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로 뒤덮인 세상-3화 (3/36)

3화 - 403호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BH호텔은 1년 내내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한류스타들의 인기 탓에 요즘 서울은 언제나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특히 중구는 서울 시내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이다.

오랜 전통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BH호텔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특히 선호하는 호텔로 손꼽힌다.

오늘 저녁 서울 광장에서 열리는 썸머 페스티벌 관계로 호텔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중국과 미국에서 온 폭죽 팀이 호텔에 있는 각자의 장비들을 가지고 광장을 오가며 페스티벌 준비에 한창이었는 데다가, 페스티벌에 참가할 댄스 팀들과 많은 관광객들이 한 번에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하는 바람에 호텔 로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BH호텔에서 20년 넘게 근무해온 지배인 홍상태는 평소에는 친절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바쁠 땐 엄청나게 히스테릭 해진다.

“경미 씨는 뭐 해! 거기 가만히 있지 말고, 저분이 흘린 것 좀 치워.”

“아니, 강현아! 넌 왜 거기서 어물쩍 거려. 아까 라운지에 식탁 세팅 마무리 안 됐었잖아.”

간혹 높아진 언성에 관광객들이 언짢게 쳐다보기도 하지만, 지배인 특유의 미소로 손님의 마음을 풀어드린 뒤, 다시 직원들을 재촉했다.

당연히 먹어야 될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직원들에게도, 숨 쉴 틈 없이 일을 지시한다.

“영희 씨는 언제 나갔는데, 이제 들어와! 이 사람들이 말이야. 정말 바쁠 땐 점심도 굶어가며 일해야지, 그렇게 세끼 꼬박꼬박 먹으니깐 살이 찌지.”

지배인의 히스테릭한 말투에, 늦은 점심을 먹고 들어오던 조영희는 조용히 지배인의 시야를 벗어나 지하 세탁실로 향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이때 호텔 로비에 전화기가 울렸다.

로비 직원이 전화를 받아, 난감한 표정으로 잠시 통화를 하고 끊더니 지배인을 부른다.

“지배인님, 407호실 손님인데요. 왜 방 청소가 안 돼 있냐고, 엄청 화나셨어요.”

다른 직원들을 재촉하던 지배인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무전기에 대고 말한다.

“영희 씨, 아까 청소 아줌마 없어졌다고 4층에 다른 분 보내라고 한 거 안 보냈어?”

세탁기 소리로 시끄러운 세탁실에서, 영희는 아주머니들과 다림질을 하며 떠드느라, 세탁기 위에 놓인 무전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무전기에 대고 몇 번 영희를 찾던 지배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져서, 로비 직원에게 물었다.

“지금 청소할 사람 누구 있어?”

로비 직원은 여기 저기 전화를 하고, 근무 시간표를 확인한 후 말했다.

“지금 다들 바쁜데요, 저라도 가서 청소 할까요?”

지배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비 직원을 쏘아 붙였다.

“네가 가면. 나가는 손님, 들어오는 손님 다 누가 응대하라고? 오늘따라 왜들 이렇게 어리바리 하니. 아휴! 내가 간다. 내가 가!”

지배인은 씩씩대며 직원용 엘리베이터에 타서 손가락에 잔뜩 힘을 실어 4층을 꾸욱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멈추고, 지배인은 좌우를 살펴보며 내렸다.

호텔의 구조는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좌우로 객실들이 배치하고 있었다.

411호 부터 418호 까지는 왼쪽 복도에 있고, 오른쪽 복도는 401호 부터 410호까지 있었다.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긴 구조로 돼있었다.

지배인은 곧장 407호로 가서 문을 두드리려다, 복도 오른쪽에서 나는 소리에 멈칫한다.

쿵 쿵 쿵

방음 설계가 워낙 잘 된 호텔이라 어지간한 소리는 방에서 새어 나오지 않는 터라,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되는 소리에 호기심이 생긴 지배인은 복도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 뭔 소리야?”

지배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살금살금 걸어가면서 소리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했다.

쿵 쿵 쿵 쿵 쿵

‘405호는 아닌데….’

405호 앞에서 유심히 소리를 들어보던 지배인은 다시금 오른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쿵 쿵 쿵 쿵 쿵!

403호 앞에선 지배인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쿵 쿵 쿵 쿵 쿵!

‘여긴가?’

403호 문 쪽으로 지배인은 좀 더 귀를 가져가 본다.

쿵 쿵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배인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403호 문에 아예 귀를 갖다 대고 듣기 시작했다.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복도는 마치 진공 상태처럼 고요했다.

그때 지배인의 뒷주머니에 꽂아 놨던 무전기가 오른발 옆으로 떨어졌고, 지배인은 무전기를 집으려고 몸을 숙였다.

그 순간, 지배인의 등 뒤에 있는 404호의 문이 살며시 열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고층빌딩 앞에서, 한이는 다시 한 번 면접 볼 회사의 위치를 확인했다.

‘여긴가? 생각보다 더 근사한데.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한이 옆으로 빌딩의 경비로 보이는 아저씨 한분이 다가 오셨다.

“어디 찾아 왔어요?”

경비 아저씨는 더운 여름에도 어두운 계통의 경비 복을 입고 계셔서 그런지, 땀이 얼굴부터 목줄기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예, 저 태성실업에 면접 보러 왔는데요.”

한이는 스마트폰 문자로 받은 회사 주소를 경비 아저씨께 보여 드렸다.

“어디보자, 태성실업이라….”

주소를 확인한 경비 아저씨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주소가 여기가 아니네. 이 주소는 저쪽 저 건물 같은데.”

경비 아저씨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한이 앞에 있는 빌딩보단 조금 초라한 빌딩이 있었다.

경비 아저씨께 감사 인사를 드린 한이는, 그 초라한 빌딩으로 향했다.

‘그래 여기가 맞네…. 아깐 너무 화려하더라.’

가까이서 보니 더욱 낡고 초라한 빌딩에 한이는 오히려 안도하는 듯했다.

로비로 들어서자 정면엔 큰 거울이 있었고, 그 옆으로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왼편엔 화장실, 오른편엔 빌딩 층별 안내도와 비상계단이 있었다.

‘태성실업은 6층이구나. 그냥 걸어가지 뭐.’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고쳐 맨 후, 한이는 비상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6층은 생각보다 길었다.

태성실업 문 앞에서, 한이는 마지막으로 마음가짐을 다진다.

너무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정도의 소리로 노크를 한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출입문 바로 앞자리 여직원이 용건을 물어온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 오늘 면접 보기로 한 강한이라고 합니다.”

한이는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자기소개를 한 뒤, 이력서를 여직원에게 건네주었다.

“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이력서를 받아든 여직원은 사무실 복도를 쭉 타고 안쪽 사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나온 여직원은 곧장 한이 앞으로 다가와 사장실 쪽을 두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한이는 여직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사장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실 안은 얼핏 보기에도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푹신한 소파가 떡 하니 놓여 있었고,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은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성은 한이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하며, 방금 전 여직원이 가져다준 이력서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이는 90도로 인사를 드리며 큰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안녕하십니까. 강한입니다.”

“어 그래, 거기 앉게나. 더운데 오느라 고생 많았네.”

사장님은 의외로 인자한 웃음으로 한이에게 말을 건넨 뒤, 이력서를 이리저리 보다가 대학교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어디보자, 체육대학교를 나왔구만. 그래 전공은 뭐였나?”

한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전 육상부 단거리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무릎 부상으로 기록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아서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습니다.”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질문을 했다.

“그렇구만…, 일상생활엔 지장 없는 건가?”

조금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 듯, 가벼운 미소를 얼굴에 담고 한이가 대답했다.

“예, 선수로서는 실격입니다만, 생활하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사장님은 그 뒤로 10분이 넘도록 회사의 약력과 초기 임원진들의 노력, 지금 직원들의 태도와 자신이 앉아있는 소파 가격까지 지루할 정도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네 같은 친구가 하루 종일 앉아있는 사무직에 어울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면접 수고했네. 합격 여부는 며칠 내로 문자로 보내 주겠네.”

면접을 끝낸 사장님은, 무엇 때문인지 한이가 사무실에 들어설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예,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90도로 정중히 인사를 드린 뒤, 한이는 사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문밖으로 나가자 몇몇 직원들이 한이를 쳐다보았고, 한이는 어색한 미소로 가볍게 목례를 몇 번하며, 사무실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한이의 허기진 뱃속은 꼬르륵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찌 됐건 끝났구나. 편의점이라도 가서 뭐라도 먹자.’

엘리베이터 쪽으로 두 발짝 걷던 한이는, 엘리베이터를 한번 본 후 이내 방향을 계단 쪽으로 돌려 1층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역시 6층은 생각보다 길었다.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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