷한 전화를 받은 상담원들 중에, 가장 고참인 한 형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인근에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들에게 연락을 했다.

BH호텔 인근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연락을 받은, 근처 순찰차 두 대가 바로 가겠다고 무전을 한 뒤 BH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가는 순찰차 안에서, 신참으로 보이는 순경이 철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한다.

“이야! 김 경장님, 드디어 출동입니까!”

“으이구, 이 자식아. 가면 뭔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렇게 신났냐?”

운전을 하는 김 경장의 핀잔에 신참은 허공에 펀치를 날리며 말한다.

“기왕이면 조폭 같은 놈들이나 걸렸으면 좋겠습니다. 원빤찌로 기냥 아구창을 조사 버리게요!”

“이런 철없는 자식.”

잡다한 수다를 떠는 사이, 순찰차는 금세 BH호텔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다른 순찰차에는, 이미 순경들이 호텔로 들어갔는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김 경장과 신참은 차에서 내려, 호텔 주변을 대충 훑어본 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1층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가뜩이나 붐비던 1층은, 좀비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도망치는 바람에 의자며 테이블, 쓰레기통 등이 전부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고, 로비 옆에 있던 큰 거울은 거미줄처럼 금이 가서 금방이라도 깨질 듯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김 경장은 허리춤에 찬 권총 덮개를 풀며 말한다.

“어이, 신참 권총 꺼내.”

그제서야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은 신참은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권총을 든 신참의 오른손이 심하게 떨리자, 김 경장이 살며시 다가와 신참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며 조용히 말한다.

“이 자식아, 내가 있는데 뭘 그렇게 떨어. 나야 인마, 종로 지구대 에이스!”

김 경장의 농담에 신참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 듯, 다시 까불며 왼쪽 팔뚝에 오른손을 얹고 FBI 사격 자세를 취했다.

‘어휴, 저 자식 저거.’

김 경장은 그런 신참의 행동에 본인도 조금은 긴장이 풀린 듯, 주의를 유심히 살펴 나갔다.

그때였다.

“김 경장! 김 경장!”

김 경장의 동기인 이 경장이 1층 라운지 쪽에서, 양쪽 다리가 심하게 훼손된 채 기어 나왔다.

“이 경장! 뭐야 왜 이래? 야, 신참 빨리 지원 요청하고 앰뷸런스 불러.”

“예!”

신참이 다급하게 무전기를 켜고 지원 요청을 하는 사이, 이 경장은 거의 정신을 잃어가며 간신히 입을 연다.

“젠장… 진짜 좀비야. 영화에나 나오는 그 좀비가 호텔에 있다고.”

김 경장은, 이 경장의 말에 재빨리 몸을 숙였다.

“좀비라니? 좀비가 어딨어?”

“우리도 한 10분 전에 왔는데, 이미 몇 명은 물려서 죽기도 하고, 물린 채로 밖으로 도망간 사람도 있고, 지금 저쪽 라운지에만 좀비가 세 마리 정도 있어.”

라운지 쪽을 슬쩍 쳐다보며 김 경장이 조용히 물었다.

“물린 채로 나가? 이런 씹…. 혹시 영화처럼 물리면 감염 되는 거 아냐?”

김 경장의 질문에 이 경장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마 그렇겠지.”

김 경장은 이 경장의 대답에 잠시 이 경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 경장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김 경장에게 말했다.

“김 경장, 나 좀비로 변하면 네가 나 좀 죽여줘라.”

“개소리 하지 마. 네가 왜 죽어…. 여기 잠깐만 있어. 좀비 처리하고 와서 바로 병원으로 데려갈게.”

이 경장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거의 탈진 상태라 소리를 잘 내지 못했고, 김 경장은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신참과 함께 라운지 쪽으로 자세를 낮추고 걸어갔다.

미처 말하지 못한 그 말을, 이 경장은 정신을 잃으면서 중얼 거렸다.

“김 경장 조심해. 몇 놈은 빠르다….”

이 말을 끝으로 이 경장은 정신을 잃었다.

그 시각 면접을 끝마치고 소희가 일하는 편의점에 간단한 요기를 하러 갔던 한이는, 컵라면과 김밥 한 줄을 사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었다.

아침도 거르고 점심시간도 한참 지난 터라, 정신없이 라면을 폭풍 흡입하던 그는 편의점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짐을 느꼈다.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환호 소리 같기도 한 소리가 편의점 바깥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뭐지. 아까 보니깐 소녀시대 온 것 같던데, 좋아서 저러나.’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한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남은 라면 국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때였다. 편의점 건너편 서울 광장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차도로 뛰어 나왔고, 꽤 빠른 속도를 내던 자동차 한대가 사람들을 피하려다 편의점 근처에 전봇대를 들이 받았다.

으아악!

끼이이이익! 쿵!

편의점 알바를 보던 소희와 라면을 먹던 한이는, 동시에 편의점 입구 쪽으로 걸어 나와서 상황을 주시했다.

뭔가에 쫓기듯 사람들은 잔뜩 겁을 먹고 이리저리 도망가기 바빴다.

차도로 뛰어나온 사람들은 차에 태워 달라고 소릴 질렀고,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차문을 잠그고 사람들한테 비키라고 소릴 지르며 경적을 시끄럽게 울렸다.

몇몇 사람은 아예 자동차 보닛에 매달렸고, 어떤 자동차는 사람들이 안 비켜주자 그냥 사람들을 들이 받으며 인도로 돌진했다.

편의점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소희는 매우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했고, 한이 역시 지금 상황이 매우 불안하고 궁금했다.

그 순간 그들의 시야에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좀비 한 마리가 광장 근처 인파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크으으으으아”

그 좀비는 곧, 차도로 뛰어들어 지나가던 자동차에 매달려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나타난 좀비 한 마리가 건너편 도로에서 소희와 눈이 마주쳤다.

“꺄아아아!”

소희는 그 징그러운 모습에 소리를 지르고, 계산대 아래로 몸을 숙이며 한이에게 말한다.

“저게 뭐죠?”

한이 역시 놀란 듯 긴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도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저거 영화에서 보던 좀비 같은데요.”

“좀비요? 저기 한마리가 절 보고 있어요. 문을 잠가야 할 거 같은데….”

한이도 좀비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조심스레 편의점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냥 거기 계세요. 제가 잠글게요.”

건너편에서 그들을 노려보던 좀비는 빠른 속도로 차도를 지나 편의점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한이는 재빨리 편의점 문 위쪽에 달린 잠금장치를 잠갔다.

쿵! 쿵! 쿵!

좀비는 빠르게 뛰어와서 편의점 문에 몸을 부딪쳤고, 앞이 막혔다는 걸 모르는지 계속 머리와 몸을 문에 부딪쳤다.

소희와 한이는 그 알 수 없는 광경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편의점 앞에 서 있던 좀비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또 다른 사람을 쫓아가버렸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몸이 굳어있던 한이는, 그제서야 자세를 낮추고 몸을 잡지 진열대와 시식대 뒤로 숨기며 말한다.

“일단 바깥에 상황을 좀 봐야 될 거 같아요. 지금 나갈 수도 없고, 아무래도 경찰이 곧 오겠죠.”

소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전 뒷문 좀 잠그고 올게요.”

편의점의 뒷문은 이 상가의 복도와 연결돼 있었다.

소희는 편의점 사무실 옆에 달린 작은 문을 잠그고, 확실히 잠겼는지 두 번 확인한 후 사무실 문 역시 잠그고, 계산대로 돌아와 몸을 숨겼다.

소희와 한이는 편의점 안에서 각각 몸을 숨긴 채, 광장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날씨가 맑은 탓에 가시거리가 평소보다 훨씬 길었다.

광장 곳곳에서 일어나는 좀비들의 살육이, 그들의 눈에 지나치게 선명하게 보였다.

방금 전까지 외국인이었던 좀비 한 마리가 핫도그를 팔던 아저씨의 목을 물어뜯어 피가 가판대를 뒤덮었다.

덩치 좋은 한 남자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좀비의 목을 비틀어 버렸고, 어디서 구했는지 각목을 들고 좀비를 여러 마리 죽이다가 결국 뒤에서 달려든 좀비에게 어깨를 물어 뜯겼다. 뒤이어 달려든 좀비들은 그 남자의 온몸을 뜯어 먹었다.

그 근처에선 폭죽 팀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좀비의 얼굴에 대형 폭죽을 쑤셔 박고 그대로 불을 붙였다.

폭죽의 꼬랑지에서 쏟아지는 화염에, 좀비는 얼굴이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오후 내내 수많은 인파가 붐비던 광장은 이제, 시뻘건 피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며 광장 쪽을 바라보던 소희가, 한이에게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 저기 아이가 있어요!”

소희의 말을 들은 한이는 곧장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헐크로 분장을 했던 정배가 물건을 파는 가판대 아래에 숨어있었다.

소희는 정배를 보고, 울먹이며 혼잣말을 했다.

“저 애 어떻게….”

착잡한 표정으로 아이를 보던 한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래도 제가 가서 구해 와야 될 거 같네요.”

소희는 말없이 한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이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위아래로 가볍게 끄덕이며,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본다.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전 소희에요. 윤소희.”

“소희 씨, 제 말 잘 들어요. 제가 지금 문을 열고 나갈 거예요. 그럼 소희 씨는 바로 문을 잠그세요. 그리고 제가 아이를 데리고 올 테니깐 계속 저를 보고 계시다가, 제가 도착하면 바로 문을 열어주세요.”

“네, 알았어요.”

한이의 말에 대답을 끝낸 소희가 뭔가 생각 난 듯 말한다.

“혹시 앞문에 좀비가 많이 모여 있으면, 뒷문으로 오셔야 될지도 모르잖아요.”

“아참, 그렇겠네요.”

소희가 손으로 좌측을 가리키며 말했다.

“편의점 왼쪽에 치킨집이 있거든요. 그 치킨집을 끼고 돌아가면 이 상가의 정문이 있어요. 그리로 들어 오셔서 두 번째 문이 편의점 뒷문이에요. 혹시라도 알아두세요.”

“예, 소희 씨, 제가 그쪽으로 가면 부탁드릴게요.”

“네…. 제발 무사히 돌아오세요.”

소희와 한이의 대화는 끝이 났고, 한이는 넥타이를 풀고, 정장 상의를 벗어 버렸다.

달릴 때 조금이라도 신경 쓰일 만한 것을 미리 대비하는 것이었다.

한이는 바깥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여러 번 했다.

소희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한이를 바라보았고, 한이는 천천히 앞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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