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성지의 수호자 (4)
알림 샤히디의 홍보 채널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간절한 요청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잔가지를 쳐내고 나면 그 내용들은 모두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했다.
「위대한 사령관이시여, 제발 저희에게로 와서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올해 초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다섯 번째 민족저항운동(제5차 인티파다)은 이스라엘에게 굉장한 부하와 피해를 안겨주고 있었으나, 그게 곧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승기를 잡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현실은 오히려 반대였다. 제5차 인티파다는 명백히 동력을 상실해가는 중이었다.
팔레스타인 무장투쟁계열 민족지도자들이 믿었던 것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축복의 힘(바라카)이었다. 초능력자들은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이 세계 각지에서 증명되고 있는 만큼, 온 팔레스타인 민족이 총궐기를 감행하여 침략자들에게 맞서 싸우면 승산이 있으리라는 게 이들의 기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세 가지 이유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첫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이 선제적으로 수행한 예방전쟁이었다.
이번 출장을 사전에 협의하는 과정에서, 마무르는 이스라엘의 행동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킬각 하나만큼은 아주 기가 막히게 보는 놈들이다.」
내가 말뜻을 묻자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아, 싸장님 킬각을 몰라요? Kill 더하기 각(角)이다. 고로 킬각을 본다 함은 상대를 죽일 기회를 노리는 것. 평소에 언어 공부 좀 하십시오.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고, 천재도 꾸준히 공부를 해주지 않으면 머리에 녹이 슬어버립니다.」
헛소리를 한 마무르는 한숨처럼 내뱉었다.
「유대인들을 칭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탁월한 예방전쟁능력엔 한 사람의 전사로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어요. 나는 그들에게 솔직한 찬사를 바칩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전쟁을 아주 좆같이 하는 놈들이에요.」
이 미친놈은 일찍이 예멘에서 “게임과 전쟁은 원래 좆같이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칭찬처럼은 느껴지지 않지만, 미친놈 나름대로는 진심으로 던지는 찬사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동감이었다.
제3차 중동전쟁 이래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과 일방적인 휴전파기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저 새끼들 저거 좀 불안하다 싶을 때마다 조건반사적으로 밟아버리는 예방전쟁은 이스라엘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장 잘하는 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국가 전체가 선악을 초월한 생존본능의 결정체에 가까웠다.
이 부분에서는 조금 기분 나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원탁의 제국주의자들에게서도 자주 느끼며, 나로 하여금 꾸준히 자기만족의 선을 긋도록 만드는 불쾌한 감정이었다.
그 생존본능의 대변자인 이스라엘 총리는 작년 중순쯤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의 연단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초능력을 획득하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간주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감시할 것이고! 통제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신병을 구속할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안보와 유대민족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치입니다!」
그때도 각성능력자들의 힘은 꾸준히 강해지는 중이었으므로, 가만히 있다간 팔레스타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판단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제국주의자들은 애당초 대외적인 명분 따위에 얽매였던 적이 없다.
외부세계는 대개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알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명목상 팔레스타인의 영역으로 규정되어있는 땅에서 자치정부가 행정권과 사법권을 행사하는 땅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땅에선 이스라엘 정부가 경찰권을 행사하거나, 행정권과 경찰권을 모두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나치 경찰들은 언제나 그렇게 해왔듯 수색영장 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가택을 수색했고, 체포영장 없이 팔레스타인 각성능력자들을 체포했으며,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그들을 감옥으로 보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수단이 군과 민병대를 동원한 「표적살해」였다.
2등 시민을 죽이는데 뭐 하러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그냥 죽이면 되지.
폭격으로 죽이고 유감을 표하거나, 군을 대신해 불령(不逞)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처리해준 민병대원들에게 무죄 내지는 집행유예를 선고해주면 그만이다.
정 문제가 된다면 실형을 선고하고 나서 추후에 형을 감경해주면 해결되는 일.
당시는 각성능력자들이 힘이 덜 여물었던 때라,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로 선공을 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산발적인 저항은 체계적인 진압작전에 부딪쳐 무너져 내렸다.
이스라엘이 수행한 예방전쟁은, 제5차 인티파다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기도 전에, 팔레스타인의 각성능력자 동원능력에 유의미한 타격을 가해놓았다.
‘유대 놈들은 작금의 사태가 자기실현적 예언의 결과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혹자는 인티파다를 막기 위한 이스라엘의 예방전쟁이 오히려 인티파다를 촉발한 거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인티파다를 필연적으로 찾아올 미래로 본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제껏 이스라엘이 쌓아온 업보가 좀이나 많은가.
인티파다가 성공하지 못한 두 번째 이유는 통일된 지도력의 부재였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종교·정파·성향·노선·근거지의 차이로 단일전선을 이루지 못했고, 겉으로는 같은 깃발 아래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력들조차 속을 들여다보면 지역별·세포조직별로 지도력이 분산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 측의 집단행동은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둔하고, 느리고, 행정적인 비효율과 무질서도가 늘어났으며, 기본적인 비밀엄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지 전략의 사전검토 단계에서, 경태는 정보수집 보고서를 읽으며 평했다.
“으음…….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다시없겠는데…….”
그러고는 픽 웃으며 하는 소리가 이러했다.
“하기야, 일제강점기의 만주에서도 독립운동 단체들 사이에서 주도권 다툼이 극심했다고 하죠. 여긴 그보다 더한 게 정상이긴 하겠습니다. 백 년 넘게 숙성된 대영제국의 똥 냄새가 참으로 향긋하기 짝이 없지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유대인들도 토지 사기거래의 피해자일 뿐이다. 이 땅의 유대인들을 나치로 전락시킨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결국 근대사의 오물 구덩이인 대영제국이지 않나.
이스라엘의 예방전쟁과 표적살해는 그렇잖아도 결속력이 부족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이 더더욱 힘을 모으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이 서로 다른 단체들 사이에서 연결점이 될 만한 저명인사들을 최우선적으로 제거해버린 탓이었다.
5차 인티파다가 좌초위기를 맞이한 세 번째 이유는, 그냥 순수한 힘의 격차였다.
이스라엘은 예방전쟁을 개시한 시점부터 이미 국가의 사활을 걸고 총력전 준비에 돌입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올해 4월, 제5차 인티파다가 개시됨과 동시에 총동원령을 발효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측보다 더 많은 각성능력자들을 전장에 투입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인구부터가 유대인들이 더 많았던 까닭이다.
‘총력전은 행정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전장에 투입된 유대인 각성능력자들은 과반이 군 복무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비군은 한국의 예비군과는 질적으로 다른 병력자원이었다. 근 이십 년에 걸쳐 현역과 동일한 수준의 군사훈련을 받고, 현역 시절의 부대편제를 그대로 유지하며, 그 편제를 바탕으로 실전에도 수시로 투입되니까.
군대의 기율과 조직력은 전쟁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도 가치가 불변하는 무형의 자산이다.
경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경험, 장비, 정보자산, 규모와 조직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이 우위를 점하는데, 가진 힘도 하나로 모으지 못하면서 알라의 은총이나 기대하는 오합지졸들이 무슨 수로 승리를 구하겠습니까? 이건 시작부터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었다고 봐야죠.”
물론 이스라엘도 죽을 맛이긴 할 것이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병력손실을 경험하고 있고, 온갖 종류의 테러 피해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니까. 가자지구와 가까운 거주지들엔 소개령이 떨어진 지 오래이며, 아슈도드와 텔아비브마저도 전쟁터로 전락한 상황.
이스라엘 정부가 5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공식 전사자 수는 1만 3천 명에 달했다.
그러나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우월한 교환비를 유지하고는 있는 유대인들의 전의는 꺾이기는커녕 처음보다도 더 높아지고 있었다.
단순한 증오나 애국심을 넘어, 종교적 선민의식과 민족적 생존본능을 땔감으로 삼아 온도를 유지하는 절박한 전의였다.
「우리는 결코 현실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오래전부터 골수 시온주의자로 이름이 높았던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피로에 짓눌려있는 국민들에게 절절하게 호소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땅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저들을 지금 철저하게 꺾어놓아야 합니다!」
「어중간한 승리로 저들에게 여력을 남겨두었다간! 훗날 내부와 외부의 적들이 한꺼번에 손을 잡고 몰려드는 꼴을 보게 될 겁니다! 우리의 국경 너머에 있는 모든 땅으로부터 짙은 죽음의 냄새가 풍겨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국경 너머의 모든 땅으로부터 죽음의 냄새가 풍겨온다는 말은 중동 지역의 불황과 그에 따른 종교적 극단주의화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다시 되새기건대, 이스라엘은 생존본능의 결정체 같은 나라였다.
「우리는 언제나 승리해왔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어 보이는 전쟁에서도 항상 승리를 거두어왔던 것은! 유대인들의 나라를 전능자께서 가호하시는 까닭입니다!」
「유대인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승리를 쟁취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가 잠시 시험에 들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스스로 굴복하지 않는 한 우리를 무릎 꿇릴 역경 따윈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온(Zion)! 시온! 오직 시온! 시온의 영광을 위하여!」
생존본능을 연료로 작동하는 학살기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착실하게 갈아버리는 나날이 이어지자, “이번만큼은 정말 다를 거다.”라고 믿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높았던 기대감에 비례하는 심리적 낙차를 경험하고 있었다.
전사들이야 독기 어린 투쟁을 이어가고 있으나, 그 전사들을 지지하던 일반 민중들은 실망감과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또다시 갈라졌다. 실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두고, 서로 다른 단체와 계파들이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그와 별개로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투쟁에 참여한 모든 단체들을 성토했다. 저마다 자기가 옳다며 민족의 힘을 갈라먹기에 바빴던 놈들이 아직도 입만 살아서 떠들어 댄다고.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할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심리를 이용하여 미리 사전작업을 진행해놓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갈망이 ‘위대한 성전지도자 알림 샤히디’를 향하게끔 여론조작을 지시한 것이다.
이 공작에 크게 기여한 것이 메리옘과 그 동생들이었다.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본사 홍보팀의 역량만으로는 성공시키기 어려운 공작이었으니까.
“아주 잘해 주었다. 현지인들의 애타는 요청들을 보니 너희의 사전공작이 제법 효과적이었던 것 같구나,”
칭찬은 동기를 부여하는 손쉬운 수단이다. 그 대상이 나를 메시아로 여기는 광신도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나와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영광스러워하는 메리옘과 그 동생들은 내 치하를 듣고 감격에 겨워 몸을 떨었다.
메리옘은 무릎을 꿇은 채로 눈시울을 붉혔다.
“아, 주여. 은혜로우신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는 내 다리 위에 올라앉은 춘식이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면 고해봐라. 절반은 너희가 지금까지 바쳐온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나머지 절반은 앞으로 바칠 헌신에 대한 격려의 의미로 상을 내려주마.”
메리옘의 어깨와 머릿결이 바르르 흔들렸다.
“저희는 이미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분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쳤습니다. 귀하신 분을 위해 헌신함은 종 된 자들의 당연한 본분일진대, 어찌 주제넘게 상을 바라겠습니까.”
“내가 주겠다고 했다. 사양하지 마라.”
“아……. 자비로우신 분이시여…….”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면 따로 말미를 주마. 너희끼리 논의해보고 오늘 내로 고하도록.”
내 말을 들은 메리옘은 짧은 침묵 끝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지금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예.”
동생들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마저 속여 버린 광신도의 시선이 내 눈으로부터 내 무릎 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무언가를 느꼈는지, 춘식이가 고개를 휙 돌려 메리옘을 바라보았다.
「끄응- 끙-」
기이한 열기로 가득한 광신도의 눈을 본 춘식이는 겁먹은 것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놈은 사냥개 주제에 뭐 이리 겁이 많은지…….’
그레이스 복제체들을 만났을 때 꼬리를 내린 것까진 그렇다 쳐도, 이젠 광기가 좀 서려있을 뿐인 사람의 눈을 보고서 또 겁을 먹다니. 경태의 선택만 아니었던들 밥을 먹일 가치가 없는 개였을 것이다.
개는 이슬람에서 부정한 동물로 간주된다. 몸에 개의 침이 묻은 상태로 올리는 기도는 무효이고, 개가 있는 공간은 그 자체로 부정하다고 여길 정도로.
그러나 메리옘의 시선에 녹아있는 감정은 혐오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미 배교를 한 몸인데 이슬람의 율법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는 메리옘의 동생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내가 허락했다는 이유로 돼지고기도 마음껏 먹는 이들이었다.
알라를 등진 위구르인들은 무함마드가 멀리 하라 이른 동물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겁먹은 개를 빤히 바라보던 메리옘이 입을 열었다.
“주여. 당신의 자비로움에 기대어 감히 바라건대, 저희가 그 개와 같이 당신께 속해있음을, 저희가 당신의 소유임을 되새기도록 하는 징표를 내려 주십시오.”
“징표? 예를 들면 어떤?”
“예컨대-”
꼴깍 소리가 나도록 침을 삼킨 메리옘이 한층 더 선명해진 목마름을 드러냈다.
“예컨대 귀하신 분께서 아끼시는 그 개의 것과 같은 개목걸이를 저희에게 채워주시는 건 어떨는지요? 저희의 모든 것이 귀하신 분의 소유임을 그보다 더 감각적으로, 또 명징하게 느낄 수 있는 상징도 드물 것입니다. 그, 그리고…….”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분수를 모르는 요청일지 모르겠사오나…… 저희를 조금만 더…… 자주…… 쓰다듬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있는 축복받은 개와 같이…….”
다른 것도 아니고 개목걸이를 채워달라니. 사람에게 개목걸이를 채우는 건 다소 변태적인 취미를 가진 이상성욕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개목걸이가 아닌 다른 장신구는 어떠하냐고 묻자, 입으로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썩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부러움과 목마름의 시간이 제법 길었던 모양이다.
나는 떨떠름한 감정을 숨기며 조건부로 허락해주겠다고 답했다. 개목걸이는 비전투 상황에서 혼자, 또는 너희끼리 있을 때에만 착용하라는 조건이었다.
내 허락과 쓰다듬을 함께 받은 메리옘과 동생들의 신경계는 순수한 기쁨의 색채로 환하게 물들었다. 슬쩍 머리를 들고 탐색의 시선을 돌린 김춘식이는 무서운 걸 보았다는 듯 다시금 내 몸에 눈과 코를 파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