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성지의 수호자 (3)
12월 25일의 온라인 세상은 서로 다른 두 SNS 계정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하나는 미국 대통령의 계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알림 샤히디의 계정이었다.
시간상 먼저였던 건 미국 대통령 쪽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백악관 미치광이는 대통령의 발언에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자들에 대한 규탄으로 성탄절 인사를 대신했다.
「해피 홀리데이? 그딴 근본도 없는 인사말은 엿이나 먹으라고 하세요!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어쩐다 하면서 크리스마스를 크리스마스라고 불러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은, 실제로는 아주 무식한 주제에 똑똑한 척을 하며 남을 깔보고 싶은 오만한 고집쟁이들입니다. 그러는 그들은 왜 크리스마스를 존중하지 않습니까?」
「이런 무식한 인간들의 억지를 자꾸 들어주다 보면 언젠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이 오고야 말 겁니다. 내 말이 농담 같습니까? 지금도 성 중립적(Gender-neutral) 표현이니 뭐니 지랄들을 떨며 출생신고서에 엄마와 아빠 표기를 아예 없애버리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미국의 대통령이 말씀드립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냥 크리스마스예요. 당신들의 홀리데이가 필요하면 따로 하나 만들라 이 말입니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유권자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미국의 의회는 얼마든지 새로운 기념일을 제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잘난 투사님들(Social Justice Warrior)이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자기네 의견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지지를 모아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것입니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당신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또 보호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켜야 할 진정한 정치적 올바름입니다!」
논리 자체는 의외로 이성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개발언에서 당당하게 욕설을 쓰는 건 광기의 소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 때부터 이미 공중파에서 노골적인 욕설(Fuck)을 사용한 전적이 있었고, 그 광증은 최근 들어 순도가 더욱 높아졌다. 보좌진의 여과가 작동하지 않는 SNS에서는 심화된 광증이 아주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차기 대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데다, 지지율은 초선 당시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으며,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들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연달아 거두기까지 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광증이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기는 무리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SNS 계정에 대한 집착도 눈에 띄게 강해졌는데, 보좌진이 개입하지 않는, 그러면서 언제든 간편하게 이용 가능한 자신만의 ‘외교 및 대민소통 창구’를 통해 톡톡히 재미를 본 경험이 누적된 결과였다.
특히 예멘 사태에 말 몇 마디로 영향력을 행사한 경험은, 번거로운 협의 절차 없이 비공식적 창구로 발휘하는 힘에 대한 대통령의 자신감을 승천시켰다. 이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SNS 활동을 통해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통령의 애착증상은 여러 매체의 보도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내게는 유익한 현상이었다. 상식인들이 대통령의 충동적인 발언과 결정들에 제동을 걸어주지 못하면, 내게 유리한 확률을 내포한 무작위성이 발현되는 까닭이었다.
당장 성탄 인사 다음으로 이어진 코멘트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나는 이 거룩한 날에 미국 시민 여러분들께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 좋은 소식이란, 전함 미주리의 승조원들을 송환하는 문제에서 우리가 큰 진전을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능하다면 오늘이 오기 전에 협상을 완료하고 싶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는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맹세코, 그들은 조만간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살아서, 무사히, 건강한 모습으로!」
「그러니 오랫동안 백악관 앞에서 시간을 보내오신 군인 가족들 여러분! 부디 오늘만큼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은 애국자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이야말로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이러한 코멘트는 물밑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엔 절대로 나와선 안 되는 성질의 것이었다.
대통령씩이나 되는 인물이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안에 대해 내뱉은 말은 번복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백악관 미치광이가 이런 말을 해버린 시점에서, 나를 상대하는 미국 측 실무자들의 협상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협상을 진행하던 실무자들은 대통령을 몹시 격하게 욕하고 있을 것이다.
수연은 대통령의 속내를 이렇게 추리했다.
“이건 자신감의 표출로 이해해야 맞을 듯합니다.”
“자신감의 표출이라.”
“예. 「나는 막강하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어느 간덩이 부은 놈이 감히 나를 등쳐먹으려 들겠는가?」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알림 샤히디와 주술사 왕, 그리고 그 양쪽과 거래하는 다른 세력에 이르기까지, 미국과의 거래를 한 번으로 끝낼 작정이 아닌 이상 억지스러운 요구를 하진 못하리라는 계산도 있겠지요. 협상 과정이 어찌 되든 무관하게 말입니다.”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설명이로구나.”
“한편으로는 실무진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괜한 의문 제기로 협상을 지연시키지 말고 빨리 성과를 가져오라고.”
이 추측 또한 일리가 있었다. 현시점에서, 만사가 잘 풀리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발목을 유일하게 잡고 있는 문제가 바로 전함 미주리의 승조원 송환 문제이니까.
괜한 의문 제기란, 미국 측 협상 담당자들이 우리에게 주술사 왕과 알림 샤히디의 관계를 캐물은 것을 의미했다.
전함 미주리의 승조원들은 주술사 왕의 수중에 있다. 그런 그들의 송환을 빌미로 이스라엘에서의 일시적인 침묵을 요구한 것은, 미국의 실무자들로 하여금 당연히 주술사 왕과 알림 샤히디 사이의 커넥션을 의심케 만들었다.
나는 이 협상에서 CIA는 가급적 배제하고 대통령과 백악관 선임고문을 직접 상대하려 했다. 그러나-
‘솔직히 무리였지.’
CIA는 대통령이나 백악관 선임고문이 협상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기 편한 기관이다. 고로 당초의 내 바람은 대통령이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는 바보여야 통할 법한 희망사항이었고, 그리 큰 기대를 걸고 있지도 않았다.
대통령으로부터-혹은 그 사위로부터-연락을 받고 기겁을 한 CIA는 곧바로 협상장에 등판하여 해명을 요구했다. 대체 왜 주술사 왕의 이름으로 알림 샤히디의 이익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 둘 사이의 관계는 어찌 되는 것인지.
그렇게 해명요구가 들어왔을 때,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오해요.”
「무엇이 오해입니까?」
“그 둘 사이엔 직접적인 관계가 없소. 다만 내가 중간에서 추가적인 이익을 구하려 한 것뿐이오.”
내 말에, 「이름 없는 회사」에 상주하는 CIA의 연락책임자로서 나와의 직접적인 대화를 담당하게 된 리처드 맥팔란드는 난감해하는 태도로 다시 물어보았다.
「하나의 상품을 두 고객에게 이중으로 팔았단 말씀이십니까?」
이에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답변을 돌려주었다.
“불쾌한 착각이로군. 나는 내 신용도를 저해할 수 있는 이중매매를 지양하오.”
「그럼 이건 뭡니까?」
“중개인은 원래 거래의 양쪽 당사자들로부터 소정의 사례를 받는 게 정상이지 않소?”
「맙소사……」
“당신들이 지불하는 대가는 내 회사가 CIA의 외부용역계약을 수주하도록 해주는 것이고, 주술사 왕이 내게 지불하는 대가는 내 또 다른 고객 알림 샤히디에게 판매할 만한 상품으로서의 협상조건을 추가해주는 것이지.”
「그래서, 그 상품이 미국의 침묵이라는 겁니까?」
“그렇소. 단순히 일회성으로 돈을 받고 끝내는 것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상품을 받아 또 한 번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게 더 좋지. 돈과 재화는 흐르면 흐를수록 불어나는 거요.”
「…….」
“왜, 뭔가 문제라도 있소?”
「아니요, 없습니다.」
어차피 CIA에겐 지금 당장 진위를 가릴 능력이 없었다. 대통령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모르겠지만, 백악관 미치광이가 그렇게 ‘불필요한’ 일에 예산을 낭비할 인물은 아니잖은가. 맥팔란드는 내가 댄 구실을 그대로 받아 보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익을 추구하는 면모를 각인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백악관 미치광이는 이어지는 SNS 메시지들을 통해 또 한 번 협상에 우호적인 사인을 남겨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말들 사이에 은근슬쩍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신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분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에선 나날이 불미스러운 폭력사태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놀랍게도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다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현지의 유대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종교적인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엔 마땅히 차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조금의 관련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서로 다른 종교의 성지」라는 표현에서 자연스럽게 예루살렘을 떠올릴 터였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박해한다는 이야기가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엄밀하게는 손에서-나온 것 역시 의미심장한 부분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마지막 메시지에 베들레헴 기독교 성직자들이 전 세계의 기독교 단체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의 링크를 첨부했다.
공개서한은 구약 예레미야서 22장 3절, “법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울하게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건져주며”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했다.
「우리는 베들레헴 지역 여러 기독교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들로서 이 편지를 씁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국제법상 무단으로 점령당한 상태인 팔레스타인 영토를 병합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베들레헴,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 이 병합의 과정은 치명적일 것입니다.」
「1967년 점령 직후, 이스라엘은 불법적인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위해 베들레헴 북부와 베이트 얄라, 베이트 사후르 지역의 땅 2만 두남(약 2천만 제곱미터) 이상을 병합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미 베들레헴의 가장 중요한 기독교 성지 중 하나인 마르 엘리아스 수도원을 병합했으며, 기독교 2천 년 역사 중 처음으로 성지 베들레헴을 예루살렘에서 분리시켰습니다.」
「우리가 농사를 짓고 살 수 있도록 남겨진 유일한 땅들은 현재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병합될 위기에 처한 곳입니다. 이로 인해 농업에 종사하는 교구민 수백 명의 사유재산이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벽과 정착지로 둘러싸인 베들레헴은 이미 열린 감옥처럼 느껴집니다. 병합은 그 감옥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소망은 없습니다. 이것은 토지 약탈입니다!」
「대부분의 우리 교구민들은 지상 권력의 힘에 대한 소망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달, 더 많은 장벽을 쌓기 위해 이스라엘 불도저가 자신의 땅을 집어삼키는 것을 지켜보았던 한 교구민은 이렇게 말하며 절망감과 무력감을 표현했습니다. “너무나 파괴적입니다. 불도저가 우리의 땅을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본 미국인들은 아쿱 아부 사다, 볼루스 알 알람, 수헤일 파크후리와 같은 아랍식 이름들이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름으로 올라와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나는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 운을 띄워놓은 상태에서 알림 샤히디의 홍보 채널을 활용했다. 언제나처럼 비서실이 감독하고, 홍보실이 실무를 맡고, 메리옘과 그 동생들이 번역 및 감수를 담당하는 방식이었다.
「오늘은 하느님(알라)께 영광됨을 받으신 선지자 이싸(예수)의 탄신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오늘처럼 거룩한 날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이 있어야 할진대, 정작 이싸께서 평생에 걸쳐 사랑을 설파하다 떠나신 땅에선 빼앗는 자들의 잔혹한 기쁨과 빼앗기는 자들의 서글픈 아픔만이 범람하고 있다. 이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보기에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이 첫 메시지를 업로드하기 무섭게, 온라인에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미국 대통령과 알림 샤히디 사이에 모종의 사전교감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와 알림 샤히디의 메시지가 유사한 논조를 담고 있다는 게 그 근거였다.
미국 대통령이 온갖 종류의 항의성 메시지들-주로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의 힐난과 질타-에 대고 끊임없이 야옹야옹거리는 동안, 샤히디의 계정엔 계속해서 새로운 코멘트가 올라갔다.
「무릇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허물부터 돌아봐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신앙의 형제들이 같은 겨레인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아 이스라엘의 민간인들을 향해 로켓을 발사해온 것을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땅의 형제들에겐 그것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선택지였음을 이해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는 바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 이해와 안타까움을 오해할 것이다. 알림 샤히디도 역시 무슬림이라 같은 무슬림들을 편들고 감싸주려 한다고.」
「내 말을 들어보라. 그것은 현지의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오해이다.」
「나는 먼저, 이스라엘이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에 걸쳐 너무나도 많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들을 무시하거나 위반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결의안 242호. 6월 전쟁(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점령한 영토들을 반환할 것을 촉구.」
「결의안 252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병합이 무효임을 선언. 결의안 267호.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동 예루살렘 병합을 규탄. 결의안 298호.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합병에 관한 유엔 결의안을 무시하는 것을 규탄.」
「결의안 427호. 유엔 평화유지군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규탄. 결의안 446호. 이스라엘의 점령지 유대인 정착촌 건설이 국제법 위반임을 선언. 결의안 452호.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다시 한 번 규탄. 결의안 476호.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의 성격과 지위를 변경하려는 이스라엘의 모든 시도”가 국제법상 무효임을 선언. 결의안 497호. 이스라엘의 골란 고원 점령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선언. 결의안 500호.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에서 철수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 결의안 605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규탄. 결의안 726호……」
갱신되는 메시지들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한 번에 더 많은 결의안 위반사항들을 담아내었다. 가볍게 읽어 내리기 시작한 사람이 그 빽빽함을 보고 기가 질리는 기분을 느끼도록 의도한 연출이었다.
40번 대에서 2300번 대에 걸쳐있는 이스라엘 규탄 결의안들은 그러한 효과를 주고도 남을 만큼 많은 수를 자랑했다.
「이스라엘이 위반했거나 위반하고 있는 유엔 결의안의 수는 대표적인 불량국가인 북한이 위반한 결의안의 수를 압도적으로 상회한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북한보다도 먼저 핵 개발을 강행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나는 이스라엘이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에 준하는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 믿음을 걸고 장담하는데, 이스라엘이 자신들에 관한 유엔 결의안을 절반만이라도 준수했다면, 가나안 땅은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곳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 관해선 선동을 위해 굳이 거짓을 꾸며낼 필요가 없었다. 그저 풍부하게 쌓여있는 유대 제국주의의 더께를 재조명하는 것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다시 로켓 테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알라의 전사가 무고한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는 것은 죄다. 알라의 전사가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것 또한 죄다. 민간인들을 방패삼아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자의 영혼은 결단코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 없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형제들이 저지르는 죄는, 그들 겨레가 약자들부터 차례대로 맞이할 「조용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점에서 일말의 참작 정도는 가능하다. 팔레스타인의 형제들에게는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대와 정면대결을 벌일 능력이 없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시가전에 한해서는 미군을 능가하는 유일한 군대이지 않은가.」
「가자지구는 게토이고, 서안지구(웨스트 뱅크)에 들어서는 유대인 정착촌들은 이스라엘이 건설하는 유대인들의 레벤스라움이다.」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레벤스라움의 확장에 몰두한다면, 쫓겨나고 또 쫓겨나기만 하는 팔레스타인의 민간인들을 기다리는 건 기아와 빈곤의 늪 속에서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찾아올 필연적인 죽음뿐이다. 당연하게도 그 죽음은 약자들부터 우선적으로 도태시킬 것이다. 유대인들과 싸우지 않으면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들끼리 생존을 다퉈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엔 고작 8만 명이 살았던 가자지구에 지금은 2백만의 실향민들과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나마 식량이 나오는 서안지구의 농지들마저 다 빼앗기고 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를 지닌 실향민들의 게토가 대체 어떻게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겠는가?」
「그때는 오직 이스라엘의 자비와 아량에 기대는 길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쓸모가 있는 노예들과 부역자들만이 선별적으로 살아남을 영원한 식민지의 완성이다.」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매번 공허한 외침으로만 그치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형제들이 발사하는 로켓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약자들이 맞이할 조용한 죽음의 도미노를 지연시키는 힘이다.」
「사실상, 조금이나마 효과를 발휘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본다.」
「양비론은 아는 게 없는 자들이 알고자 하는 노력도 없이 현자 행세를 하고 싶을 때 애용하는 도구다. 현지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서 양쪽 모두가 똑같이 잘못하고 있다며 공허한 평화만을 강요하는 것은, “그렇게 보기 싫게 굴지 말고,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서 우리가 모르도록 조용히 죽어라. 보이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평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메시지들을 본 유대인 제국주의자들은, 당대의 가장 명성 높은 이슬람 성전지도자가 게토와 레벤스라움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그들을 나치와 동일시한 것을 두고 격렬한 발작을 일으켰다.
전에 중국의 가짜 빨갱이들이 발작을 일으키는 걸 보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나는 이런 종류의 발작을 볼 때마다 입맛이 좋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작가 주 : 본편에 포함되어있는 베들레헴 기독교 공동체의 공동서한은 지난 20년 7월 발표된 공개서한 『An Open Letter from Christian Clergy from the Bethlehem Area』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한 것입니다. 번역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기사를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