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우주전쟁 (1)
메드크럭스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긴 했지만, 곧바로 무언가 대응에 나설 수는 없었다.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위구르까지 해방해놓았으면 좋았을 뻔했군.’
신장 위구르 지역에는 아직 건설 중인 것을 제외하더라도 세 개의 심우주 통신·관측시설이 존재한다. 이것들이 지금 내 수중에 있었다면 꽤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설 운용에 필요한 데이터는 국안부를 통해 확보하면 그만.
「나는 여기에 있다」라고 하긴 했어도, 메드크럭스는 자신이 탑승한 알파 크루시스 아크의 위치를 대놓고 드러낸 게 아니었다. 저가 제어하는 복수의 위성들을 통해 발신원이 분산된 전파를 보내었을 뿐이지.
다만 이것도 의미가 있는 단서이기는 했다. 발신에 이용된 위성들 전부가 내 부하들이 점차 좁혀가던 추적범위 내부에 분포했기 때문이다. 이는 내 부하들의 추적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증거인 동시에, 추적범위를 더욱 좁히도록 만들어주는 단서였다.
고로 「여기에 있다」에서의 ‘여기’는 공간적인 개념으로 넓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마법사가 탑승하여 무제한적인 기동이 가능한 알파 크루시스 아크와 달리, 그가 제어하는 다른 위성들이나 우주비행체들은 궤도 변경에 제약이 따른다.
그동안 구축해놓은 기반을 다 버릴 작정이 아닌 한, 메드크럭스는 스스로 존재를 밝힌 자신의 영역 내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내게서 소식을 전달받은 그레이스는 지자기 폭풍 생성 실험 및 관측불능지대 형성의 일정을 더욱 빠듯하게 수정했다. 이에 따라 북미 서부지역에서는 전력망 붕괴 사고에 대한 우려가 예정보다 빠르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최근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국지적 지자기교란이 거대 자연각성체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특이활동에 의한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특이활동은 회를 거듭할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NOAA는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유도 전류로 인한 일시적 전력망 붕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오리건·워싱턴·캘리포니아·아이다호·네바다·몬태나·유타 일곱 개 주(州)에서 커패시터 차단 시스템을 보강하는 한편, 레이디 아밀라리아에 대한 관찰과 감시를 강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주 정부들과 협력하여 시민들에게 비상시 행동수칙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정부 역시 89년 하이드로-퀘벡 전력공급망 붕괴 사태의 재현을 막기 위한 대책 수립에 들어갔습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은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여 민간 영역의 불안을 잠재웠다.
「지금까지 관측한 데이터들을 보면,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특이활동은 처음 시작된 후 강도가 정점에 도달하기까지 최소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됩니다. 이 정도면 대응조치를 취하기엔 충분한 여유지요.」
「하다못해 차단기만 잠시 내려두어도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쪼록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종말의 징조라느니 휴거의 날이 온다느니 하는 사이비들의 말 따윈 귀 기울여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FEMA의 가이드에 따라 쿠킹 호일로 패러데이 케이지(Faraday cage)를 만들어 유도전류에 민감한 정밀 전자기기들을 보관하여 주시고……」
백악관 미치광이도 현지를 방문하여 지역민심의 동요를 막는 데 힘을 보태었다.
「왜들 그렇게 걱정이 많습니까? 내가 여러분의 대통령이고, 미국 경제는 아주 튼튼합니다! 정전 좀 일어난다고 나라가 망하진 않아요!」
「그러니 그냥 즐기십시오! 어지간한 불꽃놀이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오로라가 우리의 밤을 연일 장식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결코 재난 같은 게 아닙니다! 버섯 아가씨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정전으로 인한 손실 따윈 관광수입으로 만회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우리는 함께 돈을 벌 겁니다! 아주 많은 돈을!」
지자기 교란은 오로라 생성을 동반한다. 캐링턴 사건 당시엔 적도와 가까운 콜롬비아에서조차 오로라 관측이 가능했다. 당시 오로라를 본 사람들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채가 밤하늘을 물들였다.”고 진술했다.
물론 레이디 아밀라리아가 일으킨 오로라는, 현시점까지는 관측 가능한 지역이 오리건 주와 아이다호 주 일부로 국한되어 있었다.
오로라의 전반적인 강도는 지자기 교란의 세기에 비해서는 약한 감이 있었다. 오로라는 지자기 교란의 직접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지자기 교란에 의해 왜곡된 자기력선을 따라 태양풍 내(內) 양성자와 전자 등의 입자들이 유입되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태양폭풍(Solar storm)에 의한 자기교란의 오로라와 비교할 때, 레이디 아밀라리아가 만들어내는 자기교란의 오로라 쪽이 약한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자기교란의 중심과 가까운 지역이나 바다에서는 굉장히 밝은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백악관 미치광이의 말처럼, 이 화려한 오로라는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다.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이상활동을 재앙의 전조라고 여기며 두려워하는 자들도 앞다퉈 관광객들의 대열에 합류했고, 주술사 나부랭이들 역시 각자의 제구(祭具)들과 홍보용 카메라를 챙겨 속속 멀루어 국유림으로 몰려들었다.
「아-마-겟-돈-!」
기독교 종말론자들은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종말이 왔노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어떤 지역 방송사의 카메라는 한국에서 원정을 온 어느 유명한 주술사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했다.
「깨랑까랑? 반갑다 인간들아. 너희도 우주의 기운을 받으러 왔느냐? 우주신이 지구로 보내는 이 밝은 기운이 느껴지느냐? 자, 위대한 우주적 존재들이 부르는 신성한 노래를 들어보아라. 빵-빵- 똥똥똥똥 땅땅 따라라라-」
나는 이 난잡한 혼란을 보며 생각했다.
‘1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군.’
160년 전에도 지자기 교란에 의한 오로라를 재앙과 종말의 전조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많았다.
어쩌면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숫자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많을지도 몰랐다. 이는 이 세상에 돌아온 마법을 탓해야 할 일이었다. 황금기의 눈으로 보는 마법은 어디까지나 물리법칙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현상이자 상호작용일 뿐이지만, 세상은 이를 알 도리가 없다.
관광객들을 포함한 지상의 관측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은 나와 그레이스의 계획에 지장을 주는 요소가 아니었다.
한밤중에도 별도의 조명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강하고 화려한 오로라는, 내가 페르 아스페라를 끌고 대기권을 이탈할 때 육안에 의한 관측을 막아줄 가림막이었으니까.
사방천지에서 모인 정신병자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집단은 당연히 버섯을 섬기는 광신도 집단 「거룩하신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교회」였다.
아밀라리아의 교회는 칠각기사단에 반쯤 잡아먹히다시피 한 처지였다.
그도 그럴 게, 신으로 섬기는 거대 균사체부터가 그레이스와 그레이스의 복제체들이 부여하는 충동에 반쯤 잠식당한 상태이지 않은가.
버섯 여신의 신도들은 활발한 전도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환각 속에서 목격해온 ‘검은 도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일찍이 그레이스는 내게 말한 바 있다.
「버섯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불타는 버킹엄 궁과 무너져 내리는 런던 브릿지의 환각을 보여줄 수 있다면, 알아서 증식하는 광신도들이 원탁의 주의를 분산시켜주지 않겠어?」
그레이스가 꾸준히 해온 노력의 성과는 전보다 더 확실해졌다.
환각 속에서 선명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하나, 그럼에도 ‘충동’이 반영된 환각을 겪은 광신도들은 흐리고 왜곡된 이미지들을 단서로 삼아 검은 도시의 정체를 추정해냈다.
「짙은 유황 냄새와 시체 썩는 악취로 가득한 도시. 우리의 여신께서 묵시록의 짐승들이 도사리고 있노라 경고하신 그 도시의 정체는 런던일 가능성이 높다. 아, 새까만 시계탑의 소름 끼치는 종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메아리치는 기분이다…….」
「여신께서 오로라의 빛과 함께 더욱 잦은 계시를 전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종말의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종말을 막기 위해서는 묵시록의 짐승들을 무찔러야 한다.」
「도시를 지배하는 짐승들은 저마다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갖고 또 멸망이 시작될 때부터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음이라. 도시에 거하는 자들은 모두 짐승에게 미혹되어 생명책에 이름이 적히지 못하고 짐승을 숭배하게 되리니-」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인류의 공적으로 몰아가는 선전전은 여러 방면에서 순항 중이었다.
특히 영국 내 무슬림 아이들의 집단 실종에 대한 의혹을 부풀리고 확산시키는 과정에선, 나도, 그레이스도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알고 보니, 동반승천 카르텔은 정말로 무슬림 아이들을 납치해 원탁에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으로 얻어걸린 꼴인데, 실체가 없는 환상을 빚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보았던 나로서는 어이없기까지 한 결과였다.
동반승천 카르텔의 실험체 수급은 비단 무슬림 아이들에게만 국한되어있지 않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과 가임기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카르텔의 표적이 되었던 것.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일 따윈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오로지 부분적인 진실만을 알게 되었다. 무슬림 아이들과 여성들이 오랜 시간 조직적으로 납치되어 왔으며, 그 행방이 모두 묘연하다는 사실만을.
내가 샤히디의 이름으로 전달한 요청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를 촉구했던 미국 대통령은, 마침내 드러난 ‘진상’을 접하고는 영국을 격렬하게 성토했다.
「친애하는 미국 시민 여러분! 그리고 미국의 우방국 여러분! 저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는 나라가 해놓은 짓을 보십시오! 어떻게 저딴 나라가 그동안 UN 상임이사국이랍시고 인권이 어쩌고 국제질서가 저쩌고 해왔던 걸까요? 정말로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영국을 대신해 상임이사국이 된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영국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이 시대의 정의를 회복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나라지요!」
「저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일본과 나의 좋은 이슬람 친구들이 영국에 책임을 묻는 데 힘을 보탤 것입니다! 미국 시민 여러분들과 우방국 여러분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십시오!」
미국 대통령이 무슬림 아이들의 실종 문제에 관하여 영국 정부를 압박해주기로 한 것은 정치적인 거래의 일환이었다.
거래를 받아들인 이상, 미국 대통령에겐 자신이 진 부채를 확실하게 해소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단순히 압력을 행사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서도 샤히디와 행보를 함께하는 게 거래의 내용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새로 상임이사국이 된 일본 역시 이 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는 일본에게, 이번 일은 전쟁 명분을 더욱 강화해주는 기가 막힌 호재였으니까.
UN 상임이사국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다.
단순히 일본 자신의 복수만을 위한 전쟁을 넘어 국제질서와 정의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명분을 굳혀놓으면, 이해관계가 다른 나라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는 데 부담을 줄 수 있다.
일본의 영토 요구 또한 영국처럼 미친 나라가 전 세계적 해양 투사력을 지녀선 안 된다는 주장으로 당위성을 더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영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입장은 한층 더 강경하게 전환되었다.
온 국제사회가 영국을 규탄하고, 내가 샤히디 명의의 비난 성명을 내어 불길에 기름을 붓는 가운데, 영국 총리는 무슬림 아이들의 납치를 주도한 것이 영국 내에 존재하는 비밀결사의 소행이라고 해명했다.
「저 역시 이 끔찍한 만행에 분노하고, 또 슬퍼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종교와 무관하게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엔 우리 정부가 국민 보호의 책임을 온전히 이행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자들의 비밀스러운 조직이 존재합니다. 본래는 조사가 더 심층적으로 진행된 후에 발표할 사항이었습니다만, 이대로 간다면 조사를 마치기도 전에 정부가 무너질 터라 불가피하게 중간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 우리 사회의 곳곳에 침투해있습니다. 모종의 종교적 믿음 아래 결사를 이룬 이 타락한 자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각계각층에서 암약하며 영국이라는 배의 타를 어둡고 사악한 항로로 돌려왔고-」
이 담화와 함께 영국 정부가 공개한 비밀결사 수사 중간보고서는 원탁과 동반승천 카르텔에 대한 적나라한 폭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영국 정부가 원탁과 카르텔의 전모를 전부 폭로해버리는 건 곧 영국 내의 균형을 유지하는 최후의 일선을 넘는 짓이니까. 원탁과 동반승천 카르텔은 자신들을 인류의 공적으로 던져주고 영국 정부 혼자 수렁을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터 런던을 시민들과 함께 통째로 버릴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총리는 결코 최후의 일선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중간보고서는 원탁과 동반승천 카르텔의 파편적이고도 말단적인 행적들만을 담고 있었다. 비밀결사의 실존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하기는 할지언정, 그 정보들을 토대로 비밀결사의 실체에 접근하는 건 불가능한 그런 내용이었다.
일본 총리는 즉각 비난성명을 내었다.
「지난날 영국 정부는 도쿄 참사의 모든 책임을 옥타 테크에 떠넘기고 국가 차원의 책임을 면하고자 했던 전적이 있습니다! 금일 발표된 영국 정부의 성명은 결국 그때와 같은 수작질을 조금 다른 형태로 반복하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국제사회에 호소합니다! 영국 정부의 기만에 속지 마십시오! 비밀결사는 저들이 책임회피를 위해 만들어낸 공상일 뿐입니다! 저들은 반드시 심판받아야 합니다!」
영국 정부가 내놓은 성명은 외부적으로는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현 외교가에서 영국 정부의 신뢰도란 쓰레기와 등가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여기엔 언제 죽을지 모를 늙은 여왕의 힘이 작용했다.
마음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드디어 늙어 죽을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나온 여왕은 차분한 어조와 음색으로 이야기했다. 총리의 발표가 사실이며 영국이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해있노라고. 정부가 무너지면 진실로 그들의 세상이 올 테니, 국민들은 아무쪼록 정부를 믿고 지지해달라고.
여왕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신뢰와 애정은 대단한 것이다.
여기에 여왕의 병색이 연민을 자극하기까지 하여, 여왕의 담화는 정부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의심과 분노를 진정시키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영국 총리가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무슬림 아이들과 여성들을 생체실험에 동원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비상계엄 자체가 위태로워진 탓이었다.
마지막까지 총리의 정부에 충성하던 충성파 군경세력마저 곳곳에서 명령 수행을 거부하는 상황이었던 것.
준비된 보고서가 곧바로 나온 걸 보건대, 총리는 이런 사태까지 사전에 상정해서 대응계획을 마련해두었던 모양이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가운데, 마스터 메드크럭스는 그레이스의 지자기 폭풍 생성실험이 회를 거듭할 때마다 나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들을 보내왔다.
「지금쯤이면 그대는 내가 거하는 방주(Ark)의 이름을 알아냈을 테지?」
「분명히 그럴 것이다. 크로우허스트 경 그대는 런던의 낙오자들보다 유능한 자이고, 그런 그대가 이제껏 쓸 만한 전향자 하나를 손에 넣지 못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
「나 ‘천문을 읽는 자’ 메드크럭스가 방주에 알파 크루시스의 이름을 붙인 것은, 지구와 태양계가 진입한 마소의 우주적인 흐름이 저 멀리 남십자성의 가장 밝은 별(α Crucis) 너머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아낸 까닭이었다.」
「내가 진실로 그대에게 이르노니, 승천의 길은 결국 마소의 흐름 속에 있음이라. 마법사는 언제까지나 마소의 흐름 속에 머물러야 하는 자이다.」
「고로 알파 크루시스 아크라 함은, 이 몸이 이 위대한 힘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먼저 승천한 우주적 존재들의 사이에 자리하도록 해줄 한 척의 방주라.」
「충분한 시간과 마르지 않는 마소만 있다면, 대마법사의 승천은 정해진 미래와도 같다. 나는 승천의 날까지 수명을 연장할 방법을 찾았지. 이 우주에서 오롯이 생존하기 위한 생명의 지혜 또한 얻었다.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 기나긴 항해는 내게 확실한 승천을 보장해줄 터.」
「따라서 내겐 그대와 반드시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언제 마소의 흐름으로부터 벗어날지 모를 작고 초라한 별을 떠나고 싶을 따름이지.」
「알겠는가? 내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워프 항해의 비밀이다.」
「수명연장의 기술도, 우주의 작고 고립된 공간에서 완벽한 생명의 생산과 순환을 이루는 지혜도 모두 주겠다. 그대는 내게 공간도약의 비밀만을 다오.」
「그리하면 나 메드크럭스는 그대의 전장에서 사라져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