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43화 (543/561)

#53. 알라의 검 (6)

세계 고위험 수렵업계의 헌터 단체들과 프리랜서 헌터들에게 있어서, 인지도는 업력과 더불어 사업의 수익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인지도가 낮으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사업들처럼 진짜 돈이 되는 대형 계약들을 수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헌터들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지도에 목숨을 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고래사냥이 한창일 때의 일본에서 어떤 꼴불견들이 벌어졌는지를 돌이켜보면 되는 일.

그런 의미에서 샤히디의 아프가니스탄 성전은, 시작되기도 전부터 정보가 빠른 전 세계의 헌터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거대한 홍보의 장이었다.

이미 명성이 높은 최상위급의 프리랜서들이나 체급이 큰 수렵기업들은 이 무대에 등판하기가 어렵다. 중국 시장으로부터 배제될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 까닭이다. 중국 자본의 직접적인 투자를 받은 업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 그런 걸 걱정할 단계가 아닌 후발주자들은 사정이 달랐다.

「중국 시장? 진출 안 하면 그만이야!」

각성체 부산물들이야 어차피 중개상들을 거쳐 판매하므로 당장의 밥줄이 끊길 우려는 없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오기나 할지 불투명한 중국 시장 진출 때문에 눈앞의 확실한 이득을 포기하는 건, 객관적으로 봐도 어리석은 짓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중국이 그 많은 헌터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블랙리스트를 관리하며 이적시장에서까지 통제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중소형 수렵기업들은 기업가치를 높인 후 인수합병을 통해 간판을 갈아치우면 된다. 이익은 이익대로 얻고 과거는 과거대로 세탁하는 방법이었다.

덕분에 나는 풍부한 인력 풀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익숙한 보조 인력들을 뽑아 사전계약을 체결해놓을 수 있었다.

최우선 계약 대상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경험이 있는 미군 출신 헌터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국제 안보지원군(ISAF) 소속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직 군인들이었다.

백악관과 CIA는 계약 대상을 물색하고 실제 계약을 체결하는 전 과정에 걸쳐 적극적으로 편의를 봐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명목상 카레아덱 조약군에 고용된 신분으로 아프간 땅에 돌아온 참전용사들 중엔, 철수 직전까지 쿤두즈 기지(FOB Kunduz)에 머물렀던 자들도 제법 있었다.

쿤두즈 강습 이틀째에 합류한 이들은 처음엔 저마다 아련한 감회에 젖어있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아프간은 깊은 애증이 서린 땅이었다.

그러나 쿤두즈 전역에 대한 무장해제가 진행됨에 따라, 이들의 표정에선 아련함이 사라졌다. 아련함의 빈자리를 채운 건 어이없음과 떨떠름함이었다.

“아니……. 구라 치지 마. 무기 회수가 이렇게 쉽게 이루어진다고?”

미군이 아프간에서 20년에 가깝게 소모전을 치러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지역 단위 무장해제의 어려움이다.

과거의 미군에게 아프간 부족들이 지닌 무기들을 회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였다.

우선 부족들에겐 전통에서 기인하는 전사의 자부심이 있어 무기를 빼앗기는 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각지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탈레반이나 IS 같은 놈들에 대하여 미군이 완전한 보호를 제공해줄 수 없었으며, 미군에 협조적인 부족들의 자기방어능력이 친정부 지역의 안정과 치안을 유지하는 데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프간에선 여러 차례 서로 다른 부족들 간의 학살이 벌어진 바 있었기에, 각 부족들은 그 트라우마 때문에라도 자위력 보유에 강박적인 집착을 보였다.

하여 부족들은 미군과 공무원들이 무기를 회수하려 들면 일단 숨기고 보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지하실에 숨기든, 땅에 파묻든, 산간의 바위틈에 넣어두든 하면 외부인들이 그걸 무슨 수로 찾아 회수하나.

이론적인 차선책은 확실한 친정부 부족들에게만 무장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차선책에도 문제가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확실한 친정부 부족들’이 소수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나머지 다수의 부족들은 언제든 편을 갈아탈 준비가 되어있었으며, 확고하게 공화국 정부와 미군을 지지하는 부족들조차도 그렇지 않은 부족들과 혈맥으로 이어져있는 경우가 다수였다.

또 다른 문제는 차별에 대한 반감이었다.

「왜 우리의 무기는 빼앗으면서 저들의 무기는 그대로 두나?」 라는 불만은 그 자체로 전사적 전통을 중시하는 부족들의 집단 이반을 야기하는 요소였다.

그리고 이런 부족들과 반정부 무장단체들의 구성원들이 또 혈맥과 지연으로 이어져있고, 손님이 찾아오면 그게 적이라도 일단은 보호를 제공해야 하는 전통마저 있는 탓에, 지역 단위 무장해제라는 미군의 목표는 문자 그대로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경태는 미군 최대의 적이 견고한 연고주의였다고 평했다.

“지하드 전사들이 찾아와서 「마! 우리가 남이가?! 어?!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인마! 느그 고조할아버지랑 인마! 대영제국도 같이 몰아내고! 어?! 알라께 기도도 같이 드리고! 따지고 보면 조상도 같고! 너 족보가 유수프 파(派) 맞제?!」 이러면 「씁……. 그렇지. 우리가 남은 아니지…….」 하면서 은신처를 제공해주고 무기와 식량도 팔아주는데, 미군이 무슨 수로 꼴통들을 뿌리 뽑겠습니까.”

즉 지역 단위 무장해제를 달성하기 위한 선결과제는 부족연고주의와 종교적 일체감의 강력한 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에겐 어느 쪽도 이룰 능력이 없었던 셈.

그러나 알라의 검을 꼭두각시로 부리며 황금기의 눈까지 가지고 있는 내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나는 쿤두즈 공항 남쪽 기지에서 잠시 무기 회수 작업을 지켜보았다.

미군과 안보지원군 참전용사들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져다바치는 수많은 무기들을 보며 억울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어이가 없네……. 우리가 예전에 했던 고생들은 대체 뭐였던 거지?”

이를 들은 다른 참전용사는, 무기를 반납하고 돈과 식량, 생활필수품 등을 받아가는 주민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대꾸했다.

“좋게 생각해. 최소한 전처럼 악마 같은 산악 게릴라들을 상대할 일은 없는 거잖아. 우리 같은 놈들의 월급은 총을 안 쏘고 받는 게 최고야. 오늘이 파견 첫날이긴 하지만, 이쪽 높으신 분들은 우리가 모셨던 윗대가리들보다 확실히 유능한 것 같네.”

내가 샤히디의 이름으로 무장해제 포고령을 처음 발했던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알아서 무기를 가져다 바친 모범적인 주민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앞으로 며칠 정도는 추이를 지켜보자는 입장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역 내 IS 분파들을 하룻밤 사이에 섬멸하고 그 성과를 공개한 것이 주민들의 자세를 바꿔놓았다.

아프간 산악지대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한 번에 발생하는 사상자의 규모가 작다는 특징이 있다.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기만 해도 규모가 큰 전투였다는 말이 나오고, 세 자릿수의 사상자가 나오기라도 하면 몇 년에 한 번 벌어질까 말까 한 대혈전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미군이 쿠나르 주(州)에서 치렀던 대표적인 격전인 게위 능선 전투만 봐도, 장장 52시간에 걸쳐 맹렬하게 포화를 주고받은 결과가 탈레반 전투원 50인 가량의 전사였다.

지형이 험준하여 사방에 엄폐물이 널려있다 보니, 항공폭격까지 동원했음에도 한 시간에 한 명을 죽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간밤에 2180명을 죽이고 373명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이는 21세기 들어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전과였다. 포로들 전원이 2차 이상의 각성능력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가 더욱 커지는 승리다.

이 전과는 점령지의 부족들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던졌다.

하나는 알라의 검이 미군과는 다르게 확실한 지역안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무장해제 포고령에 불복하는 것의 위험성이 너희가 경험에 기초하여 예상했던 수준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 그러니 안일하게 상황을 지켜볼 생각 말고 초기부터 샤히디의 군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편이 나으리라는 것.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 황금기의 눈으로 광범위한 채찍질을 가했다.

내가 무작위로 선정한 각지의 부족 원로들은,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새벽녘에 불청객 아닌 불청객들의 방문을 받았다.

불청객들의 정체는 내가 알림 샤히디의 대리인이라는 딱지와 통역을 붙여 보낸 내 부하들과 전향자 기사들이었다. 부족 원로들은 위대한 알림 샤히디의 전사들이 외부인들은 알 리가 없는 무기저장소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데 기함했다.

내 부하들과 나를 섬기는 전향자들은 무기 목록을 작성한 후 부드러운 어조와 친절한 태도로 원로들을 안심시켰다.

「진정하십시오. 우리는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을 벌하러 온 게 아닙니다. 오늘은 포고령이 발효되고서 겨우 이틀째 되는 날이잖습니까? 너무 늦게 반납하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겁니다. 여기 사령관께서 친선의 의미로 보내신 선물이 있으니 아무쪼록 기쁘게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무기를 보유한 일반가정의 가장들 역시 내 부하들의 예고 없는 방문을 받고 자지러지게 놀랐다.

「정말로 가진 무기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알라의 이름으로 그 사실을 맹세하고 이 문서에 수인(手印)을 찍으십시오. 추후에 만약 거짓 맹세를 한 사실이 밝혀지면, 그때는 군정명령 위반이 아니라 알라의 이름을 더럽힌 죄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조가 부드럽고 태도가 친절하다고 해서 경고가 전해지지 않는 게 아니다.

할애한 시간이 짧았던 관계로, 지역 전체에 숨겨져 있는 무기들을 전부 적발해낸 건 아니었다. 비율을 추정해보면 높게 잡아도 2할 미만. 실제로는 1할 언저리이거나 그보다 더 아래일 가능성도 낮지 않았다.

그러나 외부인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은닉 무기들이 들통났다는 사실은 점령지 내 부족들의 생존본능을 자극했다.

「틀림없어. 우리 중에 분명히 내부고발자가 있다. 아니면…… 우리의 비밀을 염탐한 다른 부족이 우리를 견제하고 사령관의 총애를 받으려고 고발을 한 것이거나…….」

‘선물’로 뿌린 위성 인터넷 중계기들은 도감청과 소문 확산 양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 도감청 분야 전통의 강호인 CIA와의 업무협력이 더해지자 부족들의 내부 분위기를 전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CIA는 내가 이런 쪽으로 정보를 공유해주는 데 깊은 만족감을 표했다. 정보공유는 신뢰 가능한 동맹의 대전제라면서.

이로써 CIA는 백악관 미치광이에게 다른 어느 부서들보다도 더 상세한 보고서를 올릴 수 있었다. 미친 고용주로부터 더 많은 총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파악한 바, 첫 단속을 운 좋게 피해간 부족들과 가장들은 ‘자진신고기간’이 지나고 나서 자기네에게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경우를 우려했다.

채찍질을 한 다음에는 당근을 던져줘야 한다.

내가 던진 첫 번째 당근은 자경단 및 자치경찰 편성에 관한 포고였다.

「나 알림 샤히디가 점령지의 주민들에게 고한다. 나의 군정에 모범적으로 협조하는 부족들은 자경단과 자치경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가산점이나 우선선발, 추가적인 예산 지원 등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다들 이를 양지하고, 지역 안정화를 위한 나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기를 바란다.」

자경단의 설립은 곧 합법적으로 무기를 소유할 권리를 주겠다는 뜻과 같다. 물론 샤히디와 군정청의 통제에 따라야 하겠지만, 부족들 입장에선 자기네 부족원들이 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안심이 될 일이다.

여기에 추가 예산지원이라는 떡밥을 더하면 부족들은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현시점에서 모범적인 협력 부족이 될 방법은 무기를 자진 반납하는 것이 유일했다. 보다 빠르게, 보다 많은 무기를 반납할수록 더 큰 가산점이 주어지리라는 건 교육수준이 낮은 주민들도 누구나 쉬이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또 다른 당근은 보다 직접적인 고용에 대한 희망이었다. 기습방문을 했던 내 부하들은 통역을 거쳐 원로들의 귀에 달콤한 말들을 속삭여주고 돌아왔다.

「현명한 부족 원로분들은 아시겠지만, 전쟁은 언제나 특수(特需)를 동반하는 법입니다. 위대한 사령관 알림 샤히디가 사악한 무신론자들을 상대로 사상 최대의 지하드를 벌일 예정인데, 그때 수혜를 보는 자들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꼭 이런 당근들이 아니더라도, 자경단 및 자치경찰의 잠재적 모집 대상인 청장년들에겐 지긋지긋한 기아와 실업, 그리고 극한의 저임금노동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것 자체가 강력한 유인요소였다.

무기 반납 현장에선 그러한 청장년들을 대상으로 정책홍보 및 구직희망자들의 명부등록 작업이 병행되었다.

「사전등록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명부에 이름이 있어야 선발대상이 되는 겁니다! 우리의 경애하는 성전지도자, 위대한 사령관 아미르 알림 샤히디께서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 힘쓰는 자들에게 공정하게 임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자경단이나 자치경찰 활동을 하면서 두각을 드러내는 자는 장차 알림 샤히디의 전사로 등용될 수도 있으니, 당신이 전사의 명예를 귀중히 여기는 사내라면 이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확성기에 대고 이렇게 부르짖는 자는, 구 아프간 공화국 최후의 날에 가족과 함께 몸만 간신히 탈출했던 망명자였다.

오랫동안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에 협력했던 자들은 탈레반 치하에서 생존을 기대하기 어려웠으므로, 구 공화국이 무너질 때 기를 쓰고 탈출한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런 자들을 샤히디의 이름으로 불러 모아 행정인력을 확충할 계획이었다.

급여는 의도적으로 평이하게 책정했다. 다만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조국을 광신과 폭정으로부터 해방시킬 기회를 주겠다고 했을 따름.

이렇게 조건을 제시해야 정신상태가 양호한 인재들부터 우선적으로 끌어올 수 있으리라 판단한 까닭이었다.

모집과 의사 타진은 출장보다 선행하여 시작되었다. CIA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비밀리에 확인해달라는 샤히디 명의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초기 모집에 응한 망명자들은 모두가 가족을 망명지에 그대로 두고 자신만 홀로 돌아와 활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 망명자들을 임시로 총괄하는 자는 구 아프간 공화국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던 사예드 아흐마드 샤 사다트라는 자였다. 매국노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끝에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 영국으로의 망명을 택했던 전 장관은, 부정축재와 거리가 멀었던 탓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영위하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샤히디의 초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저는 안전한 곳이 좋고, 가족과 함께 누리는 지금의 생활이 좋습니다. 또한 저는 일개 기술관료였을 뿐 전사의 용기는 없는 자이니, 성지의 수호자께서는 바라건대 저보다 나은 다른 사람을 찾아 기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냥 내버려두기엔 이미지와 상징성이 좋은 인물이었으므로, 나는 다른 망명자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거듭 권유를 보내었다.

전 장관은 고민 끝에 권유를 받아들였다.

이 결정엔 그와 그의 가족들이 하필 영국 시민권자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다. EU를 탈퇴한 영국이 외교적 입지마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현 거주지인 독일에서의 생활이 많이 불편해진 것이다. 가만히 있다간 아르바이트조차 불가능해질 처지였다.

그런 와중에 내가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인척들까지 새로운 시민권을 따게 해주겠노라 제안했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있나.

사다트 전 장관은 고용계약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저 개인은 부패하지 않겠노라 약속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로 부패하지 않을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지금 하는 걸로 봐선 행정가로서의 수완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군정의 기틀을 처음 닦는 과정의 혼란을 빠르고 능숙하게 수습하는 솜씨를 보면 일개 기술관료일 뿐이라는 말은 그저 겸손에 불과했다.

이렇게 기틀을 잡아놔야, 폭발적인 점령지 확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자경단·자치경찰 지원희망자들의 명단 작성은 곧 점령지 내 경제활동·노동가능 남성인구의 호구파악을 겸했다.

각 부족들은 탈레반 치하에선 자기네 장정들을 있는 그대로 신고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더 많은 장정들을 먼저 명부에 올리고자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호구파악이 행정의 기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유익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런 와중에 유럽에서는 내가 기다리던 좋은 소식 하나와 예상치 못했던 기괴한 소식 하나가 연달아 들어왔다.

먼저 좋은 소식은, 영국의 나토 회원국 자격이 정지되었다는 것이었다. 경태는 “그렇지!”라며 손뼉을 쳤다.

기괴한 소식은 벨기에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보고에 첨부된 언론 보도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또다시 폭로된 옛 벨기에 제국주의자들의 추악한 만행! 그들이 가져간 루뭄바의 유해는 사실 금니가 전부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져! 악마의 헌병대장 제라르 소에테의 소장품 중엔 루뭄바의 손가락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뭄바의 유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폭로한 현지 시민단체 「진보를 위한 기억과 반성 운동」에 따르면, 복수의 현직 관료와 정치인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있는 모 극우단체는 제라르 소에테의 딸로부터 루뭄바의 손가락을 넘겨받아 흑마술의 촉매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해당 흑마술은 주술사 왕과 콩고에 저주를 거는 의식이었다고 하며-」

「「진보를 위한 기억과 반성 운동」 대표는 경찰이 신고를 접수했음에도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도리어 자신들에 대한 입막음을 시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흑마술 의식 현장의 사진과 영상, 참여자들의 명단을 주술사 왕의 정부에 보냈으니, 이제는 내 입을 막아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유럽 전역의 외교가가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 가운데, 「진보를 위한 기억과 반성 운동」이 언론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증거자료들의 진위를 두고 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영상 분석 전문가들은 영상 자체는 조작이 아니라는 견해를 내놓아……」

나는 어이없는 기분을 느꼈다. 조금 전 손뼉을 쳤던 경태도 이 내용을 보더니 떫은 표정을 지었다.

“실화야? 거기서 더 무덤을 판다고? 자살은 안 된다 벨기에기에기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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