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전쟁의 기반 (4)
보소반도 남쪽 해상에서 원을 그리는 혹등고래들의 수는 정오 무렵에 2천을 돌파했다. 여기엔 각성체들의 도움을 받아 마법적인 급류를 타고 온 비각성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카메라를 든 다이버들은 거대한 수중생명체들의 장엄한 군무를 홀린 듯이 촬영했다.
키요우타마히코가 다이버들의 카메라 앞을 대놓고 지나다녔지만, 다이버들은 누구 하나 이 악명 높은 바다괴물을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지난날 내게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개체 식별의 단서가 될 만한 피부의 흉터들이 모두 지워져버린 탓이었다.
내가 인간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한 이후로는 키요우타마히코 특유의 공격신호, 즉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호곡을 노래하는 일도 없어졌다.
내 생각엔 이러한 변화가 꼭 내 부탁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도쿄 공습으로 어느 정도 한이 풀리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생명을 빚진 상대의 부탁이라도 들어줄 리가 없잖은가.
고래들의 움직임을 관리하는 데엔 별로 많은 품이 들지 않았다. 나는 남는 여유를 이용해 최근 완성한 무장(武裝) 아티팩트의 운용 실험을 해보았다.
실험 상대는 키요우타마히코.
나는 키요우타마히코와의 간격이 50미터 이내로 줄어들었을 때, 수중을 오가는 카메라들의 사각지대에서 아티팩트를 최대출력으로 활성화시켰다.
「쉭-!」
물이 갈라지는 자그마한 소리. 내 소매 안에서 강맹한 염동력을 품고 쭉 뻗어간 가느다란 흑색 선이 키요우타마히코의 마력장을 뚫고 들어간다. 거의 광선이 그어지는 듯한 속도였다.
그러나 가늘고 새까만 광선의 끝부분은 고래의 몸에 가까워질수록 느려지다가, 대략 20미터쯤 남겨둔 지점에서 힘을 잃고 흐늘흐늘하게 늘어졌다. 일정 지점까지는 꼿꼿하게 유지되고 있는 나머지 부분들과는 대조적이었다. 나는 사출했던 검은 선을 다시 회수했다.
‘역시 안 되나.’
예상한 결과였으므로 딱히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검은 선의 정체는 탄소나노튜브 재질의 절삭(切削) 와이어였다. 이 와이어의 기능은 단 하나. 내부에 내 염동력을 품고 움직이는 것.
여기에 부여한 마법은 로더필드의 창에 부여되어있던 마법을 연구하여 개량한 결과물이었다.
소유자의 염동력을 받아 창에 채워 넣을 뿐인 아주 단순한 마법은, 기능적으로는 단순할지 몰라도 완성도면에서는 대마법사의 격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로더필드가 라일라의 마력장 내부로 창을 찔러 넣으면서도 창끝까지 불어넣은 염동강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내게 냉병기를 쓰는 취미 따윈 없다.
그러나 절삭 와이어에 같은 유형의 마법을 부여한다면, 사정거리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소프트 타겟(Soft target)들을 간편하게 가르거나 난도질해버릴 수 있을 터였다. 다른 마법장의 경계를 침범하지 못하는 염동력을 훨씬 효율적으로 공격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나는 단 한 번의 사출로 실험을 종료했다.
‘대마법사를 상대로는 쓸모가 없다고 봐야겠어.’
키요우타마히코의 마력장은, 마력회로에 과부하를 걸지 않은 상태에서조차 회로의 출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대마법사를 근소하게 능가하는 수준이다.
다만 마소에 대해 발휘하는 장악력은 회로 운용의 효율과 정교함에도 영향을 받는 것이라, 마력장의 크기가 대마법사 이상이라 한들 그 안쪽에서 발휘하는 장악력은 대마법사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즉 내가 새롭게 제작한 무기는, 대마법사를 상대로는 그냥 가느다란 실 한 가닥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마법사가 마력장을 한껏 억제하고 있는 상태라면 또 모를까.
원조인 로더필드가 자신의 무기를 창의 형태로 벼려낸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굵은 창대는 가느다란 와이어보다 수백 배는 더 효율적인 마력의 흐름과 마법 유지능력을 보장하며, 근접전의 간합(間合)을 유지하니 마법의 침투거리도 짧게 유지된다.
이 말을 들었을 때의 경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애초에 대마법사가 그렇게까지 근접전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입니다…….”
나는 대꾸했다.
“그놈의 이성은 광기의 시녀였을 뿐이다. 칼 든 적을 보자마자 발기부터 하는 미치광이에게 뭘 바라나.”
“그거 혹시 형님과 싸울 때의 이야기입니까?”
“그래.”
“이런 젠장. 잘 죽었네요, 그 인간.”
어쨌든, 내가 부여한 마법은 로더필드의 것보다 크게 향상된 것이었다. 마도서 봉쇄수도원에 저장된 콜리어의 지식은 내 낮은 아티팩트 제작능력을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마도서 자체도 제작 보조도구로서 훌륭한 기능을 발휘했다.
염동 절삭 와이어가 대마법사를 상대론 무력하다고 해도, 내가 직접 쓰는 게 아니라 페르 아스페라의 부무장으로 삼을 경우엔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과연 다른 방비를 갖추지 않은 상태의 대마법사를 사정권에 넣을 일이 있을까 싶기는 해도.
물 위에서 진행 중인 중재 제의는 슬슬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제의를 진행하는 장소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실질적인 기함 역할을 하는 배, 헬기 탑재 호위함 「이즈모(いずも)」의 넓은 비행갑판 위였다.
이즈모는 본디 항공모함으로의 개수가 예정되어있던 함선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이 커다란 첨단 전투함을 시현하는 것은, 일본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어줌과 동시에 일본의 해군력이 아직 유의미하게 남아있음을 과시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해상자위대가 막대한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세계 10위권 이내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이즈모의 항공모함 개수가 예산 문제로 보류된 것, 그리고 자매함인 「카가」가 일찍이 구레(呉) 군항에서 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것에 가볍고도 부질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개수가 예정대로 이루어지고 2번함까지 남아있었다면, 영국을 공격할 때 제법 유용한 패가 되어주었을 텐데.’
일본은 상임이사국이 된 후 영국과 전쟁을 벌일 준비를 벌써부터 착실하게 갖춰나가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아예 참전을 이끌어내겠다는 예의 계획 역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경태는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대영전선 다국적 연합군의 전모에 당혹감을 표했었다.
“저는 아무리 형님의 계획이라도 ‘에이, 이것까지는 좀 어렵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게 진짜로 되네요.”
어느 정도는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일이 아주 잘 풀려야 여기까지 가능하리라 예상했으니까.
“한중일 연합군…… 아니, 일본이 중심이니까 일한중 연합군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동아시아 3국의 연합군 결성이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조금 이상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뭐지? 코스믹 호러인가?”
당장 이즈모의 갑판 위 귀빈석엔 한국과 중국의 정부·군사 관계자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을 비교하면 한국에게 배정된 자리가 배 이상이었다. 총리가 구상하는 군사협력의 규모가 한국 쪽이 더 컸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군사협력을 일정 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건 한국보다 더 큰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일단 최우선 동맹국인 미국의 심기를 살펴야 하고, 일본의 미래 국익을 저해할 가능성도 높으니까.
말이 연합군이지, 중국군의 직접적인 참전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잘해봐야 수송 및 군수지원을 보조하고, 정보·정찰자산을 제공하는 정도가 고작이지 않을까?
이나마도 미국 대통령이 미친 인간이라 상정할 수 있는 최대치다.
미국과 유럽 정계는 오래 전부터 중국·일본·한국 세 나라가 EU와 같은 정치·경제공동체를 구성하는 상황을 경계해왔다.
그리고 일본은 2010년, 그러니까 민주당 집권 시기에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계획을 진지하게 추진한 전적이 있었다. 미국에 대한 군사·외교적 의존도를 낮추고, 국제질서를 미국-유럽-동아시아 3극 체제로 바꾸어 일본의 이익과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중국이 본격적으로 지랄을 떨기 시작하면서 폐기되었으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미국과 유럽이 경각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일본이 제정신이라면 하지 않을 짓이긴 해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은가.
그러나 이에 관한 질문을 받은 백악관의 미치광이는, 평소와 같은 자본주의적 광기를 비속어에 담아 짧게 답했다.
「큰 단일시장! 이익도 존나게 크겠지(fuckingly huge)! 벌고 투자한다! 나는 미국 기업들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이다!」
대통령의 사위를 제외한 백악관의 참모들은 이번에도 대통령의 미친 발언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잇따른 성공들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 대통령은, 설령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출범하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미국의 국력으로 얼마든지 유리한 협상이 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국인들은 제정신을 유지하는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에 의해 민주주의적 견제장치들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이번 행사에서 해상자위대의 공식 깃발인 욱일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본디 욱일기가 있어야 할 자리엔 일장기가 대신 나부꼈고, 그 외엔 보라색 바탕에 벚꽃 다섯 개를 수놓은 내각총리대신기, 네 개의 벚꽃 아래 푸른 닻을 그린 해상막료장기가 걸려있을 뿐이었다.
귀빈석에선 전임 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건강문제로 퇴진한다고 밝혔던 전임 총리는 정정한 모습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안정적인 회로를 보유한 이중각성능력자가 되었으니 그야 정정할 수밖에. 운이 참 좋은 인간이다.
전임 총리는 엄숙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때때로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조심스럽게, 그러나 딱딱하지는 않은 느낌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언뜻언뜻 입가에 스쳐 지나가는 미소가 그 증거였다.
나는 현직 총리가 전임자에게 무엇을 부탁했는지 알 것 같았다.
‘결자해지겠지.’
전임 총리는 재임기간 내내 한국과 악감정을 많이 쌓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런 인물이 지금이라도 한국에 친화적인 언행을 보여준다면, 설령 그게 국익 때문이라는 게 뻔히 보인다 한들, 결과적으로는 외교관계엔 긍정적인 요소로서 작용할 터였다.
현직 총리 고이즈미와 전직 총리 아베는 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아베는 근래 여러모로 고이즈미를 돕고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고자 사사로운 감정은 내려놓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전임자가 이제야 후임자를 인정하게 된 것인지는 불확실했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잘된 일이었다. 아베가 후임자를 돕는다는 건, 일본 자민당의 최대파벌(세이와 정책연구회)이 현임 총리를 지지한다는 뜻이니까. 일본 같은 유사민주주의 국가에선 당내 파벌의 지지가 국민의 지지보다 더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모두 질서를 지켜 분향과 배례에 임하여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모두 질서를 지켜 분향과 배례에 임하여주십시오.」
이즈모의 선상방송이 귀에 들어온다.
내가 치료를 하는 고래 환자들은,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유산소 잠수한계(Aerobic Dive Limit), 즉 잠수시간의 통상적인 한계가 임박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고래들의 마력장에 내 존재감을 은닉한 채로 치료를 진행하려면 수압이 낮은 환경이 더 좋기도 하여, 나는 가급적 얕은 심도에 머물며 치료를 진행하다가 고래의 호흡이 다하면 수면으로 부상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이 자리에서 치료가 곤란한 질환, 예컨대 위장에 쓰레기가 차서 생기는 소화불량처럼 개복수술이 불가피한 경우는 나중에 다시 보자고 일러주었다.
수면으로 부상할 때마다, 해상에선 여지없이 일본어 방송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음파감지에 도가 튼 고래들은 물을 뚫고 들어오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고도 일본어의 특징을 쉬이 식별해내는 모양이지만, 그건 내게는 불가능한 재주다. 아무리 대마법사라도 종의 차이를 극복할 순 없다.
그동안엔 바다에서의 일본어 사용이 절대적인 금기로 통해왔다. 고로 지금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커다란 음량의 일본어 방송은 그 자체로 주술사 왕의 의식이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요소였다.
방송은 행사의 진행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의식에 참가한 일반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용도로도 이루어졌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우리가 저질러온 잘못들을 부디 용서해주세요!」
울먹임 가득한 소녀의 목소리가 파도 위로 메아리친다. 이즈모의 갑판 위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일본 시민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정작 고래들은 자꾸만 이어지는 시끄러운 울림을 성가셔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스트레스의 강도는 대단치 않았다. 군용 능동 음파탐지기(액티브 소나) 및 어군탐지기의 음파에 비하면, 사람 목소리를 담은 확성 방송쯤은 시시한 소음에 불과하다.
비행갑판 위의 귀빈석은 제의가 갓 시작되었을 무렵엔 거의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빈자리들이 채워진 건 수상방송이 진행되는데도 고래들이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확실하게 확인한 다음이었다.
그래도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고용된 각국의 최정예 헌터들이 유사시 VIP들의 긴급탈출을 도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참석자들 중에 국가원수급 인물은 단 한 명도 끼어있지 않았다.
「이 자리를 지켜보고 계실 위대한 와다츠미께 기원합니다! 우리를! 일본을 용서하여주십시오! 무엄하게도 당신의 화신을 욕보인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십시오! 비록 늦었지만, 온 일본 열도의 마음을 모아 진심으로 사죄드리나이다!」
이즈모의 비행갑판 가장자리엔 지그재그로 접힌 하얀 종이, 고헤이(御幣)들이 수도 없이 매달려 바닷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분향과 배례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즈모의 격납고 외에도 이즈모와 나란히 정박한 여객선에서 만 단위로 대기 중이었다. 사전에 철저한 신원검증을 거치고 거기서 다시 몇 번을 더 걸렀는데도 이런 숫자가 되었다고 들었다.
긴 기다림 끝에 자기 순서가 돌아온 이들은, 그레이스를 가운데 두고 원형으로 배열된 신단(神棚)의 황금향로에 말향(抹香)을 부어넣었다.
그다음엔 여느 일본의 신사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2례 2박 1례(二礼二拍一礼)를 바쳤다. 그레이스가 “너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진심을 담기만 하면 된다. 남은 형식은 짐이 갖추겠다.”라고 말한 까닭이었다.
야스쿠니 선녀 하세카와 아키코는 일본 주술계의 대표로서 이 행사를 보조하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신통력이 크다.”고 하여 특별히 지목한 결과였다.
황금향로들로부터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레이스의 인도에 따라 비행갑판 위에서 칼 융(Carl Gustav Jung)의 만다라를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인 형상을 이루었다.
수시로 변화하는 이 형상은 잘 관찰하면 수학적인 규칙들을 발견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있었다.
향로의 연기를 움직여 주술적 형상을 만드는 건 많은 사이비 주술사들이 애용하는 잡기다. 그러나 지금 그레이스가 보여주는 형상은, 오직 대마법사에게만 가능한 규모와 복잡성, 그리고 극도로 높은 해상도를 겸비했다.
여기에 위대한 정령들과 신령(神靈) 와다츠미가 임했다는 구실로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불규칙한 출렁임처럼 드러내기까지 하니, 무수한 속임수들을 보고 겪은 각성자들이라도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휘오오오오- 오오-」
염동력을 진동시켜 특정한 소리를 정교하게 모사하는 것도 대마법사에게나 가능한 기술이다. 수시로 형상을 바꾸는 향연(香煙)의 만다라 속에서 구슬픈 고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의식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두서없이 비명을 내지르거나 그 자리에 엎드려 울거나 하는 반응들을 보여주었다.
그레이스가 모사한 울음소리의 뜻은 “안녕? 반가워.”였다.
「솨아아아-!」
나는 그레이스와 호흡을 맞춰 물결을 비틀고 거대한 물안개를 일으키는 식으로 의식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치료 장소를 슬슬 옮겨 다니며 간헐적으로 만들어내는 기이한 파도와 물안개는, 내가 보기에도 제법 그럴싸한 풍경을 연출했다.
의식의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나는 원을 그리던 고래들로 하여금 브리칭(Breaching/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행위)을 하도록 유도했다. 연구 과정에서 브리칭에 해당하는 단어를 새로 습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듭하여 파도를 부수고 나와 커다란 몸을 뒤집으며 떨어지는 수천 마리의 고래들은 이 웃기는 연극의 완성도 높은 피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