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32화 (532/561)

#52. 전쟁의 기반 (14)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외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함께 끌어들이는 공작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었다.

이러한 공작은 해외 위구르 디아스포라를 하나로 통합하는 공작과 병행되었다. 포섭 대상 국가들마다 현지에 열정적으로 충성을 바칠 민족 집단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런 게 있으면 당연히 이용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해외 위구르 디아스포라의 양대 망명정부, 「세계 위구르 의회」와 「동 투르키스탄 망명정부」는 일찍부터 샤히디에게 자신들의 정부수반이 되어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여러 차례에 걸쳐 보내온 바 있었다.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ETIM)의 독립투사들과 우호적인 관계인 동 투르키스탄 망명정부는 천안문 의거 직후부터 추대 의사를 타진해왔고, 보다 온건한 성향인 세계 위구르 의회는 예멘 출장을 마무리 지을 무렵 기존의 대통령이 권력이양 의사를 전해왔다.

나는 두 망명정부의 요청을 샤히디의 이름으로 정중하게, 공개적으로 거절했다.

「세계 위구르 의회와 동 투르키스탄 망명정부가 내게 대통령직을 맡아 달라 요청한 것은 실로 명예로운 일이다. 한 사람의 위구르인으로서 벅찬 심정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이 명예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전사의 영광이 절차적 당위성도 없이 통치자의 권력으로 이어져선 안 되는 까닭이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니까.」

「신의 은총 아래, 우리 위구르 민족의 미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있으며, 숱한 외국의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민주주의 이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멋대로 정한 그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주권의 원리에 의거하여 모든 해외 거주 위구르 민족을 정당하게 대표할 수 있는 진정한 임시정부의 수반이다.」

「천년을 이어갈 나라의 기틀은 처음부터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편법은 쓰면 쓸수록 기틀을 부실하게 만들 따름이다. 급하고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예외적으로 편법을 쓸 수 있겠으나, 지금의 우리가 과연 그렇게까지 어려운 상황인가?」

「나는 이제까지의 모든 싸움에서 승리했고, 지금도 승리하고 있으며, 신의 정의를 저버리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해서 승리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신께서 허락해주신 승자의 여유가 있다.」

「그러니 나의 슬프고도 자랑스러운 동포들이여. 그대들의 권리를 행사하라. 국가는 그대들이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자각하고 행사하는 순간에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탄생한 민주주의 국가를 위해 국토를 회복하는 싸움을 하고 싶다. 그 싸움이 끝난 후, 우리는 해방된 동포들까지 참여하는 투표를 치름으로써 건국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이러한 입장 발표엔 위구르인들만이 아니라 나머지 세계 역시 뜨거운 갈채를 보내었다. 이렇게까지 이상적인 이슬람 지도자가 언제 다시 나타나겠는가.

물론 현실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도 있었다. 뜻은 실로 숭고하나, 많은 나라에 흩어져있는 위구르 민족들이 어떻게 투표를 실시하겠느냐고.

그러나 나는 샤히디의 이름으로 입장을 발표할 때 구체적인 실행방안까지 마련해놓은 상태였다.

「국민투표의 실행은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미 성취한 국가들의 선거관리기관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이는 투표의 원활한 진행과 제3자의 객관적인 감시를 동시에 이룰 방편이다. 나와 내 형제들은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기꺼이 제공할 것이며, 도움을 제공한 국가들의 우의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위구르 디아스포라가 존재하는 국가들은 소수민족 관리의 차원에서 위구르 정체성을 지닌 인구를 따로 파악해두는 게 보통이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사회통합을 위하여 위구르인을 카자흐인으로 편입하고자 애쓰지만, 신분상의 편입이 완료된 위구르인이라 해도 행정기록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각국의 선거관리기관들이 투표를 진행하는 데엔 어떤 어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 하던 선거행정을 특정 인구집단에 국한하여 진행하기만 하면 그만이며, 대상 인구집단의 규모가 작은 만큼 준비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도 적다.

그리하여 투표를 실시할 환경이 못 되는 나라들을 제외한 14개국에서 60만의 위구르인들이 통합 망명정부의 수반을 선출하는 선거에 참여했다. 선거 일자엔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으나, 이 정도면 나라 잃은 민족의 대통령 선거 치고는 더없이 훌륭한 것이었다.

선거 결과를 받아든 나는 묘한 감상을 느꼈다.

‘세상사라는 게 참 어찌될지 모르는 것이로군.’

처음 알림 샤히디를 꼭두각시로 선택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독립을 맞이한 위구르가 북한 꼴이 되거나 말거나 알 바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서구세계의 지지와 지원을 고려하여 알림 샤히디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다 보니, 의도치 않게 정말 완벽에 가까운 독립운동 컨설팅을 제공하는 꼴이 되었다.

설령 알림 샤히디가 끝까지 살아남아 독립 위구르 국가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른다 한들, 이제까지 구축해놓은 이미지의 관성이 있고, 샤히디 자신이 그 이미지로부터 비롯된 인기에 푹 빠져있는 만큼, 북한의 세습군주처럼 막 나가는 독재자로 전락할 확률은 낮은 편이었다.

어디까지나 샤히디가 산 채로 쓸모를 다하는 경우를 가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알림 샤히디를 직접 선거에 출마시키지 않았다.

위구르 통합 망명정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은 샤히디 본인부터가 딱히 내켜하지 않는 명예였다. 성지의 수호자이자 신자들의 총사령관으로서 지닌 격을 손상시키는 측면이 있는 까닭이다. 알라의 검이 어느 한 민족에 속한 존재라는 인상은 지나치게 강해져선 곤란하다.

그렇기에 내 지시대로 성명을 내는 샤히디의 연기엔 일말의 아쉬움도 묻어나지 않았다.

굳이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건국의 아버지라는 명예는 자신의 것이 될 테고, 권력은 지금 이대로가 오히려 더 강력하니까.

「우수한 전사와 우수한 통치자는 서로 같은 개념이 아니며, 우수한 통치자가 반드시 우수한 행정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설령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낼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한들, 그 역할들을 동시에 해내려면 머리와 손발이 어지러워져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또한 내가 정부수반에 오르게 되면 망명정부의 외교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중국의 압력으로 인해 나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삼가는 국가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구르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서는 외교적인 노력을 빼놓을 수 없는 만큼, 망명정부의 수장 자리엔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오르는 게 바람직하다.」

「고로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전략가이자 정책조언자인 무하디타(여성 하디스 학자)를 후보로 추천하고 싶다. 이는 내가 투쟁에 전념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무하디타 아티카(اطيقه)는 뛰어난 전사이고, 명석한 학자이며, 내가 아는 한 가장 훌륭한 행정가이기도 하다. 나의 판단이 곧 그녀의 판단이고, 그녀의 판단이 곧 나의 판단이다. 그녀가 행정부의 수장이 된다면 나와 내 형제들은 전사로서 지닌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너그러운 자’를 의미하는 아티카는 메리옘이 쓰는 가명이었다.

위구르 디아스포라는 민족의 백마 탄 초인이 직접 출마하지 않는 것에 당황했다.

그러나 내가 샤히디를 통해 풀어놓은 이유들이 논리적이고 합당했으므로, 민족영웅의 고결한 뜻을 존중하여 메리옘에게 표를 던져주었다.

어차피 메리옘이 단독후보로 출마한 선거였기에 다른 선택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리고 메리옘이 인지도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샤히디 그룹의 무하디타는 홍보 채널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해왔고, 예멘에서의 행적 역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 바 있었다. 드러난 행적이 많지는 않았어도, 여성이 지하드에 참여했다는 점과 여성의 몸으로 재판관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 일신의 무용이 심상치 않다는 점 등으로 말미암아 지대한 관심을 끌어모았다.

그리하여 메리옘은 위구르 통합 망명정부의 초대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획득했다. 호사가들은 대통령 취임식에서조차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메리옘의 모습을 두고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았다.

메리옘은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의 원로 독립운동가들에게 그럴싸한 직함들을 하나씩 안겨주었다. 이는 도축을 앞둔 가축들의 가치를 화려한 포장으로 극대화하는 작업이었다.

비록 알림 샤히디가 대통령은 아니어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새로 출범한 정부를 샤히디의 정부로 받아들였다.

「민족의 운명을 건 투쟁엔 마땅히 승리 이후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이제 곧 무하디타 아티카가 위구르 독립국가의 미래와 관련한 중대한 사업을 발표할 것이다.」

통합 망명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했음에도, ‘아티카 대통령’이 아니라 ‘무하디타 아티카’라고 칭하는 샤히디의 태도는 그러한 인식을 강화하는 요소였다.

메리옘은 정부 공식계정을 통해 「세 개의 대동맥」 계획을 발표했다. 수연의 지도하에 조직 본사 전략기획실에서 설계하고 내 승인을 받은 이 프로파간다 계획은, 중앙아시아 각국을 끌어들일 강력한 경제적 유인을 담고 있었다.

「장차 독립할 위구르 국가는 사람과 물류가 흐르는 세 개의 대동맥을 통해 나머지 세상과 연결될 것입니다.」

「첫 번째 동맥은 카자흐스탄의 악타우 항(港)에서 시작하여 위구르 북부 알타이 지역을 지나 몽골 땅으로까지 이어지는 철도선입니다.」

「두 번째 동맥은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멘바시 항(港)에서 출발하여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을 경유하는 경로로 위구르 서부 카슈가르 지역에 도달하는 철도선입니다.」

「세 번째 동맥은 카슈가르를 기점으로 타지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투르크메니스탄·파키스탄을 차례로 연결하는 철도선입니다.」

계획의 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한 후, 메리옘은 ‘그냥 흔한 종류의 장밋빛 미래구상이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듣고 있었을 청중들에게 담담한 어조와 명료한 발음으로 충격을 가했다.

「지금 말씀드린 세 개의 대동맥 계획은 단순한 미래구상이 아닙니다. 우리 망명정부는 이미 계획의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실행방안들과 예산을 마련해두었으며, 그 방안들은 이 발표가 나가는 순간부터 곧바로 착수에 들어감을 알리는 바입니다.」

「우리 정부는 준비가 부족한 독립과 건국으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고통받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의식주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기본적인 의무이지 않습니까? 의식주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생활의 영위가 가능해야 하고,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기반이 마련되어있어야 합니다.」

「세 개의 대동맥 계획은 건국에 앞서 그 기반을 갖춰놓기 위한 방편의 하나입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자주독립을 쟁취하였음에도, 국민들의 입에서 먹고 살기로는 차라리 식민지 시절이 나았다는 말이 나온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준비된 건국을 할 것이며, 국가의 의무를 다할 것이고, 그로써 온 나라 온 겨레가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오롯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메리옘이 즉각적인 착수 방침을 밝힌 사업 구상은, 사실상 샤히디가 내놓은 구상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게 평범한 망명정부의 발표였다면 세계적인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한 뼘의 땅도 가지지 못한 정부가 무슨 허황된 소리를 하고 있느냐며.

아니, 관심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겠지.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알림 샤히디의 능력과 이름값은 이 터무니없이 거대한 계획에 극도의 현실성을 부여하는 요소였다.

20대 대선이 한창인 한국에서조차, 발표 당일과 그다음 날엔 주요 언론들이 대선보다 더한 비중으로 소식을 다룰 정도로.

「교수님. 이 계획이 정말로 실현 가능하리라 보시나요?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한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 실현 가능성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알림 샤히디와 위구르 통합 망명정부에겐 그럴 만한 능력이 있어요. 지금의 지지세와 영향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자금 공급에도 문제가 없겠지요. 참여 대상인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겐 제법 매력적인 계획입니다.」

「와. 정말로요?」

「각국이 깔아놓은 기존의 철도노선들이 있기 때문에, 신규로 건설해야 하는 구간은 의외로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첫 번째 대동맥 같은 경우엔 80% 이상 완성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거든요. 이미 운영 중인 유라시아철도 북부횡단노선과 경로가 많이 겹쳐서 그렇습니다. 중국이 여기에 투자를 많이 했지요. 궤간가변 대차설비도 잘 갖춰져 있고요.」

「아하.」

「물론 남은 20%를 건설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프로젝트이긴 합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빈약한 경제력으로는 말 그대로 국운을 걸어야 추진이 가능한 규모예요.」

「그런데 두 번째랑 세 번째 동맥도 있잖아요?」

「맞습니다. 제가 통합망명정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세부 시행계획을 살펴보니, 뒤로 가면 갈수록 실현 난이도가 올라가는 계획들이더군요.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더 어렵고,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가 더 어렵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어려운 거죠?」

「일단 두 번째 동맥 같은 경우는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구간의 건설 난이도가 높습니다. 그쪽은 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악 지대인데, 깔아야 할 노선의 길이가 거의 8백 킬로미터에 달해서요.」

「산악 지대라면 스위스 같은 환경이겠네요?」

「아니요, 아니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지형이 비슷하긴 합니다만, 바크쉬 강의 물길을 따라 비교적 완만하게 올라가는 경로인지라 광궤 철도를 깔더라도 어찌어찌 극복 가능한 경사도가 나올 거예요. 문제는 그럼에도 평지에 노선을 까는 것보다 비용이 다소 비싸게 든다는 점입니다. 협곡의 측면을 파서 철길을 내야 하는 난공사 구간도 있고 말이지요.」

「그럼 세 번째 동맥은 어떤가요?」

「세 번째 동맥이 가장 어려운 계획입니다. 타지키스탄이야 두 번째 동맥의 결과물을 공유하니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북부 아무 다리야 강 유역은 지형이 평탄해서 투르크메니스탄과 연결하기도 쉽습니다. 한데, 아프가니스탄을 분기점 삼아 파키스탄까지 내려가는 건, 글쎄요……. 이건 계획의 나머지 부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어려운 과업입니다.」

「그런데도 교수님은 이게 가능하리라고 보신다는 거잖아요?」

「저는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샤히디 정부의 자금동원능력은 감탄이 나오는 수준이니 말입니다. 이 세상의 웬만한 일들은 보통 돈만 있으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까?」

방송에 출연한 교수의 말처럼, 내가 공들여 완성한 꼭두각시의 자금동원능력은, 외적으로 출처를 공개할 수 있는 부분들의 합계만으로도 어지간한 약소국의 GDP를 능가할 만큼 성장했다.

교수는 그 합법적인 자금의 출처들 가운데 하나를 언급했다.

「제가 알기로 알림 샤히디의 민간 기부금 수익이 누적으로 50억 달러를 넘어섰고,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아, 기부금…….」

「음? 표정이 뭔가 이상하십니다?」

「하하.」

어색하게 웃어 보인 여성 진행자는 자신도 약간의 기부금을 넣었다고 밝혔다. 진행자가 조금 부끄러워하는 태도로 하는 말에, 물끄러미 바라보던 교수는 곧 이해했다는 듯이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알림 샤히디가 잘생기긴 했지요?」

「아니,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식민통치를 겪어본 나라의 국민으로서 위구르 사람들에게 동병상련이 느껴져서-」

「그렇겠지요, 그렇겠지요. 늙은이가 농담 한번 해봤습니다.」

메리옘과 마찬가지로, 알림 샤히디는 본디 공산귀족과 공산자본가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상등품의 노예다. 그런 노예가 준수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아름다움에 취약하다.

샤히디의 외모는 마케팅과 프로파간다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요소였다. 같은 성능을 지닌 제품이라도 디자인이 좋은 쪽이 더 선호되고, 같은 위업을 이룬 영웅이라도 외모가 훤칠한 쪽이 더 많은 인기를 구가하는 법.

여기에 샤히디의 평화 지향적 행보와 진보적인 언행들이 더해지자, 세계적인 지지 모금은 들불 같은 기세로 확산되었다.

나는 샤히디를 조종하여 명예살인이나 여성할례와 같은 이슬람 세계의 악습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담화를 내놓도록 했으며, 이는 소위 ‘자유세계의 진보진영’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 담화들이 즉각적인 변화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비 이슬람 문화권의 자발적인 후원자들은 입을 모아 외쳐댔다.

「다른 단체에 기부하는 백만 달러보다 샤히디에게 기부하는 1만 달러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우리의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놓는다!」

여기에 이슬람 세계에서 모이는 기부금까지 더해진 결과가 바로 민간 기부금 누적수익 50억 달러 돌파였다.

나는 때때로 내 자금을 민간 영역의 기부금으로 세탁하여 공급했다. 알림 샤히디에게 들어오는 기부금이 항상 일정한 성장세와 적은 기복을 보이게끔 꾸며놓은 것이다.

특정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의 자금흐름이 안정적이면 안정적일수록, 그 사업은 잠재적 투자자들과 참여자들 모두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어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자금의 출처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망명정부의 대통령으로서 내 지시를 받은 메리옘은, 대대적으로 국채를 발행하는 동시에 전 세계 대형 투자기관들의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의 담보물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대동맥 계획에 따라 건설할 철도의 지분.

다른 하나는 장차 독립할 위구르 국가의 다양한 지하자원 채굴권.

마지막 하나는 독립 후 불하(拂下)가 예정된 적산(敵産/적의 재산)들- 즉 중국이 위구르 땅에 건설해놓은 각종 시설과 인프라의 소유권 내지는 최우선 입찰권이었다.

투자기관들이 파견한 대표자들은, 망명정부 관계자가 동석한 자리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성사진을 들여다보며 “이 공장은 얼마, 저 발전소는 얼마, 그 공항과 터널은 얼마…….” 하는 식으로 담보가치를 산정했다.

가치산정 자체는 헐값에 후려치는 수준이었으며, 이율도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아직 독립하지도 않은 나라의 적산을 담보삼아 대출을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전례가 없는 파격이었다. 이는 세계적인 투자기관들이 샤히디의 신용과 상환능력을 고평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구르 독립의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다는 뜻.

거짓 대자들에게 듣기로, 중국 주석은 이러한 정황을 보고받고서 혈압이 올라 쓰러질 뻔했다고 한다. 가까스로 졸도를 면한 다음에는 불같이 화를 내며 날뛰었다고.

「어떤 놈들이 투자를 했는지 찾아내! 당장 찾아내서 제재를 가하란 말이야!」

주석의 광란에도 불구하고 실제 제재는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이런 방면으로 도가 튼 투자기관들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와 익명조합을 설립하여 투자금을 집행했고, 이 과정엔 백악관과 CIA의 격려 및 조력마저 있었던 까닭이다.

백악관 미치광이가 적극적으로 나선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뇌물.

둘째는 철도건설 및 주변지역 개발사업 입찰시 당신이 지목하는 미국의 기업들을 선정해주겠다는 밀약.

셋째는 터키의 독재자가 당신 앞에서 ‘굽실거리게’ 만드는 데엔 세 개의 대동맥 계획이 필수적이라는 설명.

추적이 어디서 막히는지 보고받은 중국 주석은 노호했다. 당장 미국 주요 투자기관들의 불투명한 자금운용을 정지시키고, 공포조직(테러조직)에 자금을 대는 부도덕한 배금주의자들의 실체를 밝히는 데 미국이 협조를 해야 한다고.

백악관 브리핑 룸에서 관련된 질문을 받은 미국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반문했다.

「내가요? 그걸요? 왜요?」

그러고 나서 미치광이는 호통을 치듯 포효했다.

「미국 대통령인 내가 미국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으라고? 물증도 없는 불확실한 혐의만 가지고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요구입니까? 중국 공산당은 자국 내에서의 불한당 짓이 자국 밖에서도 먹힐 거라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위대한 국가인 미국은 결코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을 테니까요! 내 정부에게는 협박이 통하지 않아!」

미국 대통령의 언행을 모니터링하는 프로파일링 팀의 보고서를 보건대, 대통령의 자아는 순조롭게 비대함을 더해가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정치지도자이자 상남자(Badass)로서의 자신에게 도취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빛은 어둠과 대조를 이뤄야 한다.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빛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불량국가들을 어둠으로 규정하고 있는 듯했다. 표면적인 상황만 놓고 보면 그것이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기도 하다.

나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맥팔란드는 같은 맥락의 불평을 농담처럼 입에 담기도 했다. 참모들과 실무자들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데, 대통령 혼자 직업만족도가 최상을 찍고 있다고.

수연은 말했다.

“중요한 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알림 샤히디 중심의 질서를 받아들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게 종교적 명예와 군사적 안보만이 다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말이지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내가 메리옘을 통해 던진 메시지를 가볍게 흘려듣지 않았다.

나는 이 국가들을 끌어들이는 데 긴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 없었다.

흔들리는 중앙아시아 각국 정부들의 마음에 쐐기를 박은 것은, 미리 논의와 준비가 되어있었던 그레이스의 후속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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