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513화 (513/561)

#51. 성지의 수호자 (9)

마법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피지배자들의 다섯 번째 항쟁(인티파다)이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남부 네게브 사막에서 발생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었다.

남부 네게브 사막의 주민들은 14세기부터 이주해온 유목민족 베두인들이다.

시온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이들은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이방인들에 불과했다. 들어온 지 천년도 안 된 것들이 어디 유대인들 앞에서 명함을 내민단 말인가.

자연히 이들을 보는 시선이 고울 수가 없었고, 이 시선은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에도 반영되었다.

그 결과로서, 이스라엘은 베두인들의 토지소유와 전통적인 거주권을 인정하지 않아 왔다. 모든 베두인들은 반천 년 동안 살아온 터전을 포기하고 당국이 정한 수용구역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게 이스라엘 정부의 방침이었다.

유목민들의 사회엔 정주민들과 같은 토지소유제도가 없다. 계절에 따라 떠돌면서 가축들에게 풀을 먹이는 부족 공동의 생활권이 있을 따름이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문명적인’ 정당성을 확보했다.

「우리는 분명히 개인의 토지 소유를 증명하고 신고할 기회를 주었다. 신고를 하지 않은 건 그들의 책임이고, 주인이 없는 땅은 모두 이스라엘 정부의 소유로 귀속된다.」

「베두인들은 인류의 문명 발전에서 뒤처져있다. 대체 언제까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원시적인 생활양식을 고집할 것이며, 우리가 왜 그것을 존중해줘야 하는가? 유목민들도 이제 현대적인 문명사회를 배우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유목민들 입장에선 황망한 이야기다. 제1차 중동전쟁 때는 일부 베두인 부족들이 유대인들을 도와 싸워주기까지 했다.

한데 그로부터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압제가 시작된 것이다. 개인의 토지 소유라는 외부세계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하더니, 정해진 기간 내에 어서 신고를 하고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지라고 강요하는 게 아닌가.

애초에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증명서류 제출부터가 난관이었다. 소유권을 증명할 문서 같은 게 전무했으므로.

또한 이스라엘은 신고에 따른 의무는 상세하게 명시한 반면, 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은 이 땅이 당신들의 것이 아니게 된다고만 이야기했다.

베두인들은 이를 자신들의 오랜 경험, 즉 오스만제국과 대영제국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했다.

두 제국의 시대에도 안 나캅(ٱلنَّقَب/네게브의 아랍어 명칭) 사막은 명목상 제국들의 땅이었지만, 그 사실이 부족들의 전통적인 목축 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제국은 제국대로 존재했고 유목민들은 유목민들대로 존재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이 땅은 당신들의 것이 아니게 된다.”고 해도 항상 그래왔던 그대로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더하여, 전통의식이 강한 베두인들은 이렇게 물었다.

「맘루크들이 이 땅의 주인임을 주장할 때도, 오스만제국과 대영제국이 이 땅의 주인임을 주장할 때도, 지배자들은 각각의 부족들에게 충성을 요구했을 뿐 부족민 개개인에게까지 충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부족에 속해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우리에게 부족의 일원이기에 앞서 이스라엘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가?」

이러한 베두인들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토지가 있기는 했다. 예컨대 모스크를 세워놓았거나 한 곳은 특정 부족, 또는 여러 부족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유지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같은 공유지 역시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정한 신고양식에는 끼워 넣기가 애매했다.

고로 이스라엘 정부는, 신고기간이 종료된 시점에서 이러한 공유지들 또한 이스라엘 정부의 소유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의 토지수탈 정책이었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된 후, 이스라엘은 다시 한 번 선언했다.

「이제부터 네게브 지역의 모든 국유지에선 염소 방목이 금지된다. 이는 토양의 침식을 막고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

명분 자체는 그럴듯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유럽 강도국가들의 환경기준이 전 세계적인 사다리 걷어차기의 도구로서도 기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루아침에 심대한 타격을 받은 유목민들은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연명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게 되었다. 이스라엘 당국은 생계지원을 받고 싶으면 당국이 정한 수용구역으로 들어가라고 압박했다. 팔레스타인 게토에 이어 베두인 게토를 만든 것이다.

휘어지느니 부러지기를 택한 자들은 총에 맞아 죽거나 폭력에 밀려 국경 밖으로 추방당했다. 당시엔 이스라엘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던 폭거였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네게브 사막엔 유대나치들의 업보가 불씨를 기다리는 마른 장작들처럼 쌓여있었다.

나는 그 메마른 장작들에게 알림 샤히디라는 불씨를 던져주었다.

「베두인 전사들이여! 명예롭고 용맹스럽기로 이름 높았던 사막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아직 찬란했던 조상들의 영광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성전에, 인티파다에 합류하라! 예언자께서 승천하신 신성한 땅이 그대들을 부르고 있다!」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싸우고, 싸울 수 없는 자들은 불복종으로 압제에 맞서라! 예언자께서 가로시되 피 흘리지 않는 실천이 오히려 더 귀한 지하드라 하셨으니, 오직 그대들에게 가능한 저항으로서 압제자들을 지치고 피로하게 만들어라! 그대들의 힘으로 붙잡아두는 군경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승리에 가까워지는 일분일초가 될 것이다!」

「나 알림 샤히디는 높으신 알라의 이름에 기대어 맹세한다! 그대들은 위대한 선조들의 땅과 권리를 되찾게 될 것이다! 압제자들이 그대들의 땅과 그대들의 권리를 빼앗아 누려온 모든 것들 또한 그대들의 정당한 몫으로 주어지리니!」

「일어나라! 일어나라! 주먹을 쥐고 일어나라, 사막의 아들들아!」

고단한 열사와 착취의 사막에서 하루하루 거대한 불이 될 날을 꿈꾸며 살아온 장작들은, 불씨가 던져지기 무섭게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다.

「오, 아미르! 위대한 알라의 검이시여! 우리의 칼과 우리의 피를 당신께 드립니다! 안 나캅의 모든 부족들이 알라의 이름으로 바치는 충성맹세를 받아주소서!」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의 충성맹세는 종교적 믿음에 따른 행위이지만, 베두인 부족들의 충성맹세는 종교적 믿음인 동시에 전통적인 생활양식 그 자체였다.

나는 알림 샤히디의 입을 빌려 이들에게 규율을 강제했다.

「그대들이 바치는 맹세의 주인으로서 명한다. 저항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 말고, 싸울 힘이 없는 자를 해하지 말 것이며, 치료가 필요한 자가 있다면 직전까지 목숨 걸고 싸우던 적이라 할지라도 자비를 베풀어 주라.」

「또한 어차피 그대들의 것이 될 집들을 불태우지 말고, 싸움이 끝나기 전에 전리품을 챙기지 말 것이며,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은 그대들이 예로부터 손님을 대해온 전통과 예의로써 보호하도록 하라.」

「부역자들을 자의로 처단하지 말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압제자들에게 아첨한 자들, 압제자들의 세속적인 문화를 동경하여 부족의 전통을 내버린 자들, 현실과 타협하여 수용구역에서의 굴종적인 삶을 받아들인 자들의 죄는 각각의 경중이 다 다르다. 이는 혼란 속에서 따져도 좋은 경중이 아니다.」

「이 성전에서 최고 재판관의 권위가 나에게 있음을 알라. 신과 예언자와 바위의 돔에 바칠 승리를 불명예로 더럽히지 말라. 알라의 전사들에게 명예가 있음을 보여라.」

오랫동안 차별을 겪어온 베두인들은 교육 수준도 굉장히 낮았다. 이스라엘의 회유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사막에 남은 전통주의자들의 경우, 문맹 비율이 90%를 넘어가는 부족도 드물지 않을 정도로.

이들의 고삐를 잡지 않으면 기껏 쌓아온 알림 샤히디의 이미지가 심대한 손상을 입는 수가 있었다.

내가 이런 선언을 내보내자 이스라엘 정부는 곧바로 대응에 착수했다.

「네게브 지역엔 공공질서 유지 및 거주민 안전 보호를 위한 소개령이 발효되었습니다. 모두 군경과 국가 서비스 요원들의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이번 소개는 수용구역으로의 강제적인 이주 조치가 아닙니다.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여러분과 같은 부족이 머물고 있는 다른 ‘비인가 거주지’에서 머물러 주시면 됩니다. 이 조치가 유지되는 동안 여러분에게는 1인당 하루에 80세켈의 생활지원금이 지급될 것입니다…….」

당장 알림 샤히디라는 재앙이 들이닥쳤으니, 이 끔찍한 재앙이 지나갈 때까지 돈을 풀어서라도 안정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이게 돈으로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하다니.’

자신들이 문명과 질서를 베푼다고 자부하는 압제자들은 억눌린 자들의 울분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런 종류의 착각은 내가 항상 경계하는 자기합리화이자 인지부조화였다.

이 와중에도 꿋꿋이 비인가 거주지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꼴이 더 우습다.

어디에 전력을 집중하면 좋을지 갈팡질팡하던 이스라엘군 지도부는, 샤히디 그룹의 주력이 지중해 방면에 있다고 판단했다. 군부대들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는 판단이었다. 베두인들을 선동한 의도가 어디까지나 후방교란과 전력분산에 있다고 결론내린 것이다.

하기야 바다에서 최신예 초계함을 격파한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정반대 방향의 깊은 내륙으로부터 대규모 공격을 가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샤히디 그룹의 역량이 아무리 우수하다 한들, 결국은 일개 테러리스트 그룹에 불과하니까.

상식적으로, 그런 건 상대가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정규군일 때나 대비해야 하는 위협이다.

이젠 그 상식을 박살내줄 차례였다.

「끼릭끼릭끼릭-」

묵직한 고폭탄으로부터 운반용 들개고리가 분리되는 소리. 신관이 들어갈 구멍을 막고 있던 금속 고리는 작은 마찰음을 내며 부드럽게 풀려나왔다. 염동력으로 고리를 푼 다음엔 염동력으로 신관을 결합한다.

내가 사막 한복판의 공군기지를 타격하기 위해 준비한 것은 이백 발의 155밀리 고폭탄이었다.

이걸로 각성능력자들이 집중 배치된 외곽 경계선을 뭉개버린 후, 활주로와 주요 건물들을 타격하고, 안으로 밀고 들어가 포로와 전리품들을 확보하고, 마법을 이용한 원격 폭파로 탄약고와 연료저장시설을 파괴하면 끝이다. 총 소요시간은 최대 10분 이내로 잡았다.

다른 부하들과 함께 신관 결합을 돕던 경태는 포탄마다 적혀있는 삐뚤빼뚤한 아랍어들을 보고 볼을 긁적였다.

“거, 이 친구들이 어디서 본 건 또 있어가지고…….”

개중에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건 알라 후 아크바르와 타크비르(تَكْبِير) 정도. 운반 외주를 준 베두인 밀수꾼들이 적어놓은 것이었다.

네게브 베두인들 중에는 밀수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많다. 마약, 무기, 때로는 인신매매에 이르기까지.

이곳에 포탄을 가져다 놓은 게 바로 그 밀수업자들이었다.

조립식 아기들을 끌고 지중해로 넘어올 적에, 내가 알 아리쉬(العريش)와 라파(Rafah/رفح) 사이의 갭을 통과하며 관찰한 이집트-이스라엘 국경장벽 아래엔 개미굴 같은 밀수 터널들이 뚫려 있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를 기점으로 더욱 밀도가 높아졌을 터널 네트워크였다.

당시 나는 이 터널 네트워크를 경유하는 물류가 베두인 밀수상들에게까지 닿아있으리라 예측했고, 이것은 정확한 예측이었다.

무기와 탄약이 흐르는 터널 네트워크가 무사하다 함은,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조직들의 보안이 아직까지는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뜻.

손쉽게 알아낸 바, 터널의 지분은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과 「알 나세르 살라 알 딘 여단」, 「순교자 이즈 앗 딘 알 까삼 여단」 등 다수의 팔레스타인 무장투쟁조직들이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서로 우호관계가 아닌 조직들이다. 그러나 하마스·파타·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같은 상부조직들의 말도 잘 안 듣고, 같은 조직 내에서도 세포조직들이 따로 노는 경우가 다반사라 여기서는 또 사정이 달랐던 모양이다.

터널의 운영자들은 다른 다리를 거치지 않고 자신들을 곧바로 찾아낸 알림 샤히디의 대리인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샤히디와 전화를 연결해주자 곧바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당신께서 이끄시는 성전에 기여할 수 있다니, 일생에 다시없을 영광입니다. 저희가 바치는 충성맹세를 받아주십시오!」

웃기는 건 이들이 속한 조직들은 벌써 충성을 맹세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따로 충성맹세를 바치는 데엔 나름의 속셈이 있었다. ‘샤히디에게 직접 충성을 맹세한 자’끼리는, 어떤 의미로는 서로 대등한 자격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추후 각각의 여단 내에서 권력투쟁이나 주도권 다툼이 발생할 경우, 샤히디에게 직접 충성을 맹세했다는 명예는 단순한 힘 이상의 무기가 되어줄 터였다.

경태는 “이것이 봉건질서인가…….”라며 어이없어했다.

여하간 터널의 운영자들은 내 예상대로 베두인 밀수꾼들과 오랜 거래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팔레스타인과 베두인은 본디 서로를 남으로 여기던 사이였으되, 이스라엘의 압제를 겪는 과정에서 네게브 사막의 베두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의 정체성을 일정 부분 수용하게 된 덕분이었다.

각성능력자 베두인 밀수꾼들에게, 포탄을 담은 배낭을 메고 한낮의 사막을 주파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포탄 한 발의 무게라고 해봐야 40킬로그램을 좀 넘을 뿐이기에.

베두인 밀수꾼들은 처음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놈들의 사양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한 일. 또한 만에 하나라도 나올지 모를 배신자는 막대한 이익에 대한 기대로 예방 가능하다. 나는 포탄 1발당 1만 달러의 착수금을 건네며 동일한 금액의 사후보상을 약속했다.

밀수꾼들은 거듭 권하는 일확천금의 기회를 끝까지 거부하지 않았다.

이건 충성을 맹세한 베두인들의 미래를 위해 알림 샤히디가 사여(賜與)하는 자금이라고 하자, 부족장의 칼을 찬 밀수꾼 우두머리는 시원하게 웃고서 가슴 벅찬 기쁨을 토로했다.

“돼지 같은 유대인들에게 죽음을 배송해주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이 사막에도 드디어 알라의 은총이 흘러오는군요. 신께서는 진실로 위대하십니다.”

한낮의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사막은 무인기들의 적외선 감시능력을 저해하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배낭 하나 달랑 짊어진 각성능력자들이 군데군데 파놓은 땅굴들을 이용하며 개인 단위로 사막을 가로지르면, 무인기 대국인 이스라엘의 능력으로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베두인 밀수꾼들은 평소엔 이용하지 않았던 비상용 예비 터널들을 사용하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최우선 타격목표인 네바팀 공군기지엔 고폭탄 2백 발을.

그다음 표적인 하체림 공군기지엔 고폭탄 80발을.

하체림 공군기지 맞은편의 시가전 훈련시설엔 고폭탄 50발을…….

타격 순서와 표적의 가치에 따라 배분한 고폭탄들은, 한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전부 배송이 완료되었다. 내 부하들을 따로 할당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유익했던 일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이다.

첫 번째 공격지점의 화물을 인수한 나와 내 부하들은, 해가 저물고 달이 뜬 사막에서 공격을 준비했다.

「달캉달캉달캉달캉-」

베두인들의 마을엔 양철 슬레이트를 엮어 지은 집들이 흔했다. 낮에는 불처럼 달아오르고 밤에는 얼음처럼 식어버리는 저질스러운 주택들이다.

모래 섞인 바람이 불면 따당거리며 모래알 부딪히는 자그마한 소리가 나고, 바람이 좀 세다 싶으면 엉성하게 엮인 슬레이트들이 흔들리며 달캉대는 쇳소리를 낸다. 차가운 밤바람엔 양과 염소와 사람의 분뇨 냄새가 미세하게 녹아있었다.

공군기지 인근의 초라한 마을들은 전부 비어있었다. 이스라엘 군경이 아침부터 펼친 소개(疏開) 작전의 결과였다. 군사기지와 가까운 곳이다 보니 다른 지역들에 비해 소개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한편으로는 샤히디의 이름으로 은밀한 지시를 전해둔 덕분이기도 했다. 여기서만큼은 소개 명령에 따라주도록 하라고.

덕분에 밀수꾼들이 포탄을 숨겨둘 만한 장소는 사방 천지에 널려있었다.

경태가 말했다.

“전탄 신관결합 완료했습니다. 이제 그냥 던지시면 됩니다.”

던지기는 던지기이되 대마법사의 던지기다.

네바팀 공군기지의 북서쪽 마을들 사이엔, 공군기지보다 백 미터 이상 지대가 높은 사구(沙丘)들이 즐비했다.

이 사구 위에 자리 잡고 환시장막을 두르니 경계병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공군기지 외곽 경계선까지의 거리는 약 2킬로미터. 가장 가까운 활주로까지는 3.6킬로미터이고, 가장 먼 활주로까지는 6킬로미터 가량 된다.

나는 마력장을 확장하며 부하들에게 알렸다.

“시작하겠다.”

쭉 퍼져나간 내 마력장은 공군기지 바깥의 무인지대를 삼키고 외곽 경계선 앞에서 확장을 멈추었다. 경계선에 배치된 각성능력자들이 내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한계선이었다. 환시장막 또한 마력장과 동일한 범위로 넓혀놓았다.

다음으로는 내 위치로부터 표적을 잇는 직선상에 기다란 염동력의 레일을 깔았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2킬로미터짜리 가속 투사기 같은 것이었다.

155밀리 고폭탄을 직사로 꽂아 넣는 묵직한 위력의 연속 포격이다.

눈높이에 맞춰 투명한 레일에 올린 포탄은 장전과 동시에 발사되었다.

내 시선이 곧 사선이었고, 사선의 끝엔 철근 콘크리트로 강화한 경계초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낙차(落差)가 전무한 직사포격은 정확하게 초소에 명중했다.

밤하늘의 아랫자락이 섬광으로 번뜩였다.

나는 폭음이 들려오기도 전에 조준을 수정하고 차탄을 발사했다. 또 하나의 요새화 초소가 섬광과 함께 바스러진다. 내부에 있던 각성능력자들은 단 한 번의 작렬로 모조리 전장의 고혼이 되었다.

최초의 폭음은 세 번째 포탄을 장전할 즈음에야 비로소 사구를 기어 올라왔다.

「콰콰쾅!」

각성능력자들간의 교전을 상정한 초소들은 어지간한 대전차로켓 직격에도 견딜 만큼 견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견고함은 초음속으로 쇄도하는 155밀리 고폭탄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포탄이 작렬하는 족족 철퇴에 맞은 비스킷처럼 박살이 날 따름.

「쾅!」

고폭탄 터지는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폭음은 사구의 능선을 따라 배치된 부하들이 순찰조를 저격하면서 터져 나오는 총성이었다.

말이 총성이지, 쓰는 탄환의 구경이 20밀리나 되는 탓에 사실상 포성이나 마찬가지였다. 총성도, 포성도 노출될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가하는 저격은, 최소 2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양호한 명중률을 보여주었다.

「-!」

저편에서는 방전능력을 보유한 특기병들이 휴대용 지상감시 레이더(GSR)를 작동시키거나 휴대용 드론을 띄우거나 하고 있었다.

전력 공급 문제만 해결한다면, 휴대용 레이더는 혼자서도 충분히 운용 가능한 물건이다. 6킬로미터 바깥에 서있는 사람도 탐지 가능하며, 2~3킬로미터 범위 이내에선 포탄이나 대전차로켓의 발사지점도 특정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에겐 우리를 포착할 능력이 없었다. 환시장막이 레이더에 가깝게 전개될수록 레이더의 성능이 심하게 저하되는 까닭이었다.

아마 레이더를 통해 보는 화면은 온통 희뿌연 노이즈로 가득할 것이다.

추가로 부사수들이 들고 다니던 드론들의 경우, 내 마력장의 경계를 넘는 즉시 살충제 맞은 모기들처럼 전원이 꺼져 추락했다.

보통의 공격자였다면 이러한 특기병들을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했을 터.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부하들에게 맡겨두면 그만이었다.

「콰아아아아아-」

3초에 하나꼴로 강화 초소들을 날려대고 있으려니, 활주로에서 전투기 두 대가 이륙을 시도했다. 단발 터보팬 엔진의 소음이 폭음을 뚫고 들려온다. 내가 이 기지를 첫 타격목표로 정한 이유인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I 「아디르(אדיר/강자)」의 탈출 시도였다.

본디 야간출격을 위해 무장을 장착 중이던 아디르 전투기들은 무장이고 뭐고 포기한 채 기지를 벗어나려 들었다.

‘어딜.’

나는 활주로를 겨냥해 아홉 발의 포탄을 연사로 갈겼다. 레일의 길이를 줄여 명중률을 낮추고 연사속도를 높여 갈겨대는 제압포격이었다. 전투기를 완파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선택한 간접적인 공격방식. 얻을 건 얻고 나서 폭파해야 할 것이다.

155밀리 고폭탄의 살상반경은 25미터. 한 발이 터질 때마다 직경 50미터의 원이 파편 섞인 폭풍에 휩쓸린다.

동체보다 긴 추진화염을 달고 가속에 돌입했던 전투기들이 폭압에 휩쓸려 쓰러졌다. 엔진이 바로 꺼지지 않았으므로, 전투기들은 길게 불티를 튀기며 미끄러지다가 활주로 바깥에 처박히고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저 전투기들에게선 뜯어낼 전리품이 아주 많을 것이다.

나는 포탄을 갈기면서도 틈틈이 대공경계를 행했다. 기지가 공격을 받으면 이 근방을 순찰하던 비행능력자들이 일제히 몰려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트 바이크들이 온다. 접근방위 하나-아홉-공. 숫자는 넷. 거리 약 6킬로미터. 현재 경로를 유지한다면 약 50초 후 12시 방향 2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할 거다.”

굳이 대공미사일 따위 쏘지 않아도 제트 바이크들을 처리하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제한시간 안에 프로파간다 재료까지 뽑아가야 하니, 먼저 달려오는 부지런한 놈들은 조금 더 번거로운 방식으로 죽여줄 필요가 있었다.

두 개의 장막을 역방향으로 중첩시키지 않는 한, 환시장막의 교란은 단방향으로만 작용한다. 내 조기경보를 들은 부하들은 유대나치 제트 바이크 편대를 쉽게 포착했다.

「푸학- 콰아아아-!」

휴대용 대공미사일들이 타이밍을 맞춰 하늘로 솟구쳤다. 각각의 미사일들이 표적을 향해 쇄도하는 동안, 표적들은 미사일의 접근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환시장막이 미사일들의 존재마저 은폐했기 때문이다.

제트 바이크들은 내 마력장의 경계를 뚫고 들어온 후에야 지척까지 날아온 미사일들을 발견하고 전율했다.

그러나 대마법사의 장악력에 밀려 급격히 저하된 추력으로는, 회피기동은커녕 기본적인 고도유지조차 어려웠다.

「콰쾅! 쾅! 콰콰쾅!」

미사일에 직격당한 기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사막에 추락했다. 경로상에 식민지인들의 마을이 있었으므로, 기체와 격돌한 양철 슬레이트들이 종잇장처럼 팔랑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탑재되어있던 무장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마을 전체를 노을빛으로 물들였다.

파일럿들 중엔 생존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새어나온 연료와 유대인들의 시체, 가난한 자들의 가재도구들, 그리고 유목민들의 땔감으로 비축되어있던 마른 가축 똥들이 한데 뒤섞여 타오른다.

고폭탄에 뭉개진 기지 방어선 근처에선 두 개 분대 규모의 부하들이 촬영용 쇼를 하고 있었다. 내가 던지는 것과 동일한 고폭탄을 염동력에 실어 날리는 쇼였다. 요즈음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어지간한 국가의 대테러부대에 준하는 화기와 장구류를 사용하므로, 복면 정도를 제외하면 복장은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둘, 혹은 셋 이상의 염동능력자들이 합을 맞춰 무거운 포탄을 날려 보내는 건, 보기엔 단순해도 굉장히 숙련된 팀워크가 필요한 일이다.

2백 발의 고폭탄을 전부 소진하는 데엔 1분 49초가 소요되었다. 중간중간 조준을 수정하느라 걸린 추가적인 시간들이 있는 탓이었다.

「쿠릉- 쿠르르릉! 쾅!」

포격이 끝나고 나서도 천둥 울림을 닮은 폭음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투기에 달아주기 위해 꺼내놓았던 무장들, 남쪽 활주로 측면에 주기되어있던 수송기와 지상공격기들, 연료를 잔뜩 싣고 있던 공중급유기가 줄줄이 불타오르며 발하는 폭발의 다중주였다.

긴급히 출동하던 기지방호부대와 비상대기조의 차량들은 내 포격 연사에 휩쓸려 모조리 전멸해버렸다.

이제 기지에 남은 건 비각성자 전투인력들 및 비전투인력들뿐.

“들어가지.”

나는 간헐적으로 날아드는 제트 바이크들과 무인기들을 격추시키며 기지로 돌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