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알라의 검 (12)
현 시점에서 대부분이 중동의 여러 나라에 분산 수용되어있는 41만의 샤히디 성전군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배출압력이 점차 한계점에 가까워져 가는 압력솥과도 같은 상태였다.
내 꼭두각시에게 협조하는 중동 제국(諸國)들 가운데 가장 많은 병력을 감당해주고 있는 곳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두 나라였다.
먼저 사우디의 경우, 현 왕세자가 야심차게 추진했으나 경제난으로 좌초해버린 미래도시 「네옴」 건설 프로젝트의 잔재를 거대한 병영으로 재활용했다.
본디 사우디는 네옴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45만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일 계획이었다. 비록 계획이 중단되었다고는 하나, 이미 지어놓은 시설들만 가지고도 지하디스트 10만쯤은 넉넉하게 수용 가능했다. 용처를 잃고 쌓여만 있던 건축자재들은 내가 염가에 인수하여 시설확장 및 개조에 써먹을 수 있었다.
주변지역의 관광 인프라도 도움이 되었다. 너무 일찍부터 과도한 투자를 해놓은 관광 인프라는, 병력의 추가 수용은 물론이고 훈련에 지친 전사들의 사기를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용도로도 가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예멘 내전의 종결과 함께 쓸모가 없어진 군사기지들이 존재했다. 이 기지들은 7만 가량의 성전군이 생활할 만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사우디에 임시주둔하는 성전군의 규모가 미친 듯이 팽창하는 정황을 파악한 중국은, 사우디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제껏 본 적이 없었던 규모의 지원을 퍼부어주고 있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사우디 왕세자는 공개석상에서 태연하게 해명했다.
「국제사회에 정식으로 해명하겠습니다. 최근 중국이 제기한 의혹은 근거가 없는 억측에 불과합니다. 건설현장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건설 노동자들일 뿐이니까요.」
「나는 아직 미래도시의 꿈을 완전히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왕국은 석유 이외의 방식으로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하며, 미래도시 네옴은 내가 찾아낸 길의 하나인 까닭입니다. 최근 국내경기가 호전됨에 따라 건설 재개를 검토하고 있을 따름인데, 중국이 터무니없는 혐의를 제기하니 당혹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건설 노동자들이 약간의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은 해적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편에 불과합니다. 후티 반군의 잔당 일부가 해적활동을 한다는 소문이 있고, 에리트레아와 수단, 그리고 소말리아 출신의 해적들도 홍해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알라께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분이시며, 나 살만의 아들은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를 적법하게 대리하는 자로서 언제나 알라께 부끄럽지 않은 통치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내가 테러리스트를 지원한다니. 이 무슨 무례한 의심입니까?」
「중국은 부당한 내정간섭을 중단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증적인 불안과 의심을 내려놓으면 비로소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당신들도 이 평화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사우디가 테러리스트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왕세자의 입장에서는 오롯한 진실이었다. 왕세자를 포함한 무슬림들은 샤히디를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이는 성전군의 지하디스트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그러니 알라의 이름을 들먹여도 떳떳할 수밖에.
거의 능욕에 가까운 해명을 접한 중국은 격한 어조로 반박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건설 재개를 검토하는 단계에서부터 노동자를 채용하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홍해에 해적이 있으면 얼마나 있습니까! 주술사 왕의 해적함대가 항로보호를 천명했는데 다른 해적들이 거기서 어떻게 활동을 하겠습니까!」
항로보호를 천명한 건 주술사 왕만이 아니다. 나 또한 내 꼭두각시를 내세워 아라비아 반도 인근 수역의 항로 안전을 보장했다. 해적들 입장에선 주술사 왕과 알라의 검, 그리고 국제연합 임무부대를 동시에 상대할 각오를 다져야 활동이 가능한 무대인 셈이다.
이는 내가 아라비아 반도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인센티브들 가운데 하나였다. 수혜국들은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해양안전 강화에 투입하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우디 왕세자는 중국 측의 반박에 대하여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현장을 영상에 담아 공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지하드 전사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병영의 시설확장이나 자체적인 유지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실상이 어떠하든, 외견상으로는 트집을 잡기가 애매했다.
지하드 전사들의 노동은 한편으로 주변 지역의 생활과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사우디는 이를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증명할 수도 있었다. 전사들이 생산하는 전기와 담수(淡水)는 주둔지의 자체유지에 필요한 양을 아득하게 초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입장을 편파적으로 지지하는 외신들은 주변지역 주민들이 노래하는 기쁨을 전파에 실어 송출했다. 특히 미래도시 건설현장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농업도시 타부크(تبوك)는 최고의 선전 무대가 되어주었다.
「‘노동자들’이 오면서 수도요금이 정말로 싸졌어요! 이젠 기름이 물보다 비쌀 정도라니까요? 기름값이 그동안 줄곧 곤두박질쳐온 걸 감안하면 진짜 믿기지 않는 현실이죠!」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이 땅에서 더는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농업용수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경작지들도 없애야 할 판이었거든요. 하지만 이걸 보세요. 올해 우리는 경작지를 오히려 더 늘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알라의 은총입니다. 알라께서는 실로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요즘은 전기도 얼마나 싸게 들어오는지 아십니까? 이대로라면 우리 타부크가 농업생산량에서 저 타바르잘(طبرجل)을 넘어서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와디 시르한(وَادِي سِرْحَان) 저지대에 자리한 타바르잘은 사우디아라비아 최대의 농업특구가 있는 도시다. 그러나 지나친 지하수 사용으로 인해 지저 대수층이 고갈 위기여서, 사우디는 경제 문제에 더해 식량안보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군 각성능력자들이 바닷물을 끓여 생산해내는 대량의 담수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각성능력자들을 동원해 생산하는 담수는 본래대로라면 지하수보다 저렴할 수가 없다. 이중능력 각성자들의 기본적인 몸값이라는 게 있으니까. 다만 기존의 해수담수화 비용보다는 싸게 치일 따름이다.
하지만 내 꼭두각시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광신적인 충성을 바치는 무슬림 각성능력자들은, 내가 자신들의 노동력을 헐값에 후려쳐도 미친놈들처럼 좋아하기만 했다.
「아미르 샤히디께서 나를 천국의 문으로 인도해주실 거야! 내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는데 그깟 돈이 대수인가?」
정훈교육의 탈을 쓴 종교적 세뇌는 이러한 기쁨을 한층 더 증폭시켰다.
「지하드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대의를 이루기 위하여 나 자신을 바치는 일이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올바름을 실천하고 내재화하는 노력은, 그게 어떤 노력인가와는 무관하게 거룩한 성전이 된다!」
「고로 작금의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신앙의 모범을 보이며 하느님의 의지를 실천하는 자, 신자들의 총사령관 알림 샤히디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성전이다!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자는 모두가 스스로를 당당히 무자헤딘(성전사)이라 칭할 자격을 얻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의 가치와 경중을 개인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들지 말라! 그것은 사령관의 지혜와 권위를 무시하는 불경이다! 우리는 단지 그분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전사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영광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믿는 자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권위는 언제나 높으신 하느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 지도자에 대한 겸허한 복종이 믿는 자의 미덕임을 상기하자!」
내가 쌓아놓은 알림 샤히디의 위상과 권위, 그리고 교육 대상자들이 원래부터 품고 있던 광신의 씨앗은 이렇게나 노골적인 세뇌를 가능케 했다.
샤히디를 따르는 지하디스트들은 불사암의 위험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단체도 아니고 위대한 아미르 샤히디의 성전군에 속한 전사로서 지하드를 수행하는데, 알라께서 내게 불사암을 주실 리가 있나?」
「설령 주시더라도 그것은 지하드 전사에게 주어지는 시련이라고 봐야 한다. 고통을 견디며 알라께 바치는 헌신이 그렇지 않은 헌신보다 더 값진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은 천국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값이다! 많은 값을 치르는 자는 더 높은 층위의 천국에 오를 것이며, 그는 다른 전사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처녀들의 봉사를 받게 될 것이다!」
「천국의 문에 들어가는 기준은 간단하다. 바로 성전군으로부터 공상자나 전상자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임무를 수행하다가 걸리는 불사암은 당연히 공상으로 처리된다. 공상질환으로 죽는 전사는 순교자다. 순교자의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 오, 알라께서는 실로 위대하시다.」
이웃한 카타르에서도 거의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
카타르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체급이 많이 부족한 국가지만, 그럼에도 사우디에 필적하는 규모의 성전군 전사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사우디 중심의 중동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해온 카타르의 입장에서, 국교를 끊을 만큼 관계가 험악한 사우디가 자국보다 더 샤히디의 호감을 쌓아올리는 건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다행스럽게도 카타르에게는 전사들을 수용할 만한 인프라가 있었다. 바로 올해 개최 예정인 카타르 월드컵을 위해 지어놓은 시설들이다.
지속적인 국가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이미 2010년에 자국의 월드컵 개최를 확정지은 카타르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회를 준비해왔다. 이제 와서 계약을 파기하면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할 테니, 국가 위신을 감안하여 개최를 강행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던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진행하던 준비가 내 덕분에 전화위복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카타르가 자국에 머무는 성전군 전사들을 관광객이라고 포장하자, 중국은 이번에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항의했다.
「대회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무슨 관광객이 벌써부터 몰려든단 말인가! 카타르는 관광객의 증가로 포장한 테러리스트들의 유입에 관하여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 중국은 국제형사경찰기구를 통한 테러리스트 추적 공조를 요청하는 바이다!」
중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다곤 해도, 상임이사국으로서 여러 국제기구의 기능을 활용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압력을 넣을 능력은 남아있었다.
국제법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어떤 나라도 이런 종류의 압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중국 정도의 강대국이라면 또 모를까.
그러니 카타르도 사우디처럼 형식적인 해명 정도는 내놓아야 했다.
「우리는 그동안 관광산업의 진흥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우리가 관광입국의 원년으로 삼기로 한 해이지요.」
「우리의 투자가 계획보다 다소 이르게, 기대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거두고 있긴 합니다만, 이는 알라께서 우리 군주와 신민들의 노력을 어여삐 여겨 은총을 내려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중국 대사는 세상에 그딴 기적이 어디 있느냐며 다시 항의했으나, 여기엔 카타르 국왕이 친히 나서서 적반하장 격으로 중국 대사를 나무랐다.
「신을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의 자유지만, 기적을 부정하는 것은 곧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알라의 권능을 부정하는 것이오. 이는 이슬람에 대한 모욕이니 말씀을 조심하시오. 믿는 자들의 세상엔 기적이 실재하오.」
대사는 모든 대외 채널을 통해 기가 막혀 죽을 것만 같은 울분을 표출하면서도, 국왕의 말꼬리 잡기 앞에서 일단은 몸을 사려야만 했다. 분노한 무슬림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 수가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중국의 요구는 관철되었다. UN의 조사단이 카타르 현지를 시찰한 것이다.
물론, 그 시찰은 카타르의 비협조와 국제사회의 암묵적 동조 속에서 형식적인 수준으로만 이루어졌다.
UN 조사단이 가는 곳엔 반드시 카타르 경찰이나 공직자들이 동행했다. 통역 또한 카타르 측이 도맡았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마주치는 성전군 지하디스트들은 경찰을 반가워하며 안면이 있는 티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카타르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분개한 중국 측 조사관들은 카타르 경찰 간부의 무성의한 심문 과정을 영상에 담아 폭로했다.
「자네들, 테러리스트들과는 전혀 관계없지?」
「예. 없습니다.」
「그래. 열심히 하자.」
해당 경찰이 나중에 발뺌을 하긴 했지만, 열심히 하라는 건 누가 봐도 지하디스트들이 받고 있는 군사훈련을 말하는 것이었다.
중국 조사관들은 성전군의 무장과 훈련을 트집 잡았다. 그러나 성전군 구성원들은 전원 중동 제국들이 발행한 정식 헌터 면허를 보유했으므로, 카타르 당국이 허용하기만 한다면 무장이든 훈련이든 자유롭게 행할 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중국 측 조사관들이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자, 영상 속 경찰 간부는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성전군 전사들에게 요구했다. 신과 예언자의 이름을 걸고 테러리스트들과 관계가 없음을 맹세하라고.
중국인들은 당연히 또 항의했다. 고작 그런 맹세만 가지고 어찌 무고가 증명되느냐면서.
경찰 간부는 큰 소리로 꾸짖었다.
「믿는 자가 알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까지 했는데 대체 뭘 더 조사하란 말이오? 당신은 지금 우리의 신앙을 모욕하려는 것인가?」
기실, 중국이라고 해서 이 같은 파행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이제껏 비슷한 일을 한두 번 겪었는가.
그럼에도 중국이 굳이 사서 수모를 겪은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국 인민들을 분노케 하여, 그 분노를 통해 국가적 단결을 강화겠다는 의도였다. 전 세계가 중국을 적대하고 모욕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당에 대한 인민의 지지는 계속해서 견고해진다.
샤히디 성전군의 본토 침공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눈앞에 둔 중국은 내부 결속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국안부의 거짓 대자들은 국가주석의 발언을 내게 들려주었다.
「이제 우리가 믿을 것은 오직 인민의 힘뿐이다. 다른 모든 해결책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지만, 14억 중화 인민이 단결하기만 하면 최후의 승자는 결국 우리 중국이 될 것이야! 이능역량의 총합으로는 어떤 나라도 중국을 능가하지 못할 시대이지 않은가?」
「단결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단결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어. 중국의 신성한 강역을 넘보는 자는 누구든 분노한 인민의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이다…….」
중국이 외교적 노력을 단념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며, 중국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편 사우디와 카타르를 위시한 중동의 여러 나라들은 다른 의미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샤히디의 인기가 치솟으면 치솟을수록 대중 외교에서 어중간한 입장을 고수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앞서 카타르의 경찰 간부가 중국이 파견한 UN 조사관에게 대놓고 엿을 먹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알고 보면 간부 개인의 폭주에 가까운 사건이었던 셈.
현 이슬람 세계에서 샤히디에게 열광하지 않는 무슬림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경찰 간부 또한 샤히디의 열렬한 팬 보이를 자처하는 인물이었다.
사건이 있었던 당일, 해당 간부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시찰 현장의 사진과 함께 짤막한 메시지를 업로드했다.
「나는 오늘 이슬람의 적에게 수모를 주었다. 알라시여. 당신의 검을 축복하소서. 저와 같은 믿는 자들의 응원이 그에게 힘이 되도록 해주소서.」
중국 조사관들이 분노에 젖어 영상을 폭로한 후, 이 경찰 간부는 카타르 국민들에게 거의 국민영웅에 준하는 관심과 애정을 받았다. 이슬람을 탄압하는 사악한 무신론자들에게 무슬림의 의기를 보여주었다는 게 세간의 평가였다.
「우리가 뭐 하러 저놈들의 눈치를 보나? 어차피 곧 알라의 검에게 짓이겨질 놈들인 것을.」
「저것들이 자국 내 이슬람 탄압을 당장 그만두고 식민지를 해방하면서 용서를 구한다면야, 위대한 알라의 이름으로 자비를 베풀지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우리 이슬람을 악마의 종교(마교)라고 부르는 꼬락서니를 보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공산주의 무신론자들은 교화가 되기 전까진 사람 취급을 해주면 안 된다.」
국민감정이 이 모양이니 이슬람 군주들의 정치적 운신이 자유로울 리가 있나.
중국을 때리기만 하면 무조건 왕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치솟는다.
내가 깔아놓은 판에서 춤추는 군주들에게 가능한 선택은 하나였다. 외교적으로 확실한 정책결정만을 회피하면서 반중(反中) 포지셔닝을 유지하여 실익을 추구하는 것.
주둔지 주변 지역의 생활과 경제에 대한 성전군 지하디스트들의 기여는 군주들의 선택을 더욱 쉽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이 기여라는 게 전사들을 양성하고 수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완전히 상쇄할 정도까지는 되지 못한다.
40만을 넘는 각성능력자들의 능력을 온전히 경제 가치로 전환하려면 그만한 시설과 기반을 먼저 갖춰놓아야 하는데, 결국엔 떠나보낼 자들의 능력을 활용하자고 대대적인 투자를 추가로 집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미 지출한 예산을 부분적으로나마 회수하는 건, 군주들에겐 기대하지도 않았던 선물과도 같았을 일.
내가 거둬들이는 지하디스트들은, 본래대로라면 불사암에 대한 경계심으로 각성능력 사용을 게을리하며 복지예산이나 축내고 있었을 낙오자들이었다. 그러면서 나라에 대한 불만만 나날이 키워나갔겠지. 독재권력 유지를 위해 긴 시간 동안 국민들을 나태로 물들여온 군주들의 원죄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낙오자들이 지금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가치를 창출해주고 있지 않나. 비록 일시적인 기여라고는 해도, 성전군 병력을 수용한 국가의 경제에 큰 힘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부담은 별개다.
이슬람 군주들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각성능력자 대군을 자국 영토 내에 두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동안에는 내가 꾸준히 샤히디의 신용을 적립해놓은 덕분에 군주들의 근심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일찍이 미국이 우려했던 바와 같이, 내가 마음을 바꿔먹기만 하면 중동의 여러 나라들을 한꺼번에 전복시켜 전 아랍과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칼리파 제국의 수립을 꾀할 수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지금의 알림 샤히디에겐 그런 대업을 도모해도 좋을 만큼의 영향력이 있다.
물론 내게는 그런 귀찮은 일을 할 동기가 없다.
‘내가 미쳤다고 그 거대한 국가의 직접통치를 도모하나.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내 소관으로 돌아올 텐데. 본말전도도 이런 본말전도가 다시없겠지.’
그러나 내 속내를 모르는 이슬람 군주들로서는 차마 말로 꺼내지는 못하는 불안감을 공유하는 게 정상이었다.
독재자들에겐 원래 국익보다 권력보전이 우선이다.
고로 내가 불안을 제때 희석시켜주지 않으면, 성전군 양성과정에 대한 군주들의 투자는 국익과 무관하게 소극적으로 변하는 수가 있었다. 경태의 표현을 빌리면 다소의 ‘샤히디 오타쿠 기질’을 보이는 요르단 국왕 정도가 예외일 따름. 각국의 지하디스트 출하량이 벌써부터 감소하면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중앙아시아 지역을 빠르게 장악하여 대규모 병력수용의 기반을 조기에 확보한 것은, 이슬람 군주들에게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와도 같았다.
「봤지?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악성재고가 쌓여 문제를 일으킬 일 따윈 없으니, 너희는 안심하고 지하디스트 생산에 박차를 가해라. 출하하는 족족 다 받아주마.」
군주들은 내가 카레아덱 조약기구와 아프간 군정청의 정책들을 통해 제시한 미래구상 또한 남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각별하게 받아들였을 터였다.
이런 와중에 중국에 있는 내 거짓 대자들은 아부다비에 피신시켜둔 가족들의 안위를 우려했다. 이슬람권에서 날로 비등하는 반중여론이 거짓 대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것이다.
아부다비의 외국인 거주 특구는 보안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들이 들 수밖에.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족들을 중국으로 다시 데려오기는 곤란하다. 샤히디 성전군의 중국 본토 침공은 중국이라는 배를 심연으로 처박아버릴지도 모르는 거대한 재앙이니까.
다른 공산귀족들과 공산자본가들은 흑해자당의 기세가 정점을 찍었을 때만큼이나 가족들을 외국으로 피신시키려고 안달이 나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후샨량의 아들놈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쳐 죽였을 때 보여주었던 현지 이마라티 권력자와의 연줄을 상기시키며 거짓 대자들을 안심시켰다.
“전에도 말했듯이, 그대들의 가족은 내게도 가족과 같소. 가족들이 이마라티 귀족에 준하는 경호를 받도록 해줄 테니 너무 걱정들 마시구려. 정 원한다면 새로운 신분과 함께 캐나다나 호주 같은 나라에 예비 피난처를 마련해둘 수도 있소. 화교의 세가 강한 지역이라면 그런대로 피난처로서 가치가 있겠지.”
거짓 대자들은 어렵사리 불안을 가라앉혔다.
작금의 세계에서 반중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족을 피신시키더라도 지금의 피난처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 따윈 없는 것이다.
경태는 이상한 어투를 써가며 거짓 대자들에게 조소를 보내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예요, 공산 분충들.”
어디까지나 거짓 대자들을 비웃는 말이었으나, 이 소리를 들은 나는 한때 지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자 했던 나 자신의 나약함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