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성지의 수호자 (5)
나는 샤히디의 성전을 갈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한편, 이들의 애타는 기대를 고조시키기 위한 떡밥들을 툭툭 던져주었다. 경태는 이를 두고 “희망회로를 돌리게 한다.”라고 표현했다.
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낚인 생선처럼 퍼덕이게 만든 떡밥들 중 하나는, 내가 시나이 반도를 종단할 때 수확했던 이슬람 국가(ISIS)의 시나이 지역 잔당들(윌라야 시나이)이었다.
예멘 평정 이후 행적이 묘연했던 샤히디가 돌연 “중동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를 위해” 자발 무사(모세의 산)와 시나이 반도 남부를 토벌했다며 포로들과 노획물들을 대대적으로 공개하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희망으로 가득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위대한 아미르(사령관) 알림 샤히디가 갑자기 시나이 반도 일대의 불한당들을 토벌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곳을 기반으로 삼아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오려는 게 분명하다!」
「그는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의 비극을 공개적으로 대변해준 직후 이런 소식을 공개했다. 누가 봐도 여기엔 어떤 의도가 깔려있는 게 아니겠는가?」
「위대한 알라의 검 알림 샤히디는 예멘에서의 성전을 통해 험준한 산악지대에서의 탁월한 작전능력을 과시한 바 있다. 그가 시나이 반도 남단으로부터 에일라트 산맥(Harei Eilat)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공한다면, 역겨운 유대인들은 절대로 그를 저지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요르단 국왕과 알림 샤히디가 은밀한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이 돈다! 그는 술레이만(솔로몬) 왕의 광산을 거쳐 남쪽에서부터 예루살렘을 들이칠 계획이다! 사악한 학살자들의 나라가 무너질 날이 머지않았다!」
「알라시여! 유대인들을 죽여주소서! 당신의 검으로 유대인들의 나라를 내리쳐주소서!」
팔레스타인 땅에 도는 루머들 중엔 의외로 사실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알림 샤히디가 시나이 산맥에서 거둔 승리를 알리기 무섭게 요르단 국왕이 은밀히 접촉해온 것이다.
알림 샤히디와 요르단 국왕 사이엔 천안문 광장 의거 직후부터 자금후원을 통한 연락선이 형성되어 있었다.
국왕은 제안했다.
「존경하는 알라의 검 알림 샤히디. 만약 그대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일 계획이라면, 부디 나와 내 신민들에게도 힘을 보탤 기회를 주었으면 하오.」
「이제 와서 요르단 강 서쪽의 땅을 회복하려는 건 아니오. 나와 나의 정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국제사회의 합의를 존중하기로 했소.」
「그러나 유대인들이 불법적으로 편취한 재부(財富)를 나누어 갖는 정도는 가능하겠지. 그것은 과거사의 상처를 품고 있는 내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가 될 일이오.」
「비록 처음부터 군대를 움직이긴 어렵겠소마는, 내 왕국의 강역을 배후지대로 제공할 수는 있소. 내 국민들이 그대를 사적으로 돕는 것 역시 막지 않을 생각이오. 나의 항구 아카바를 통해 보급을 받고, 내 왕국의 산맥을 거쳐 더 광범위한 침투경로를 확보하시구려. 오로지 에일라트 산맥만을 통해 공세를 가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을 거요.」
요르단은 팔레스타인과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지난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요르단 땅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갖은 종류의 깽판을 치다가 요르단 왕국군에게 토벌당한 역사가 있는 까닭이다.
일제강점기, 소련 땅으로 넘어간 간도 독립군 부대들이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약탈을 벌이다 붉은 군대에게 토벌당했던 것과 판박이처럼 닮아있는 사건이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약자들은 억울한 집단이지 선한 집단이 아니다.
그러나 요르단 국민들의 감정은 팔레스타인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압도적으로 더 험악했다. 이러한 국민감정은 내부의 불안을 외부로 돌리고 싶은 통치자를 유혹하는 법이었다.
나는 주로 바다로부터의 침투공격을 구상하고 있었기에 딱히 요르단으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러나-
‘친하게 지낼 가치는 있지.’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자, 고대부터 근세까지 성지 메카를 수호하던 샤리프의 혈통이고, 이슬람 세계 최후의 칼리파(Khalifa/خليفة)를 배출한 가문의 좌장이기도 한 요르단 국왕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 없는 인간이었다.
알림 샤히디의 이름으로 성지의 수호자 타이틀을 주장할 때 사우디 왕세자와 더불어 요르단 국왕이 들러리를 서준다면 그보다 완벽할 순 없을 것이다. 요르단 국왕은 이슬람 세계에서 성지 예루살렘의 관리에 관해 가장 특별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니까.
요르단 국왕 이외에도 샤히디에게 연락을 해오는 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요르단 국왕만큼의 쓸모를 지닌 자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선전공작에 동참한 마무르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싸장님이 킬각을 보자 온갖 날파리들이 꼬이고 있어요. 최소한의 노력으로 지상에서의 영광과 천국에서의 안식을 누리고픈 무임승차 희망자들이 너무 많다.」
그러고는 다시 하는 소리가 이러했다.
「보통 남의 싸움에 난입해 막타를 때리는 건 비난을 받을 짓입니다. 그러나 킬각을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고, 막타를 칠 능력 또한 자신에게만 있는 상황이라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요. 그것은 소위 캐리라고 하는 것이다. 혼자서 싸움을 승리로 이끈다는 뜻.」
「잃어버린 성지가 싸장님을 기다리고 있다. 개종도 하기 전에 미리 천국행 확정 티켓부터 뽑아두는 사람은 살다 살다 처음 봐요.」
그래도 이스라엘에 성전을 선포해주기만 한다면 충성서약을 바치겠다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제안은 그런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애간장을 태울 만큼 태운 시점에서, 내 지시를 받은 샤히디는 영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나는 마음이 급한 사람이다.」
연기력이 물이 오른 샤히디는 우수에 찬 표정과 낮게 깔리는 음색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고향 위구르에선 잔혹한 공산주의자들의 압제가 계속되고 있겠지. 땅을 빼앗기고, 역사를 빼앗기고, 신앙과 자유마저 빼앗긴 채로 고통받는 동포들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자주독립의 기치를 내걸고 공산당을 몰아내는 성전을 시작하고 싶다.」
「고향을 떠난 이래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간절한 소망이다.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의 설움은 심장에 박혀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날선 얼음조각과도 같을지라.」
샤히디는 무거운 한숨을 토하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 고향 땅의 동포들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약자들의 비명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또한 한 사람의 무슬림으로서, 잃어버린 성지가 같은 무슬림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눈감을 수 있겠는가.」
「이 세상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 알라께서 나와 내 형제들에게 분에 넘치는 능력을 내려주신 데엔 그만큼 큰 정의를 실천하라는 뜻이 있으셨을 것이다.」
이 영상의 실시간 스트리밍은, 기습적으로 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3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이슬람 세계의 체 게바라」라는 이미지가 확고해진 덕에 서구권에서 유입되는 시청자의 수도 상당했다.
경태는 이를 지켜보며 탄식했다.
“아휴. 저 많은 사람들이 원래는 형님의 팬이었어야 하는 건데.”
단순한 헛소리라기엔 드러내는 안타까움에 진심이 제법 끼어있었다.
이 녀석은 왜 자꾸 이런 기묘한 바람을 드러내는 것일까. 예전이라고 이러지 않았던 건 아니나, 근래 들어 궤가 같은 말을 하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그래서 나와 나의 형제들은 숙고 끝에 결정했다. 불의를 눈감는 빠른 길보다는, 정의를 지키며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우리를 지켜보는, 또 기다리는 동포들은 우리의 결정을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우리 위구르 민족의 자주독립은 오직 높으신 알라의 은총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 그분께서 내려주신 능력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길을 걷는다면, 그 길의 끝엔 결코 우리가 간구하는 은총이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부단하게 정의를 실천함은 또한 위구르 민족의 자주독립에 대한 세계만방의 지지를 모으는 과정이라. 세계가 우리 위구르 민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천안문 의거로 한 번 달라졌고, 예멘 성전으로 다시 한 번 달라졌다. 베잇 알 무카다스(بيت المقدس/신성한 사원의 도시),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한 성전은 또다시 우리 민족의 위상을 달라지게 하리라 믿는다.」
샤히디가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한 성전」을 직접적으로 입에 담기 무섭게,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일제히 단신(短信) 속보를 내보냈다. 미리 기사를 작성해놓은 상태에서 초 단위로 벌이는 치열한 속도경쟁이었다. 언론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조직 본사 홍보실은 이러한 동향을 실시간으로 모아 보고해주었다.
주연 배우인 샤히디는 사실상 내가 작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 세계에 전달했다. 각본과 연출을 모두 내가 총괄 지휘한 연극이었다.
「세계는 부디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는 결코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땅으로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나와 내 형제들의 뜻은 어디까지나 팔레스타인 민족이 빼앗긴 땅들과 예루살렘의 지위를 유엔 결의안에 따라 돌려놓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생각도 없고,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점령하거나 다른 종교의 성지를 파괴할 생각도 없다.」
「예루살렘은 유엔 신탁통치위원회가 관할하는 국제도시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 질서 아래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무슬림들의 예배를 보호하는 역할만을 맡기를 희망한다. 예루살렘에 성지를 둔 모든 종교는 같은 질서 아래에서 균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나는 로마 교황청에게 묻는다. 예루살렘의 지위에 관한 비오 12세 성하의 회칙 「구세주의 수난」은 아직 유효한가? 그렇다면 바티칸의 지시를 따르는 기사단을 보내어 사도행정관과 함께 중립적인 감시와 중재를 해주길 바란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를 비롯한 전 세계 정교회 지도자들에게도 같은 요청을 전한다. 당신들의 도움은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도 청한다. 이스라엘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어달라. 당신은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나라 잃은 민족의 지도자이기도 하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아픔을 깊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직접적인 이해가 얽혀있지 않은 불교도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내가 가는 길을 지켜봐준다면, 세계는 내게 삿된 뜻이 없음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요르단과 성지의 복음주의 루터 교회’와 예루살렘 성공회에게도-」
샤히디의 명성을 이용해 전 세계 주류 종교들을 모조리 호출하는 것은 명분 쌓기의 일환이자 여론전의 수단이었다. 내가 대본에 집어넣도록 지시한 종교들은, 티베트 불교 하나를 제외하면 일찍부터 예루살렘의 유엔 신탁통치 방안을 지지해온 곳들이기도 했다.
이 범종교적인 호출에 달라이 라마를 끼워준 건 이쪽이 도움을 받기보다는 저쪽에 도움을 주는 성격이 더 강했다. 일상적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구걸해야 하는 망명정부의 수장에게, 이렇게 좋은 화제로 주목을 받을 기회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티베트 불교의 고승들과 티베트 망명정부 관계자들에게 눈치라는 게 있다면, 이번 요청이 단순한 우의의 확인을 넘어 본격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자는 신호임을 알 터였다.
‘중국은 또 지랄을 하겠지.’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는 사안에 달라이 라마를 끌어들이는 것은, 그 화제가 무엇이든 중국의 가짜 빨갱이들로 하여금 발작을 일으키게 만드는 짓이다.
경태는 이를 두고 “짱깨들의 발작버튼을 누른다.”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 표현이 썩 마음에 들었다. 시○핑의 고통중추에 전극을 꽂아놓고 딸깍딸깍 버튼을 누르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표현이었다.
「이 세상에 좋은 전쟁이란 없다.」
실시간 영상 속의 샤히디는 단언하듯이 말했다.
「그것은 성전도 마찬가지다. 예언자께서 가르치시고 법학자들이 해석한 바, 지하드는 무력을 쓰지 않는 생활 속의 실천일 때 가장 값지다 하였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쟁은 선이 아니라 필요악에 불과하며, 정당한 전쟁이란 오직 필요악을 통해서만 더 큰 악을 배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에게 고한다. 그대들이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결의를 수용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전쟁을 피할 수 있다. 그냥 유엔 결의안들을 수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국경을 유엔이 정한 67년의 그린 라인으로 되돌리고, 유엔의 결의에 따라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승인하고, 예루살렘을 유엔의 관할로 돌려주고, 유엔의 결의안을 무시한 채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불법적으로 건설한 유대인 정착촌들로부터 정착민들을 철수시켜라.」
나는 내가 뼈대를 잡아준 대본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 세상은 “유엔 결의안 준수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라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고.
엄밀히 말하면 샤히디는 이런 요구를 하는 최초의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쪽으로 많이 무관심했던 전 세계 사람들은 샤히디를 처음으로 알 것이었다.
「정착민들을 철수시킬 때는 시설파괴가 발생하지 않게끔 주의해주었으면 한다. 정착촌의 모든 자산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만행에 피해를 입어온 자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져야 할 테니까.」
「만약 부적절한 파괴행위가 자행될 경우, 나는 이스라엘에게 그에 비례하는 추가적인 배상을 요구할 것이다.」
「내 제안을 검토할 시간은 하루를 주겠다. 혹자는 시간을 너무 적게 주는 게 아니냐고 묻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하루의 시간을 주기 전에, 이스라엘에게는 스스로의 행동을 바로잡을 기회들로 가득했던 80년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의 압제까지 포함하면, 자유와 해방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다림은 벌써 백년이 넘었다. 그 기다림을 감안할 때 내가 주는 하루는 절대로 짧은 시간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단 하루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가 모든 유엔 결의안들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기로 결의하지 않을 경우, 나는 이스라엘을 향한 지하드를 선포할 것이다.」
「지금부터 시간을 재겠다. 이상이다.」
샤히디가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스트리밍 화면은 곧장 24시간 타이머 시계로 전환되었다. 검은 바탕에 붉은 숫자로 표시되어 줄어드는 시간은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다급하게 병력을 재배치하고 경계를 강화하는 움직임들을 보니 시나이 반도 방면으로부터의 산악침투를 예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건 속임수에 그대로 넘어와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샤히디의 유일한 공개 대외창구인 SNS를 통해서는 협상을 요청해왔는데, 누가 봐도 시간을 벌기 위한 수작이었다. 나는 “협상은 없다. 대답은 오직 예와 아니오가 있을 따름이다.”라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 세계에 대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려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내세운 명분이 너무나 단순하고 강력했기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경태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아, 이거 손발 묶어놓고 패는 느낌이라 재밌지 말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유엔 결의안을 이행하라는 데 지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육지에서의 침투에 대비하는 동안, 나는 바다에서의 공격을 준비했다.
실향민들의 게토 가자지구는 올 초부터 육지와 바다 양면에서 봉쇄되어 있었다. 일반 상선이나 구호물자를 적재한 선박들조차 테러단체 지원 혐의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끌고 가 몇 주, 심하면 몇 달씩 억류하기 일쑤여서, 가자지구 전체가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이집트 방면 국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밀수와 지원들이 아니었다면 가자지구는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2백만의 민간인들을 기아로 몰아넣음으로써 5차 인티파다의 기세를 꺾고자 해왔다.
내가 가하는 공격은 그 봉쇄를 풀 효시와도 같았다.
실시간 스트리밍 화면의 타이머 시계가 카운트 제로를 앞둔 시점에서, 나는 이스라엘 해군의 최신예 초계함을 내 마법의 사정권에 두었다.
최초의 표적이 된 초계함 「INS 아츠마우트」는 가자지구 북쪽의 바다에서 해상봉쇄와 지역방공임무를 수행하는 함선들 가운데 하나였다.
「투쿵!」
파도 아래로 들어오는 포성은 둔중한 울림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아츠마우트가 발사한 76밀리 고폭탄은, 뒤늦게 군함을 발견하곤 황급히 그물을 끊어내던 팔레스타인 어선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꾸드등!」
물결 위로 섬광이 번뜩이고, 다시 한 번 둔중하게 변형된 폭음이 울려 퍼진다.
작은 어선은 단 한 발의 명중탄만으로도 선저까지 파손되어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생존자들이 있긴 했으나 파편에 휩쓸려 치명상을 입었으므로,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INS 아츠마우트가 아무런 명분도 없이 민간 선박을 공격한 건 아니었다. 함포를 갈기기에 앞서, 독일과 이스라엘의 첨단기술이 집약된 초계함은 어선을 향해 1분 간격으로 3회의 무선 경고를 송출했다.
「북위 31°36'04.7", 동경 34°23'23.8"에서 조업 중인 어선에게 경고한다! 귀 선박은 이스라엘 해군이 해상안전을 위해 설정한 경계구역을 침범하고 있다! 즉시 조업을 중단하고 본함의 통제에 따를 뜻을 밝혀라! 응답이 없을 경우 적대의사로 간주하겠다!」
나는 이 경고를 파도 사이로 띄워놓은 통신 부이를 통해 수신했다.
문제는 가난한 자들의 어선엔 무전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포탄에 맞아 박살난 어선은 휴대용 무전기조차 가지고 있질 못했다.
만약 누군가 민간선박에 대한 공격을 문제시한다면, 최신예 초계함은 경고방송 송출과 무응답이 기록된 블랙박스를 해명자료로 내놓을 것이다.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실제로 민간인을 방패로 삼거나 어선으로 위장한 자폭보트를 운용하는 사례들이 많아, 국제사회와 다국적 NGO들이 문제를 제기한들 결국엔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 팔레스타인 지하디스트들은 쪽배에 발사기를 달아 까삼 로켓을 발사한 적도 있었다.
이스라엘 해군은 이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 어부들의 어선을 찾아다니며 파괴했다. 내가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직접 목격한 것만 해도 다섯 번이나 된다.
가자 지구의 기아를 심화시키려면 어선들의 조업은 최대한 저지해야만 한다. 또한 어선들의 활동을 억제하면 위장공격이나 테러리스트들의 해상침투 위험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 이스라엘 해군으로서는 일석이조의 작전인 셈.
반대로 팔레스타인의 어부들은 굶어죽기 싫어서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조업에 나서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00:00:00:00」
이스라엘에게 보낸 최후통첩의 시한이 만료된 것은 부서진 어선이 파도에 완전히 삼켜질 즈음의 일이었다.
나는 나와 조립식 아기들의 마력회로에 진동파괴의 파동을 장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