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전쟁의 기반 (8)
미국은 샤히디의 중앙아시아 성전이 하루라도 빠르게 개시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제껏 중국을 남쪽에서 견제해주던 인도가 내부적인 문제의 심화로 더는 제 역할을 해주기 어렵게 되어버린 까닭이었다.
인도 동북부 「일곱 자매 주(州)」의 반란은 해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소수민족들의 거주 지역으로서 오랫동안 인도 제국주의의 압제를 받아온 일곱 개 주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총성이 울려 퍼지고 사람과 마을을 태우는 불길이 솟구쳤다.
그럼에도 인도는 작년 말엽까지는 어찌어찌 중국과의 국경분쟁을 이어왔다. 국지적인 분쟁에 투입해야 하는 병력의 규모가 썩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양국이 지배권을 다투는 지역은 대군의 싸움 자체가 불가능한 험지이기도 했다.
대대적인 반란에 시달리는 인도라도 이 정도 분쟁쯤은 남는 힘으로 감당할 만하다. 다만, 전면전의 가능성으로 붙잡아두었던 중국 남부의 군사력이 상당 비율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재배치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을 따름.
그러나 인도 북부에서 터진 원숭이들의 전쟁이 상황을 바꿔놓았다. 인도가 일시적으로나마 국경에서 완전히 병력을 물려야 할 처지에 직면한 것이다.
인도 북부엔 오래전부터 원숭이 신 「하누만(हनुमान्)」을 섬기는 신앙이 널리 퍼져있었다. 이 신앙은 마법이 돌아온 세상에서 중흥을 맞이했고, 주민들은 전쟁을 일으킨 두 원숭이 왕국의 우두머리들을 서로 다른 하누만의 화신으로 여겼다. 종교적 믿음으로 인해 함부로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한쪽의 우두머리 각성체는 「카페쉬와라(कपीश्वर)」라는 이름을, 다른 한쪽의 우두머리 각성체는 「바즈랑 발리(वजरांगबाली)」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자는 원숭이들의 군주라는 뜻이고, 후자는 강한 자라는 의미의 신명(神名)이었다.
두 거대 원숭이 집단이 벌인 전쟁의 본질은 영역다툼이었다.
인도 북부의 원숭이들은 힌두교 신자들이 하누만 신에게 봉헌하는 음식을 받아먹는 데 익숙하다. 인간들이 신에게 바치는 음식은, 북부의 원숭이들이 여러 주에 걸쳐 백만 이상의 개체수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극심한 불황의 여파로 사원을 통한 식량 공급이 줄어들고, 먹이를 나눠주던 관광객들의 발길 역시 끊어짐에 따라, 굶주린 원숭이들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일이 북부 곳곳에서 연속적으로 목격되고 있습니다.」
인도에선 작년 초부터 이런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비단 인도만이 아니라 인간과 원숭이의 생활권이 겹치는 나라들이라면 예외 없이 비슷한 일들을 경험했다.
고위험 수렵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드문 일감이자 화젯거리였다.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개중에서도 인도 발(發) 소식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싸움이 잦아지면 싸움과 관련된 발전과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각성체 원숭이들이 얻은 원시마법은 이러한 변화를 증폭시키는 요소였다.
원숭이들은 세력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유례없이 거대한 규모의 무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큰 무리는 더 많은 식량 수요를 의미하지만, 그건 무리의 규모에 비례하는 영역을 확보하면 어떻게든 해결되는 일이었다. 그 영역엔 당연히 인간들의 거주지가 포함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류는 원숭이들이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보호세’를 갈취하는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본 뉴스 영상 속에서, 무리를 지은 원숭이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민가의 문이나 창문 따위를 텅텅 소리가 나도록 두드려댔다. 안에 있던 주민이 문을 열면, 원숭이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바구니 따위를 척 내밀었다. 먹을 것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내놓는 양이 시원찮으면 원숭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웠다.
「끼에에에에엑-!」
음식 내놓기를 끝까지 거부하면 각성체 원숭이들이 몰려와 추가로 행패를 부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했다.
갱스터를 연상케 하는 보호세라는 표현은 인도 언론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었다. 여기서의 보호란 ‘적대 진영 원숭이들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고.
그런데 이게 일곱 자매 주의 반란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굉장히 해괴한 화학반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일곱 자매 주에 배치된 인도 보안군이 언제나와 같이 현지인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살랐더니, 자기들에게 식량을 바치던 마을이 파괴당하는 꼴을 본 원숭이들이 인도 보안군을 적성집단으로 인식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농담처럼 말해온 보호비가 진정한 의미의 보호비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소수민족 거주지들을 초토화하고 다니던 보안군 부대들이 원숭이들의 기습과 야습을 받아 피해를 입는 일이 반복되자, 소수민족 주민들은 하누만 신의 은총에 열광했다.
「저 미친 학살자들이 받게 된 응보를 봐라! 원숭이 왕들이 인도 정부보다 낫다!」
단지 원숭이들만이 상대였다면 보안군이 고전할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험준한 산악지대와 울창한 우림지대에서, 중국의 암중 지원을 받는 반란군과 성난 각성체 원숭이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보안군은 바즈랑 발리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나, 그 무리는 와해되지 않았다. 「마하카야(महाकाया)」라고 명명된 2인자 각성체 원숭이가 죽은 바즈랑 발리의 빈자리를 곧바로 채웠을 따름.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대, 마하카야는 전대 우두머리가 시작한 싸움을 계승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인도 보안군 측이 뒤늦게 먹이를 제공하며 시도한 회유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미 피를 볼 대로 본 원숭이들의 분노는 먹이를 주는 정도로는 풀리지 않았다.
당장 굶주리고 있다면 모를까, 일곱 자매 주의 주민들이 전보다 더 많은 식량을 기꺼이 내놓는 상황에서, 동물의 원한을 먹이로 풀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요즘은 도구 쓰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애쓰고들 있다지.’
원숭이들의 열대우림을 자유로이 오가는 반란군들은, 원숭이들에게 날붙이나 원시적인 투창기(아틀라틀) 따위의 사용법과 가치를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원시적인 투창기라고 해봐야 위에 창을 얹어놓고 던지듯 내뻗기만 하면 되는 물건이지 않은가. 이 정도면 원숭이들이라도 사용법을 익힐 만한 도구다.
전쟁이라는 개념을 빠르게 체화하는 중인 원숭이들은 인간들이 공급하는 원숭이 사이즈의 날붙이와 투창기의 가치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는 음식과 함께 날붙이를 보호비로 걷어가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광저우에서 드론을 격추시키고 헬기의 동체에 꽂히던 투창들을 떠올려 보면, 일곱 자매 주 반란군들의 시도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샤히디의 중앙아시아 성전이 앞당겨지기를 바라는 CIA 요원에게 사탕을 던져주었다.
“인도가 처한 난국 때문에 고민이 있는 듯한데, 그건 내가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구려.”
「약간의 도움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중국이 일곱 자매 주의 반란을 직접적으로 유도하고 지원했다는 물증이 있소. 중국 내부에서 새어나온 기밀문서들이지. 일부를 보내줄 테니 맛보기로 살펴보시겠소?”
내가 가지고 있는 기밀문서들은 예전에 한국 정부와 계약을 맺고 탄자니아로 출장을 갔을 때, 세 거짓 대자 중 하나인 판하이산이 내 총애를 사겠답시고 알아서 가져다 바쳤던 바로 그 자료들이었다. 마무르가 일면식도 없는 한국인 헌터에게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어 현지 수감시설에 들어가 있었을 즈음의 일.
당시엔 기회가 닿으면 팔아넘겨야지, 라고 생각했던 정보인데, 그 기회가 이렇게나 자연스럽고 절묘하게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CIA 시니어 매니저 맥팔란드는 내가 즉석에서 전송한 샘플 문서를 확인한 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께서는 대체 정체가 뭡니까?」
나는 담담하게 대꾸해주었다.
“뭘 새삼스럽게. 그저 이익을 좇는 기업가일 뿐이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생존 역시 개인이 추구하는 이익이라고 할 수 있으니.
국안부의 기밀문서들을 지렛대 삼아, 나는 CIA 요원을 상대로 영국에 관한 정보를 흥정했다.
맥팔란드는 영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했다. 자신의 업무영역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정보들이었으니까. 다만 내가 바란다면 랭글리(CIA 본부 소재지)에 적정선의 정보공유를 요청해줄 수는 있노라고 답했다. 여기서의 적정선은 물론 내 동기와 CIA의 기대이익에 따라 달리 정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납득 가능한 동기를 제시해야 했다.
“알다시피 나 같은 장사꾼들은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폭력과 무질서가 팽배한 곳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법이오.”
나는 내가 구축해온 이미지에 맞춰 명분을 골랐다.
“하물며 영국처럼 부유했던 나라가 그 꼴이 났다면 더더욱 그렇지. 당신들이 공유해주는 정보는 내가 거기서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상품을 발굴해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요.”
「단지 그뿐입니까?」
“단지 그뿐이오. 나는 이제껏 당신들이 지불한 선수금 이상의 가치를 돌려주었다고 자부하는데, 이쯤 되면 그쪽도 받은 만큼 뭔가를 내주어야 합당하지 않겠소? 가장 좋은 건 역시 정식계약을 앞당겨 체결해주는 것이지만, 그건 보나 마나 어렵다고 할 테지.”
마지막에 덧붙인 마음에도 없는 말은 내가 의도한 반응으로 되돌아왔다.
「정식계약은…… 조금 더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1억 달러의 선수금을 급하게 당겨쓰는 것만으로도 큰 무리가 있었으니까요. 정식 심사절차를 우회하면서 9억 달러의 추가금을 조달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하오.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당신들은 공무원이잖소. 그러니 기브 앤 테이크로 균형을 맞추자고 하는 거요.”
「흠.」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숙려해보시오. 나는 언제나 당신들이 생각지도 못한, 그러나 당신들에게 꼭 필요한 이익을 알아서 찾아다 가져다줬지. 아니 그랬소?”
「그랬지요. 인정합니다.」
“그게 내가 내 고객들을 관리하는 방식이오. 나는 언제나 내 고객들과 이익을 공유하고, 그것이 내 성공의 비결이지.”
CIA 시니어 매니저는 내가 내놓은 구실을 납득했다.
「당신의 요청은 긍정적인 의견을 첨부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답이 오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아, 그 전에-」
“그 전에?”
「요청이 승인되고 나면, 영국 내 인신매매 시장에 진입해서 정보를 수집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신매매 시장에?”
「예. 다른 부서의 지인에게 듣기로는, 높으신 분들께서 그쪽으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계신다더군요. 그 관심의 정도에 비해 들어오는 정보가 부족해서 고역이라고도 하고. 만약 이름 없는 회사가 정보 수집을 도와주겠다고 하면 승인이 보다 쉽게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 상층부와 CIA가 영국 내의 인신매매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당연히 인도적인 차원의 관심 따위가 아닐 것이다.
‘영국이 또 뭔가 흉악한 걸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과 걱정이겠지.’
공중전투함의 재료가 인간이라는 의혹은 세간에선 거의 기정사실로 통하는 분위기였다. 도쿄 대공습 당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조립식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이 확보한 피고름 샘플의 DNA 분석결과를 공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입장에선 미국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을 터이나, 다른 걸 다 떠나서 미국이 영국을 확실하게 손절해주지 않으면 상임이사국 진출도, 영토 확장의 대망도 이루기가 어렵다. 어차피 DNA 샘플 분석만으로는 딱히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만큼, 차라리 데이터를 공유해서 미국을 확실한 한편으로 끌어들이는 쪽이 이득이다.
애당초, 공유를 안 해준다고 모르고만 있을 미국이 아니기도 하고.
나는 제안을 받기 전에 슬쩍 한 번 튕겨주었다.
“우리가 직접 시장에 진입하는 건 조금 곤란하군.”
「어째서입니까? 그동안 확인한 이름 없는 회사의 역량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판단했습니다만…….」
“능력과는 별개의 문제요. 내가 절대로 사고팔지 않는 상품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마약이고 다른 하나가 사람이거든. 이것들은 그저 취급하는 것만으로도 조직문화의 건전성을 중대하게 저해하는 유해한 상품들이기 때문이지.”
내 말을 들은 맥팔란드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조직문화의…… 뭐라고요?」
“조직문화의 건전성이라고 했소. 기강, 기율, 상식에 기초한 이성적인 사고능력, 조직 내의 자정능력, 소속감, 동료·상사·하급자와의 유대감, 조직의 견실함과 합리성에 대한 조직원들의 신뢰, 수직·수평적인 소통의 효율성 등,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조직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비물질적인 요소들.”
「…….」
“사람을 상품으로 다루기 시작하면 이것들이 쉬이 망가지게 되어있지. 인신매매를 통해 얻는 물질적인 이득보다 더 큰 관리비용이 발생한다, 이 말이오.”
화상 속의 맥팔란드는 뜸을 들인 끝에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얼굴로 드러냈다.
「회장님께서는 정말이지…… 굉장히 특이한 분이시군요.」
“칭찬으로 듣겠소.”
「그럼 이건 거절하시는 겁니까?」
“글쎄. 우리가 직접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연줄을 통해 음지의 정보를 수집하는 정도는 가능할 듯하오만. 그것만으로도 당신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거요.”
「일단 알겠습니다. 보고서에는 지금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적도록 하지요.」
맥팔란드와의 통화는 이걸로 끝이었다.
굳이 CIA와의 협력이 아니더라도 영국 내에 눈과 귀를 두고 있기는 했다.
우선은 거짓 대자들이 내게 열어준 국안부의 첩보망이 있었고, 수연의 감독 하에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거점들이 있었으며, 그레이스가 내게 공유해주는 칠각기사단의 정보망은 특정 분야에선 국안부의 첩보망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스코틀랜드 야드(런던 경찰청)의 심장부에까지 악마숭배자들이 침투해있을 정도니까.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영국은 지금 피를 흘리지 않는 내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무대가 국내로 한정된 비밀스러운 냉전이자 적대적인 상리공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당초 나는 영국의 현 정권이 동반승천 카르텔에 의해 ‘구국의 결단’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국 총리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비록 다우닝가 10번지를 비워두고 소재불명의 벙커에 처박힌 채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긴 하나, 한때 탄핵마저 거론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높은 확률로 영국 총리가 정계와 군부, 그리고 경찰 내부에서 확실한 아군을 가려내어 자신의 수비 진영을 확실하게 굳혔음을 의미했다.
아직 질기게도 살아있는 영국 여왕 역시 전면으로 나서서 현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처음에는 의심이 있었다.
영국 총리가 남모르게 욕받이 꼭두각시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영국 여왕도 원탁과 한패가 된다. 무력화한 총리를 그대로 자리에 앉혀둔 채 시민들의 증오를 현 정권에게 집중시키고, 증오의 열매가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동반승천의 카르텔이 새로운 얼굴마담들을 내세워 정권을 전복시키면,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은 새로운 정권에 희망을 걸고 환호를 보낼 터.
이 방법은 영국의 외교적 고립을 해소하는 데에도 일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의심을 7할쯤은 내려놓았다.
‘놈들이 영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내부단속을 완료했으면 도쿄 앞바다로 뭐라도 보냈겠지.’
지난 중재 제의를 치를 때 그레이스와 나는 원탁의 하수인들이 테러를 가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었으나, 그레이스가 일본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원탁의 하수인-혹은 대마법사의 피조물-따윈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원탁의 입장이었으면 정말 뭐라도 해봤을 것이다. 그레이스가 주술의 장막 바깥에서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노출시키는 일이 언제 다시 있겠는가.
이 시점에서 나는 3할의 의심을 남겨둔 채 속으로 자문해보았다.
과연 지금의 영국 총리에게 원탁과 힘의 균형을 유지할 방법이 있는가?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