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성지의 수호자 (13)
가자지구의 하늘은 주인을 잃어버렸다.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하늘은 이스라엘군의 것이었으되, 내가 일몰을 기해 공격을 개시하고서부터는 어떠한 공중자산도 감히 가자지구의 상공으로 넘어오지 못했다. 이는 유인기와 무인기를 가리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쿠구구궁-!」
이스라엘 공군기가 던지고 간 전파추적 미사일이 애꿎은 시장에 처박히며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곳에 있던 내 부하들은 20초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무전을 통해 대공 레이더를 운용하는 부하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당소 자발리아 하나. 진지변환 완료.」
「당소 자발리아 둘. 진지변환 시작합니다.」
가자지구 상공을 방어하는 건 내 부하들이 유지하는 방공망이었다.
전원공급장치와 배터리를 제외할 경우, 휴대용 대공추적 레이더 시스템의 전체 중량은 20킬로그램을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지상감시 레이더(GSR)보다는 조금 더 무겁지만, 우수한 각성능력자라면 장비한 채로 뛰거나 날아다니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무게가 가볍다고 하여 성능이 낮은 것도 아니다.
과거의 휴대용 레이더들은 낮은 출력이 곧 성능의 한계였다. 그러나 사용자 개인의 방전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출력을 높일 수 있는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사용자의 능력이 우수하기만 하다면, 휴대용 레이더가 본격적인 자주대공포의 추적 레이더를 성능으로 압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
그리고 내 부하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해군 구축함의 가스터빈 발전기를 가볍게 상회하는 방전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레이더를 자이로 짐벌에 달아 짊어진 부하들은, 밀도 높은 가자지구의 건물들 옥상 위를 무작위로 옮겨 다니며 이스라엘군을 농락했다. 다중 스펙트럼 위장막을 두르고 움직이면 적외선 추적으로도 그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다. 이동하는 과정 내내 좁은 골목과 실내와 지하터널 등을 밥 먹듯이 드나들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휴대용 레이더 외에도 전파 노출 우려가 없는 전자광학 추적장치(EOTS)와 전자광학경계장치(EODAS)들을 함께 준비해놓은 덕분에, 진지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공탐지능력의 저하가 최소화되었다.
「쿠궁! 쿵! 쿠구궁!」
강력하지만 느린 폭발들이 내 부하들의 발자취를 몇 박자 느리게 뒤쫓았다. 악에 받친 이스라엘 전술기들이 우리 측의 방공망 바깥 내지 아주 높은 고도에서 던지고 가는 전파추적 미사일들은 번번이 헛된 화력낭비를 이어갔다.
어제보다도 더 살이 빠진 가느다란 초승달 아래, 빈곤한 시가지 곳곳에서 날카로운 먼지기둥들이 핏물처럼 솟구쳤다. 시가지 가장자리엔 처음에 멋모르고 들어왔다가 격추당한 기체의 잔해들이 아직까지도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위, 위대한 투사시여.”
팔레스타인인 통역 하나가 어렵게 말을 붙여왔다.
“이대로라면 일반 민중들의 피해가 극심할 것입니다. 다른 방책을 취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내가 자리한 곳은 전장과 가까운 모스크 첨탑(미나레트) 꼭대기였다. 여기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나 같은 눈깔병신이 아니더라도 상당히 넓은 영역을 감제(瞰制)할 수 있었다. 나를 보조하는 전장정보 네트워크 허브는 모스크 안에 구축해놓았다.
원래 이 미나레트를 점령하고 있었던 이스라엘군 병사들은 포로로 사로잡아 후방으로 이송했다. 이송을 내 부하들이 직접 하진 않았으므로 지금도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나는 전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분명 민간인들은 사전에 소개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너희들의 책임이었을 텐데?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통역 이외의 말을 허락했던가?”
“……아닙니다.”
“주어진 소임에만 전념해라. 방해된다.”
내가 맡긴 역할이 통역일 뿐, 내 곁으로 끌려와 통역 노릇을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본디 저마다 나름의 지위를 가진 인간들이었다.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낮은 식민지에서 3개 국어를 구사하는 고급인력들에게 아무런 배경도 없을 리가 있나.
이들은 「팔레스타인 통일 저항 위원회」의 합동 참모 파견단이라는 거창한 딱지를 달고서 부푼 가슴을 안고 합류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에겐 대략적으로나마 전장의 흐름을 파악할 능력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에게 보이는 범위 내에 국한된 파악이기는 해도, 나를 중심으로 동선을 짜는 방공전력의 움직임 정도는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하기야, 이들에게 이스라엘의 폭격은 생활과도 같았을 터. 지금과 같은 형태의 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도 어려울 것이다.
방금 말을 붙인 놈은 참모 파견단의 대표쯤 되는데, 아무래도 온건파에 몸담고 있는 놈인 것 같았다.
여러 세력을 대표하며 각각의 구성원들을 중재하는 자리엔 온건한 성향의 인물이 적합했을 것이다. 아마 대외적으로 알려진 샤히디의 성향도 고려했을 테고.
외부세계는 의외라 하겠으나, 적잖은 수의 팔레스타인 무장투쟁운동가들은 민간인을 방패삼거나 민간인을 공격하는 짓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순수하게 도덕적인 이유를 드는 이상주의자들도 있고, 민중의 지지도를 고려하는 현실주의자들도 있고, 그런 짓을 하면 천국에 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도 있다.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라는 지시가 완벽하게 이행되지 않은 건, 결국 자기들끼리 생각이 다르고 손발이 맞지 않아서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문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을 추구하는 극단주의자들이다. 극단주의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내가 샤히디의 이름으로 내리는 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아군에 대한 도감청과 더불어, 샤히디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첩자들의 입을 통해 그들 내부의 분위기를 일찌감치 파악해두었다.
극단주의자들은 민간인을 미리 피난시키라는 명령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민족 독립의 대의에 투신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 살배기 아기도, 여든 살 먹은 노인도 예외가 될 순 없다! 총을 들고 싸우지 못하는 자 총탄을 막는 방패가 되어라!」
「팔레스타인 민족의 자주독립은 알라께서 정하신 운명이다. 고로 민족을 위한 죽음은 곧 순교이니, 순교를 거부하는 자들은 곧 배교자이며, 살아서 독립을 보지 못하는 자들은 죽어서 천국의 영광을 누릴 뿐이다. 선택하라! 배교자로서 죽을 텐가, 아니면 애국자로서 죽을 텐가!」
「아미르 알림 샤히디는 분명 위대한 알라의 전사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위대하다 한들 팔레스타인의 사정을 우리보다 더 잘 알 수는 없지 않은가? 팔레스타인에는 팔레스타인의 방식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그에게 충성할 것이다!」
오랫동안 농축된 광기와 독기가 넘실거리는 사고방식들.
약자는 억울한 자이지 선한 자가 아니다. 풀리지 않는 억울함이 해를 거듭할수록 약자의 악은 더 높은 가지를 뻗고 더 깊은 뿌리를 내린다.
이스라엘의 식민지는 잘 숙성된 고독의 도가니였다.
“폭격 경보. 자발리아 전 팀 진지변환.”
내 대공 조기경보는 부하들의 생존성을 대대적으로 향상시키는 동시에 방공망 운용 효율을 극대화하는 요소였다. 높은 하늘에 뜬 것은 무조건 적기인 전장에선 조기경보의 어려움이 최소화되었다.
가자지구의 밤하늘엔 내 시야를 가리는 게 거의 없기도 했다. 지상에서 솟는 연기나 드물게 떠있는 구름, 마소와 대기의 흐름 정도가 있을 뿐.
추가로, 지상공격을 위한 항공작전의 특성상, 폭격을 하러 날아드는 전술기들은 진입경로가 한정되어 있었다. 우리 측 레이더 전파가 닿지 않는 영역에서 움직이는데 굳이 기만을 할 필요가 무엇이겠나.
온도, 기류, 그리고 적외선.
강력한 제트엔진이 야기하는 다양한 층위의 변화들은, 황금기의 눈으로 보면 피아간의 거리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해도 놓치기 힘들 만큼 선명한 것이었다. 파일럿이 지닌 영혼과 생명의 광채는 그보다 더 선명했다.
게다가 금속 기체가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자기장의 변화도 있었다.
그러니 내 눈이 레이더보다 더 먼 거리에서부터 공격을 포착할 수밖에.
“음?”
나는 날아드는 투사체를 고쳐 보고 눈을 찌푸렸다.
“명령 변경! 전원 즉시 엄폐해라! 확산탄 방어태세!”
전술기들이 이번에 던지고 간 것은, 아까와 같은 전파추적 미사일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수백 개의 자탄을 쏟아내는 확산탄들이었다.
요격을 하려면 해볼 수는 있다. 이쪽엔 휴대용 대공미사일에 더해 도수 운반이 가능한 대공 레이저와 근접신관탄(AHEAD)을 쓰는 대구경 중화기를 갖추고 있으니까. 이 모든 무기들은 탐지 시스템과 통합 교전 네트워크로 연동되어 있었고, 고유의 화력통제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굳이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껍데기(운반 캐니스터)와 자탄이 분리되어있는 확산탄의 특성상, 우리가 가진 수단으로는 요격시도에 따르는 부담이 컸다. 그냥 민간인들이 죽으라고 내버려두는 쪽이 편했다.
「빠박! 빠바바바박-!」
빽빽한 건물들 위로 두두두둑 쏟아진 자탄들이 수천 조각의 섬광을 발하며 드넓은 영역을 강철 파편으로 휩쓸었다.
이스라엘은 확산탄 금지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다. 애초에 확산탄 금지 협약 자체가 이스라엘 때문에 탄생한 것이기도 했다.
「퍽! 퍼퍽!」
내가 자리한 미나레트에도 살벌한 힘을 품은 파편들이 튀었다. 적아와 민간인들을 불문하고 골목골목 각성능력자들이 많기도 한 전장이었기에, 일단은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감추기로 한 입장에서는 잠시나마 몸을 숙여 엄폐해야만 했다.
존재감을 드러내면 죽여서 막아야 할 입들이 너무 많아진다.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건드릴 필요가 있는가 싶은 선이었다.
하얗게 바스러진 돌가루가 스펙트럼 위장막 위로 파스스 쏟아졌다.
“민간지역에 확산탄이라니! 추악한 유대인들! 알라께서 저들을 심판하시길!”
아까와 같은 통역이 바짝 엎드린 채 분노를 담아 외치는 소리였다. 아랍어를 두고 굳이 영어로 지껄이는 데엔 나 들으라는 의도도 있을 것이었다. 민간인들의 피해를 방관하는 게 샤히디 그룹에 속한 알라의 전사가 할 짓이냐고.
나는 곧 죽일 놈의 재롱을 무시했다.
‘얼마 안 남았군.’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거주지에 확산탄을 퍼붓는 건 잔혹함의 증거 따위가 아니었다. 저들의 탄약 재고가 위험한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뜻이지.
내가 공군기지를 파괴하고 수많은 탄약고들을 날려버린 여파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더 국제여론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그저 전술적인 필요성 하나만으로 민간구역에 확산탄을 쓸 리가 없잖은가. 확산탄의 살상력과 위험성은 백린탄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이 상식이 항상 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볼 때, 이스라엘은 선악을 떠나 아직 상식을 폐기하지는 않은 합리적인 전쟁기계였다. 저 카자흐스탄에서 시민군의 전쟁수행의지를 오직 잔혹함만으로 꺾으려 들고 있는 러시아와는 경우가 달랐다.
이스라엘은 그저 정밀유도 미사일을 더는 쓰기 어렵게 되었을 따름이다. 주변국에 대한 전쟁억지력을 유지하려면 고급 무기체계를 아껴놔야 하니까.
저쪽 지휘관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소 무리수이긴 하나, 이쪽의 방공망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면 아주 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으리라고. 이에 대한 책임은 민간인 거주지를 전장으로 삼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에게도 지울 수 있으리라고.
이런 쪽으로 책임공방을 벌이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건 이스라엘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이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기술이다.
당장은 샤히디의 이미지와 여론전 때문에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지라도, 샤히디가 떠나고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전 세계 시온주의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가 증명하는 바.
그러니 지휘관 자신이 참모들과 함께 재판정에 설 각오만 한다면, 확산탄 사용은 한 번쯤은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둘 가치가 있는 무리수라 하겠다.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전범이 될 각오, 라.’
그것참 숭고하기도 하지.
포병으로 확산탄을 쏘지 않은 건 아마 우리의 레이더를 속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전과 같은 전파 추적 미사일 공격으로 오판하게끔. 그리하여 전과 같은 수준의 회피와 진지변환만으로 대응하게끔.
목표를 상실한 전파추적 미사일과 활공식 항공폭탄은 단시간의 레이더 분석만으로 비행특성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황금기의 눈이 아니었다면 높은 확률로 허를 찔렸을 공격이었다. 상식적으로 확산탄 같은 걸 쓸 리가 없다는 믿음을 이용한 공격.
확산탄이 터지고서 간을 보듯 들어오던 무인기들은, 다시금 재개된 레이더 탐색과 내 부하들의 화망에 걸려 고꾸라지듯 추락했다.
저쪽의 지휘관은 좌절감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따닷-! 따다다다닷-! 쿠웅-!」
제공권을 두고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거대한 공방이 오가는 하늘 아래, 지상에선 총성과 포성의 메아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
성난 군중의 함성이 아스라한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직후 같은 방향의 먼 골목길을 수백 개의 작은 불빛들이 흔들리며 내달렸다.
주홍빛 작은 광원들의 정체는 불이 붙은 화염병들이었다. 골목길의 마지막 모퉁이에 도달한 화염병들은 담장을 넘어가는 포물선을 그리며 도로와 그 주변을 향해 휙휙 날아갔다.
본래대로라면 이러한 대규모 움직임은 일찌감치 이스라엘군에게 감지되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무인기를 이용한 전장감시도, 병사들이 재량껏 설치하는 감지기들도 게이트웨이 단위로 무력화된 상황에선 군중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할 방법이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한들 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테고.
화염병이 쏟아지는 도로 위엔 전차가 자리하고 있었다. 보병들의 엄호를 받는 동시에 보병들에게 엄호를 제공하던 주력전차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뻐벙-!」
이스라엘 전차(메르카바)는 불타는 형상 그대로 기동하며 주포를 발사했다. 담벼락을 관통한 포탄은 성난 군중의 무리를 직선과 파편으로 타격했다. 꿰뚫는 직선이고 뿌려지는 파편이었다. 죽음이 확 퍼지며 성난 군중의 기세가 일격에 눌리는 광경이 보였다.
한낱 화염병을 가지고는 현대적인 주력전차들을 잡지 못한다.
또한 공격에 동원된 군중들은 훈련된 전투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통일된 식별수단으로서의 완장을 차고 통일된 지휘를 받기에 국제법상의 교전권을 주장할 자격은 있으나, 가진 거라곤 사실상 분노와 완장과 화염병이 전부인 자들이다.
그럼에도 지상전을 책임지는 경태는 이들을 움직여 유대나치들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작은 폭발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전차 장갑에 붙어있던 연막탄 발사기들이 불길에 달아올라 멋대로 탄을 뱉어낸 탓이었다. 추진제가 제대로 터져 공중폭발을 일으키는 연막탄도 있었고, 불균형한 추진과 연소로 팽이처럼 회전하는 연막탄도 있었고, 발사기 안에서 연기를 줄줄 뿜어내다가 힘없이 툭 튀어나오는 연막탄도 있었다.
기름이 타는 연기와 열기에 본격적인 연막차장마저 더해지자, 도로를 뒤덮은 어둠의 투명도가 극적으로 곤두박질쳤다. 차량용 연막탄의 성분은 다중 스펙트럼 위장막과 유사한 효과를 내도록 조성되어있었다.
「알라 후 아크바아아아아르!」
목청 좋은 어느 각성능력자 지하디스트의 쩌렁쩌렁한 외침. 군중의 뒤에 도사리고 있던 샤히디 그룹 산하의 지하디스트들은 혼탁해진 어둠에 기대어 이스라엘의 소규모 기동부대를 에워쌌다. 곧이어 지하디스트들이 지닌 대전차 화력이 연기와 연막을 뚫고 들어갔다.
「콰쾅! 쾅! 콰콰쾅!」
이스라엘 전차는 숱한 로켓탄 피격에도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1차적으로는 조준이 엉망인 탓이었으되, 2차적으로는 높은 방어력과 생존성 덕분이었다.
그러나 전차를 뒤따르던 장갑차는 무한궤도가 끊어지고 보기륜이 손상을 입었다. 전차가 물러날 길이 막힌 것이다.
당황하는 유대인들의 머리 위로 적시에 박격포탄 세례가 쏟아졌다. 내가 불러주는 좌표는 정확했고, 운용인력의 숙련도 역시 높았으므로 탄착군은 몹시 조밀하게 형성되었다.
시가지 곳곳에서 유사한 형태의 난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내 부하들이 전략예비대 역할을 하기 적합한 환경이었다.
우리가 엿듣는 적들의 무전망에선 끊임없이 지원 요청과 절규가 흘러나왔다.
「에레츠(Eretz/ארץ)! 에레츠! 여기는 바르달라스 둘-하나! 당소는 규모 미상의 적병들에게 포위된 상태로 격렬한 포화를 받고 있다! 병력손실 다대! 중대 전투력의 절반이 증발했고, 차량이 돈좌되어 자력으로 이탈이 불가능한 상태다! 병사들만이라도 이탈할 수 있도록 지원을 부탁한다!」
「젠장! 병신 같은 대대장 새끼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항공지원은 왜 전혀 없는 건데! 지금 당장 헬기가 필요하다고! 사령부가 이 상황을 알고는 있나?!」
반대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결된 채널은 전의가 끓어 넘치는 외침들로 가득했다. 「알라 후 아크바르」와 「팔레스타인 독립 만세」라는 외침은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나는 전장의 방공우산을 유지하는 한편, 화력지원을 위한 좌표를 따고 지상에 전개된 적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측하여 경태에게 공유해주고 있었다.
화력지원은 주로 박격포와 배회탄약, 소형 자폭 무인기 등을 이용하여 이루어졌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비축해놓은 수제 설탕연료 로켓(까삼 로켓)도 대대적으로 활용해볼까 했으나, 품질과 탄도가 균일하지 못하여 그냥 중근거리에서의 직사가 가능한 경우에만 쓰기로 했다.
이스라엘의 진짜배기 포병화력에 비하면 손색이 많은 구성이다. 그러나 늪에 빠진 이스라엘군 병력들을 잡아먹기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이스라엘 포병들은 시가지에 대고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할 수 없는 입장. 교외의 개활지로 나가지 않는 한 실질적인 화력은 우리가 더 우세했다.
경태는 이러한 정보·화력우세에 힘입어 이스라엘군 부대들을 착실하게 갈아먹었다.
상황이 급한 곳마다 긴급 투입되던 최정예 유대나치 각성능력자 기동부대들은 경태가 최우선적으로 분쇄해버린 전력들이었다. 항공·포병지원을 받지 못하는 유대나치 각성자들이 순수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는 내 부하들을 감당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시가전의 의의는 이스라엘에게 남은 마지막 자신감을 꺾어버리는 것이었다.
요컨대, 「너희는 비정규전만이 아니라 정면대결로도 승산이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이스라엘 총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상황은 통제하에 있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으나, 이는 나치독일이 패배하기 직전까지도 국민들에게 “우리에겐 아직 승산이 있다.”고 떠들어댄 꼴을 꼭 닮아있었다.
이 밤이 지나고 샤히디의 홍보채널에 전투결과가 올라가면, 이스라엘 총리는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막다른 길에 내몰릴 터.
예루살렘 북쪽에 교두보를 마련한 지하디스트들은 계속해서 세를 불려나가며 이스라엘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중이었다.
국경지대와 주요 교전지역의 병력을 함부로 빼내지 못하는 이스라엘로선, 당장은 수비적인 대응 이상의 조치를 취할 여력이 없었다. 이들은 공중강습을 감행한 핵심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였다.
그야말로 어디부터 꺼야 할지 모를 불길이 사방에서 치솟아 오르는 형세다.
나는 빠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이나 모레쯤엔 이스라엘 정부가 백기를 들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