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45화 (545/561)

#53. 알라의 검 (8)

아프가니스탄의 내 점령지는 하루하루 순조롭게 확대되어 나갔다.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인구만 2천만에 달하고, 바다에 접해있지 않은 내륙국인지라 아무리 많은 예산을 퍼부어도 일정 기간 내로 운송 가능한 물류량에 상한이 존재하며, 예멘과는 달리 전후(戰後) 보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하는 땅이어서 어쩔 수 없이 속도조절을 해야 하는 측면은 있었다.

그러나 국경을 접한 카레아덱 가맹국들의 전폭적인 협력이 실무적인 측면에서 차츰 궤도에 오르고, 파키스탄마저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슬금슬금 물류 운송에 협조를 시작하여, 시간이 갈수록 점령지 확대에 가속도가 붙었다.

중국의 심기를 살피며 미적대던 파키스탄의 입장 변화에 영향을 준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당연히 세 개의 대동맥 계획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수혜를 보고 싶은 욕망이다. 아프리카 시장으로의 연결이 사실상 확정된 시점에서, 세 개의 대동맥 계획은 주변국들에게 있어 최대한 많은 지분을 가져와야 하는 미래 성장 동력으로 떠올라 있었다.

두 번째는 머릿수가 근 4천만에 달하는 파키스탄 내 파슈툰 족들의 정치적 질량이었다.

나와 밀약을 맺은 다라-아담-켈의 교활한 파슈툰 늙은이는, 자신이 가담한 진영이 이번 일을 통해 파키스탄 정계에서도 공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한편 파키스탄 정부는 친정부적인 파슈툰 세력을 확보하여, 지긋지긋한 불안요소였던 탈레반 내 극단주의 파벌의 자국 내 영향력을 거세하고자 했다. 탈레반을 아예 없애버리는 선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도부를 유화적인 자들로 교체하기만 하면 성공이다.

아부 알 까삼은 내게 경과를 전하는 통화에서 끌끌거리며 웃었다.

「대안도 없이 우리의 생계를 위협하던 정부와 이런 식으로 손을 잡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마는,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서로의 이해가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오. 진부한 격언이긴 하지만, 이쪽 바닥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법이지.」

세 번째는 인도와의 관계정상화였다.

이 관계정상화는 내가 내 부하들을 샤히디의 대리인 자격으로 파견하여 조율한 외교적 타협의 결과물이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를 험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영토분쟁이었다. 20세기의 마지막 전쟁이자 핵보유국 사이에서 발생한 최초의 전쟁, 카길 전쟁의 배경이 바로 이 지역이다.

카길 전쟁 이후로도 수시로 크고 작은 우발적 충돌을 겪어온 두 나라의 관계는, 외교전문가들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회복이 요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에 UAE의 중재를 통해 20년 만의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만 하더라도 드디어 평화가 오는가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지역에서 행해지는 인도의 이슬람 탄압을 문제 삼으면서 양국관계는 다시 위태로워졌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전문가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 두 나라 사이에 완전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오직 신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국민감정이 얽힌 영토분쟁은 어느 한 나라가 완전히 패망해버리기 전까진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알라의 검의 영향력을 십분 발휘한들, 일시적인 중재라도 해낼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 일.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나는 부하들에게 지침을 주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있나? 그냥 중국을 희생시키면 그만이지.”

아시아 지역의 영토분쟁이라면 안 끼는 데가 없는 제국주의 국가 중국은, 이곳 잠무-카슈미르에서도 한참 전부터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낸’ 트랜스-카라코람과, 인도가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하는 악사이친이 그 영역이다.

협상장엔 예전부터 알림 샤히디를 내세워 친교를 다져놓았던 달라이 라마와, 달라이 라마 이하 티베트 망명정부의 관료들이 불려나왔다.

이 자리에서 내 부하들은 사전에 구해놓은 달라이 라마의 동의를 토대로,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건넸다.

「여러분. 현시점에서 서로가 실효지배하는 영역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확립하는 조약에 서명해주십시오. 그러면 장차 티베트가 해방되었을 때, 중국이 잠무-카슈미르에서 무단 점유하고 있는 땅은 정당한 주인의 품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분할의 경계는 기존에 그어져있는 트랜스-카라코람과 악사이친의 경계를 준용하기로 하지요.」

예상대로, 소환에 응한 인도와 파키스탄의 외교관들은 이 제안에 몹시 솔깃해하는 반응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인도는 제안을 받기 전부터 은근히 몸이 달아있던 입장이었다. 인도가 세 번째 대동맥의 직접적인 수혜를 보기 위해서는 파키스탄과의 국교정상화가 필수적인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파키스탄이 순순히 국교를 정상화해줄 리가 없었던 탓이다.

알림 샤히디가 장차 티베트까지 독립시킨다면, 언젠가는 티베트를 거쳐 인도로 들어오는 철도선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기약이 없는 기대였다. 히말라야 산맥을 관통하는 철도 건설은 신생 티베트는 물론이고 인도에게도 몹시 버거울 초대형 프로젝트니까.

무엇보다, 샤히디가 반드시 티베트를 독립시켜 주리라는 보장도 없잖은가.

그렇다고 카슈미르를 쪼개거나 통째로 내어주면서 굴욕적인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이런 와중에 내가 샤히디의 이름으로 중재에 나선 것이다. 인도로서는 불감청고소원으로 기다려온, 거부하지 못할 제안 그 자체였다.

만약 인도가 단독 협상대상자였다면 제안을 받은 즉시 조약에 서명했을 것이다. 자국이 실질적으로 손해를 볼 게 없고, 혹시라도 샤히디의 마음이 바뀌면 곤란하니까.

그러나 파키스탄은 인도만큼 협상이 아쉬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몸값을 올리려 시도하는 이쪽에 대해서는 내 부하들이 가벼운 협박을 전했다.

「아미르 알림 샤히디께서는 철도가 반드시 인도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인구 14억의 거대 시장과 연결되는 것은 카레아덱 가맹국들과 위구르 독립국의 경제 성장에 아주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만약 귀국이 아미르의 중재를 거부한다면, 세 번째 대동맥의 종착지는 카라치가 아니라 반다르아바스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귀국의 욕심으로 아미르의 호의와 달라이 라마의 관대한 양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카라치는 파키스탄의, 반다르아바스는 이란의 항구다.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이기에 이 시점에서는 샤히디를 성지의 수호자이자 신자들의 총사령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나, 세 개의 대동맥 계획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았다. 위구르 통합 망명정부로 꾸준히 들어오는 이란 측의 러브 콜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외교적·종교적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전제 하에, 이란의 사업 참여는 세 개의 대동맥 계획을 완전하게 만드는 최후의 조각이었다.

물론 이란을 계획에 참여시키는 게 파키스탄을 배제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건 두 나라 모두를 사업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잇는 노선이 이미 존재하는 관계로, 이란하고만 철도를 연결해도 파키스탄 시장에 대한 최소한의 철도물류 접근성이 확보된다. 파키스탄으로서는 기대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파키스탄의 협상단은 협박에 바로 굴하는 대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 자신들보다는 인도가 더 아쉬운 처지임을 믿고서 배짱을 튕긴 것이다.

여기엔 내가 걸어놓은 시간제한도 영향을 미쳤다.

인도 협상단 대표는 내 부하들에게 저자세로 물었다.

「검토할 시일이 너무 짧습니다. 이렇게나 중요한 사안에 관한 협정을 닷새 만에 체결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닌지요?」

내가 최종보고서와 함께 받아본 문서화 녹취록엔, 양측 협상단이 시간제한으로부터 느끼는 당혹감과 압박감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배짱을 튕기는 쪽도, 보다 아쉬운 처지인 쪽도 느끼는 바는 대동소이했다.

그렇기에 파키스탄 협상단은 이 대목에선 인도 협상단과 입장을 함께했다.

「동의합니다.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주춧돌을 신중하게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수개월은 들여서 논의를 진행해야 할 사안이라고 봅니다.」

시간제한은 기본적으로 벼랑 끝 전술에 도움이 되는 것이긴 하나, 그래도 최대한의 이익을 도모하자면 닷새는 너무 짧다. 오랜 갈등에 마침표를 찍는 외교협상은 서너 달의 제한을 걸어도 여전히 빠듯한 것이었다.

내 부하들은 이 조심스러운 건의들을 단칼에 잘라냈다.

「닷새가 짧습니까? 우리 사령관님께 있어서 닷새는 나라 하나를 평정하고도 여유가 남아 전후처리를 시작할 만한 시간입니다.」

양측 협상단은 여기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 예멘을 평정하는 데 걸린 시간이 닷새였잖은가.

「우리 사령관께서는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꿔놓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수개월이라고요? 수개월 뒤의 세상이 지금과 얼마나 달라져있을 줄 알고 수개월을 달라고 하십니까? 그때도 여러분의 협상자격이 지금과 같으리라 믿는 건 지나치게 안일한 마음가짐입니다. 우리 사령관께서 지난 수개월간 어떤 일들을 해 오셨는지, 또 그게 국제정세를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지 상기해보시지요.」

내 부하들은 거의 윽박지르는 수준으로 양측을 압박했다. 구태에 젖어 느리게 움직이는 자들에겐 우리 사령관과 미래를 논할 자격이 없노라고.

「제가 생각하기로 우리 사령관의 제안은 여러분에게 이익을 주면 주었지 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겐 두 개의 선택지가 있을 뿐이지요.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여러분의 답은 어느 쪽입니까? 이걸 결정하는데 닷새나 되는 시간이 필요하기는 합니까?」

내 부하들이 그나마 주었던 닷새의 시간마저 빼앗을 기세로 냉담하게 굴자, 인도와 파키스탄은 내 부하들을 달래려 애쓰며 자기들끼리 감정을 억누른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기서 잠자코 듣고 있던 달라이 라마가 새로운 중재안을 제시했다.

「중공의 제국주의 압제자들이 옛 티베트 왕국의 강역을 명분으로 인도와 국경분쟁을 벌이는 땅은 서쪽에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티베트가 해방되었을 때, 우리가 동쪽의 아루나찰프라데시에 대한 인도의 영유권을 공인해주고, 때를 함께하여 서쪽의 국경을 공식적으로 획정하기로 밀약을 맺어두는 건 어떠하신지요?」

두 조치의 때를 맞추기만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거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터. 티베트의 희생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 국민들의 감정을 중화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때까지 잠무-카슈미르 방면은 현상유지를 하자는 제안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이 기꺼이 동의할 만한 것이었다.

파키스탄 협상단은 자신들의 최종 조건을 제시했다.

「현명하신 달라이 라마께서 또다시 대국적인 양보를 해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만약 인도가 이슬람 탄압을 엄격히 단속하고 카슈미르 지역의 주민 자치를 허용해준다면, 우리 파키스탄은 본 협상안에 동의하겠습니다.」

인도 협상단이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내가 닷새를 주었던 협상은 고작 이틀 만에 전격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사안의 성격을 감안하면 외교사에 전례가 드문 수준의 쾌속한 진행이었다.

내가 이 두 나라의 국교정상화에 공을 들인 것은 비단 아프가니스탄 평정 과정에서의 물류 및 보급 효율성 제고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세 개의 대동맥 계획이 매력을 더하면 더할수록, 갓 출범한 카레아덱 조약기구의 결속력도 그에 비례하여 강해진다.

‘지금 당장 나오는 이익은 크지 않은 수준이니, 강한 통제력을 발휘하려면 가맹국들의 기대를 극대화하는 수밖에.’

각 가맹국들이 지하디스트 대군 육성 및 운영의 부담을 기꺼이 분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맹국들의 기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재의 고통을 인내하게 만드는 일이다.

한편, 세 개의 대동맥 구상의 강화는 정치·외교·경제 분야에서 내 꼭두각시의 위명을 상승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샤히디의 위명이 여러 방면에 걸쳐 높아질수록 지하디스트들과 이슬람 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되며, 암중에서 세계정세를 조종하기도 용이해진다.

협정에 참여한 대가로, 티베트 망명정부는 반드시 티베트 독립을 이루어주겠다는 알림 샤히디 명의의 문서화된 약속을 받았다. 성지의 수호자가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이 각서는, 샤히디가 후일 티베트를 외면할 경우 세상에 폭로할 안전장치였다.

부하들이 전하기를, 늙은 달라이 라마는 해당 문서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루나찰프라데시를 대가로 관계정상화에 동의한 인도 협상단은 내 부하들에게 다짐을 받아내듯 물었다. 티베트 독립에 대한 알림 샤히디의 의사는 확고한 것이냐고.

내 부하들은 단호하게 긍정했다.

「당신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티베트를 독립시키지 않으면 신생 위구르 국가는 중국과 지나치게 긴 국경을 접하게 됩니다. 카레아덱 가맹국들과 위구르 국가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웃한 티베트 독립이 거의 필수라고 봐야 합니다.」

「티베트 땅의 지형은 우리 사령관 휘하의 지하드 전사들이 실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환경이지요. 티베트를 맹방으로 확보하면 중국 서부 전역이 지하드 전사들의 사정권에 들어옵니다.」

「또한 지리적으로 가까운 티베트의 풍부한 광물자원과 수자원은 위구르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 중국에 전략적 억제력을 발휘하려면 중국의 자원 자급능력을 감소시킬 필요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티베트의 강역 동쪽엔 공산주의 무신론자들이 최근 들어 예방적 탄압을 가하고 있는 후이족 이슬람 형제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령관께서는 이들의 고통을 절대로 외면하실 수 없는 입장이십니다.」

「이쯤 되면 우리 사령관께서 티베트 독립에 힘써야 하는 이유보다는,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오히려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인도 협상단은 이 대답에 만족했다.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정부의 각료들 역시 감명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사실 나는 티베트 독립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계획상 위구르 점령의 다음 단계가 바로 영국 본토 진공이었기 때문이다.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위구르 점령조차도 생략될 수 있었다.

영국과 원탁을 무너뜨린 다음에는 티베트 따위 어찌 되어도 내 알 바가 아니다.

‘뭐, 내가 남긴 관성으로 독립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으되, 그때도 내가 조직의 경영과 확장을 추구한다면 이익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관여를 할 여지는 있겠다. 혹은 그레이스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세력권을 넓혀야 하게 될지도 모르고.

이성적인 사고는 여기까지 닿는데, 감성으로는 이게 마치 다른 세계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연 녀석이 내게 원탁 공략 이후의 계획을 물었던 걸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합의에 도달한 후, 나는 다 차려놓은 밥상으로 미국을 초대했다.

「아니, 무슨 놈의 외교협상을 이렇게 미친 듯한 속도로 해치웠습니까?」

미국이 내가 샤히디의 이름으로 전한 호출을 받고서 급파한 외교관은, 몹시 황당해하면서도 미국이 조약의 공증자 역할을 맡는 데 동의했다. 백악관 미치광이가 샤히디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국은 단순한 병풍이 아니었다. 지랄병이 난 중국이 협상의 이행을 온 힘을 다해 방해하거나 하는 일을 예방하려면 미국의 존재감이 필요했으니까.

또한 앞으로의 대전략을 고려할 때 미국에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둘 필요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언론에 공개한 보도자료 속 사진엔 인도-파키스탄 양국의 협상단과 함께 달라이 라마 이하의 티베트 망명정부 관계자들, 미국이 파견한 대표, 그리고 이들 모두와 구분이 되는 복면인 집단이 함께 찍혀있었다.

보도자료와 함께 내보낸 공식적인 설명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이 합의하고 미국이 이를 보증할 뿐 다른 협상주체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 누가 보더라도 눈 가리고 아웅 격인 설명이다. 중국에게 대놓고 “알아들었지? 트집 잡지 마라.”라고 하는 수준.

이 사안과 관련하여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선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정면에 있는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상쾌하게 미소 지었다.

「기다리고 계십시오, 오슬로! 곧 내 노벨평화상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뭐, 가능하다면 내 친구의 몫도 함께 준비해두길 바랍니다! 공동수상도 나쁘지 않지요!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하하하하!」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건, 명목상으로는 테러리스트인 알림 샤히디에게 노벨평화상을 주는 게 불가능한 일임을 아는 까닭이었다. 샤히디의 행적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의 테러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후보자는 대통령 자신밖에 없다. 이게 백악관 미치광이가 도출한 결론인 듯했다.

전 세계의 언론들은 다시금 호들갑을 떨어댔다.

「위대한 영웅 알림 샤히디가 또 한 번 해냈다! 성지의 수호자와 미국 대통령의 우정 속에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속도로 확산되어가는 세계평화!」

「이슬람은 정말로 평화의 종교가 맞았다!」

「이슬람과 서구세계가 함께 주도해나가는 희망과 화합의 21세기! 누가 이 질서에 반대하는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슬람의 이미지가 지금처럼 좋았던 시절이 없었다는 말이 나도는 상황에서, 전 세계의 무슬림들과 무슬리마들은 속된 말로 ‘뽕’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온 세상이 이슬람에 바치는 찬사가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더 많은 찬사를 받고 싶은 욕망으로 더욱 멋지고 아름다우며 모범적인 모습을 갖추려 애쓰는 게 요즘 무슬림들의 평균적인 행동양식이자 사고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멋지고 아름다우며 모범적인 모습’의 기준은 당연히 내가 빚어낸 이슬람의 슈퍼스타, 샤히디의 언행과 가르침이었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배력이 끝을 모르고 강화되어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탈레반의 고립은 한층 더 심화되었다. 이들을 바라보는 무슬림 일반 사회의 여론은 이러했다.

「저 꼴통 새끼들은 빨리 항복 안 하고 뭐하는 거야? 이슬람 세계의 수치들 같으니.」

「뭐? 조건을 조율해야 한다고? 위대하신 성지의 수호자께서 평화를 주려고 하시는데 어디 건방지게 간을 보고 있어? 그냥 무릎을 꿇고 자비로운 처분을 기다리기만 하면 성지의 수호자께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실 텐데.」

「상황이 이해가 안 되나? 아미르 샤히디께서 자비로운 구제를 베풀고 계시잖아. 평화를 그냥 물처럼 퍼서 뿌리고 계시잖아. 무조건적인 충성만 맹세하면 그냥 안정과 번영을 주겠다고 하시는데도 안 받는 새끼들은 대체 뭐야? 왜 살아? 무슨 생각 하면서 살아? 너희들이 그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나? 너희가 미련하게 고집 피우는 동안에 먼저 무릎 꿇은 자들은 무상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평화가 복사가 되고 있다고.」

「애초에 나라를 정상적으로 경영하지 못한 놈들이 잘못이지. 자신들의 실정(失政)으로 위대한 자를 번거롭게 만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는 못할망정…….」

「뻔해. 찔리는 게 많으니까 저렇게 뭉그적대는 거지. 알라시여. 저 탐욕스러운 죄인들이 이제라도 당신의 검에게 복종하게 하소서.」

심지어 탈레반의 일반 구성원들조차도 이런 시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열 중 아홉 꼴로 문맹일 만큼 교육 수준이 낮은 일반 대원들이 보기엔 세간에 도는 말이 상당 부분 옳은 것이다.

「우리도 그냥 가장 위대한 사령관의 휘하에 들어가면 안 되나? 물라 아훈드자다 님이 아직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고 계시는 이유가 뭐지?」

이 무식한 놈들은 자연히 지도부를 향해 의문의 시선을 보내었다. 지도부 내에서 동아줄을 붙잡지 못한 자들은 날로 심해지는 일반 대원들과의 현실인식 괴리에 고통받았다.

사실 이 고통은 어느 정도는 탈레반 지도부 스스로가 자처한 측면도 있었다.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샤히디의 행적을 정훈교육용으로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고, 이는 탈레반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인 읽고 쓰기조차 못하거나 어려워하는 하급 전사들에게, 전사들 스스로 기꺼이 본받고자 할 이상적인 롤 모델을 보여주는 것만큼 강력한 교육수단은 없는 까닭이다.

탈레반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샤히디의 우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인식의 괴리가 심화되지 않을 수가 있나.

중국 국안부가 심어놓은 세작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민감하게 포착하여 베이징으로 보내었다.

하여 중국은 주석의 의지로 탈레반 지도부에게 알림 샤히디에 대한 공동대응 의사를 타진했다. ‘탈레반 지도부의 권력욕은 샤히디에 대한 종교적 경의를 능가할 것이다. 그게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다.’라는 상식적인 판단에서였다.

제안의 핵심은, 무조건 항복을 가장하여 샤히디의 위치를 파악해주면 중국이 드론 폭격으로 샤히디를 날려버리겠다는 것.

그러나 탈레반 지도부는 중국에게 엿을 날렸다. 협상에 응하는 척 중국의 협상단을 받아들인 후, 그 협상단을 모조리 참수하는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한 것이다.

「저주받을 무신론자 새끼들아!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합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지,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암살을 하자고? 위대한 알라의 전사 알림 샤히디를? 사악함과 간교함이 극에 달한 빨갱이들 같으니! 우리는 예언자의 백성들이다! 세계 최강대국과의 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위대한 전사 우사마 빈 라딘(오사마 빈 라덴)을 배신하지 않았던 우리의 신앙을 얕보지 마라!」

「너희와 손을 잡느니 차라리 샤이탄(사탄)에게 영혼을 팔아치우겠다! 팔아치울 영혼도 없는 너희 짐승들에게 알라의 심판이 있기를! 알라 후 아크바르!」

탈레반 지도부는 조직 내부를 단속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이는 탈레반 지도부가 샤히디에게 보내는 구애의 춤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슬람 세계의 여론은 탈레반이 보여준 의외의 의기를 좋게 평가했다. “저놈들이 무식하고 욕심은 많지만 그래도 무슬림으로서의 마지막 양심마저 버린 건 아니었구나.”라는 평가였다.

서구권 대중들 사이에서도 “탈레반이 오랜만에 올바른 일을 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형방식의 끔찍함과 야만성이야 어쨌든, 그 취지는 마음에 든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협상단의 몰살을 보고받은 중국 주석은, 내 거짓 대자들의 눈과 귀가 열려있는 자리에서 얼굴을 감싸며 탄식했다고 한다.

「미친 알라쟁이 놈들 같으니……. 이래서 종교가 아편이라는 것이야. 한번 중독되면 똥오줌을 싸지르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제 토사물에 기도가 막혀 죽어가면서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를 깨닫지 못하지…….」

이러고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독백처럼 중얼거렸다는 물음이 제법 우스웠다.

「세계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미쳐 돌아가지?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거야? 대관절 우리 중국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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