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42화 (542/561)

#53. 알라의 검 (5)

아프간의 지형은 황금기의 눈의 효용이 극대화되는 환경이다.

내 눈이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전장은 물론 바다지만, 육지에서는 이곳 아프가니스탄처럼 식생이 희박한 산악지대에서의 효용이 가장 크다고 해야 할 터였다.

자갈보다 바위가 더 많은 황량한 고산지대에선 각성능력자들의 힘으로도 진지 구축이 쉽지 않았다. 참호라도 팔라 치면 암반을 부수는 작업부터 선행해야 하는데, 각성자의 근력과 암반의 단단함 사이에서 부대끼는 연장들은 채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망가지거나 부서지고 마는 까닭이었다.

아프간 현지 무장단체들에겐 그런 식으로 소모되는 연장들을 제때제때 충분히 보급해줄 능력이 없다.

강한 염동력을 정교하게 집중 가능한 2차 이상의 각성자들이 나선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런 각성자들은 대체로 지위가 높아 험한 일을 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경태가 빈정거리기를, 아프간의 무장단체들은 꼴통인 정도에 비례하여 ‘똥군기’도 심해진다고 했다.

하기야, 이슬람권에서 각성능력자를 부르는 명칭부터가 예언자 무함마드의 빛(누르 알 무함마디)을 품은 자, 혹은 알라의 축복(바라카)을 받은 자다.

법학자들은 축복받은 자의 우열이 힘의 크기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해냈느냐에 달려있다고 가르치지만, 그런 가르침이 꼴통들 사이에서 온전하게 받아들여질 리가 있나. 머리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 가르침을 조직문화에 반영하는 것은 서로 영역이 다른 문제다.

교육 수준이 낮은 지하드 성애자들의 조직에선 축복의 강약이 조직 내 지위에 반영되는 게 정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지하드 성애자들은, 지닌 바 능력들의 총합을 감안할 때 영 부족함이 느껴지는 진지에서 숙영 중이었다.

고위 전사들은 암반을 파쇄하여 만든 갱도진지에서 마력을 태우는 불로 추위를 쫓았다. 그간 투쟁의 경험이 헛된 게 아니어서, 갱도 내에 다시 천막을 치고, 공기를 데우는 대신 천막 바닥의 암반을 낮은 온도로 가열하여 온돌로 삼는 방식이었다. 열의 대기 중 유출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가진 능력이라곤 생체강화가 전부인 중하급 전사들이나 그나마도 없는 비각성자 전사들은, 천연 암반의 틈새와 갱도진지의 출입구에서 교대로 휴식을 취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찬바람을 견디는 IS 전사들은 나름 양호한 군기로 사주경계와 대공감시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을이 빠진 자리에 별빛과 달빛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희뿌연 산악지대에서, 각성능력자들의 눈과 귀는 제법 나쁘지 않은 감시수단이었다.

겨울에 쌓인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산비탈들은 침입자의 실루엣과 그림자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캔버스였고, 서로 다른 봉우리들 사이의 깊은 협곡들은 비행체의 소리를 가두고 반사시키는 울림통이었다. 주변 지형을 숙지한 각성능력자라면 소리만 듣고도 비행체의 대략적인 방위를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IS 전사들에게는 휴대용 적외선 감시 시스템과 레이더 시스템도 있었다. 비록 레이더는 꺼둔 상태지만, 전파노출 우려가 없는 적외선 감시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중이다. 동력선은 지하 갱도진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종합적으로 볼 때, IS 떨거지들의 경계태세는 나쁘지 않았다.

적의 동태를 관측한 경태가 무전으로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굴리는 장비들이 죄다 중국제로군요.」

나는 담담히 대꾸했다.

“세상에 보여줄 증거물로는 쓸 만하겠지.”

IS 분파들을 공격할 명분은 포고령에 대한 불복종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로야 지르가가 선포한 이슬람의 적이자 샤히디의 적인 중국의 지원을 받았다는 명분도 준비되어 있다.

중국은 탈레반의 배후를 교란하고자 IS 분파에 다양한 무기와 장비들을 제공했다.

물론 그것들은 대부분 헌터들을 위해 제작된 민수용 장비들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는 유의미한 증거로 삼기 어려웠다. 휴대용 위상배열 레이더처럼 구매에 자격심사가 필요한 고급 장비들이라도 암시장에 풀리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내 수중엔 국안부에서 빼낸 극비문서들이 존재했다.

이 문서들이 있으면 노획한 장비들을 추가적인 증거물로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

“공격을 시작하겠다.”

이번 사냥은 신무기의 간단한 실전운용시험을 겸한다. 나는 팔뚝에 장착한 와이어 브래킷으로부터 마법을 부여한 탄소 나노튜브 절삭 와이어를 사출했다.

「쉬익-」

소총탄의 총구초속을 능가할 사출속도에도 불구하고, 와이어의 굵기가 가늘다 보니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거친 밤바람이 협곡에 부대끼며 빚어내는 배경소음은 대마법사의 청각으로도 사출음을 듣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선은 죽이기 편한 비각성자들부터 다 죽이고…….’

통상시야로 보면 어스름과 구분하기 어려운 색의 와이어는, 내 마력장의 범위를 벗어나서도 이리저리 꺾이는 직선을 그리며 자유롭게 움직였다. 제어를 쉽게 하려면 전반적인 움직임에 직선을 많이 넣는 편이 좋았다.

압축된 염동력이 흐르는 절삭 와이어는, 황금기의 눈으로 볼 땐 선명한 빛을 발하는 선이었다. 여기에 염동력 자체를 느끼는 감각이 더해지니 조종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내 의지에 따라, 내 시야 속에서만 밝게 빛나는 선이 비각성 IS 전사들의 몸을 순간적인 번뜩임으로 갈랐다.

「……?」

공격을 당한 IS 전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통을 내려다봤다. 뭔가 충격을 느끼긴 했는데 그게 무슨 충격이었는지는 모르는 기색들이었다.

다음 순간, 지지대가 없는 양쪽 팔이 툭툭 떨어지고, 예리하게 잘린 몸통의 단면에서 피가 배어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고자 여는 입에선 소리 대신 핏물만이 뿜어져 나왔다.

와이어에 베인 인간들의 두어 박자 늦은 몸부림은 위태롭게 붙어있던 몸통에 가하는 결정타였다. 동강이 나며 쓰러지는 몸뚱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쩌억 쩍 갈라지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차게 식은 암반 위로 인간의 따뜻한 내용물이 쏟아져, 극명한 온도차로 색채의 대조를 이루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거둔 목숨이 스물아홉.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화들짝 놀라 주저앉거나 제 자리에서 얼어붙었던 근처의 IS 전사들은, 내가 비각성자 열셋을 추가로 토막 치고 무전기 안테나들을 모조리 잘라버릴 즈음에야 비로소 고함을 지르며 흩어졌다.

「إنه هجوم!」

「احتمي!」

「يا إلهي!」

나는 꼴통들의 무기를 와이어로 엮어 강탈했다. 강하게 옥죄는 힘에 총몸이 찌그러지고 개머리판이 갈라지거나 부서진다.

몇몇 전사들은 총기 멜빵(라이플 슬링) 때문에 자기 무기에 질질 끌려다니거나 허공에 매달려 발버둥을 치거나 했다. 통상시야로 보면 불가시의 유령이 폭력을 행사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다른 전사들은 공포의 색채에 잠식된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는 계속해서 인간을 토막 치는 실뜨기를 이어갔다.

「우웅-」

염동술식에 변주를 주자 와이어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희미한 울림을 뱉어냈다. 본연의 절삭력에 진동절삭 효과를 추가하기 위한 술식 변조였다.

「ماذا يحدث هنا؟!」

바위틈과 갱도진지 입구에서 달려 나오던 전사들이 와이어에 걸려 무너져 내렸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잘린 인체의 허물어짐은 인간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인공물의 붕괴에 가까운 인상을 주었다. 뒤따르던 전사들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거나 엉덩방아를 찧는다. 진동으로 말미암아, 가느다란 와이어엔 핏방울 하나 맺히지 않았다.

운 좋게 살아서 진지를 이탈하는 자들은 경태 이하의 저격수들에게 머리통이 날아갔다. 염동역장을 쳐서 소음을 차단하는 저격은 갑작스러우면서도 조용한 죽음들을 불러왔다. 대 각성능력자용 대구경 탄환에 몸통과 머리가 퍽퍽 터져나가는 IS 전사들의 모습은 옛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바람소리와 와이어가 뱉는 작은 울음, 그리고 간간이 귓가에 들어오는 비명소리들은, 총성의 공백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광경과는 별개인 듯한 위화감을 선사했다.

이렇게 가차 없이 죽여 대는 것은, 생체강화 이외의 능력이 없는 중하급 전사들은 포로로서의 가치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력이야 물론 쓸 만하다.

그러나 알맹이가 꼴통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각성능력자 포로들은 숫자에 비례하여 관리의 어려움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 포로들이 이슬람 교리에도 맞지 않는 극단주의에 찌들어있다면 더더욱 많은 관리비용이 들어간다.

내가 샤히디를 내세워 시행할 통치엔 결점이 없어야 한다. 관리 소홀의 그늘에서 무더기로 탈출하여 또다시 IS 분파가 결성되는 꼴은 봐줄 수 없다. 부족의 혈연을 중시하는 아프간의 전통은 관리 소홀의 그늘을 키울 양분이다.

고로 포로로 잡을 놈들은 IS 분파보다 관리비용이 적게 들 집단에 속한 일반 각성자들, 그리고 인간 발전기나 인간 보일러로 활용할 다중각성능력자들 정도다.

「와이어는 좀 쓸 만하십니까?」

경태의 질문에 나는 애매한 답을 돌려주었다.

“글쎄. 효율이 우수하기는 한데,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부분이 있구나.”

첫 실전에서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 신무기라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와이어의 절삭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굵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릴 수가 없다.

그러나 와이어의 굵기는 와이어에 흘려보낼 수 있는 염동력의 출력 및 유지능력을 제한한다.

나는 수십의 각성능력자들을 동시에 벨 때, 즉 절삭 와이어가 수십 개의 서로 다른 마력장들을 동시에 침범할 때, 마력장들의 저항으로 인하여 와이어에 부여한 염동술식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감지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키요우타마히코를 상대로 와이어를 사출했을 때 발생했던 현상과 궤를 같이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내 마력장의 범위 바깥에서 염동력을 이용한 공격을 자유롭게 가할 수 있다는 건 여전히 큰 장점이었다. 소비 마력이나 마력회로 점유율도 낮았기에, 추가적인 개선방안을 고민해볼 가치가 있었다.

와이어에 가로막혀 갱도진지에 갇혀있던 IS 이중·다중각성능력자들은, 갱도 앞까지 진출한 내 부하들이 수면가스를 투입하며 무력화시켰다.

사람의 비명소리를 제외하면 총성 하나 울려 퍼지지 않은 조용한 거점 제압이었다.

수면가스의 작용시간은 길지 않았다. 산 채로 잡힌 포로들은 10분이 지나기 전에 다들 눈을 떴다. 잠든 사이에 안대를 씌우고 재갈을 채웠으며 손발을 뒤로 구속시켜놓은 탓에, 포로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아무것도 없었다.

“프흐……픕……프브흐…….”

포로들이 문 재갈 밖으로 진득한 침이 뚝뚝 떨어진다. 겁에 질린 기색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싶어 하는 품새들이었다.

적외선 비컨을 툭 던진 경태가 위성통신으로 멀리서 대기하던 수송 편대들을 호출했다.

곧 정숙성이 우수한 드론 바이크들이 협곡 사이로 날아와서는 살아있는 화물들을 슬링 벨트에 매달기 시작했다.

화물을 굳이 기체 바깥에 매달아가는 것은 화물들이 지닌 마력장이 파일럿에게 미치는 영향을 배제하고, 회피기동을 해야 할 때 지체 없이 화물을 투하해버리기 위한 조치였다.

경태가 나를 돌아본다.

“어서 다음 거점으로 가시죠. 아직 남은 밤이 길고, 저희는 형님의 수면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싶습니다.”

“…….”

산악지대에 숨은 IS 전사들의 위치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너무도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것이었다. 하여 은폐된 거점들의 위치는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이미 다 파악해놓았다.

지금과 같은 속도면 앞으로 서너 시간 안에 IS 분파 소탕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 남는 일은 마을에 숨어든 놈들을 색출해내는 것뿐.

‘전두엽을 절제할 놈들이 모자라진 않겠어.’

아프가니스탄을 내 꼭두각시의 영향권으로 편입할 계획을 짤 때, 최초 점령목표를 수도 카불과 그 주변지역이 아니라 이곳 쿤두즈 주(州)로 설정한 것은, 샤히디의 통치에 대한 환상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카불을 들이치고 참수작전을 강행했다면, 명목상의 평정은 아주 빠르게 끝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샤히디의 위상과 영향력, 그리고 군사적 제압능력은 명목상의 평정을 실질적인 평정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이상적이고 아름답기는 어려웠다. 곳곳에서 빈발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내 꼭두각시에 대한 주민들의 환상에 찬물을 끼얹으리라는 이야기였다.

인구가 4백만이 넘는 수도 카불을 시작부터 집어삼키는데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내 꼭두각시의 통치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삶이 어둡고 비참한 자들을 즉각적으로 끌어올려주는 구원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샤히디에 대한 선망과 찬사는 지금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올라야 한다.

그렇기에 첫 점령지는 육로를 통한 보급이 원활한 곳이어야 하고, 점령지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선 충분한 수량의 인간 발전기와 인간 보일러를 마련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쉽게 말해, 충분한 숫자의 각성능력자 포로를 잡아 전두엽을 절제할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 발전기와 인간 보일러들은 주민들의 생활수준 및 지역 내 에너지 인프라를 손쉽게, 급진적으로 향상시킬 수단이었다.

당초의 구상대로, 포로들은 언론들이 중계하는 공개 재판을 통해 10년 안팎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을 것이며, 형을 선고받은 다음에는 제3국으로 멀리 왕진을 나온 중국 의료진에게 바보수술(笨蛋手術)을 받을 것이다.

해남파(海南派)와의 꽌시로 부정을 저질러온 병원의 의료진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보안을 엄수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의료진에게는 시술 대상자들의 정체를 알려주지도 않을 거지만.

나는 샤히디에게 충성을 서약한 무장단체들로부터도 인간 발전기와 인간 보일러들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이 땅을 안정시키려면 대대적인 숙청은 불가피하다. 관건은 충성서약과 무관하게 숙청을 할 명분을 만들어, 누구에게도 불만을 제기할 빌미를 주지 않는 것.

그 준비는 메리옘과 마무르가 2인 3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마무르는 말했다.

「싸장님. 내게는 한국에서 긴 관찰을 통해 학습한 선전선동의 노하우가 있어요. 이 노하우는 내가 그동안 싸장님의 행보를 지켜보며 얻은 깨달음을 통해 여러 차례 강화되었다.」

「노하우의 이름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한다. 대략 스물한 번쯤 강화되었으니 일단은 「정치적 올바름 +21 알라 후 아크바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다수의 멍청한 대중들을 선동하여 비뚤어진 정의감에 도취시키면, 정의를 자존감 결핍 해소의 도구로 쓰는 분노중독 자아도취자 집단을 탄생시켜 강력한 인민재판의 칼을 휘두를 수 있다. 기대하십시오. 알라께서 축복하신 나의 우수한 두뇌 안에선 번뜩이는 영감에 기초하여 천재적인 실천방안이 완성되는 중입니다.」

「이 마무르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지하드의 위력을 보여주겠어요. 이것은 느슨해진 지하드 업계에 긴장감을 선사할 새로운 선전선동 패러다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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