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51화 (551/561)

#53. 알라의 검 (14)

3월의 마지막 날.

일본의 상임이사국 지위 획득에 관한 UN 총회와 안보리의 표결 과정에선 어떠한 이변도 발생하지 않았다.

UN 주재 영국 대사는 끝끝내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자신이 빠진 채로 열린 최초의 안보리 회의에서 새로운 상임이사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본 직후의 일이었다. 러시아가 행사한 거부권은 UN 총회 결의 제377호 「평화를 위한 단결」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반대로 일본 총리는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전 일본은 울음 섞인 환호와 축제의 도가니로 변했다.

전 세계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눈물을 흘리는 일본 총리의 모습. 전 일본이 총리와 함께 울었다.」

일본 언론들은 영국에 대한 조롱을 잊지 않았다. 좌절한 UN 주재 영국 대사의 모습과 초상집이 된 영국 정계의 상황을 마르고 닳도록 돌려 내보내며 음습한 복수심을 표출하는 모습은, 그 복수심을 빚어낸 내겐 적잖이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귀축영국은 일본의 성장을 두려워합니까?」

일본인들이 품은 한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서슬 푸른 칼날처럼 살아있었다. 온 일본이 총리가 제시한 구상 아래에서 하나가 되어가는 광경은, 마치 열도 전체가 담금질을 거듭해가며 한 자루의 예리한 일본도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이어서 라마단의 첫 번째 날인 4월 1일엔 국제적으로 대서특필될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만우절에 전해진 거짓말 같은 소식! 시아파의 종주 이란. “우리 이란의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는 세계 이슬람 협력기구가 추인한 알 쿠드스(예루살렘) 선언이 시아파의 율법에 비추어서도 유효함을 확인한다.”는 대통령 명의의 담화를 발표!」

신정국가 이란의 실질적인 국가수반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 위에 군림하는 라흐바르(최고지도자)다.

그러나 현 대통령은 라흐바르의 선택을 받은 「전투적 성직자회」 당(黨) 소속의 성직자로서 차기 라흐바르로 확정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인물인지라, 대통령 명의의 발표는 이란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로 해석해도 무방했다.

알 쿠드스 선언이란 샤히디를 성지의 수호자이자 신자들의 총사령관으로 인정했던 선언을 의미했다. 즉, 이번 발표는 이란 역시 샤히디를 성지의 수호자 겸 신자들의 총사령관으로 인정하겠다는 뜻이었다.

굳이 우회적인 표현을 쓴 것은 중국과의 관계를 감안한 최소한의 눈 가리기였을 테고.

‘라흐바르가 나서지 않은 건 최후의 자존심이라고 봐야겠지.’

이란과의 교감 자체는 예전부터 이루어져오고 있었다.

여타의 중동 산유국들과 같이, 이란 또한 유가 하락으로 인한 경제난이 몹시 심각했다. 여기에 오랜 가뭄으로 감소한 식량자급능력도 큰 문제여서, 이란은 현재 내부적으로 거의 내란에 준하는 사회혼란을 겪는 상황이었다. 각성능력자들이 대거 합류한 개혁 요구 시위대는 군경의 힘으로 섣불리 진압하기 어려웠다.

정권의 생명을 확실하게 연장하려면 일단 경제실패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란 정부는 세 개의 대동맥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유일한 경제적 활로라고 보고 있었다.

이란 정부가 비밀리에 파견한 협상단은 메리옘을 상대로 설득에 열을 올렸다.

「우리가 합류하면 카스피해 연안의 평탄한 회랑지대를 따라 철길을 깔 수 있습니다. 굳이 중간에 뱃길을 끼워 넣어 환적의 수고로움을 더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이 얼마나 큰 이익이겠습니까? 아프리카와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네 개의 시장이 완벽하게 철길만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아프가니스탄 남부에 부분적으로 철도를 부설해놓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자금난으로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지만, 자금 공급만 재개된다면 테헤란-카불 노선은 우리 이란이 책임질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사업자를 쓰는 것보다 더 빠르게, 더 낮은 가격으로 완공시킬 것을 약속드립니다.」

「비록 종파는 다를지언정 우리는 하나의 신을 믿고 하나의 사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 이란과의 협력은 종교적인 면에서도 아미르 샤히디에게 아주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본디 이란은 내 꼭두각시를 성지의 수호자 겸 신자들의 총사령관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이익만을 얻고 싶어 했다. 시아파의 종주로서 지닌 위신에 타격이 불가피한 일이었던 까닭이다.

또한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신자들의 총사령관으로부터 종교적 정당성을 찾기 시작하면 곤란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식의 체리 피킹을 받아들일 리가 있나.

지정학적 대전략의 완전한 실패에 직면한 것은, 그렇잖아도 흔들리던 이란에게 결단을 강요했다.

오래전부터 이란은 「시아의 초승달」을 형성하여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를 포위하는 계획을 실천해왔다.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차례로 영향권에 편입해서 사우디 북쪽을 초승달 형상으로 막아버리고, 반대편에 있는 예멘을 망치로 써서 남쪽에서도 사우디를 압박한다는 게 그 계획의 요체였다.

해당 계획은 실제로 제법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미국이 개판을 만들어놓은 이라크 내의 반군들, 내전이 끝나지 않는 시리아의 반군들, 미국과의 관계로 인해 같은 수니파로부터 지원을 잘 받지 못하는 식민지 팔레스타인,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장악했던 예멘에 이르기까지.

시아의 초승달은 점차 실체를 얻고, 시아의 망치는 시간이 갈수록 강력해지며 사우디의 근심을 가중시키는 상황이었다.

이란의 야망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우리가 바위의 돔의 실질적인 수호자로 자리매김하고, 사우디를 굴복시켜 남은 두 성지까지 영향권에 편입하면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은 우리 이란과 시아파의 손에 들어온다.」

「이슬람 세계의 다수가 수니파라고? 아니! 그들 대부분은 종파에 그렇게까지 크게 구애받지는 않는 자들이다.」

「아직 교화가 덜 되어 미개한 주술 신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형제들을 봐라. 대다수가 세속주의에 물들어있는 중앙아시아의 형제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에게 중요한 건 주도권이지 종파가 아니야.」

「우리의 능력과 신실함은 사우디를 능가한다. 일단 우리가 주도권을 쥐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이슬람 세계를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어!」

이란의 시아파 꼴통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이 거창한 계획은 내 손에 완전히 박살이 났다.

초승달의 서쪽 끝자락인 팔레스타인은 내 꼭두각시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땅이 되었다. 더하여, 알림 샤히디가 성지 바위의 돔의 수호자라는 사실은 비단 이슬람 세계만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공인을 받다시피 하지 않았나.

그리고 이제는 이란의 입김이 닿아있는 레바논·시리아·이라크의 무장단체들이 샤히디의 다음 토벌 목표가 될까 두려워서, 혹은 자신들이 샤히디가 추진하는 거대사업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에 알아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물주인 이란이 아무리 채근하고 채찍질을 해도 말을 들어먹질 않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이란은 포위를 하는 입장이 아니라 당하는 입장에 놓인다.

내게 있어서 세 개의 대동맥 구상은 그저 여러 나라들을 조종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지만, 이란 지도부가 그 사실을 알 리가 있나. 세 개의 대동맥 구상을 진지하게 추진한다고 치면 이란은 그냥 내버려두기엔 너무나 아까운 땅이다.

때마침 이란 내부가 혼란스럽기도 하니, 포위망을 굳히면서 알림 샤히디의 이름으로 개혁파를 지원하면 현재의 이란 정권은 내우외환을 견디기 어렵다. 샤히디는 이란을 제물로 삼아 자신의 명성을 더욱 드높일 수 있다. 서구세계 역시 열렬한 환호를 보낼 터.

제국의 무덤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순식간에 평정당한 아프가니스탄은 이란 정부의 고민에 강제로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일찌감치 이런 기류를 감지한 이슬람 세계의 여론은 시시각각 기대에 부풀고 있었다.

「큰 거 오나? 또다시 큰 게 오나? 위대한 아미르 알림 샤히디가 다시 한 번 이슬람의 역사에 길이 남을 거대한 위업을 성취하나?」

이렇게 온 세상이 술렁이며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오늘 이란이 백기를 든 것이다.

이란이 세 개의 대동맥 계획에 참여하려면 미국이 주도하는 각종 경제제재 조치들의 해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란 정부는 최종 선언을 내보내기 전 내 꼭두각시에게 요구했다. 종교적 권위를 지닌 중재자이자 대리인으로서 자신들을 대신하여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달라고.

그간의 오랜 대립과 갈등을 감안할 때, 이란 정부가 미국과 직접 협상하여 핵개발 중단 및 경제제재 해제를 논의하는 건 위신이 상해도 지나치게 상하는 일이다. 협상 상대는 어디까지나 성지의 수호자여야 했다.

라흐바르를 대신해 체면을 내려놓기로 한 이란 대통령은, 비밀 협상단을 경유하여 내 꼭두각시에게 은밀히 전해왔다.

「위대한 아미르 알림 샤히디. 우리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당신을 바위의 돔의 수호자이자 신자들의 총사령관으로 인정하며 당신이 추진하는 사업에 차별 없이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우리가 당신을 통해 미 제국주의자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모든 적대적 조치들을 ‘먼저’ 철회한다.」

「둘째. 이에 상응하는 평화적 조치로서, 우리 공화국은 핵개발 진행을 중지한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보류일 뿐 완전한 백지화가 아니며, 공화국의 핵개발 시설과 역량은 현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또한 대륙간탄도탄의 개발은 핵개발의 일부로 간주하지 아니한다.」

「셋째. 공화국의 핵시설에 대한 감시는 UN이 아니라 위대한 아미르 알림 샤히디의 보증 하에 카레아덱 조약기구와 세계 이슬람 협력기구가 담당한다. UN 산하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아미르 알림 샤히디의 허가를 득한 경우에 한하여 실무적 권한이 없는 옵저버로만 참여할 수 있다.」

「넷째. 이 협약은 이란 공화국이 위대한 아미르 알림 샤히디와 체결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고로 공화국은 미국이나 UN이 아니라 아미르 알림 샤히디에 대하여 협약의 이행 책임을 지며, 이는 미국과 UN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이에 나는 이란의 요구사항을 조건부로 승낙하겠다고 답했다.

「세 개의 대동맥 계획에 따라 철길이 통과하는 카스피해 연안의 회랑지대에선 외국인들의 출입과 투자가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나는 철도가 지나는 거점도시들을 종파·종교·문화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경제특구로 지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 경제특구 내에선 가스테 에르사드(도덕경찰)의 활동이 제한되어야 한다. 나 알림 샤히디는 사슬의 돔의 재판관으로서 이크틸라프(اختلاف/불일치)에 대한 일방적 강요가 하람(금지된 것)임을 재확인하는 바이다. 귀국의 교리해석과 정체성은 물론 존중하겠지만, 적어도 특구 내에서만큼은 내 판단이 존중받기를 바란다.」

「이에 따라 특구 내의 모든 거주자와 체류자와 통행자들은, 설령 이란 국적을 지닌 이슬람 신앙의 형제자매들이라 할지라도 교육 및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여기서 말하는 ‘표현’은 언어 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표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두발과 복장은 개인의 의사를 드러내는 표현의 방식으로서, 마스지드(모스크)나 종교 사무를 관장하는 관공서를 모독적인 모습으로 침범하는 경우가 아닌 한 어떠한 법적 강요도 받지 아니한다.」

「이 요구를 수용한다면 나 역시 귀국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설득을 위해 힘쓰겠다.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다. 우리 모두에게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

사전적으로 불일치를 의미하는 이크틸라프는, 구체적으로는 법학자들의 해석이 갈라지는 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크틸라프에 해당하는 교리는 남에게 강요를 해선 안 된다는 게 무함마드의 가르침이었다. 다만 이 가르침에 대한 진술을 정통 하디스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하거나 진위를 의심하는 법학자들이 존재했다.

메리옘은 조언했다.

「샤리아에 기초한 복장 제한도 ‘불일치’에 해당합니다. 히잡을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가, 착용할 때 머리카락을 노출해도 되는가, 노출이 허용된다면 얼마나 허용되는가, 히잡에 밝은 색조나 꾸밈을 넣어도 무방한가, 여자가 화장을 해도 되는가 등등이 모두 불일치 영역에 속하는 교리 실천이지요.」

「불일치의 교리 실천에 관한 견해 차이는 오로지 중재가 가능할 뿐, 어느 일방의 기준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주여. 당신의 꼭두각시가 사슬의 돔의 재판관으로서 지닌 권위를 활용하신다면, 불일치의 강요 금지가 정통 하디스에 수록되지 않은 가르침이라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적 정당성이 성립하는 것이지요.」

현재 이란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사태는 시민들의 세속주의적 개혁요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복장 강요 철폐는 그러한 개혁요구의 상징들 가운데 하나였다.

서구세계가 이러한 움직임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만큼, ‘이슬람 세계의 체 게바라’인 알림 샤히디가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이란과 협약을 체결하기란 곤란한 노릇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광신도들이 설마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까 싶을 것이다.

그러나 현 라흐바르와 이란 지도부의 강력한 샤리아 독재는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조건만 맞으면 타협할 수도 있지. 본인들부터가 자식들은 죄 세속적으로 키우는데,’

이슬람 율법 따윈 내다버리고 호화생활을 하는 이란 지도부의 자식들은 이란 내에서 「아가자데(고귀한 태생)」 내지 「제네 쿱(고귀한 유전자)」으로 불린다.

이들의 사치와 방탕함은 이란 민중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심지어 초대 라흐바르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손녀조차 런던에서 명품을 쇼핑하며 화려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조부인 호메이니가 이란 신정(神政)의 시초이자 악명 높은 「악마의 시」 사건의 주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심한 괴리가 느껴지는 일.

요컨대, 여느 독재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이란 정권은 정권의 연속성만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한 상대였다.

내가 샤히디의 이름으로 벌인 미친 듯한 속도전은 이란의 기득권층에게 굉장한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을 터였다. 샤히디 입장에선 자신들과 타협을 하느니 그냥 평정해버리는 쪽이 더 편하지 않겠느냐는 두려움을.

그런즉 놈들에겐 애당초 내가 보낸 조건부 승낙의 회신을 무시한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특구 내에서 세속주의 세력들이 증식할 미래가 염려될지라도, 일단 목전까지 닥쳐온 위기는 피하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나는 이 정치적인 광신도들에게 꿀을 떠먹여주겠다는 은밀한 제안도 함께 건네었다.

그 꿀이란 당연히 돈이었다.

이 세상에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드물고, 충분히 큰 액수의 돈은 광신도들도 춤을 추게 만든다.

현 라흐바르인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세타드-에 이즈라예 파르마네 이맘(이맘의 의지를 실천하는 본부)」라는 이름의 거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였다. 이 인간은 주인이 있는 재산을 주인이 없는 재산으로 만들어 몰수하거나, 국영기업을 민영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려왔다.

이렇게나 물욕이 넘치는 자본주의적 동물이 돈을 먹여주겠다는 제안에 흔들리지 않을 리가 있나.

철도사업을 수주해도 자신의 돈이고, 철도 주변지역에 특구를 지정하여 부동산을 개발해도 자신의 돈이며, 해외에 나가있는 친인척의 계좌로 뇌물이 들어와도 자신의 돈이다.

이란 정부는 내 회신을 수용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파격적인 입장 발표였다.

세계는 열광했다.

「동서교회의 대통합에 준하는 역사적인 사건! 기독교는 실패했지만 이슬람은 성공했다! 이제 이슬람 세계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었다!」

「이란의 핵문제와 인권문제까지 한꺼번에 해결해버린 평화의 화신 알림 샤히디. 누가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라 부르는가? 신은 우리에게 화합의 시대를 주었다.」

「날로 가치가 상승하는 세 개의 대동맥 계획.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한층 더 중앙아시아로 집중되는 가운데, 카레아덱 조약기구 가맹국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투자 문의와 치솟는 국채의 인기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어……」

이슬람 세계는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언론보도와 같이, 이란 정부의 이번 선언은 수니와 시아의 유구한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던 까닭이다.

내 꼭두각시는 더욱 무결한 권위를 지닌 신자들의 총사령관으로 거듭났다.

시아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을 포함해 여러 나라의 시아파 성직자들이 일찍부터 샤히디를 지지해왔으므로, 이슬람 세계의 총의에 의해 공인된 성지의 수호자이자 신자들의 총사령관이라는 타이틀에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시아파의 종주국이 샤히디를 인정하기로 한 데엔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누구도 ‘이슬람 세계의 총의’에 의문을 제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막강하던 권위가 천장을 뚫고 솟구치면서, 아프가니스탄 안정화 작업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엔 불순물이 과도하게 많았다. 전체적으로 다 쓸어내고 점령한 게 아니어서, 이상적인 군정을 이끌어나가는 데 방해가 되는 인간들이 봉건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엔 카타르 국왕을 비롯한 외부 스폰서들과의 연줄로 살아남은 잡것들도 포함되었다. 나를 제외한 외부로부터의 영향력은 적정 수준 이하로 축소되어야 합당하다.

나는 이 잡것들을 정치적이지 않은 명분으로 숙청해버리기를 바랐다. 그래야 아프가니스탄 내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 외부의 스폰서들이 대놓고 불만을 말하지 못할 테니까. 말하자면, 마무르가 이야기한 ‘이슬람식 정치적 올바름’이 힘을 발휘할 기회였다.

“오, 드디어.”

내가 사형집행인으로 선택한 마무르는 맹수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나 마무르는 이 순간이 오기를 존나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숙청은 샤히디의 세력에 직접적으로 속하지 않은 자에게 외주를 줘야 한다. 이는 흔한 악명의 외주화였다. 나쁜 경찰 노릇은 외주업자가 다 해주고, 내 꼭두각시는 좋은 경찰 역할만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무르의 광기는 장점이라 할 만했다. 미칠 듯한 존재감을 발산하여 온갖 반발과 반감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킬 자석과도 같은 광기가 아닌가.

마무르는 세계 이슬람 협력기구와 카레아덱 조약기구의 추천을 받은 법학자의 자격으로 아프가니스탄 군정청 최고재판소에 합류했다.

마무르는 판을 깔아주기 무섭게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자지를 왜 똥꼬에 박아요!”

이 미친놈이 선택한 숙청 명분은 아프가니스탄 땅에 만연한 아동 성착취 관습, 「소년 놀이(바차 바지/بچه بازی)」의 근절이었다.

성인 남성들이 소년을 ‘아들’이라 부르며 성관계를 맺는 이 관습은 명백히 이슬람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 관습을 즐기는 놈들 가운데 애들에게 화대라도 챙겨 주는 놈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보통은 가난한 집에서 애를 사와서 성노예로 삼거나, 지나가는 아무 소년이나 납치·강간하거나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추잡한 관습은 미군도, 탈레반도 뿌리를 뽑지 못했다.

탈레반 중엔 오히려 같이 즐기는 부류가 많은 편이었다. 처음 정권을 잡을 때에야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바차 바지를 금하고 위반하는 자들을 처벌했으나, 권력을 차지하고 나서는 자신들도 강간범과 추행범들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사람은 금기를 욕망하니까.’

금기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규정짓는 한계다.

그리고 한계를 넘어선다 함은 다른 인간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열등한 놈들에게는 금지되어있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

이 만족감에 대한 추구는 사람의 본능에 새겨져있는 욕망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어떤 방향으로는 한계를 초월하고 싶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기득권층과 권력자들이 일탈에 취약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플루스 울트라(PLUS ULTRA)가 된다.

나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라는 탈레반의 간부들 다수가 암암리에 소아 동성애를 즐기는 것이나, 원탁의 늙은이들 사이에 변태성욕이 흔한 것이나 결국은 동일한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인 셈.

적어도 내가 보기에, 권력자들과 기득권층의 일탈은 모두 하나의 본능이 관통한다.

마무르는 격렬하게 노호했다.

“알라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적에 남녀를 다르게 빚으신 것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결실을 보는 데에 거룩하신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지는 보지와 결합해야 한다! 그것이 알라께서 정하신 인간의 섭리다! 그런데 믿는 자들이 어찌하여 어린 소년들의 똥꼬에 자지를 박는단 말이냐! 알라께서 그러라고 너희에게 달아주신 자지가 아니란 말이다! 오늘 이후 알라의 뜻을 욕보이는 똥꼬박이들은 내 손으로 자지뿌리를 뽑아버리겠다!”

“들어라! 소년의 엉덩이를 탐닉하는 순간 너희는 신앙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고로 신앙을 잃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법이며-!”

고발과 숙청의 과정에서 증거의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확실한 증거로 고발당한 자들에게 사법거래의 일환으로 증언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살생부에 이름이 있는 자들의 죄를 고발한다면 목숨만큼은 살려주겠노라고.

전통적인 이슬람 법정에선 믿는 남성 셋의 증언만 있어도 유죄가 성립한다.

이걸로도 부족할 땐 여론전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증거가 없기는 왜 없습니까!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입니다!”

마무르가 기자들 앞에서 외치는 꼴을 본 경태는 황당함을 담아 실소했다.

“아니 저 미친놈 저거, 한국에서 순 이상한 것만 배워왔네…….”

듣자니 마무르가 내보이는 광기는 성전연합 내부에서도 이래저래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성전연합 본부의 실권을 장악한 마무르의 권위가 너무나 강력하여, 불만은 그저 아랫사람들끼리의 수군거림에 그친다고.

성전연합 동아시아 지부에서부터 마무르와 함께한 측근들이 마무르가 무엇을 참고하여 저러는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으므로, 성전연합 내부에선 “한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독을 풀었다.”는 소리가 돌고 있다고 했다. 마무르 본인을 부정적으로 말하기엔 부담스러운 입장들이니까.

강력한 반 동성애 포지셔닝은 서구의 진보언론들을 자극했다.

자칫 샤히디 군정청이 성소수자의 인권을 탄압한다는 말이 나올 상황이었으나, 자칭 천재답게 서구 여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마무르는 나와의 사전협의를 거쳐 준비한 포효를 내질렀다.

“정 남자가 좋으면 여자가 되세요!”

이는 이란의 초대 라흐바르 호메이니가 제시한 해법이었다.

“성전군의 일원으로서, 혹은 그에 준하는 공무직의 수행원으로서 5년간 세계 평화와 이슬람 세계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면! 성전군은 그대에게 성전환 수술비용을 전액 지원할 것이다! 아미르 알림 샤히디는 주술사 왕으로부터 실무적인 차원의 협조를 약속받았다! 그러니 사내를 욕망하는 사내들이여! 지금 당장 성전군에 합류하라!”

비록 완벽한 대응은 아니었으나, 이슬람 법학자가 하는 말이 이 이상으로 진보적이기는 어려웠다. 서구 언론들이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상대적 존중에 입각하여 아쉬운 대로 납득할 만한 입장 표명인 것이다.

내가 선택한 미치광이는 고작 며칠 사이에 사형집행인으로서의 악명을 드높였다.

“보라! 이것이 알라의 섭리를 거스른 패역자들의 말로다!”

참수형을 당한 소아 동성애 납치강간범들 및 정치범들의 수급을 들고 흔들며, 마무르는 분노한 재판관의 모습으로 소리 질렀다,

“절대로 잊지 마라! 남자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하느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자지보지 결합결합! 알라 후 아크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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