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종전 (2)
「전 세계가 공포주의(恐怖主义/테러리즘)의 광풍에 물들고 있다. 알림 샤히디는 반인륜적 범죄와 학살을 저지른 사상 최악의 공포분자(테러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부당하며 불합리한 반중정서로 이성이 마비된 세계 각국의 언론과 시민들은 그의 세력 확대를 경계하기는커녕 그의 일권일동(一举一动/일거수일투족)마다 환호를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 제동을 걸어주어야 할 각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도리어 웨이우얼(위구르) 수용소 문제처럼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헛소문(谣传)들을 거론하며 반중정서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이는 중국의 질서정연한 일당제 민주주의와 달리 대국적인 정치가 불가능하고 그때그때 대중의 인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의 결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중동지역과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반중정서는 너무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들의 어긋난 종교열과 위정자들의 그릇된 인도는 장차 더 많은 공포분자들을 키워내는 양분이 될 것이며, 서구세계는 멀지 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눈먼 광기가 초래한 끔찍한 결과와 마주하게 될 터이다.」
「알림 샤히디를 위시한 공포분자들이 힘을 얻고 나면 그들은 반드시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제까지 이 법칙의 예외였던 이슬람 공포집단(테러리스트 조직)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당신들의 터전에 침투한 이슬람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고, 또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고 할 셈인가? 저들이 언제까지 우리 중국 인민들만의 근심으로 남아있을 것 같은가?」
「이대로 가다간 수니파 이슬람 세계 전체가 공포분자들의 깃발 아래 하나로 단결하게 될 판이다.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는 지금 ISIS를 능가하는 거대한 악의 제국의 탄생을 방조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지옥으로 만들어놓은 저 탈레반조차도 처음엔 소련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자유의 투사들로서 세계인들의 지지를 받았던 과거가 있음을 기억하라! 공포분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광기는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중국은 언제나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였고, 세계질서의 한 축을 이루는 선량한 힘이었으며, 세계 물류 공급망의 가장 핵심적인 생산자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해왔다. 따라서 중국의 위기는 곧 세계의 위기다. 아무쪼록 세계시민들이 중국에 대한 그릇된 질투와 미움을 버리고 이성을 되찾기를 소망한다.」
“세계 물류 공급망의 핵심적인 공급자”, “중국의 위기는 곧 세계의 위기” 운운하는 말들은 기본적으로는 중국의 무역보복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홍해가 샤히디의 활동권에 들어갈까 봐 우려하는 마음도 녹아있었다. 홍해는 세계 해운 물동량의 12%가 지나가는 바다이며, 샤히디 그룹이 이 바다에서 사우디 서안(西岸) 전역을 배후지대로 두고 중국 배들만 노려서 해적질을 벌이기 시작하면 중국으로선 몹시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중국은 좀 더 위기감을 느껴줘야지.’
중공 빨갱이들이 위기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는 일본이 협상과 밀약을 통해 파고들 구석도 많아질 것이다.
주미 중국대사는 자국 내 샤히디 그룹의 신병 모집 및 훈련시설 운영을 묵인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반응은 단호했다.
「야옹」
여하간, 중국이 지랄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샤히디를 조종해 전후처리를 해나갔다.
서로 다른 괴뢰국의 배후조종자로서 예멘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경쟁을 벌여온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사나 시내에 소재한 리비아 대사관의 정상화 문제를 두고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보다 정확하게는 내가 적당한 구실을 대어 불러내었다고 해야겠지만.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가 이곳 예멘에서는 경쟁관계라고 하나, 내전으로 갈라진 또 다른 국가 리비아에서는 서로 손을 잡고 터키를 견제하며 함께 투브루크(토브룩) 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현재 리비아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두 개의 정부가 있고, 개중 어느 쪽이 대사관을 차지하느냐는 외교적으로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를 한자리로 불러내기엔 이것만큼 좋은 구실도 드물었다.
양측은 처음엔 서로를 조금 불편하게 대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서로 죽이 잘 맞아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사관 문제로 터키에 대신 양해를 구해주기로 한 샤히디의 대리인-즉 내 부하-에게 감사를 표한 후, 곧장 예멘을 갈라먹기 위한 논의에 돌입했다.
사실, 논의보다는 샤히디의 대리인에게 자신들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시는가 모르겠습니다만, 예멘은 사실 단일국가로서의 역사가 없는 나라입니다.”
착취 대상국의 역사를 폄훼하는 것은 모든 제국주의자들의 기본적인 소양이다.
사우디와 UAE 대사의 입에서 나오는 논리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舊) 소련 구성국들의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러시아의 논리를 꼭 닮아있었다.
사우디 대사와 아랍에미리트 대사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지원사격을 넣어주었다. 이 모든 말들은 내 부하가 끼고 있는 도청기를 통해 고스란히 내 귀에 들어왔다. 나는 협상장 바로 옆의 방에서 대사들의 생체신호를 함께 관측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예멘이라는 나라는 가상의 국경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부족국가들을 인위적으로 뭉쳐놓았을 뿐인 하나의 허상에 불과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겐 애국심이라는 게 없어요. 애국심의 근간이 되어줄 민족의식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통치자들은 아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껍데기만을 가지고 와서 민족의식의 엉성한 대용물로 삼았지요. 그러고는 억지로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내부의 단결을 꾀해왔습니다. 태생적으로 이웃국가들에 대한 혐오와 테러리즘이 아니면 유지가 불가능한 국가를 만들어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이들이 결국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부족들이 죄다 이반해버려서, 마치 망치를 맞은 유리가 깨어지듯 조각조각 분열되어 붕괴하지 않았습니까? 안사르 알라의 통치자들이 민중을 세뇌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결국 민중들은 거짓된 민족의식을 내면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반일주의로 민족정체성을 형성했다고 믿는 친일파 학자들이나 일본 우익들이 들으면 동질감에 박수갈채를 보낼 법한 논리들의 연속이었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런 논리를 펼 자격이 없었다. 대영제국이 물러난 후, 이 땅에서 민족운동이 발흥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간섭하여 분열을 책동했던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범죄자가 자기 전과를 자랑하는 꼴이라 하겠다.
이런 논리 전개의 결론은 하나였다.
“이 같은 땅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보다 발전되어있는 이웃국가들이 선의의 지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예멘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려면, 그동안 부당한 혐오와 적대행위로 이웃국가들에 끼친 피해에 대한 성숙한 책임의식을 보여줄 필요도 있지요. 아무쪼록 아미르(أمير/군주, 사령관) 샤히디께서 이러한 부분들을 잘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호오와는 무관하게, 내게는 이들의 제국주의적인 욕망을 적당한 선에서 억눌러놔야 할 이유가 있었다. 불경기에 시달리는 사우디와 UAE의 착취는 분명 옛 제국주의 열강들 못지않은 수준으로 이루어질 터. 그러면 이 땅에 평화를 가져다준 알라의 검 샤히디의 명예에도 더러운 제국주의의 얼룩이 묻고 만다.
나는 협상장에 내 입을 대신하여 자리한 부하들을 통해 이러한 의사를 우회적으로 전달했다. 샤히디의 명성이 퇴색되면 두 나라의 ‘가스’를 빼주는 데에도 지장이 생길지 모른다고.
사우디의 대사는 신중하게 끄덕였다.
“그건…… 음, 확실히 피해야 할 일이지요.”
나는 다시금 부하의 입을 통해 경고했다.
“우리 사령관(아미르)은 장차 온 이슬람 세계의 의지를 모아 성전에 나서고자 합니다. 만약 예멘 현지인들이 부당한 처사를 겪으며 구원을 청하고, 이슬람 세계 각지의 여론이 이를 지지하게 되면, 우리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여러분과 적대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이 와버리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출신의 무자헤딘(성전사)들이라고 해서 여러분을 편들 것 같지는 않군요. 결과적으로 알라께 바친 성전을 더럽힌 것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보상은 받아야 합니다. 혹시 샤히디 사령관께서 여기에 대해서도 언질을 주신 게 있는지요?”
“전체적으로는 보다 장기적인 이익에 집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특정 영토를 조차하는 안건에 대해서라면 두 나라를 위해 중재와 선전을 해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내가 제안한 것은 일부 도서지역의 50년 조차였다. 영구적인 영토 할양까지는 아닌 만큼, 선전만 잘 해준다면 민중들의 반감은 그렇게까지 크지 않을 것이다.
내 제안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는 기존에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소코트라 섬과 그 인근의 다른 섬들을 정식으로 조차받게 된다.
아랍에미리트에게 바닷길이 막힐까 봐 걱정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겐 홍해의 입구 「탄식의 문」에 끼어있는 마윤이라는 이름의 섬을 넘겨주기로 했다. 탄식의 문을 기준으로 보다 안쪽에 있는 하니쉬 제도(諸島) 또한 사우디의 괴뢰국인 PLC의 영향권으로 삼는 조건이었다.
사우디 대사는 나쁘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마윤 섬이라. 그곳을 받을 수 있다면 해운의 안전에 대한 우려는 확실히 덜 수 있겠지요.”
이 작은 섬은 대영제국이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몸을 비틀어댔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70년대 초까지도 이 섬을 점령하고 있었던 영국은, 식민지를 해방하라는 압력이 강해지자 이 섬을 국제연합 공동 통치령으로 두고 유엔군이 관리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유엔군이라는 것은 그냥 부대마크만 바꿔 달았을 뿐인 영국군 부대들을 의미했다. 과거 프랑스가 르완다에서 유엔군 딱지를 달고 깽판을 쳤던 것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발상이었던 셈이다. 강도국가들이 부리는 수작질이라는 게 원래 다 거기서 거기였다.
다만 영국의 시도는 좌절되었다. 세계 해운의 급소를 장악하려는 영국의 시도를 다른 강도국가들이 괘씸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까닭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빼앗긴 수에즈 운하 대신 항로의 통제권이라도 붙잡고 있으려 했던 영국은 이 실패를 무척이나 원통하게 여겼다.
이제는 같은 섬을 두고 두 개의 새로운 아랍 제국주의 국가들이 지배권을 다투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대사는 불만을 드러냈다.
“마윤 섬은 예전부터 남부과도연합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땅입니다. 그동안 섬을 점령하려는 후티 반군의 시도를 좌절시켜온 것도 대부분 과도연합과 우리 아랍에미리트의 힘이었지요. 사우디의 기여가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우리가 들인 노력에 비하면 소소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한데 어째서 그 섬을 사우디의 조차지로 내어줘야 한단 말입니까?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입니다.”
마윤 섬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현 UAE 대통령인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얀의 비밀스러운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미 소코트라 섬을 무단으로 점령한 아랍에미리트는 국제무대에서 다소의 불리함을 안고 있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예멘 중부의 유전들을 무단으로 점유한 혐의가 있긴 하다. 하지만 국제안보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쪽은 아무래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항로들 가운데 하나를 통째로 틀어쥐려 드는 아랍에미리트일 수밖에 없었다.
‘석유의 가치가 떨어진 지금은 더더욱 그렇지.’
나는 이런 부분을 파고들면서 협상을 조율했다.
양측 모두에게 얼마간의 양보와 절제를 강요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내가 샤히디의 이름으로 어떠한 이권도 요구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승리의 주역이 일체의 대가를 다 포기하고 협력을 종용하는 상황에선 어느 쪽도 큰 욕심을 부리기가 어려웠다.
또한 이들의 입장에선 샤히디 그룹과의 관계를 망치기라도 하면 그만한 손해가 다시없을 터.
내가 부하의 입으로 양국과의 협력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히자, 두 대사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과거 안사르 알라에 대적하고자 맺었던 ‘신사적인’ 공동관리 체제를 부활시키는 데 합의했다.
샤히디 그룹이 양측의 군사기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이면합의도 이루어졌다. 샤히디가 위세를 잃으면 곧바로 폐기처분될 합의이긴 하나, 내가 샤히디를 버리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결전의 때가 오면, 영국은 수에즈 운하를 못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공격을 앞두고 사회에 혼란을 더해줄 방편이다.
나는 다 이겨놓은 싸움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90%의 승률보다는 당연히 99%의 승률이 좋고, 99%의 승률보다는 99.9%의 승률이 더 좋다. 수많은 패들을 준비해놓고 일거에 쏟아내어 정신을 못 차리게 두들겨 패는 싸움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다.
협의가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때, 내 부하가 나를 대신해 합의된 내용을 정리했다.
“그럼,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양국은 현 점령지에서 안사르 알라가 행사하던 통치권한을 「감독의회」에 이양하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감독의회는 각지의 부족 대표들을 모아 구성한 일종의 지방자치정부였다. 비록 이름은 의회지만, 원칙적으로는 입법권만이 아니라 행정권과 사법권을 함께 가지도록 할 예정이었다.
다만 최상위 행정권과 최고법원 및 헌법재판소 관할권은 새로 제정할 헌법에 따른 위임의 형태로 PLC와 남부과도연합이 나누어 행사하게 된다. 사실상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방자치정부의 이름에 ‘감독’이 들어간 것은, 기본적으로는 샤히디가 그 공정함을 감독할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였다. 불공정한 위정이 이루어질 경우 언제든 돌아와 응징을 가하겠다는 약속이자 협박이다.
누구도 샤히디의 보복능력을 의심할 수 없는 지금, 샤히디가 현지의 목소리를 꾸준히 청취하며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면 이보다 더 확실하게 공정함을 보장할 장치는 없었다.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권력은 역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능력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두 대사, 아랍 제국주의의 대변자들은 떨떠름함을 지우지 못했다. UAE 대사는 좌절된 욕망을 점잖은 우려로 포장했다.
“시대에 뒤처진 토호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뭐, 그들이 아미르 샤히디를 실망시키지 않기만을 바라야겠군요.”
제국주의자들이 드러내는 거부감은 내게 소소한 만족감을 선사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이렇게 사업의 방향성과 내 개인적인 취향이 일치하는 경우가 있었다.
사우디 대사가 이어서 물었다.
“그보다, 그 감독의회라는 이름은 좀 다른 걸로 바꾸면 안 되겠습니까? 본격적인 성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중국을 너무 과도하게 자극하는 건 아미르 샤히디께 마냥 좋은 일이 아니리라 봅니다.”
감독의회라는 이름은 본디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것이다. 판지시르의 사자라 불렸던 아프가니스탄의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조직한 군사협의체의 이름이 바로 감독의회였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시간으로 체면을 구기고 있는 중국이 보기에, 샤히디가 굳이 감독의회라는 이름을 가져다 쓰는 건 “다음은 아프간으로 간다. 각오하고 있어라.”라고 범행 예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예고를 해놔도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다. 처음부터 샤히디 그룹 구성원들에게 우즈베키스탄 여권을 주었던 이유가 무엇인데. 성전연합의 지원을 받으며 국경을 넘으면 중국이 그 움직임을 포착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나는 부하의 입을 빌려 사우디 대사의 요망을 거절했다.
“그 이름은 새로운 성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공세 방향을 기만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다음 성전의 적들은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얻어맞게 되겠지요.”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로 진격하실 계획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제가 아니라 우리 아미르께 직접 물어보십시오. 이런 종류의 대전략은 하급자가 함부로 누설하는 게 아닙니다.”
대마법사가 제공한 용역에 대하여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불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대가는 「성지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이었다.
이는 사우디가 가지고 있는 걸 빼앗겠다는 뜻이 아니다. 사우디의 수중에 없는 제3의 성지에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고, 그 영향력으로부터 나오는 권위를 이슬람 세계 전체에서 공인받는 수단으로 「두 성지의 수호자」인 사우디의 권위를 이용하겠다는 뜻이지. 이 공인을 위해 사우디는 외교적으로 아주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마무르의 표현에 따르면, 다음 성전의 목표는 “영웅적으로 난입해 막타를 치기 딱 좋은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