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46화 (546/561)

#53. 알라의 검 (9)

내가 점령지역 내 IS 분파 세력들을 몰살시킴으로써 악명 자자한 제국의 무덤에서조차 통하는 알림 샤히디의 무력을 과시한 이래, 아프가니스탄 내 무장단체들의 병력 동원능력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이는 탈레반도 예외가 아니었다.

탈레반이 자랑하는 20만 무자헤딘은 상시 대기하는 상비군과는 거리가 멀다. 평시엔 대부분의 전사들이 자신이 속한 부족과 마을에 흩어져 생계를 영위하며, 필요할 때 소집령을 내려서 완편 부대를 꾸리는 식이다.

바꿔 말하면, 전사들이 소집을 기피하거나 부족 단위로 뭉쳐서 소집령을 거부하는 경우엔 협상 내지는 강제력 행사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흐름을 계속해서 가속화시켰다.

「신자들의 총사령관 알림 샤히디가 새로운 포고령을 발한다. 다른 포고령과 달리, 이 포고령의 적용 범위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이다.」

「믿는 자들은 귀를 기울여라. 이 시각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배되는 모든 아편은 나 알림 샤히디의 군정청에서 독점적으로 수매한다. 매입가는 평균적인 순도의 생(生) 아편 1킬로그램당 4백 달러로 정한다.」

「만약 살람(이슬람식 선물 거래)을 통하여 아직 재배 중인 아편을 선매(先買)한 상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내 군정청으로 출두하여 본인이 체결한 계약에 부정한 내용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자의 수취는 예언자께서 알라의 이름으로 금하신 바라. 나는 아편 선매 상인들이 편법으로 고리대를 놓아 농민들을 착취해왔다는 다수의 고발들을 접수하였다. 무고한 상인들은 격려금을 받을 것이나 불의한 상인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부정하게 체결된 살람 계약은 무조건 해지된다. 농민들은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이미 받은 돈을 반환할 의무가 없으며, 남은 생산물을 군정청에 판매할 권리 또한 얻는다. 타인의 부정을 고발하는 자에겐 소정의 포상금이 지급될 것이다.」

「모든 아편 상인들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전까지 일체의 아편 및 아편 가공물 운송과 거래를 보류하고, 새로운 아편 가공물의 생산 역시 중단해야 한다. 이 포고를 위반하는 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 내 전사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니 부디 주의하라.」

이슬람의 금융은 신용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모든 거래는 실물이 매개가 되어야 하며, 대출은 현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그 현금으로 사고자 하는 물건을 대신 구매해준 후 추가 이윤을 얹은 가격을 분할 상환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상환받는 총액은 율법해석으로 허용된 한도 내에서 처음부터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마약 따위를 취급하는 놈들이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킬 리가 있나.

이들은 농민들에게 부채를 남겨놓은 후 그 부채를 구실로 이듬해의 계약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엄밀히 따지면 꾸란에서 금한 이자수취에 해당하는 짓이었다. 부채를 남겨놓고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하람(금지된 것)이기 때문이다.

포고를 접한 아편 재배 농가들은 탐욕으로 눈이 뒤집어졌다.

계약이 해지되더라도 기왕 받은 돈은 반환할 의무가 없고, 남은 생산물을 또다시 팔 수 있게끔 해준다고 하지 않나.

그것도 신용이라면 이슬람 세계 최고인 성지의 수호자 알림 샤히디가.

내가 의도한 그대로, 아프간의 농민들은 일제히 광기에 찬 고발자로 전직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확천금의 기회를 던져줬으니, 교육수준이 낮은 농민들이 앞뒤 재보지 않고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

아프간 땅의 모든 마약상들은 탈레반 간부들과 유착관계에 있다. 간부들 자신이 마약상을 겸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많고.

고로 빗발치는 농민들의 고발은 곧 내가 탈레반에 대한 적대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으면서 탈레반의 세력을 파괴할 명분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마약상들의 세력이 곧 탈레반의 세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난 어디까지나 마약상을 공격하는 것이지 탈레반을 공격하는 게 아니다.

즉, 탈레반에 대한 희망고문은 계속된다.

탈레반 내의 쥐새끼들은 최고지도위원회 라흐바리 슈라에서 터져 나오는 고성을 물어다주었다.

「이걸 무슨 수로 막아? 아미르 알림 샤히디를 적대하겠다고 광고라도 할 셈인가!」

탈레반에겐 농민들의 고발을 저지할 능력이 없었다.

현재 탈레반과 내 꼭두각시의 세력은 적대하는 것도 아니고 적대를 안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대치 상태 속에서, 내 점령지와 탈레반 장악 지역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중이었다.

내가 우선적으로 점령한 땅은 북부의 곡창지대다. 이곳을 제외하면 아프간에서 광범위한 경작이 가능한 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카불 인근의 쇼말리 협곡이나 헬만드 협곡 정도만이 남을 따름. 이 지역들의 농업생산량은 내 점령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따라서 탈레반 측이 먼저 인적·물적 교류를 끊는다는 건 곧 자살행위를 의미했다. 샤히디에 대한 명시적인 적대의사로 해석 가능한 조치라는 점에서도 자살행위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용통신을 차단하거나 검열하기도 곤란하다. 탈레반의 기술적 능력으로는 선택적인 차단 및 검열이 불가능한 까닭이다.

그렇다고 중계기의 전원을 무턱대고 내려버렸다간, 상용통신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탈레반의 지역행정력이 삽시간에 증발해버리고 만다. 추가적인 병력동원은 물론이고 이미 있는 부대들의 지휘통제마저 어려워지는 건 덤이다.

새로운 포고를 발표한 당일, 나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공중강습으로 타격했다. 외신들은 이 소식을 일제히 속보로 내보냈다.

「방금 들어온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질서 회복과 지역안정을 위해 성전을 벌이고 있는 알림 샤히디가 단 하루 만에 80개소에 달하는 아편 저장시설들을 타격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시설들은 모두 지역 주민들이 이슬람 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발을 한 마약상들의 소유로서, 단속에 걸린 마약상들은 오래전부터 주민들을 고리대로 착취하며 부당한 조건으로 아편 재배를 강요해왔다고 합니다. 이에 관해 전문가로부터 자세한 말씀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선생님?」

「아, 예. 이번 마약 단속 작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충격적으로 넓은 단속 범위입니다. 실제 단속이 이루어진 지점들을 보면 이처럼 아프간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탈레반이 핵심 후방지역으로 여기는 헬만드 협곡에서조차 무려 아홉 곳의 아편 저장 및 가공시설들이 단속에 걸렸어요.」

「말이 단속이지, 샤히디의 성전군(聖戰軍)이 행한 건 명백한 군사작전이었습니다. 강력한 제공권, 그리고 아프간 전역을 사정권으로 두는 공중강습능력을 과시한 거예요.」

「샤히디의 아프가니스탄 군정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속에 저항하던 마약상들의 사병대…… 뭐, 탈레반에 가담한 지역 유지들의 병력이어서 사실상 탈레반 전사들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만, 어쨌든 공식적인 건 아니니 사병대라고 하겠습니다. 아무튼 단속에 저항하던 사병대를 자그마치 830명이나 사살했다고 그래요.」

「결과적으로 알림 샤히디는 탈레반을 비롯한 무장단체들의 자금력과 병력동원 능력에 치명타를 가한 셈입니다. 무엇보다, 이 압도적인 무력 시현을 보고서 어느 부족이 탈레반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하겠느냔 말이에요.」

「제 동료들은 “역시 알림 샤히디다.”라며 입을 모아 감탄했습니다. 샤히디 성전군의 진격이 예멘 때보다 느린 건 그저 적극적인 민간인 구호를 하느라 보급이 달려서라는 분석이 정확했던 거라면서요.」

아편은 가공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운반이 어려운 상품이다. 그래서 아편 생산지 부근엔 반드시 1차적인 보관과 가공시설이 들어서게 되어있었다.

지금은 비록 수확철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원물(原物) 창고들이 비어있었으나, 생 아편을 가공하는데 필요한 무수 아세트산과 1차 가공을 마친 갈색의 아편 블록들은 아직 아프간 땅에 꽤 많은 양이 남아있었다.

모든 마약상들이 샤히디의 포고를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죄의 유무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무력 투사능력을 과시하는 것이었고, 일단 죽이고 나서 죄가 있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리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누가 내 꼭두각시에게 의문을 제기할 것인가? 그것도 한낱 마약상들을 위해서.

정 필요하다면 증거를 조작하기도 어렵지 않다. 거래가 아니라 가공과 운반부터가 죄라고 명시했으므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 탈레반들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다. 탈레반의 수장, 물라 아훈드자다에게는 이를 인지할 만큼의 현실감각이 남아있었다.

「포고를 따랐는데도 공격을 받았다고? 그럼 누군가가 거짓 고발을 한 것이겠지! 이걸 가지고 억울함을 주장해봐야 남는 건 마약상들을 애써 변호하는 꼴통들이라는 이미지뿐이야! 거짓 고발자들도 이걸 아니까 상황을 악용하는 거다!」

웃기는 건 이 대목에 이르러서도 알림 샤히디를 직접적으로 성토하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속에서야 반감이 들끓고 있을 수도 있겠으나, 들어오는 첩보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물라 아훈드자다는 최고지도부인 라흐바리 슈라의 구성원들을 온전히 믿지 않는 느낌이었다.

라흐바리 슈라의 쥐새끼들은 아훈드자다가 몰락해야 자기 이익이 극대화되는 입장들이다. 배신이라는 건 원래 크게 할수록 이익이 커지는 법이니까.

아훈드자다는 그런 쥐새끼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탈레반이 마침내 알라의 검 아래로 편입된 후, 서열 다툼에 악용될 수 있는 무언가를.

결국 아훈드자다 입장에선 이렇게 지시하는 게 최선이었다.

「유감스럽지만 지금으로선 중앙에서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괜히 말 같지도 않은 함정 같은 거 팔 생각 말고, 다들 그냥 쥐 죽은 듯이 사리고 있으라고 해! 그게 최선이라고! 지금은 북부동맹 놈들을 몰살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알라의 검에겐 우리의 대체재가 없어야 해!」

아훈드자다가 언급한 함정이란, 거짓 신고로 샤히디의 성전군 마약단속반을 사지에 끌어들여 타격을 가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비밀엄수가 철저히 이루어질 때에나 현실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성공적으로 타격을 가한다고 해도 위험을 감수한 만큼의 실익이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었다. 경태는 이를 일제의 사고방식이라고 표현했다. “맛깔나게 싸대기를 때리면 감동을 먹어서 협상하겠지.”라는 일차원적인 발상이라고.

아훈드자다가 일각의 제안을 일축해버린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었다. 아훈드자다 입장에선 이거야말로 자신을 몰락시키려는 쥐새끼들의 흉계가 아닌가 싶었을 터였다.

알림 샤히디가 시도하는 마약 단속의 성공 가능성은 국제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오늘은 재작년까지 중부통합전투사령부(USCENTCOM)에서 아프간 안정화 업무를 담당하셨던 포터 중장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중장님.」

「예. 안녕하십니까.」

「우리 미국이 그렇게 오랫동안 공을 들였는데도 실패한 게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단속인데, 아무리 알림 샤히디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의견입니다만, 저는 샤히디 군정청의 단속정책을 꽤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요?」

「제가 현직에 있을 당시, 일선 병사들과 장교들로부터 끊임없이 건의가 올라왔었지요. 부패한 아프간 정부에게 돈을 주고 단속을 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웃돈을 주고서라도 아편을 직접 매입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거라고요. 제가 보기에도 그게 정답이었습니다. 위쪽에선 단기적인 해결책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건의였지만 말입니다.」

「어라, 그냥 매입해버리는 건 단기적인 해결책이 맞지 않나요?」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아프간 정부에게 맡기는 단속은 단기적인 해결책조차도 되지 못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단속예산은 부패한 관료들이 거의 다 빼돌렸고,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단속반의 활동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했거든요.」

「저런.」

「그들이 현장에 나가서 하는 일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농민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아편 재배를 허용해주거나, 뇌물을 바치지 않는 농민들을 약탈하고 경작지를 불태우거나.」

「오, 세상에.」

「그렇습니다. “오, 세상에.”지요. 그로 인한 모든 적개심은 우리 미국에게 집중되었으니……. 하나 우리와는 다르게, 알림 샤히디는 처음부터 정답을 골랐습니다. 현실적인 최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거지요.」

「하지만 예산은 어떻게 조달하나요? 저희 방송국에서 계산을 해본 결과, 샤히디의 군정청이 고지한 매입가를 기준으로 아편 매입에 들어갈 예산이 첫 해에만 34억 달러에 이르던데요?」

「34억 달러요? 제가 지인에게서 들은 것과 얼추 비슷하군요.」

「샤히디의 자금조달능력이 아무리 우수하다 한들 이렇게 돈을 쓰면 남는 게 있나요? 지금 그에겐 세 개의 대동맥 계획에 자금을 대는 것만으로도 만만찮은 부담일 텐데요. 군정청의 매입 정책이 과연 올해를 무사히 넘길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하. 적어도 앞으로 몇 년간은 예산조달에 문제가 없을 겁니다.」

「어째서죠?」

「관계자들 사이에선 벌써 알음알음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소식이 조금 늦으신 것 같군요. 우리 연방준비제도가 탈레반 집권을 기점으로 봉쇄조치를 실시한 미국 내 아프기니스탄 중앙은행 소유의 자산이 있습니다. 대략 70억 달러를 조금 넘는 금액이라 하더군요. 백악관에선 지금 샤히디의 군정청을 아프간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여, 군정청에게 해당 봉쇄자산에 대한 접근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와우. 그거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당연히 안 되지요. 군정청이 수도 카불이라도 통치하고 있다면 모를까, 현시점에선 아프간의 정통정부임을 주장할 근거가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우리 대통령께서 언제는 그런 정당성 따위를 신경 쓰면서 행동하는 분이셨습니까? 그냥 해야겠다 싶으면 국제관례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면서 강행하는 불도저 같은 분이시지요.」

「아.」

「그리고 샤히디의 아프간 군정청이 아편 매입에 쓰기로 한 예산은 부분적으로나마 회수가 가능한 돈입니다. 매입한 아편을 합법적인 경로로 팔기만 해도, 행정비용을 제외하고 대략 20% 정도는 회수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지요. 이건 제가 근무했던 사령부에서 직접 매입 방안을 검토할 때 사업타당성 조사를 통해 도출했던 결론입니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지원도 주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니 더더욱 예산 부담이 가벼워집니다.」

「아프간에서 재배되는 아편의 양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그만한 물량을 소화해줄 수요가 있나요?」

「있고말고요. 마약으로 유통되는 경우가 워낙에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경작을 제한하고 또 단속하는 것이지, 사실 의료용 아편의 공급은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프간에 있을 땐 아예 아편 재배를 합법화하는 방안까지 검토된 바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 정부도 여러모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는 게 느껴지네요.」

「예, 뭐……. 당시 WHO에서 우리 쪽에 제공한 의견서엔, 의료용 수요를 완전히 충족시키려면 전 세계의 아편 재배량을 지금보다 세 배까지 늘려야 한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합법화를 못 했죠?」

「단가가 안 맞았으니까요. 아프간의 아편 재배 농가들은 규모가 다 영세하고 농법이 낙후되어 있어서, 합법적인 시장에서 세계적인 아편 공급자로 자리하고 있는 호주나 프랑스와 비교하면 네 배 이상의 생산비용이 들어갑니다. 총 생산량으로만 비교하면 아프간이 호주나 프랑스보다 월등히 많습니다만, 가격경쟁력이 이 모양이어서야 합법화를 하는 의미가 없지요. 지속적으로 보조금을 주는 수밖에요.」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바랐던 우리 정부로서는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였던 거네요.」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현실적인 최선이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들은 목표를 너무 높게, 이상적으로 잡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서 예산은 아끼려고 애쓰지요. 아끼려고 하면 할수록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돈을 군비로 지출하게 되어있는 일이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샤히디는 다르군요.」

「예. 듣자니 아편 수매를 유지하면서 농업 현대화와 고용 분산, 그리고 원료가 아닌 완제품 수출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하겠다는데, 그는 자신이 점령하는 땅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잘 알고 아낌없이 투자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현장 실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타입의 리더가 아닌가 싶습니다.」

경태는 “그 리더가 우리 형님이다.”라며 꿍얼댔다. 대체 뭐가 불만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미국의 장성이 경험을 토대로 내놓는 의견과 같이, 아편을 정부에서 독점 수매하는 정책은 민중들의 생활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탈레반의 지역장악력을 끌어내리기 위한 현실적인 최선이었다.

현실적인 최선을 진정한 최선으로 바꿔놓으려면, 정부의 독점 수매 정책으로 민중들의 생활을 지탱하면서 추가예산을 투입하여 농업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또다시 추가예산을 투입하여 잉여인력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프간 철수 이전의 미국이 이걸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곱씹었던 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사회영역에 투입한 연평균 복구예산은 22억 달러 수준이었다. 이건 아편 수매를 하기에도 빠듯한 돈이었다. 하물며 그 빠듯한 예산을 운용할 정부가 극도로 부패해있기까지 했잖은가.

이런 와중에 아편 수매와 농업생산성 개선 사업을 병행하고, 양질의 일자리까지 만드는 게 가능할 리가 있나.

그러나 나는 샤히디의 이름으로 이걸 해내겠다고 공표했다.

아프간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일 따윈 당연히 관심 없다.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을 중재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카레아덱 조약기구의 결속력 강화를 위해, 내 꼭두각시는 자신이 점령한 땅에 대하여 현실성과 합리성을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미래구상을 제시해야 했다.

카레아덱의 가맹국들이 샤히디의 미래구상에 추호라도 의문을 품는 일이 없게끔.

‘이제 41만을 넘었다지.’

41만. 현시점에서 샤히디의 성전군에 정식으로 합류한 무슬림 각성능력자 전사들의 총합.

내 꼭두각시에게 우호적인 이슬람 국가들은, 벌써 서너 달 전부터 자국이 보유한 군 기초훈련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그 인프라를 내게 무상으로 제공해주고 있었다.

말이 무상이지, 내가 제공하는 국가안정화 용역을 이슬람 국가들이 염가에 이용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국에 그대로 두면 사회불안을 유발하고 국가안정성을 저해할 놈들을 내보내는 일이잖은가.

성전군의 신병들이 받는 기초 군사훈련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한 축에 들었다. 내 부하들이 커리큘럼 구성과 진행을 감독했으며, 샤히디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이슬람 군주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덕분이다.

군주들 입장에선 교관 초빙과 훈련시설 확충 및 유지에 얼마를 쓰든 남는 장사다.

가장 기본적인 목적인 국가안정화만 생각해도 싸게 치이는 셈이거니와, 샤히디와의 우호관계 강화도 강화이고, 샤히디의 세력 내에서 자국 출신 전사들이 좋은 입지를 확보한다면 그 또한 유익한 일이잖은가. 전사들이 나가는 만큼 기본 복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드는 건 물론이다.

우수한 성전사의 육성이 곧 국익으로 직결되는 상황.

더욱이 ‘납품’ 이전까지 일시적으로 중동 여러 나라에 분산 주둔하는 성전군은, 군주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그러니 군주들이 더욱 투자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우수한 육성과정에 종교적 열의와 샤히디에 대한 선망으로 가득한 인적자원이 더해진 결과, 기초훈련과 특기교육을 마치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샤히디 성전군의 신병들은 제법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 신병들이 이제 컨베이어 벨트에서 쏟아지는 공산품처럼 중앙아시아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그동안 받은 전사들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고등 군사교육을 받은 전직 장교 출신 교관들이 동행하여 지휘관 육성에 힘쓰는 중이므로, 조만간 기초 장교진도 그럭저럭 갖춰질 것이다.

카레아덱 조약기구 가맹국들이 기꺼이 부담을 나누도록 유도하는 일이 번거롭긴 하다. 단기간에 백만 이상의 전사들을 수용할 기반을 구축하는 게 결코 가벼운 부담이 아니니까.

그러나 나는 번거로움 이상의 만족감과 고양감을 느낀다.

이제는 문자 그대로의 백만 대군 편성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무방하겠지.

기나긴 여정을 거쳐, 내가 비로소 여기까지 왔다.

내가 그리는 그림 속에서, 결과적으로 아프간의 진정한 정상화를 꿈꾸게 된 주민들은 내 꼭두각시에게 한층 더 뜨거운 지지를 보내었다.

「알라의 검은 역시 다르다! 우리의 사정을 탈레반보다 더 잘 헤아리고 또 보살펴주신다!」

「위대한 알라의 전사도 결국은 외지인이라 이 땅의 형편을 모르기로는 미군과 같으리라 했던 자 누구인가! 누가 알라께서 우리를 가엾게 여겨 보내신 사령관을 의심하였는가!」

「이 불화의 땅에 하느님의 평화를! 이 아픔의 땅에 하느님의 안식을! 이 혼돈의 땅에 하느님의 질서를!」

아프간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편은 단순한 마약이 아니다. 열매는 즙을 내어 팔고, 씨앗은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 쓰거나 비누를 만들고, 기름을 짜고 남은 잔류물은 잘게 빻아 빵을 굽는 데 쓰며, 남은 줄기는 가축의 사료로 활용한다.

또한 의료 인프라가 열악하다 보니, 다치거나 병들었을 땐 진통제를 먹고 견디며 자연적으로 낫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아편으로 만드는 전통 약재는 아프간의 의료공백을 메워주는 하나뿐인 위안이었다.

여기에 아편은 물을 적게 먹는 작물이기까지 하다. 사람이 마실 물도 부족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물을 적게 먹는 작물의 존재는 굉장히 각별한 것이었다.

마약상을 겸하는 고리대금업자들이 그간 활개를 칠 수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물이 부족한 환경이었다. 아편 이외의 다른 작물을 재배하려고 시도했다가 가뭄으로 파산한 농민들은, 부채의 멍에를 지워놓고 농노처럼 부리기에 적합한 인력들이었으니.

지금까지 외부에서 들어온 점령자들-소련과 미국-은 현지인들의 이러한 현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고로 현지인들이 샤히디 역시 같은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을 품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발표한 아편 수매 정책과 그에 관한 장기 비전은 현지인들의 불안을 단숨에 가라앉혀놓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재배에 관한 본 군정청의 장기 계획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편 수매 정책은 군정이 계속되는 한 유지하며, 향후 수립될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정부 역시 이 정책을 계승하도록 한다. 군정청 이외의 구매자에게 아편을 판매하는 행위는 엄벌에 처한다.」

「수매 가격은 해마다 농민들의 생계유지를 고려한 기준을 적용하여 새롭게 정하기로 한다. 정책 시행 첫해인 올해는 그동안 갖은 고통을 겪어온 농민들을 위로하고 경제적 구호를 실시하는 차원에서 생계비보다 높은 매입가를 책정하였으니 모두는 양지하기 바란다.」

「둘째. 아편 수매로 인해 식량작물 재배가 감소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하여, 밀을 포함한 특정 식량작물에 대해서도 이익의 하한선을 보장하는 비독점 수매정책을 실시한다. 특히 밀에 대해서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농사를 망치는 경우에도 기초생계비를 지급하기로 한다.」

「셋째. 농지의 규모화와 농업의 현대화를 통해 생산비를 절감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아편재배 농가들이 합법적인 시장의 아편 공급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구획정리 및 관개, 농기계 구매 등에 필요한 예산은 전적으로 군정청이 부담한다.」

「이 계획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아편 수매로 인한 재정적자는 해마다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최종 목표는 아프간 산(産) 아편의 가격경쟁력을 10년 이내에 프랑스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넷째. 농업 현대화에 따라 발생할 잉여 노동력은 천연자원 개발과 가공 분야에서 8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흡수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천연자원은 정련을 마친 상태에서만 수출을 허용하는 것을 향후 10년의 목표로 삼는다.」

「다섯째. 카레아덱 조약기구는 각 회원국이 자본을 출자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아편 유사제(오피오이드) 의약품 제조공장을 건설하기로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낮은 인건비는 비싼 원료비를 상쇄해주는 요소이며, 이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갖춘 완제품을 카레아덱 조약기구와 국제 이슬람 협력기구 가맹국들, 그리고 주술사 왕 동군연합의 관급사업에 우선적으로 납품하는 방식으로 기초수요를 확보하고……」

내가 어쩌다 보니 제공하게 된 아프가니스탄 국가 정상화 솔루션은, 아프가니스탄의 민심을 더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내 꼭두각시에게 돌려놓은 한 수가 되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고, 자금조달 방안도 확실하며, 미래의 수요처마저 다 확보해놓았다.

밥그릇을 보장받은 농촌지역 민중과 지역 유지들의 결정적인 이반은 탈레반에게 무리한 결전을 강제하는 환경적 요인이었다.

탈레반 놈들에게 알라의 검에게 정면으로 대적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러나 어떤 고난 속에서도 조직의 존속을 보장해주던 중남부 지역 부족들 다수의 지지가 사실상 소멸하다시피 한 것은, 탈레반의 현 지도부에겐 무척이나 뼈아픈 피해였다.

핵심 지지기반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중남부 지역의 여러 부족 지도자들에게는 이런 인식이 있기도 했다.

「우리가 나중에 다시 뭉치면 그게 바로 탈레반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탈레반은 사라지지 않아.」

현 탈레반 정권의 몰락을 탈레반의 몰락과 동일시하는 건 어디까지나 카불에 들어앉은 현 지도부의 시각일 뿐인 것이다.

결국 내가 이제껏 과시한 강력한 무력보다, 아편 수매정책과 미래 정책구상 발표가 탈레반 정권에게 훨씬 더 강력한 타격을 가한 셈이었다.

‘무력시현을 선행해 놨기에 비로소 정책적인 수단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리하여 직접적인 싸움 한 번 없이도 벼랑 끝에 내몰린 탈레반 카불 정부는, 샤히디의 총애와 아프간 통치 참여의 기회를 두고 다투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 북부동맹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놓기 위한 결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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