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성지의 수호자 (11)
새로 공개한 프로파간다 영상들 속에서, 알림 샤히디는 각성체 전마(戰馬)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며 연속적인 전투를 지휘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샤히디가 두른 인마(人馬) 공용 다중 스펙트럼 위장막은 이번 타격에서 샤히디 그룹이 과시한 은밀함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12월 29일은 이슬람의 상징과도 같은 초승달이 뜨는 날이었다. 마무르는 이 우연의 일치를 두고 광신적인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아, 이 절묘한 시간적 일치가 단순한 우연일 리는 없어요! 알라께서 달빛으로 속삭이신다! 유대인들이 불의에 불의를 더하여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오늘의 싸장님은 그 속삭임의 현현이다! 싸장님 다이스키! 알라 후 아크바르!」
다중 스펙트럼 위장막의 색은 희미한 달빛을 받은 사막과 동일했다. 위장막을 클록(Cloak)처럼 뒤집어쓴 샤히디는 조종자이자 연출가인 내가 봐도 그럴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내가 지원한 전마의 수는 도합 20기였고, 20기 모두가 염동력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개체들이었다. 야윈 달 아래 모래 섞인 바람을 뚫고 얕은 허공을 달리는 기병대의 모습은, 베이다이허 테러를 기억하는 지지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잘 만들어진 비극은 희극 이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다. 시○핑의 간담을 처음으로 서늘하게 만들어주었던 베이다이허 테러는, 그 종교적인 장렬함과 비극적인 결말로 말미암아 온 이슬람 세계에 각별한 비극으로 남아있었다.
20이라는 숫자에도 의미가 있었다. 전 세계 위구르 디아스포라의 망명자들은 월광에 젖은 20기의 기병들을 보며 「20인의 기수들」을 떠올렸다. 위구르 민족의 마지막 조국을 잠시나마 부활시켰던 위대한 독립투사들을.
위구르인들은 감격에 겨워 오열하다가 실신하는 자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리액션 비디오인지 뭔지, 특정 영상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다시 찍어 올리는 요즘 세대의 문화는 영 괴상하여 적응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문화의 산물들은 프로파간다 표적 집단의 반응을 직관적으로 살피는 데 참고가 되었다.
이러한 프로파간다엔 당연히 메리옘의 역할이 있었다.
메리옘의 고조부는 20인의 기수들 중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위인이다. 그런 고조부의 위광을 샤히디에게 얹어주는 작업을 메리옘에게 맡겼으므로, 나는 메리옘을 따로 불러 잘 다독여주었다.
메리옘은 제 머릿결을 쓸어주는 손을 기뻐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귀하신 분이시여. 이 미천한 종은 정말로 괜찮습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그 상냥함과 한없는 자비로움에 감사드리오나, 한낱 도구 따위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는 주인은 없지 않습니까? 감히 바라옵건대, 저를 목줄을 당겨 부리는 개처럼 거칠게 다뤄주십시오. 제게는 목줄이 세게 당겨지는 고통과 도구처럼 사용되는 일들도 지극한 기쁨일 것입니다.”
그놈의 목줄은.
메리옘에게 생긴 이상한 집착은 춘식이가 내게만 붙어있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병이었다. 나는 경태에게 한마디 했다. 왜 네 개가 너보다 내 옆에 붙어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냐고. 이 녀석이 내 개는 아니지 않느냐고.
그러자 경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춘식이는 형님 개가 맞는데요?”
무슨 소리냐고 묻자, 경태는 뻔뻔한 답을 돌려주었다.
“일단 제가 형님 거잖아요? 그러니 제 개인 춘식이도 궁극적으로는 형님의 소유가 되는 거죠. 반박하시면 김경태 자살합니다.”
“……나는 네게 죽음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서 그 권리를 담보 삼아 충성도 요구할 뿐이지, 너라는 개인을 소유한 게 아니잖으냐.”
“앗! 김경태 자살 위기!”
“…….”
나는 경태의 농담기 짙은 억지를 꺾기를 포기했다. 남다른 충성심의 부작용에 가까운 말이자 태도이니, 굳이 꺾어서 무엇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경태가 춘식이의 관리에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한다는 관리라는 게 전투와 관련된 훈련으로 국한되어있을 따름이었다. 요즈음의 훈련은 대개 이런 형태였다.
“춘식아! 「이형환위(移形換位)」!”
경태가 이렇게 외칠 때면, 춘식이는 잔상이 남을 만큼 빠른 속도로 좌우로 뛰는 동작을 반복했다. 실제 전장에서는 개활지에서 총탄을 회피하며 돌격하기에 적합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춘식아! 「궁신탄영(弓身彈影)」!”
경태가 이렇게 외칠 때면, 춘식이는 허리가 활처럼 휘게 한 후 염동력과 온몸의 탄성을 한 번에 터트리며 일회성의 고속이동을 실시했다. 실제 전장에서는 한 엄폐물에서 다음 엄폐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적합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춘식아!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경태가 이렇게 외칠 때면, 춘식이는 염동충격파를 일으키는 3차원 입체기동을 선보였다. 입체기동을 할 때 발판을 만드는 염동력을 강화하여 그대로 충격파로 전환하는 공방일체의 응용기술이었다.
이는 참호나 건물 내부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적 전투원들을 무력화하는 용도로 적합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초당 네다섯 번 꼴로 터지는 충격파로 말미암아 움직일 때의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보통의 염동능력 각성자 및 각성체들은, 서로 거리를 둔 상태에서는 마력장의 한계로 염동충격파 공격에 제한이 따른다. 고로 상대에게 급속 접근한 후 충격파를 터트리며 빠지는 방식은 실전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훈련은 각성체 동물의 무기화와 관련이 있었다.
당장 샤히디 그룹에 공급한 각성체 전마들만 해도 내가 손수 각성시키고 조직 차원에서 조련·관리해온 개체들이다.
그동안에는 각성체 전마들을 간접적이고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활용해왔다. 사람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쉽게 각성시킬 수 있는 대마법사의 특성상, 각성체 전마를 대규모로, 그리고 공공연하게 운용하는 것은 다소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과는 별개로, 각성체 동물들에게 기술훈련을 시키는 노하우는 지속적으로 축적해왔다.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 투입이 가능하게끔 기반을 닦아놓은 것이다.
동물의 무기화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첫째. 지능이 높을 것.
둘째. 인간에게 친화적일 것.
셋째. 무리를 짓는 본능과 확고한 서열본능을 가지고 있을 것. 혹은, 환경조성에 의한 서열의식 형성이 가능할 것.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면서 무기화의 효용가치가 높은 대표적인 동물이 말이었다.
염동능력을 보유한 각성체 말들의 무리가 있다고 치자. 이 무리의 우두머리 하나에게만 공중질주-윈드러닝, 혹은 허공답보-를 가르쳐놓으면, 대개는 오래 지나지 않아 무리에 속한 다른 말들도 어설프게 우두머리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높은 지능과 무리생활, 그리고 서열본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나오는 결과였다.
우두머리 말에게 공중질주를 가르치는 방법은 거의 공식처럼 굳어진 훈련과정이 있다. 염동력을 보유한 훈련사가 말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먼저 말이 보는 앞에서 염동력을 써서 “나는 너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시킨 후, 일반적인 염동력 사용과 염동발판 만들기를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말이 둘 사이의 연관성을 스스로 깨닫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그다음엔 염동발판을 만들어야만 극복 가능한 훈련코스로 말을 이끌어준다.
이 훈련과정의 효용을 처음으로 확실하게 증명한 게 몽골의 두 목동이라, 훈련의 명칭은 「몽골리안 트레이닝」이라 했다. 또는 두 목동의 이름을 따서 「바트자르갈-나란체체그(Батжаргал-Наранцэцэг) 프랙티스」라고도 했고.
몽골리안 트레이닝의 가장 큰 난관은 말들이 서로를 죽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공중질주를 교육시키려면 능력을 최대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지만, 그 환경은 곧 초능력을 서열 다툼에 써서 서로를 격살하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내가 전마 육성 시스템 구축에 의견을 참고하는 일이 많았던 전문가, 몽골 목동 바트자르갈 산자담바는 말했다.
「중요한 건 똑똑한 말들을 고르고, 당신이 가진 말들과 피를 나눈 것처럼 깊게 교감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며, 무리에게 시간을 주는 과정에서 말들이 서로를 해치는 일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힘에 익숙하지 않을 땐 그 미숙함 때문에 서로를 해치고, 힘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 익숙함 때문에 또 서로를 해치지요.」
「야생의 말들은 무리를 지어 살지만 서열의식이 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키우는 말들은 다릅니다. 길들여진 말들은 주어진 무리 내에서 항상 자신의 서열을 높이고 싶어 하고, 그것은 번식욕구와 직결되어있는 강력한 욕망입니다. 조심하십시오. 그 거친 욕망으로 인해 당신은 당신이 가진 모든 말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산자담바의 동료 나란체체그 돌린고르는 「차분하고 원숙한 연장자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초능력을 이용한 투쟁을 충분히 겪었고, 관록에 어울리는 힘과 높은 지능을 지녔으며, 결정적으로 차분한 심성을 타고난 ‘연장자’로서의 말들이 무리의 중심에 있으면 손실률이 극적으로 낮아진다고.
「하지만 이건 대단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초능력 각성이라는 게 성격과 지능 수준에 비례하는 건 아니니까요. 성격, 지능, 능력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아주 귀한 말들을 찾아 모으고, 그 말들 사이에서 먼저 안정적인 서열이 확립되도록 한 다음, 기존의 서열을 파괴할 만큼 난폭하고 강력한 신참자는 철저하게 걸러서 받아야만 하죠.」
「그러고 나서도 굉장히 세심하고 치열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결정적으로, 다른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쳐도, 말이 사람을 깔보지 않도록 하는 건 또 다른 난관이죠.」
그러나 이 어려움은 대마법사에겐 결코 어려움이 아니었다.
성격이 좋고 지능이 높은 말들을 찾아서 각성시키면 되고, 각각의 개체들 사이에 힘과 존재감의 차이를 분명하게 둠으로써 서열을 고정시킬 수도 있으며, 평범한 목장들처럼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유만으로 말을 안락사시킬 필요도 없으니까.
말들을 굴복시키는 데엔 대마법사의 존재감이면 충분하다.
우두머리 말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다리가 부러지고 내장이 상한 녀석을 사와서 치료해주었기에, 나에 대한 친밀도가 굉장히 높기도 했다.
그 결과, 내 조직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전마 육성 시설은 전 세계의 어느 목장과 비교해서도 극도로 낮은 손실률과 안정적인 육성능력을 겸비했다. 말을 각성시켜서 집어넣기만 하면 알아서 기술을 익히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은 것이다.
공중기동이 가능한 전마를 지원받은 샤히디는 내가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다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내 입장에선 붕어빵처럼 찍어낼 수 있는 낮은 서열의 전마들을 조금 지원해줬을 뿐이었다.
「나를 따르라! 알라께서 예비하신 승리가 목전에 있도다!」
전마에 탄 샤히디는 폼을 잡으며 돌아다니기만 한 게 아니었다. 두 공군기지를 타격할 땐 전투를 지휘하는 시늉만 했으되, 세 번째 타격목표였던 체엘림 시가전 훈련시설을 공격할 땐 공세의 최종단계에 직접 돌격을 감행했다.
시대를 초월해 재현된 이슬람 충격기병의 돌격은, 대마법사의 포격에 얼이 빠져있던 신병들을 순식간에 붕괴시켰다.
「저항하지 않는 자는 죽이지 마라! 이 전장에 알라의 정의가 있음을 보여라!」
총동원령을 내린 국가의 가장 거대한 훈련시설은 무려 1만이 넘는 병력을 수용하고 있었다. 이토록 많은 수의 미숙한 병사들은 내가 이 훈련시설을 공격목표로 선정한 이유였다.
내가 원했던 건 고작 20기에 불과한 기병들이 무수히 많은 적들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며 전장을 휩쓸고 다니는 그림과, 이스라엘이 이제껏 경험해본 적이 없는 충격적인 규모의 단일 전투 사상자들이었다.
이를 위해, 샤히디에겐 대마법사가 직접 소재를 강화하고 방호마법을 부여한 마갑과 증가장갑이 주어졌다.
또한 샤히디를 제외한 열아홉 기의 호위 기병들 중엔 동일한 장비를 지급받은 전직 원탁의 기사들과 메리옘 그룹 구성원 둘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 후 아크바르!」
나와 내 부하들의 화력지원을 받으며 돌입한 기병들은, 내가 원했던 그대로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포격으로 초토화된 기지에 물리적·심리적 충격을 가하며 유대인들의 피를 추가로 뿌려 완성하는 그림이었다.
「항복하라! 아니면 죽어라!」
유대인 병사들의 지휘체계는 돌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뭉개진 상태였다. 정교한 포격으로 통신망과 지휘체계부터 우선적으로 짓이겨놓았는데, 무슨 수로 체계적인 대응을 할까.
지휘관을 잃은 어둠 속의 군대만큼 쉬이 무너지는 집단도 드물다. 하물며 그 군대의 태반이 아직 훈련을 받는 단계인 신병들임에야.
잔존 병력들의 저항은 머리가 없는 몸의 움직임과도 같아, 잘린 손가락 하나, 떨어진 팔다리 한 짝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협응이라곤 전무한 방식으로 싸우는 꼴이었다.
저항하는 자들보다는 무질서하게 도망치고 숨는 자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고작 기병 서넛에게 수백 단위의 병력이 쫓겨 다니기 예사였고, 앳된 병사들이 기병들에게 제대로 몰이를 당한 한 건물에선 한꺼번에 2백 명이 넘는 압사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기병들을 피해 기지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자들은 내 부하들의 십자포화에 걸려 박살난 육편으로 화했다.
이 한 번의 공격으로 발생한 사상자의 규모는 최소로 잡아도 1천 이상. 짧은 시간 강하게 치고 빠지는 공격이었음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피해였다.
「너희는 겨우 이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가? 지하드는 이제 갓 시작되었을 뿐이건만.」
나는 샤히디의 프로파간다 채널을 통해 심리적인 차원의 전과확대를 이어갔다.
이스라엘 정부는 샤히디 채널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고 나섰으나, 이스라엘 시민들은 어떻게든 차단을 우회해서 이 채널의 내용을 확인하려 들었다. 피해 현황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으려 드는 정부의 태도가 시민들의 불신을 산 탓이었다.
고로 내가 샤히디의 입을 통해 전하는 말은 이스라엘 구석구석까지 실시간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이스라엘이여. 메시아가 임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가나안을 거머쥔 불경스러운 자들이여.」
「이제껏 그대들이 쌓아온 승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전사로서 경의를 표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실로 대단한 싸움꾼들의 나라였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오만한 믿음과는 달리, 이스라엘이 일궈온 승리들은 따로 신의 보살핌을 받았던 결과가 아니다. 지금까지 위대한 승리만을 거듭한 탓에 착각을 하는 모양이지만, 너희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나치조차도 처음엔 위대한 승리만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 알림 샤히디의 존재는 신의 뜻이 이스라엘에게 있지 않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와도 같다. 나와 내 형제들은 너희들에게 거대한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너희의 주제넘은 착각을 부숴버릴 것이다. 이제 너희가 그저 운이 좋은 악의 제국이었을 뿐임을 깨달을 시간이다.」
「신께서는 나의 편에 서 계신다.」
이 방송이 나간 직후, 이스라엘인들은 자국 최대의 탄약저장시설이 한낮부터 화려하게 터져나가는 꼴을 보아야 했다.
내가 지저로 파고들어 불씨를 뿌린 탄약고들은 텔 노프(Tel Nof) 공군기지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에 비뚤어진 마름모꼴로 배치된 네 개의 탄약저장시설은 이스라엘의 장기적인 전쟁수행능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보급거점이었다.
문제는 이 중 한 곳에 항공기용 핵무기들이 저장되어 있었다는 점. CIA는 곧바로 내게 연락을 해왔다. 샤히디의 의중을 파악해달라는 요구였다.
“당신들도 알지 않소? 이번 공격에서, 샤히디 그룹이 핵무기가 들어있는 강화 벙커만큼은 손도 대지 않았다는 걸.”
나는 차분한 어조로 맥팔란드를 안심시켰다.
“알림 샤히디가 핵무기를 손에 넣고 싶었으면 바로 지척에 있는 진짜 핵 기지를 습격했겠지. 앞서 남쪽 사막의 공군기지들을 파괴할 적에도 가까이에 있는 네게브 핵 연구시설만큼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소?”
「그랬지요.」
“내 고객은 미국의 침묵을 원하고, 거기에 필요한 선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너무 그렇게 과민반응하지 마시오. 중간에 끼어있는 입장에서는 조금 피곤하군.”
바로 지척에 있는 진짜 핵 기지란 스돗 미차(שדות מיכה) 미사일 기지를 의미했다. 이곳엔 이스라엘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전략·전술 핵무기들이 대규모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 시설과 내가 터트린 탄약고 사이의 최단거리는 대략 3~4킬로미터에 불과했다.
이토록 거리가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기지를 공격대상에서 배제했다.
지금 핵을 건드리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생긴다. 스텔스기의 부품이 사라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태이지 않은가.
어차피 숨겨진 핵시설은 사우디에도 있었다. 또한 주술의 장막 너머에서는 이미 기초적인 핵연료 농축 프로그램이 가동을 준비하고 있기도 했다.
고로 나는 유대나치들이 비축해놓은 핵무기에 그렇게까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샤히디의 다음 전장은 아프가니스탄이 확실하겠지요?」
“아프가니스탄이라기보다는 중앙아시아로 간다고 해야 맞지. 샤히디의 다음 성전은 중앙아시아 성전이라고 불리게 될 거요. 샤히디는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의 확실한 지배영역을 구축할 계획이거든.”
그 지배영역 구축은 영국 본토진공 준비의 최종국면이다. 알림 샤히디는 성지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의 힘으로 그 어느 이슬람 군주보다 권위가 높은 국가원수 자리에 등극할 것이다.
각성능력자 지하디스트 백만 대군은 중앙아시아에서 완성된다.
「약속은 꼭 지키십시오.」
“나는 지금도 약속을 지키고 있지 않소? 샤히디의 이스라엘 성전 계획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던 건 당신들 내부에 불안요소가 있었기 때문이오. 나는 내가 판단하기로 고객에게 해가 될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소.”
「주신 것들이 있으니 지금은 믿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셨던 대로 미국과의 더 큰 거래를 원하신다면 보다 확실한 실적과 신용을 쌓으셔야 할 겁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지금처럼만 해주십시오.」
비록 이스라엘 성전 계획은 보안 문제를 구실로 들어 은폐하였으되, 중국에 전달한 위구르 독립운동가들의 회합 관련 자료는 CIA에도 똑같이 전달되었다.
또한 샤히디의 초기 활동 관련 자료들, 즉 베이징에서 천안문 의거를 일으키기 전의 행적에 관한 자료들도 그럴듯하게 꾸며서 CIA에게 넘겨준 것들이 있었다. 내가 주는 첩보들은 CIA가 알림 샤히디의 과거를 파악할 유일한 단서들이었다.
아무렴. 처음부터 철저하게 내가 만들어낸 꼭두각시인데. CIA가 총력을 기울여봐야 나 이외의 어디에서도 정보를 구할 길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중국 국가안전부 내부 자료들도 질금질금 빼내어 CIA에 넘겨주는 중이었고, 조직에서 파악한 암시장의 흐름도 요청이 있을 때마다 적당히 잘라 넘겨주었으며, CIA가 주술의 장막 너머에 대한 정보 수집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적정선의 줄다리기를 하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나를 포기할 수가 없지.’
미국과 CIA의 입장에선 샤히디에 대한 첩보만큼이나 중국에 대한 첩보가 중요하고, 주술사 왕에 대한 첩보는 앞의 둘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나는 CIA에게 있어 대체가 불가능한 첩보자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