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성지의 수호자 (2)
홍해는 해양학적인 분류로서의 지중해에 속하는 바다다. 그러나 지중해치고는 악천후가 자주 발생하는 곳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해수의 온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높은 해수 온도의 원인 중 하나는 아프리카 판과 아라비아 판의 경계를 따라 즐비하게 퍼져있는 해저화산들이다. 때때로 새로운 섬을 탄생시킬 만큼 활발한 지각활동의 열이 폐쇄적인 지형으로 말미암아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이용하여 갑작스런 기상이변의 개연성을 갖추기로 했다.
‘일본에서 해놓은 짓이 있으니 너무 대놓고 기상조작을 시도하긴 곤란하지.’
일찍이 일본에서 도쿄를 불태운 후 페르 아스페라를 끌고 사가미 만(灣) 방향으로 전장을 이탈할 때, 나는 미우라 반도 서쪽 가마쿠라 앞바다에서 국지적인 대기요란을 빚어낸 바 있다.
생체전투함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세계는 그로써 「후나유레」에게 기상을 조작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자연스러운 기상이변의 발생은 후나유레를 추적하는 나라들의 이목을 홍해로 집중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해저화산의 분화는 비정상적인 수온 상승과 기압 하강을 설명하기에 좋은 구실이다. 규모가 거대한 해저화산이 터질 땐 수천 킬로미터 바깥에서도 기압이 뚝 떨어지곤 하니까.
나는 그 현상을 보다 작고 느리고 안전하게 재현한 후, 광범위하게 흩뿌리는 「발화」와 전율하는 거인의 마법을 더하여 대기요란을 완성할 셈이었다.
내 구상을 들은 경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흥분했다.
“와! 업계 전통의 대지속성 궁극마법 「볼케이노」! 우리 형님께서 이렇게나 오소독스한 궁극기를 쓰시다니. 이게 바로 진정한 대마법사의 위엄인가……!”
업계는 어느 업계이고 대지속성은 무엇이며 궁극기는 또 뭔지. 물어보면 젊은 세대의 언어와 문화 코드들이 쏟아질 것 같아, 나는 경태의 감탄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황금기의 눈을 가진 대마법사는, 충분히 긴 준비시간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인위적으로 화산을 분화시킬 수 있다.
어디까지나 기존에 있는 마그마 체임버들과 지각의 압력을 이용하는 방식이라 아무 데서나 할 수는 없는 짓이지만, 어쨌든 지층과 암반을 파쇄하여 서로 다른 마그마 체임버들을 연결하거나 병합하고, 용암과 압력이 함께 터져 나올 틈새를 열어주면 그만인 일이다.
지각 내엔 내 마력투사를 저지할 다른 마력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황금기의 눈으로 마그마 체임버들의 분포와 지각에 작용하는 압력의 색채를 관측하고, 부숴야 할 암반의 고유진동수를 확인하여 진동으로 파쇄하고, 암반이 아닌 지층은 다른 형태의 진동으로 액상화를 시키며 분화의 조건들을 차근차근 갖추어나가면, 결국 일정한 오차범위 이내에서 내가 원하는 장소에 화산폭발이 발생한다.
「우릉! 우릉! 우르르릉-!」
황혼의 빛이 희미한 청색으로만 걸러져 들어오는 수심에서 주홍빛 폭발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온다.
매번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폭압에 의한 팽창과 수압에 의한 수축이 반복되며 점진적으로 힘의 평형을 찾아갔다. 그래서 모든 폭발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살아있는 생명의 꿈틀거림을 연상케 했다.
용암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수증기와 이산화탄소·질소·아황산 가스·황화수소의 혼합기체는 잿빛 먼지를 품고 수면을 향해 뭉글거리며 올라갔다.
두 개의 대륙판이 만나는 이 지대엔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이 관측시설을 두고 있다. 지금쯤 그 연구기관들은 매우 독특한 형태의 연쇄 분화를 감지했을 것이다.
나는 거의 50킬로미터에 걸쳐 높은 밀도로 작은 규모의 분화구들을 깔아놓았다. 분화구의 배열은 단층의 방향과 일치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최종적으로 탄생한 것은 길고 좁은 띠 형태의 소형 해저화산 클러스터였다. 앞으로 며칠이나 유지될지 모를 기이한 경관이었다.
수온이 높으면 전율하는 거인의 마법을 쓰는 효율도 증가한다. 고래에게서 얻은 가압가속의 터널을 활용해 분화구 근처의 물을 표층에 가까운 해류까지 직통으로 끌어올린 후, 이를 바탕으로 거인의 술식을 넓게 투사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페르 아스페라를 순찰하듯 돌리며 저기압대를 만들어내자, 마침내 레반트 지역의 사막으로부터 홍해 북단으로 이어지는 모래폭풍의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거친 흐름은 수에즈 지협 동쪽의 사막을 완전히 다 덮지는 못했다. 내가 저기압을 만든 지점이 홍해 북단인 만큼, 레반트-홍해 북단의 축에서 벗어난 지중해 연안 지대는 모래폭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정보분석실 또한 나와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갈라져 나오는 바람이 있다면 거기에 올라타는 게 가장 좋겠습니다만, 여의치 않다면 회장님과 페르 아스페라의 힘으로 극복해도 그렇게 이상한 흔적이 남진 않을 겁니다. 거리 자체가 얼마 안 되니까요.」
이런 과정들을 거쳐 페르 아스페라가 홍해의 하늘로 날아오른 것은 현지시각(GMT+3) 기준 24일 밤 11시 20분경의 일이었다.
터만 파다가 끝나버린 「더 라인」의 폐허를 동쪽 멀리에 두고 북상한 페르 아스페라는, 아카바 만을 건너 시나이 반도 남단의 황량한 바위산맥을 종으로 가로질렀다.
출애굽기의 무대인 이 산맥 어디엔가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떠돌다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내려 받았다는 신성한 산이 존재할 것이었다.
그간 외장과 내장(內裝)을 꾸준히 수리해온 페르 아스페라는 공중전투함 시절의 생활편의성과 기본적인 설비들을 상당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동승한 경태는 시나이 산의 후보지들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기념이라며 항공사진을 찍어 간직했다. 광량조절 카메라를 사용하면 밤에도 낮과 같은 풍경을 찍을 수 있었다.
“두려워하라, 이스라엘 사람들아. 하느님의 전쟁수레(병거)인 아기 천사들이 그 주인 되시는 분과 더불어 너희가 가진 땅의 3분의 1을 태우고 너희가 가진 바다의 3분의 1을 빼앗고자 나아가고 있노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경태는 보란 듯이 한쪽 발을 굴러 보였다. 페르 아스페라를 가리키는 장난기 가득한 몸짓이었다.
“실제로 전쟁수레 역할을 하는 아기들이 여기 있잖습니까. 하늘을 나는 거대한 전쟁수레. 형님께서 거두어 보살피고 손수 이유식을 먹이시는 카와이한 비행 응애들이. 그리고 형님은 저한테는 신 그 자체이신 분이니까요. 절묘해도 이렇게 절묘할 수가 없는 우연의 일치죠.”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경태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냥 기분입니다, 기분. 이번 출장은 어떤 면에선 예수의 성전정화랑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비슷해? 대체 어디가?”
“유대교의 관점에서 예수는 그냥 미친 깡패 사이비 새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엔 예수나 형님이나 별 차이가 없을걸요? 예수는 이단 말종 주제에 단순히 장사치들을 혼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聖殿)의 전권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린 거고, 형님은 성전의 터에 세워진 바위의 돔을 목표로 출장을 나오셨으니 말입니다.”
“…….”
“물론 무서운 건 형님 쪽이 훨씬 더 무섭겠지만요. 예수야 성전모독 혐의로 고발해서 로마인들의 손으로 죽일 수라도 있었지, 대마법사인 형님을 지금의 유대나치 애들이 무슨 수로 막아서겠습니까.”
경태의 말대로, 이번 출장의 목표는 알림 샤히디에게 이슬람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바위의 돔」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을 달아주는 것이었다.
무슬림들은 이 돔 안에 보존되어있는 바위가 「하느님(알라)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아담을 빚어내신 자리이며, 선지자 이브라힘(아브라함)이 자신의 둘째 아들 이스마일(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친 장소이자, 예언자 무함마드가 지상에서의 소명을 다하고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고 믿는다.
이 돔 옆에는 부속건물로서 「사슬의 돔」이 자리하고 있었다. 메리옘은 이 돔의 특별한 가치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슬의 돔은 한때 다우드(다윗) 왕과 술레이만(솔로몬) 왕이 신성한 천상의 사슬에 기대어 알라의 정의를 실현하는 재판정이었으며,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들이 충성서약을 받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고로 이슬람 세계에서 바위의 돔의 수호자로 인정받는다면, 알림 샤히디가 받는 충성맹세엔 사슬의 돔에 남아있는 옛 전통의 권위를 더할 수 있습니다. 신의 율법을 실천하는 재판관을 자임할 명분도 생기겠지요.」
「다에쉬(ISIS) 놈들처럼 칼리파 칭호나 신의 대리인 칭호를 쓰는 건 당연히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귀하신 분께서 거두실 승리가 예멘에서 거둔 승리만큼이나 영광스럽다면, 신자들의 총사령관(아미르 알 무미닌)이라는 칭호 정도는 얼마든지 공인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지로서의 격은 메카가 더 높을지언정, 실질적인 가치의 측면에선 바위의 돔과 사슬의 돔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었다.
나는 샤히디를 성지의 수호자로 세우는 문제에 관하여 성전연합의 대리인인 마무르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 인간은 샤히디가 사실상 내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꼭두각시를 성지의 수호자로 내세우는 걸 불쾌하게 여길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던 까닭이다.
그러나 마무르는 기시감이 강하게 드는 태도로 암호와 같은 표현들을 섞어 답했다.
「게임은 원래 정글러가 다 하는 것이다. 게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대중들은 왕귀한 탑이 선보이는 솔로 다이브의 화려함에 매료되곤 하나, 사실 탑은 정글러가 보살피고 키워주지 않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해요. 실제 가치는 본질적으로 도구에 불과한 서포터와 다를 바 없다.」
「알림 샤히디는 싸장님이 보살피고 키워주는 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세상 모든 지하드 정글러들의 모범이며 천재적인 전략가인 싸장님의 오더가 있어야만 빛을 발하는 별인 것입니다. 규모가 큰 지하드는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팀을 꾸려야만 하는 조별과제이므로, 오더를 잘 듣는 탑을 육성하기로 한 싸장님의 결정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오히려 일신의 영달에 연연하지 않고 성전의 승리와 알라의 영광을 추구하는 싸장님의 방식이야말로 지극히 갸륵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싸장님에게 강렬한 동질감을 느껴요. 왜냐면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나의 천재적인 인도 덕분에 승리를 거둔 성전이 여럿이었음에도, 나보다 지능이 낮은 성전연합의 형제들은 그게 다 자기들이 잘나서 이긴 줄 아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어리석은 대중들의 환호 또한 그들의 몫으로 돌아갔어요…….」
「아무튼, 이 마무르 이상으로 훌륭한 전사인 싸장님은 대체 언제쯤이면 신앙을 고백하고 나의 매부가 되어주십니까? 당신의 참된 이해자인 마무르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경태의 통역 아닌 통역을 곁들여 들은 바, 마무르는 전략을 총괄하는 자가 막후의 실세로 군림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미화된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인 사실인지 모를 자신의 유사한 경험들에 기대어서.
샤히디가 내 꼭두각시라는 사실은 마무르 본인과 동아시아 지부의 측근들만이 아는 비밀로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험준한 시나이 산맥은 이슬람 국가(ISIS)의 잔당들(윌라야 시나이/이슬람 국가 시나이 주州)이 똬리를 틀고 있는 소굴이었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수천 제곱킬로미터에 걸쳐 빽빽하게 솟아있는 땅은 초능력 테러리스트들이 근거지로 삼기에 적합한 터전이었다.
모체인 ISIS가 몰락한 상황에서도, 윌라야 시나이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순례자들을 납치해서 몸값을 받고, 이단과 이교의 유서 깊은 사원들을 습격하여 명성을 얻고, 지형에 의지해 정규군을 물리치거나 교전을 회피하여 안정적인 존속을 꾀하는 식으로 조직의 규모를 확대해왔다.
그래서 페르 아스페라가 모래폭풍이 부는 높이 이하의 고도로 시나이 반도를 종단하는 동안, 나는 좋으나 싫으나 나와 조립식 아기들의 존재감을 느끼고 몸서리를 치는 이슬람 원리주의 꼴통 테러리스트들을 수확해야만 했다.
경태는 또다시 괴상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지하디스트 뮤틸레이션!”
조립식 아기들의 확장회로로 증폭시킨 「침식」은 지하디스트들의 마력장을 피부 아래까지 수축시켰고, 그렇게 마력장이 줄어든 지하디스트들은 「염동」으로 휘감아 낚아 올리는 게 가능했다. 이들은 주로 갱도진지를 파고 들어가 있었기에, 나는 염동을 투사하기에 앞서 갱도 내부에 적당한 강도의 압력폭발을 일으켜 사냥감들을 기절시켰다. 위력조절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죽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숨을 붙여놓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이 경태의 눈에는 큐아넌 같은 음모론자들이 좋아하는 캐틀 뮤틸레이션(UFO의 가축납치)과 흡사해 보였던 모양이다.
이렇듯 본의 아니게 사로잡은 이슬람 꼴통들은 나름대로 쓸 곳이 있었다. 부수적인 소득으로서, 감금되어있던 순례자들을 얼마간 함께 얻기도 했다.
계속해서 북상한 페르 아스페라는 알 아리쉬(العريش)와 라파 사이의 갭을 통과하여 지중해의 파도 아래로 입수했다. 성탄절의 일출을 50분쯤 남겨둔 시점의 일이었다.
이 갭에도 희박한 밀도로나마 거주인구가 분포했고, 개중엔 한 줌의 각성능력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잠들어있는 깊은 새벽에 거친 모래폭풍의 속도로 상공을 돌파했기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자다가도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고 깰 만큼 감각이 예민한 각성능력자가 왜 이런 깡촌에 살고 있겠는가. 본격적인 헌터 일을 할 것도 없이, 각성체 가축 감별사 내지 각성인구 조사원 노릇만 해도 도시에 번듯한 집을 마련할 수 있을 텐데.
어두운 밤, 모래폭풍 너머의 하늘에서 느껴졌던 존재감을 증언하는 자들의 숫자는 정말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페르 아스페라가 착수한 지점 근방엔 샤히디의 이름으로 빌린 아랍권 선박임대업체들의 배가 떠있었다. 개중 한 척의 갑판에서, 경태는 동쪽 멀리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실루엣 위로 떠오르는 성탄절의 태양을 보며 캐럴을 흥얼거렸다.
“크리스마스가 왔어요. 좋은 환희를 전하며. 젊은 사람들과 늙은 사람들에게. 선량한 사람들과 용감한 사람들에게. 딩-동-딩-동…… (Christmas is here, Bringing good cheer, To young and old, Meek and the bold. Ding dong ding dong……)”
“즐거운, 즐거운, 즐거운, 즐거운 크리스마스! 즐거운, 즐거운, 즐거운, 즐거운 크리스마스!(Merry, Merry, Merry, Merry Christmas. Merry, Merry, Merry,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