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88화 (488/561)

#49. 종전 (1)

안사르 알라의 사나 철수는 분노한 시민들과의 마찰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뿐인 철수 루트가 하필이면 앞서 겨자가스가 뿌려진 남동부 교외의 거주지를 통과하는 탓에, 자신들의 고통이 안사르 알라의 소행이라고 믿는 주민들과 충돌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여기에 일부 극성 시아파 민병대들이 지도부의 철수 결정에 반발하여 독자적인 항전을 결의하거나, 도시를 멀쩡한 상태로 넘겨줄 수 없다며 인프라 파괴를 시도하거나, 주민들의 재산을 약탈하려 하거나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온 도시가 배신자들로 가득하다! 이 보석과도 같은 도시가 배은망덕한 자들에게 넘어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다 부수고 불살라 죄인들로 하여금 응당한 고통을 받도록 해야 한다!」

「정수장을 오염시키고 수도관을 터트려 혁명의 배신자들이 기갈에 시달리게 만들어라! 변전소란 변전소는 다 폭파시키고, 도로는 통째로 뒤엎어서 물류를 막아버려!」

「이곳에 남는 자들의 자산은 모두 침략자들과 이단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들이다! 그런즉 도시의 모든 재화는 숭고한 싸움을 이어갈 우리가 징발해가는 편이 더 이롭다! 위기에 처한 우리의 진정한 조국을 위해서도,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죄를 저지르고 있는 저 매국노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주민들이라고 해서 이 꼴을 보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결혼식에서도 돌격소총을 풀 오토로 갈기며 흥을 돋우는 게 이곳의 주민들이었으므로, 사나 곳곳에선 이내 총성이 울려 퍼지고 연기가 피어오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배와 약속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입성한 샤히디와 그의 군세는 사나의 주민들에게 해방군으로 환영받았다.

주민들의 진짜 속내가 어떻든 간에, 정복자를 환영하는 것은 피정복자들의 기본적인 생존전략이다. 그리고 패망하는 나라들이 다 그렇듯이, 정복자에게 줄을 잘 대어 자신과 일족의 영달을 꾀하는 자들도 넘쳐났다.

우리가 전파납치를 위해 점거한 삼각요새 유적으로부터 분수령을 따라 내려오면 곧바로 사나의 외곽 도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알 살레 대(大) 마스지드(모스크)까지는 고작 3킬로미터에 불과한 거리였다.

샤히디의 군세는 사전에 미리 말을 맞춰둔 남동부 주민집단으로부터 측면방호를 제공받으며 시내로 진입하여 거대한 모스크를 점령했다.

「예배와 약속의 보호자로서, 나 알림 샤히디는 이 도시의 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마드하브(학파)의 예배를 보장하겠다.」

「이는 당초의 선언을 번복하는 조치가 아니다. 다만 그 선언의 이행을 일정 기간 유예함으로써 평화와 조화의 정착을 우선하려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차이를 넘어 하나 된 마음으로 평화를 간구한다면, 알라께서는 그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다. 자비로우신 절대자의 가호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기를. 알라 후 아크바르!」

나는 도쿄에서 전향한 원탁의 기사들을 샤히디에게 추가로 붙여 보내었다. 시일을 둔 관찰을 통해 반심(叛心)이 없음을 확인한 원탁의 기사들은 슬슬 실전에서 써먹을 때가 되었다.

마침내 내게서 뭔가 그럴듯한 임무를 받은 기사들은 적잖이 안도하고 또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피부색이 다른 경호실 소속 부하들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못내 불편해하는 것 같긴 했으나, 영혼의 주인인 나부터가 ‘황인종의 탈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 거기에 문제를 제기할 만큼 어리석은 인간은 없었다.

반쯤 추종자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샤히디에게 우호적인 종군기자들은, 샤히디의 보호 하에 정상적인 예배가 진행되자 낯부끄러울 정도의 찬사를 늘어놓았다.

「진정한 해방자가 도착하자 하늘도 맑게 개기 시작했다. 이것은 곧 알라께서 그의 싸움을 흡족히 여기신다는 증거다.」

「알림 샤히디를 환영하는 끝도 없는 인파! 이 오랜 전란의 땅에 마침내 신의 평화가 도래하는가? 불과 닷새 만에 공포의 군세를 무너뜨린 위대한 지도자에게 알라의 축복이 있으라!」

「“내가 여기 머무르는 한 이곳에서 테러는 없다.” 많은 이들의 우려를 일축하는 알림 샤히디의 자신감. 그의 말은 언제나 현실이 되어왔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본지는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한 걸음 한 걸음 빠짐없이 뒤따르며 이 땅에 임한 신의 영광을 취재하도록 하겠다.」

일시적으로라도 모든 종파의 예배를 허용하는 것은 테러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콜리어와 섀빙턴이 육성한 정예기사들과 이런 쪽에 전문적인 내 부하들의 존재는 이 결정을 벌레들을 끌어들이는 개미지옥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다. 굳이 황금기의 눈을 가진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무방했던 것이다.

모스크를 노리는 테러는 반드시 예배 시간을 노리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함정을 유지하는 데 따른 피로도가 그리 높지도 않았다.

특히 섀빙턴을 섬겼던 기사들은 후각을 강화하는 기량이 상대적으로 우수하여 검문검색에 투입하기가 좋았다. 이들의 빼어난 후각 강화는 섀빙턴 가문 고유의 전례의식(典禮儀式)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경태는 이들의 유용성을 몹시 떨떠름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구세주가 내려주는 똥오줌의 냄새를 최대한 경건하게 음미하려고…… 후각적 분해능과 민감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신체강화 조절능력을 개발해왔다 이 말인데……. 음…… 그, 도움이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솔직히 좀…… 기분이 그렇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놈들 같아요……. 이딴 게…… 마법의 활용……?”

경태가 뭐라고 평가하든 기사들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게 임했다. 애초부터 대마법사를 지키는 경호의 전문가들이라, 어설픈 민병대와 테러리스트들이 기사들의 경계망을 뚫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감독 역으로 붙인 경호실 소속 부하들 역시 기사들의 경계에 좋은 점수를 매겨주었다. 전술복면을 쓰고 각성능력자용 동력방호복을 착용한 기사들은 ‘샤히디의 전사들’의 정예함에 대한 소문을 확산시키는 데에도 보탬이 되었다.

내 지시와 조직 본사 홍보실의 지도 아래, 샤히디는 대 모스크에서 멀지 않은 KFC를 찾아 끼니를 해결하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배스킨라빈스 매장에서 디저트를 사 먹었다.

안사르 알라를 상징하는 4대 구호 중 하나가 “미국에게 죽음을(ٱلْمَوْتُ لِأَمْرِيكَا)!”임에도 불구하고, 시아파 정권의 상징과도 같은 대 모스크의 지척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정을 모르고 보면 꽤나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이는 여러 종파들과 부족들의 합의와 지지 위에서 실질적인(de Facto) 통치력을 행사해온 안사르 알라 정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매장엔 유력 부족 관계자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게 뻔했다. 혹은 시민들의 거부감을 우려하여 세속적인 수요를 억압하지 못했거나.

여하간 이곳에서 식사를 하며 찍은 사진은 샤히디의 공식 SNS 계정에 올라갔다. 미국 대통령을 위한 립 서비스는 덤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맛! 사악한 테러리스트들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이 맛은 우리가 지향해나가야 할 하나의 가치를 담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의 폭정으로부터 해방된 땅에서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즐거움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안사르 알라는 민중들에게 자유세계에 대한 증오를 강요해왔다. 그들이 증오로부터 힘을 얻는 샤이탄의 수족들이었기 때문이다. 죄 없는 이 땅의 민중들은 샤이탄의 권세에 속한 자들의 간교한 혀 놀림에 속아 외부 세계에 대한 그릇된 감정을 길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 땅의 압제자들과 맞서는 성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 세상 모든 평화의 주인이신 알라의 가호 아래, 나는 예멘의 민중들과 미국이 앞으로 해묵은 감정을 씻어내고 새로운 우정을 쌓아나갈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럼으로써 양자는 호혜적인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예상대로, 미국 대통령은 샤히디의 메시지를 자기 계정에 인용하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어두운 시기를 겪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에게 좋은 소식이 도착했다! 우리의 기업들은 이제 새로운 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기회를 얻었다!」

「기업들이 돈을 벌면 투자가 늘고, 투자가 늘면 일자리도 늘어난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고, 내가 해낸 일이다! 민주당은 얻지 못할 우정과, 공화당 내의 헛똑똑이 반대자들에게는 없는 선견지명으로!」

「나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 알림 샤히디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을 비롯한 무형자산의 적절한 활용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나 정치랑 외교를 잘하는데 과연 누가 나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러는 동안 사우디-PLC 연합군은 오랫동안 방치되어있었던 사우디 대사관을 확보하고 국기를 게양했다. 알 살레 대 모스크로부터의 거리가 KFC와 비슷한 정도였기에 점령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MBC(Middle-eastern Broadcasting Company), 알 에크흐바리야, 알 아라비야 등 사우디의 국영 방송사들은 대사관의 국기 게양식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객관적으로는 그저 대사관에 국기를 내걸 뿐인 일이었으나, 구도를 잘 잡아놓으니 사나 시가지를 점령한 사우디아라비아 군대가 승리를 자축하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사우디 대중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온라인엔 영국의 “여왕이여 장수하소서!”나 “신이시여 우리 여왕을 보우하소서!”와 비슷한 용법으로 쓰이는, 그러나 그렇게까지 흔하지는 않았던 관용적 찬양들이 범람했다.

「신이시여, 사우디아라비아와 우리의 군주를 보호하여 주십시오!(الله يحفظك يالسعوديه ويحفظك مليك)」

「종들에게 자비로우시고 많은 것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여, 살만 왕과 그의 왕세자 빈 살만을 보호하소서. 왕국과 백성들에게 영광을!(ياحنان يامنان احفظ الملك سلمان وولي عهده محمد بن سلمان عشتم المملكه ولشعبها)」

잠재적 반역자들은 화학탄에 맞아 죽었거나 죽을 예정이고, 왕가의 지도력을 의심하던 종교계와 국민들은 이제 국왕과 왕세자를 열광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사우디 왕세자는 엄청난 이익을 거둔 것이었다.

여기에 샤히디의 군세에 가담하겠다고 나서는 사우디 잉여인생들의 숫자 역시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내 예멘 출장 전까지만 해도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급격한 변화였다. 사우디 왕세자의 근심이 그만큼 더 가벼워지게 된 것이다.

아랍권의 SNS에선 신변을 정리하고 샤히디의 지하드에 투신한다는 내용의 글들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나는 위대한 알라의 검 알림 샤히디와 함께 싸우러 떠난다! 그분께서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주실 거야! 알라 후 아크바르!」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킨 것은 샤히디의 이름으로 올라간 메시지였다.

「내게는 아직도 치러야 할 성전이 많다. 나는 신께서 내게 내려주신 사명을 다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종교를 불문하고 샤히디에게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샤히디의 다음 전장이 어디가 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가장 높은 빈도로 언급되는 곳은 당연히 샤히디의 궁극적인 대적(大敵) 중국의 침공을 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세계 각지에선 샤히디의 우수한 캐릭터성에 매료된 사람들이 위구르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동 투르키스탄 공화국의 국장과 깃발을 내걸거나, 해외 거주 위구르인들과 함께 중국을 비판하는 가두행진을 벌이거나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열기는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에서 특히 더 뜨거웠다. 그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거의 광란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사우디 왕세자는 처음엔 중국의 심기를 고려하여 몇 가지 조치를 취하려 하기도 했다. 샤히디의 홍보채널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국영방송으로 나가는 영상에서만큼은 동 투르키스탄의 국장이나 「위구르에 자유를!」 「티베트에 자유를!」 같은 표어들에 블러를 먹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 국민들은 모자이크 처리가 된 영상을 보자마자 곧바로 폭발했다.

「하다하다 「알라의 검」의 영상까지 검열하다니! 이게 나라냐! 방송국은 각성하라!」

「위대한 전사 알림 샤히디가 우리를 위해 싸워주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간악한 중국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의 거룩한 싸움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단 말인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알라의 검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그를 우리에게 내려주신 알라께서는 또 어찌 여기시겠는가?」

「거리로 나가자! 위대한 전사에게 우리의 뜻을 보여주자!」

이를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비난의 화살이 방송국에서 정부와 왕가로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었을 것이다. 방송사들이 그저 왕가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격앙된 여론을 본 왕세자는 재빨리 검열 방침을 철회했다. 딱히 내가 압력을 행사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해결된 문제였다.

지금에 와선 사우디의 건물이란 건물마다 죄 동 투르키스탄 공화국의 국장이 내걸려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우디를 전복시키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훈련시설은 사우디 영토 내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왕국을 전복시켜봐야 내게는 이득보다 기회비용의 손실이 더 많을 테지만, 내 궁극적인 목적을 모르는 사우디 왕세자 입장에선 알아서 조심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었다.

그는 공식석상에서도 더는 샤히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지 않았다. 입장을 확실하게 정한 것이다.

「나는 위대한 전사 알림 샤히디의 투쟁에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그에게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1급 대훈장과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 육군 명예 대장(파리크 아왈)의 계급을 내리는 바이다. 그의 명예는 언제나 왕국과 우리 왕실에 의해 보증될 것이다.」

아무래도 왕세자는 중국과의 외교 파탄에서 오는 피해보다, 그 피해가 야기할 국민들의 반감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쪽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만약 중국이 경제적 보복을 실시할 경우 경기불황이나 물가상승의 책임을 상당부분 중국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겠지.

그러면 왕가는 경제실패에 대한 책임공방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며, 중국에 맹렬한 분노와 혐오를 품은 불온분자들은 그 중국을 물리치고자 더 적극적으로 샤히디의 군세에 가담할 터였다.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1급 대훈장은 자국 왕실의 일원이나 우방국의 국가원수, 우방국 군대의 최고 지휘관 정도에게나 수여하는 가장 높은 위격의 훈장이다. 이를 샤히디에게 수여한다 함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샤히디를 국가원수에 준하는 인물로 대우하겠다는 뜻이었다.

중국은 게거품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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