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35화 (535/561)

#52. 전쟁의 기반 (17)

러시아 과학자들이 수리한 레이저 포대들은 최대출력으로 작동하면서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광선들의 교차점에 있던 표적기는 거의 폭발에 가까운 기세로 탄화되어, 검은 조각들로 바스러진 채 바다 위로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이어서 발사된 또 다른 표적기들도 광선에 걸리는 족족 갈라지고 불타오르며 연달아 추락했다. 광선의 연장선상에 있던 구름들도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기이한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광선이 구름을 자르는 곳마다 화려한 무지개들이 꽃처럼 피고 졌다.

「……5, 4, 3, 2, 1, 제로!」

단방향 환시장막을 무저항으로 관통한 레이저 조사(照射)는 약 8초간 이어진 후 종료되었다. 과열이나 전력공급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적외선 감시를 염두에 둔 보안상의 조치였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미국의 국방지원 프로그램(DAP)과 우주 기반 적외선 시스템(SBIRS), 그리고 우주 추적 및 감시 시스템(STSS)에 속한 위성들이었다.

이 위성들은 1분에 여섯 번씩 지구 전역을 초고해상도 적외선 감지기로 스캐닝한다. 목적은 핵미사일 발사에 뒤따르는 대규모 적외선 발산을 포착하는 것.

페르 아스페라가 발사하는 레이저의 대기 중 산란(散亂/Scattering) 열량은 로켓 엔진의 방사(放射) 열량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형태가 지나치게 눈에 띄는 기나긴 직선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규격 외의 출력으로 말미암아 제법 선명하게 찍힐 직선이다.

미국만큼은 아닐지언정,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주요 핵보유국들 역시 고유한 적외선 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장거리 요격 실험에서는 레이저 1회 조사 시간을 8초로 제한했다. 이렇게 하면, 설령 스캐닝 주기에 걸려 레이저가 관측되는 일이 있더라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1회성으로 잡히는 작은 열량은 노이즈로 분류되어 걸러지겠지.’

자동화된 노이즈 필터링은, 다양한 노이즈들로 말미암아 숱한 우발적 핵전쟁의 위기들을 겪어온 핵보유국들이 경험에 기초해 마련해놓은 안전장치였다. 위성 감시 시스템은 전면 핵전쟁에 대비한 핵 보복 장치들과 직접적으로 연동되어있다.

장거리 요격 실험을 마친 다음에는 최대출력 레이저의 유지 한계시간을 확인했다.

「35, 36, 37, 38……」

이건 내구성 및 신뢰성을 검증하는 실험이었으므로, 굳이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노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모든 레이저 포대의 표적을 수십 미터 이내의 가까운 수면으로 설정함으로써 위성감시를 회피했다.

내구성 및 신뢰성 검증엔 근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동안 나는 극소 웜홀을 수축시키거나 확장시키거나 하며 원활한 원격제어를 위한 최적의 리소스 할당량을 추가로 확인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딱히 의식을 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웜홀 유지가 가능했다. 생체강화가 그러하듯, 회로를 점유한 공간왜곡 술식이 자체적인 항상성을 지니도록 만든 것이다.

내구성과 신뢰성을 검증한 후에는 다시 한 번 장거리 요격 실험을 실시했다. 장시간의 포대 운용이 명중률 저하를 유발하지는 않는지 점검하는 절차였다.

“훌륭하군.”

나는 러시아인들을 치하해주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오. 그동안 다들 수고가 많으셨소.”

통신기로부터 시차를 두고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머나먼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거점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데이터를 받아보고 있던 러시아인들의 함성이었다. 러시아인들이 받아보는 데이터엔 위치정보와 일부 영상정보가 누락되어 있었으나, 나머지 데이터들만 살펴봐도 정상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데엔 지장이 없었다.

“약속했던 성과급은 한 시간 내로 입금될 거요. 새로운 포대 생산도 기대하고 있으리다.”

현재 페르 아스페라에 추가로 장착된 레이저 포대는 도합 여섯 기. 이는 망가진 포대들 가운데 재생이 가능한 것들을 선별하여 수리한 것으로, 향후 복제품들이 완성되면 포대의 수를 열여덟 기까지 늘릴 예정이었다.

나는 러시아 망명자들과의 통신 연결을 끊으며 생각했다.

‘이걸로 메드크럭스에 대한 대비가 되면 좋으련만.’

알파 크루시스 아크를 추적하는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내 입장에선 본토에 있을 원탁의 마스터 넷보다 위성 궤도에 있을지 모를 메드크럭스 하나가 더 신경이 쓰였다.

최대출력 20메가와트짜리 레이저 포대는 우주비행체를 공격할 무기로서도 충분한 사거리와 위력을 지닌다. 미국은 97년에 1메가와트 레이저 「미라클(MIRACL)」을 가지고서 저궤도(LEO) 위성 요격실험을 했었으니까.

그러나 알파 크루시스 아크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이 레이저가 닿지 않는 높은 궤도를 돌며 질량투사체 공격을 가해오는 경우엔 대기권 내에서 대응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공격으로 이동하는 표적을 노리기는 어렵겠지. 나와 내 조직, 그리고 페르 아스페라는 여전히 존재가 은닉되어있기도 하다. 그러나 외부로 노출되어있는 고정 표적들, 예컨대 그레이스가 주술사 왕으로서 확보한 거점들은 위험도가 높다.

결국 제대로 대응하려면 나나 그레이스가 우주로 나가야 한다.

수연은 우주로부터의 기습적인 질량투사체 공격에 대한 내 우려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설령 알파 크루시스 아크가 실존하며 강력한 궤도폭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들, 마스터 메드크럭스는 절대로 선공을 가하지 않을 겁니다. 그가 원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하지 않은 이상에는 말입니다.”

“근거는?”

“형님께서 페르 아스페라를 가지고 계시고, 페르 아스페라는 불분명한 소재와 높은 기동성으로 인해 선제타격이 불가능하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선제타격이 가능한 표적은 오로지 외부로 노출되어있는 주술사 왕의 거점들뿐입니다.”

수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궤도폭격은 필연적으로 메드크럭스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킵니다. 굳이 우리가 추적하지 않아도 전 세계 모든 우주국(宇宙局)들이 앞다퉈 최초 발사지점을 특정해내겠지요. 세계 경제의 두 번째 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주술사 왕의 동군연합이 박살이 났잖습니까.”

“나와의 일대일 대결국면을 회피하고 싶을 것이다, 이거로구나.”

“예.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메드크럭스의 방어능력이 형님께서 나서시기 전부터 소진되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는 주술사 왕 동군연합을 폭격한 정체불명의 공격위성을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테고, 낮지 않은 확률로 무력화나 요격을 시도할 겁니다. 메드크럭스가 가한 폭격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요격수단에 핵미사일이 포함될 확률도 함께 증가하겠지요.”

여기까지 말한 수연이 차분한 질문을 던졌다.

“과연 메드크럭스가 그토록 불리한 조건에서 형님의 공격에 단독으로 대비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싶을까요?”

핵심은 내가 지닌 보복능력이었다.

궤도폭격을 포함한 일련의 대공세를 통해 원탁이 전략적 승리를 거둔다 할지라도, 마스터 메드크럭스 개인의 입장에선 봉변을 당할 위험이 너무 크다.

공중전함에 탑재된 레이저 포대의 위력을 메드크럭스라고 모를 리 없는 만큼, 알파 크루시스 아크의 체류고도는 레이저 포대의 유효사거리 바깥일 터.

정교한 시준(視準)으로 회절을 최소화한 20메가와트 레이저의 유효사거리를 벗어날 만큼 먼 궤도라면, 최소가 중고도(Medium Earth Orbit) 이상이다. 이나마도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에서 발사된 레이저가 대기권을 벗어나기 전까지 산란 감쇠를 겪을 것을 감안한 거리였다.

만약 내가 대류권 계면(界面) 이상의 고도에서부터 공격을 가할 경우, 알파 크루시스 아크는 지구동기궤도(GSO)까지 올라가더라도 별도의 강력한 방어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공간굴절과 왜곡 코드를 확장회로로 증폭시켜 쓰는 나에게도 이렇게나 먼 거리를 뛰어넘어 화력을 투사할 능력은 없다.

즉, 런던의 원탁은 무슨 수를 써도 메드크럭스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하지 못한다.

‘아니. 수가 있기는 있군. 핵미사일.’

그러나 내가 추정하는 바가 맞다면, 원탁은 아직 영국의 핵전력을 손에 넣지 못했다.

설사 손에 넣더라도 큰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레이저를 이용한 우주공간에서의 핵미사일 요격은 대기권 재돌입 시의 요격에 비해 난이도가 매우 낮고, 영국이 보유한 대륙간 탄도탄들은 전량이 잠수함 발사 탄도탄들로서 지상타격에 최적화된 사양이니까.

페르 아스페라의 고성능 레이더와 레이저 포대의 조합이면, 상승 단계이거나 궤도에 진입하는 단계의 핵미사일들을 손쉽게 방사성 우주쓰레기로 만들어줄 수 있다.

“메드크럭스의 위치가 노출된 상태라면, 형님께서는 그 위치를 참고해가며 안전하게 대기권을 이탈하실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신벌이라는 보조위성들이 깔려있더라도 형님의 대기권 이탈을 저지하긴 어렵지요. 일반 인공위성 체급의 레이저는 방어가 가능하고, 그 외의 물리적인 요격수단으로는 까마득한 거리에서 환시장막을 두른 채 단거리 공간도약마저 구사하는 이동표적을 요격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만 이야기해도 된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으니.”

내가 불완전한 상태의 HMS 아비터를 장악해 전개했던 환시장막은, 콜리어가 탑승해 있던 HMS 트라운서의 레이저 공격을 큰 폭으로 약화시켰다.

지금의 페르 아스페라는 아비터와 트라운서의 융합체이기까지 하니, 일반 위성에 탑재할 수준의 레이저 공격으로는 내 방어를 뚫고 유효한 타격을 가하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메드크럭스가 직접 운용하는 레이저만 주의하면 되겠지.’

내 안색을 슬쩍 살피던 경태가 짐짓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페르 아스페라의 심기체가 이만큼이라도 정상화된 게 다행이군요. 우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우리 진영의 전략적 보복능력이 안정권에 접어든 셈이니까요.”

“심기체라니? 무슨 말이냐?”

“전함으로서의 능력과 정체성을 말하는 겁니다. 저 김경태가 인터넷상의 수많은 이단 악귀들과 맞서 싸우며 완성한 「심기체 전함론」에 따르면, 어떤 배가 전함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태는 몹시 진지한 어조였다.

“첫째가 심(心)! 전함은 마땅히 최초 구상 단계에서부터 전략병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계획된 함선이어야 합니다. 다른 목적으로 건조되었지만 어쩌다 보니 전함의 역할을 하게 된 경우는 전함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죠.”

“그러냐…….”

“예. 둘째는 기(技)! 전함은 전함이라고 불리기에 부끄럽지 않은 화력과 방어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강력한 함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죠. 미사일 전함? 그딴 건 이단입니다. 레이저는 전통적인 우주전함의 이미지가 있으니 예외적으로 인정 가능하지만요.”

“…….”

“마지막인 체(體)는 문자 그대로의 체급을 말합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지 못하면 그것은 결코 전함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페르 아스페라는 솔직히 크기만 봐서는 못내 손색이 있습니다만, 그만한 크기로 하늘을 난다는 임팩트가 부족함을 만회해주는 만큼 아쉬운 대로 전함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다.”

경태의 열변이 끝나자 옆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경태는 꼬리를 흔드는 춘식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김춘식이. 나의 지고한 이론을 이해하였는가?”

「월월!」

“그렇다면 갈채하라.”

춘식이는 뒷발로 일어서서 박수를 치듯 앞발을 부딪혀댔다. 경태가 교육시킨 재롱의 한 가지인 모양이었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TV나 켜봐라. 슬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오늘은 한국에서 20대 대선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위성 TV를 켜자 기이한 유행가가 선거 개표방송의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다.

「사-주- 좋아! 관상도 쏙-쏙- 좋아! 손금도 완-전- 좋아! 오늘의 운세도 좋아-! 좋아아아아-!」

요즘 어디를 가도 곧잘 들리는 이 유행가는, 경태의 말에 따르면 공개되었을 땐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가 최근에 다시 발굴되어 빌보드 차트와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 중인 곡이라 했다. K-주술과 한류 유행의 화학반응으로 수혜를 본 사례라고.

선거 개표방송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쪽으로 바뀌어나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과거의 진중함이 더 나았던 것 같은데, 젊은 세대의 감각은 그렇지가 않은 듯했다.

「다들 투표는 하셨겠죠? 투표를 안 하시고 지금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은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출구조사 발표가 예정되어있는 오후 7시 30분이 이제 5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코리아 리서치·한국 리서치 등 3개의 수행기관에 의뢰해서 9만 명이 넘는 투표자들을 상대로 대면조사를 실시했다고 하네요. 현재까지 집계된 전국 투표율은 82.9%로,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치에 도달하였으며……」

내 무릎으로 기어 올라온 춘식이의 대가리를 쓰다듬으며 조금 더 기다리자, 화면 중앙에 「경합」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떠올랐다.

「아, 연합민주당 강중성 후보! 그리고 국민자유공화당 이두승 후보! 경합입니다! 1위인 강중성 후보가 21.6%! 2위인 이두승 후보가 21.1%! 오차범위 내에서 그야말로 박빙의 초경합이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나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선거일 직전 3일간의 조사에선 도지사 강중성이가 최소 1% 이상의 격차를 유지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출구조사에선 그 격차가 0.5%로 좁혀진 것이다.

내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강중성이가 보다 큰 우세를 점하지 못한 건 강중성이의 자식새끼들 탓이었다. 아들놈은 성추행, 딸년은 마약 투여로 각각 스캔들이 터졌다. 내가 기껏 불려놓았던 강중성이의 지지세를 뭉텅뭉텅 깎아먹은 사건들이었다.

‘애초에 좆같은 씨에서 좆같은 결과물들이 나왔다고 봐야겠지.’

자식들의 스캔들이 터지자, 강중성이는 제 버릇 못 버리고 권력으로 수사와 보도를 무마하려 들었다. 내가 압력을 넣고 김연화의 신딸이 호통을 쳐서 간신히 저지한 머저리 짓이었다.

본인 스스로 자랑스럽게 “젊은 시절 학생운동가로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웠다”고 떠들어대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은 권위주의의 화신과도 같다는 게 웃기는 부분이다.

강중성은 눈물을 머금고 자식들을 손절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슷한 시기 2위 후보의 진영에서도 스캔들이 터졌다는 점.

한때는 둘 다 30%에 근접한 지지율을 과시했었다. 실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거야말로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해야겠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설령 강중성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한들, 정계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경쟁 진영도 연정(聯政) 체계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연정 내부의 결속은 김연화의 신자녀들로 엮여있는 이쪽 진영이 훨씬 더 견고한 까닭이다.

저쪽은 강중성의 급격한 성장에 놀라 허겁지겁 뭉친 진영이어서 결속력이라는 게 거의 없다시피 했다.

즉, 강중성이 패배하더라도 여소야대의 형국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일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조종하는 데엔 문제가 없을 터.

다만 강중성이의 관리에는 조금 더 자원을 투자해야겠지. 빗나간 예언이 김연화의 신딸에 대한 신뢰도를 저하시킬 테니. 지금껏 받아먹은 것들만으로도 기적이라 부르기엔 충분한 만큼, 결정적인 타격까지는 없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내 귀에 툭 튀는 노래 가사가 들어왔다.

「걱-정은 개나 줘어-」

화면은 두 대선후보의 머리를 단 용 두 마리가 서로 경쟁하듯 번개 치는 하늘을 나는 CG를 보여주었다.

정말이지, 젊은 세대의 감각은 여러모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만 꺼라. 나중에 결과만 보고받도록 하지.”

박빙의 승부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극적인 승리는 그만큼 승자에게 강렬한 기쁨과 성취감을 주는 법이니까.

이 순간 먼바다 깊은 곳에선 페르 아스페라를 발견한 혹등고래들이 반갑게 다가와 지느러미를 흔들며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안녕? 잘 지내고 있니, 인간 친구?」

나와 페르 아스페라 사이의 상관관계는 태평양 일대의 혹등고래들 대부분이 숙지하고 있는 바였다. 그런즉 잠항 중인 공중전함을 발견한 고래들은, 예전에 그러했듯 전함 안에 내가 탑승하고 있으리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페르 아스페라를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은 혹등고래들과의 교류가 그만큼 원활해졌음을 의미했다. 교류와 치료의 빈도 증가는 그만큼의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황금기의 눈을 통한 시진(視診)이 생략된 만큼, 치료는 어디까지나 외상 치료만이 가능할 테지만.

조립식 아기들과 나란히 헤엄치는 각성체 혹등고래들은, 다른 동족들에게 그러하듯 내게도 친절하게 주변 환경의 정보를 공유해주었다.

그러나 해류의 흐름과 거리, 수온의 변화와 수괴(水塊)의 분포, 음파의 굴절면 등등을 포함하는 복잡한 정보들은 아직 해독할 능력이 없어, 기껏해야 이런 내용이나 실시간 해석이 가능할 따름이었다.

「이 앞, 고등어 있다.」

나는 고래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충돌사고가 빚어지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였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을 하면서 페르 아스페라를 제어하는 것은, 운전을 하는 와중에 한눈을 파는 것과 많은 부분에서 흡사했으므로.

그래도 수중이 교통량이 많은 환경은 결코 아니다. 호의를 품고 다가오는 고래들만 조심하면 충돌 우려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염동결계를 감각기관처럼 전개해놓고 있다가, 무언가 부딪힐 것 같으면 완충결계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었다.

개인 선실로 돌아온 나는 책상 위에 펼쳐져있는 노트를 보았다. 페이지엔 몇 개의 여자 이름들이 적혀있었고, 개중 하나엔 내가 진한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