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14화 (514/561)

#51. 성지의 수호자 (10)

12월 27일.

인도에서는 1만 마리 이상의 원숭이들이 마력을 태우는 불과 염동력을 휘두르며 편을 갈라 전쟁을 벌였고, 호주에서는 메뚜기 떼를 연상케 하는 자연각성체 야생 토끼들의 대규모 군세, 이른바 「래빗 스웜」이 빅토리아 주(州) 중부를 휩쓸고 다니며 단 한나절 만에 여섯 개의 곡물 저장시설을 습격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 거주지역들이 피해를 입었음은 물론이다. 어느 쪽이든 수천 명의 이재민들과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한 대형 참사였다.

그러나 세계의 관심은 온통 이스라엘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측이 간밤에 입은 피해는 실로 막대합니다. 특히 가장 먼저 공격을 당한 네바팀 공군기지엔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세 개 비행단, 그러니까 기체 숫자로는 서른여섯 기가 배치되어 있었는데요, 대당 8천만 달러나 하는 이 값비싼 전투기들이 샤히디 그룹의 공격으로 모조리 파괴당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소식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은 보유하고 있던 F-35를 전량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엔 스텔스기가 단 한 대도 남아있지 않아요! 금액으로만 따져도 29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이지만, 전문가들은 그보다 주변국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쟁억지력이 격감했다는 부분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며 정확한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던 도중 느닷없이 평정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해프닝이 있었죠.」

「대변인은 비열한 테러에 희생당한 군 장병들을 생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했습니다만,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 눈물에 참혹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한 손실의 지분도 있지 않을까 싶군요.」

「저는 앞으로도 예루살렘에 머물며 현지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예루살렘 밸푸어 스트리트에서, ABC 뉴스 특파원 스티브 프레스턴이었습니다.」

내가 네바팀 공군기지에서 파괴한 전력은 최신예 스텔스기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중대형 수송기 대다수와 공중급유기 7기, 그리고 조기경보기 2기를 한꺼번에 파괴해버렸다.

여기에 지하화된 탄약고들마저 남김없이 폭파시켰으니,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공격을 가한 건 네바팀 공군기지만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인구밀도가 낮은 마당에 대대적인 소개까지 이루어진 사막은 대마법사가 고속으로 기동하기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나는 최초 공격 개시로부터 불과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네 개의 목표에 대한 연속타격을 완료했다.

두 번째로 습격한 하체림 공군기지에선, 스텔스기는 아닐지언정 항속거리가 길고 성능이 좋은 다목적 전투기(F-15) 5기와 영공 방어에 쓰기 좋은 염가형 단발 전투기(F-16) 12기, 그리고 지하디스트들의 악몽으로 불리는 공격헬기(아파치) 3기 등을 추가로 파괴했다.

사실 이건 운이 다소 따라주지 않은 결과였다.

일단 출격으로 자리를 비운 기체들이 있었거니와, 내가 네바팀 공군기지를 때려 부수는 동안 이쪽에선 재빠른 상황판단으로 보유 기체들을 신속하게 대피시켜놓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서 놀라웠던 건, 이게 기지 사령관이나 전대장들의 독단이 아니라 공군 사령부의 허가를 득한 행동이었다는 점.

첫 타격목표였던 네바팀 공군기지와 두 번째 타격목표였던 하체림 공군기지 사이의 거리는 고작 30킬로미터 가량.

내가 네바팀을 다 불태우고 포로와 전리품을 획득한 후 하체림으로 이동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20분 미만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스라엘군의 의사결정구조는 실로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인 것이었다.

20분이면 보통의 군대에겐 최고 결정권자에게 보고가 올라가기만 해도 다행인 시간이다. 매뉴얼에 따른 자동화된 대응, 혹은 일선 지휘관의 재량에 따른 대응 정도는 가능할 테지만.

당장 천안문 의거 당시의 중국 놈들만 하더라도 상황파악과 의사결정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가. 베이징의 가짜 빨갱이들은 급변사태 발생을 단단히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그 모양이었다.

한데 전쟁에 이골이 난 유대인들은 놀라운 속도로 보고를 취합하고, 불완전한 정보들에 기초하여 기지를 포기하다시피 하는 과감한 의사결정을 완료하고, 그러고서 남은 시간 동안 7할에 가까운 기체들을 대피시키기까지 한 것이다.

나는 내심 감탄했다.

‘이 새끼들은 정말 전쟁기계 그 자체로군.’

현장을 확인한 경태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거야 원……. 보통은 이럴 때 기지를 비우는 게 아니라 전투출격을 우선하라고 명령을 내릴 텐데……. 촉이 아주 비상하게 좋은 놈들일세.”

하체림에서 전투출격을 한 기체들은 항시 긴급발진(스크램블)을 준비하고 있던 한 개 비행단이 전부였다. 이들은 표적획득에 실패한 채 공허한 맴돌기만을 반복하다가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 날아갔다.

나머지 기체들은 무장을 단념한 채 최소한의 연료만 채워 달아났다. 기체와 파일럿을 동시에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큰 조치였다.

네바팀과 하체림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점, 그리고 네바팀 기지가 공격개시와 동시에 마비상태에 빠졌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규격 외의 적이었을 뿐, 어디를 봐도 흠잡을 데 하나 없는 대응이었다. 조직을 관리하는 입장에선 아름다움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그러나 대응의 훌륭함은 훌륭함이고 이스라엘이 입은 타격은 타격이었다.

미국인 기자가 보도한 내용대로, 이스라엘이 입은 타격의 핵심은 인티파다에 대응할 능력의 감소가 아니라 주변국에 대한 전쟁억지력의 감소였다.

식민지인들의 인티파다? 육군의 각성능력자들과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짓밟아버릴 수 있다. 해군과 공군의 지원은 어디까지나 피해를 줄여주는 부차적인 도움일 따름.

하지만 주변국들의 위협은 경우가 다르다.

제공권 장악과 침투타격의 핵심 카드였던 스텔스 전투기들을 죄다 상실하고, 공중급유기와 조기경보기의 숫자마저 반토막이 나버린 지금, 다섯 번째 중동전쟁이 발발한다면 이스라엘은 극도로 수비적인 방식으로만 전쟁을 치러야 한다.

현재 주변국들은 너무나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외신들이 그 뜨거운 분위기를 특보로 편성해 내보낼 정도였다. 공격을 마치고 돌아와 밥을 먹으며 보았던 방송에서, 어느 외신기자가 요르단의 베두인과 주고받은 문답이 이러했다.

「무슨 축제가 열리고 있는 건가요?」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입니다. 전쟁광 유대인들의 장례식이죠. 알라 후 아크바르!」

요르단은 경제력에 비해 비대한 군대를 전진배치하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중이었고, 이집트 역시 국경과 가까운 하늘에 초계비행 편대를 대대적으로 띄움으로써 이스라엘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밖에도 이스라엘이 그동안 쌓아온 업보를 걱정해야 하는 잠재적 적성국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관계가 정상화된 국가들이 있었으나, 그 관계는 힘이 있어야 비로소 유지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 출장이 금방 끝나리라 예상했던 배경엔 이런 제반조건들이 깔려있었다. 이스라엘의 전쟁억지력을 토막쳐 놓으면, 가장 강경한 시온주의자조차도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을 테니까.

이 구상을 개략적으로 알고 있던 마무르는 프로파간다가 나가는 걸 보고서 말했다.

「싸장님이 때리는 싸대기엔 언제나 감동이 있다. 맛깔나게 귀싸대기를 맞은 유대인들은 지금쯤 헤어나기 힘든 감동의 물결 속에서 서렌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전쟁억지력은 앞으로 싸대기를 맞을 때마다 계단식으로 하락할 테니까.」

경태는 서렌이 항복(Surrender)을 의미하는 약어라고 알려주었다. 마무르의 말마따나, 이스라엘은 이번과 같은 타격을 한두 번만 더 입어도 최악의 형태로 닥쳐올 제5차 중동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준 감동이 부족했는지, 이스라엘 정부는 한 대 맞고서 바로 백기를 드는 대신 미국의 개입과 중재에 희망을 걸어보는 분위기였다.

「아직 더 조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네바팀 공군기지를 공격한 테러리스트들이 최첨단 전투기 F-35의 잔해를 다량 훔쳐간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입으로는 정의실현을 논하는 그들이 그늘 아래에선 파렴치한 기술 절도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만약 도난당한 잔해들이 바르지 않은 자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는 명백히 세계평화에 위협이 되는 일입니다. 유럽은 장차 미국의 첨단기술로 무장한 러시아를 마주하고 싶습니까? 또 첨단기술을 팔아넘긴 돈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에게 흘러가는 꼴을 보고 싶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요? 아니요! 온건한 무슬림이란 극단주의자들을 온건하게 지지하는 무슬림을 뜻할 뿐입니다! 샤히디라고 해서 다를 거라고 믿지는 마십시오. 설령 샤히디 개인은 다를 수 있어도 샤히디 그룹 구성원들 중엔 생각이 다른 자가 있을 것이고, 샤히디 그룹에게 투자를 한 무슬림들 중엔 당연히 더 많은 ‘온건한 무슬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근대의 여명이 밝은 이후, 역사에 이름을 크게 남긴 악인들 가운데 처음부터 당당히 스스로가 악임을 천명한 자는 없었습니다. 누구든 처음에는 사회정의 실현을 그럴듯한 내용으로 목 놓아 부르짖었고, 세계는 그 부르짖음을 진실로 착각하곤 했지요.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히틀러입니다.」

「국제사회에 간곡히 호소합니다. 정의를 뒤집어쓴 악의 성장을 방관하지 마십시오. 테러로는 어떠한 정의도 이룰 수 없음을 보여주십시오. 정의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십시오.」

말은 국제사회에 대한 호소였으되, 실제로 겨냥한 건 자국산 첨단 전투기의 기술유출에 민감하게 반응할 미국이었다. 지지부진한 외교채널의 협상을 여론전으로 극복해보려는 시도.

이스라엘의 의도대로 미국의 여론이 요동치자, 미국의 대통령은 SNS를 통해 평소와 같은 광기를 분출했다.

「F-35 부품 도난? 그게 왜 중요하지? 그 스텔스 눈에 보인다며!」

이 메시지가 화제가 되자, 미치광이는 능란하게 태도를 바꾸었다.

「이제 슬슬 말을 안 해도 다들 알 때가 되지 않았나? 방금 올라간 메시지는 백악관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작성한 것이다. F-35와 달리, 그 고양이는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진정한 스텔스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능청으로 광기를 덮은 대통령은 이어서 사업가적인 언변을 발휘했다.

「나는 이스라엘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네가 이길 때는 국제사회의 권고를 무시하더니, 자기네가 불리해지니까 이제 와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는 건 좀 너무하는 게 아닌가?」

「특히 우리 미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언제나 이스라엘을 도와왔고, 그 내역은 매년 지출한 예산 장부에 빼곡하게 기록되어있다. 미국에서 이스라엘만큼 많은 지원금을 꾸준히 받아간 나라도 없단 말이다.」

「그런데 이미 주었거나 주고 있는 도움들을 무시한 채 또 뭔가를 도와달라고 하니, 시민들의 세금을 주머니에 있는 돈처럼 빼서 쓸 수는 없는 나로서는 여러모로 난감한 기분이 든다. 돈도 이렇게 함부로 쓰기 어려운 것인데, 장병들의 생명은 오죽하겠는가?」

「최소한 준비는 할 시간을 줘야 할 게 아닌가? 나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독재자가 아니다.」

「그리고 F-35 부품 절도로 말들이 많은데, 나는 묻고 싶다. 그게 확실한 사실이기는 하냐고.」

「내가 보고를 받아보니까 기지가 아주 박살이 났더라. 그렇게 처참하게 박살이 난 현장에서 부품이 절도를 당했는지, 아니면 부서지고 흩어졌는데 그냥 못 찾은 것인지 무슨 수로 아나?」

「거 발표를 듣자니 피해상황도 아직 집계 중이라면서? 죽은 사람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마당에 전투기 부품이 없어진 건 어떻게 벌써 확신하지? 있는 거라곤 그냥 희망사항이 반영된 정황증거가 다이지 않은가?」

「설령 부품이 사라진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게 절도범의 정체까지 알려주는 건 아니다. 그걸 훔쳐서 이득을 볼 집단이 과연 샤히디 그룹 하나뿐일까? 현명한 나의 지지자들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제기한 의혹에선 이스라엘도 자유롭지 못하다. 부품들을 스스로 은닉한 후 샤히디에게 누명을 씌운다는 시나리오도 있으니까. 주어진 상황만 놓고 보면 이쪽이 오히려 더 가능성이 높다.

「객관적인 사실 확인 전에 참전을 결의하는 것은, 실존하지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찾아 전쟁을 일으켰던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꼴밖에 안 된다. 나는 그런 식으로 예산과 생명을 낭비하기 싫다.」

「알림 샤히디의 혐의는 내가 당사자와 잘 이야기해서 확인해보겠다. 그는 나처럼 착한 사람이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전에도 생각했지만, 이 미친놈은 내게는 정말로 도움이 되는 미친놈이었다.

‘이럴 때마다 든든하기 짝이 없어.’

나는 백악관 미치광이의 해외 차명계좌와 정치자금 후원계좌에 예정보다 더 많은 돈을 꽂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장사를 할 줄 아는 대통령이 이렇게 확실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샤히디의 지하드가 빠르게 끝날수록 자신이 지는 부담이 줄어드는 까닭이었다. 지하드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날 기미가 보이니 대통령의 계산도 빨라진 셈.

백악관 미치광이는 뻔뻔할 정도의 자화자찬으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분산시켰다.

「그건 그렇고, 좋은 소식이 있다! 나는 조금 전 알림 샤히디로부터 시나이 반도의 ISIS로부터 구출한 순례자들의 신병을 아무런 대가 없이 양도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것이 내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하는 일이다!」

「순례자들 중엔 미국인들도 있고 유럽인들도 있다. 일찍이 유럽 각국의 정상들이 나를 무능하다고 무시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도덕적이고 관대한 사람이기에 그들 국가의 순례객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고국으로 돌려보내줄 것이다.」

「자, 이제 정말로 무능한 건 어느 쪽이지? 자국민들이 납치당했는데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유럽의 지도자들? 아니면 평소에 행한 미덕(Virtue)과 협상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한 나?」

「미국의 현명한 유권자들은 일찍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그 현명함의 증거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이 발언들이 언론 보도를 탈 즈음, 나는 샤히디 그룹 산하의 지하디스트 공수부대가 예루살렘 북쪽에 교두보를 확실히 굳혔다는 보고를 접수했다.

나는 수연이 올린 보고를 받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해도 어쩔 수 없는 작전이라고 생각했건만……. 알라쟁이들에게 공항 점령 훈련을 시킨 보람이 있구나.”

내가 두 개의 공군기지와 한 개의 훈련시설, 두 개의 탄도탄 탐지 레이더 사이트를 파괴하는 동안, 거친 사막과 건조한 산맥에선 레이더 반사판을 매단 대형 연들이 수도 없이 날아올라 이스라엘의 대응능력에 극심한 과부하를 걸었다.

수연이 조용히 말했다.

“전체적인 대응을 볼 때, 이스라엘 측은 수송기들이 헤브론 인근 상공을 지날 때까지도 우리의 공중침투 기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안지구(웨스트 뱅크)의 최대도시인 헤브론은 거주인구의 태반이 팔레스타인인들인 도시다. 고로 이 도시에서도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들이 많았고, 내가 준비한 수송기들은 레이더 전파의 음영지대들 사이를 저공비행으로 통과하여 예루살렘 북쪽으로 직행했다.

목적지인 예루살렘 북쪽엔 폐쇄된 공군기지가 존재했다.

외부와의 연결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적의 심장부에 공수부대를 강하시키는 건, 보통은 가서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죽으라고 던져버리는 짓이다.

그러나 내가 강하를 지시한 옛 공군기지는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와 베두인들의 거주지로 둘러싸여있는 환상적인 입지를 자랑했다.

지금 들어온 보고는 강하작전의 최종단계, 즉 현지인들을 모아 의용군을 편성하고 해당 지역을 요새화하는 단계까지 진행이 완료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수도의 바로 지척에 비수가 들어온 꼴.

어떤 의미로는 수도의 일부가 점령당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 지역은 유엔 협약에 따라 서안지구에 속해있었으되, 시온주의자들은 여기까지가 예루살렘이라고 억지를 쓰며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이스라엘 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억지를 써온 유대인 제국주의자들이 “수도의 일부가 점령당했다.”고 인정할지, 아니면 “수도의 방비는 굳건하다. 적들은 아직 우리의 수도를 범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내세웠던 침략 명분을 부정할지 지켜보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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