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86화 (486/561)

#48. 안사르 알라 (14)

낙타 기병대의 궤멸 소식은 시아파 광신도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수도특별행정구역(أمانة العاصمة)과 사나 주(州)의 경계에 자리한 높은 봉우리를 점령하고, 수도 전체를 감제(瞰制) 가능한 삼각성채 유적(قلعه نقم)에 안테나를 설치한 후 모래폭풍을 뚫을 만큼 강력한 전파납치를 실시하여 혼란의 불길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알라께서는 우리를 버리셨다……. 아아, 알라께서는 진실로 우리를 내쳐버리셨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라께 무언가 죄를 짓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어딘가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고, 그분께서 바라지 않는 일들을 저질러온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런 재난 같은 패배들을 겪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알라께서 정하시는 바일진대…….」

「나와 내 전우들은 적과의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다……. 나는 분명히 느꼈다. 천상의 주인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나와 내 낙타의 힘을 거둬 가시는 것을. 그 찰나에 느껴진 그분의 존재감이란, 너무도 거대하고 압도적이어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그것은 하나의 계시와도 같았다.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전능하신 분의 뜻이 알림 샤히디와 그의 전사들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안사르 알라의 관제방송을 마비시키고 대신 송출한 영상 속에서, 낙타 기병대의 기수들은 유가족들과 지인들이 알아보기 쉽게끔 맨얼굴을 드러낸 채로 절망적인 말들을 읊조렸다. 사나에 잔존한 안사르 알라 세력의 사기를 시궁창에 처박아줄 언어의 전염병들이었다.

이 프로파간다는 「소생」을 십분 활용한 것이었다. 시체인형으로 되살린 사망자들에게 정해진 대본을 읽도록 하고, 그 장면을 녹화하여 생존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살아남은 광신도들의 의지를 빠르게 무너뜨린 것이다.

다중각성체 낙타 기병대는 안사르 알라의 최정예 전력이었고, 그만큼 기수들의 정신무장도 투철했으므로, 시체인형을 활용하지 않았다면 살아남은 기수들을 프로파간다에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며칠이 걸렸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에 안사르 알라 최고 지휘부는 앞서 경고했던 ‘극도로 치명적인 전략무기 공격’의 의지를 더욱 강경하게 재확인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적들의 심장부에 대한 잔혹한 응징이 임박했다! 우리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창들이 이단자들의 급소를 뚫고 들어가면 이 전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믿음도 없고 용기도 없는 이단자들의 군세는 그들의 그릇된 지도자들을 잃어버린 채 고질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며 무너져 내리리라!」

그러나 이러한 강경함은 내부의 전의를 북돋기엔 역부족이었다. 지속적인 전파납치로 말미암아, 수도의 시민들에게조차 지휘부의 의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래도 예멘 바깥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안사르 알라가 성명 발표를 전후하여 몇 발의 순항미사일과 탄도탄을 발사했기 때문이었다.

목표는 같은 사라왓 산맥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들. 요격에 실패한 탄도탄 한 발이 압하 국제공항 인근의 경작지에 착탄하자, 방사능 오염 폭탄과 생화학탄에 대한 공포가 더욱 크게 확산되었다.

일단 떨어진 탄두 자체는 평범한 재래식 탄두였다. 그러나 만약 안사르 알라가 보유한 미사일 전량을 쏟아낸다면, 또 그 미사일들이 위험한 탄두를 달고 날아온다면 수십 만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반영구적 오염지대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화학탄 투발 명령을 내렸다.

쿠데타를 꿈꾸는 야심가들에게, 조국을 지키는 전쟁에 종군했다는 명예는 굉장히 강력한 무기가 된다. 더구나 이 전쟁은 사우디 내에선 확고한 성전으로 통하기까지 하니, 고귀한 혈통을 물려받은 야심가들이 욕심을 내는 게 당연했다.

사우디 왕세자가 암살을 의뢰한 집단의 명목상 지도자는 앞서 샤히디에게 이런 전갈을 보내온 바 있었다.

「친애하는 ‘사령관(아미르)’ 알림 샤히디에게. 나는 충성위원회(هيئة البيعة)의 일원이자 고(故)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의 아들인 압둘아지즈 빈 나예프 왕자요. 나는 칼리드 빈 탈랄 왕자와 더불어 나라와 왕실을 지키고 성지를 수호하기 위해 종군을 결심한 바, 그대가 나와 내 전사들에게 명예를 빛낼 기회를 준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리니-」

겉보기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전갈이었다. 좀 긴 자기소개를 제외하면 그냥 명예를 빛낼 기회를 달라는 말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사우디의 내부사정을 좀 아는 자라면 자기소개의 행간에 숨겨져 있는 암시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일단 충성위원회의 일원이라는 말은 굳이 집어넣을 이유가 없었다. 이 위원회의 기능은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정한 형제상속의 원칙에 따라 왕위 계승자를 결정하는 것인데, 현 국왕이 기존의 원칙을 깨버리고 제 아들인 빈 살만을 왕세자로 삼아버린 탓에 충성위원회의 존재의의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곁가지로 언급된 칼리드 빈 탈랄 왕자는 현 왕세자에게 비판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 내용만으로는 빈 탈랄이 같은 배를 탔는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만 이용당하는 것인지 알 재간이 없으나, 존재의의를 상실한 충성위원회와 현 왕실에 비판적인 인물을 함께 언급하는 건 의도가 분명한 암시였다.

또한 아미르라는 칭호를 강조한 것은 보상과 지지에 대한 약속이라고 보아야 했다.

이놈들을 잘 이용하면 사우디라는 나라 전체를 반쯤 괴뢰화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는 일. 그러나 이건 내게 별로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본말전도에도 정도가 있지.’

나는 압둘아지즈 빈 나예프가 보낸 메시지를 고스란히 사우디 왕세자에게 전달하도록 한 후, 빈 나예프가 이끄는 부대를 화학탄으로 때리기 좋은 지점에 배치했다.

야망이 야망인 만큼, 빈 나예프는 사나를 반포위한 최전선에서 불과 8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지점으로 전진하라는 내용의 ‘지휘협조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빈 나예프 부대가 배치된 곳은 마리브에서 사나로 들어오는 최단경로의 관문과도 같은 협곡이었다. 이 근처엔 주변을 다 감제할 수 있는 고지가 있었으므로 맡길 명분도 나쁘지 않았다. 이곳을 틀어막으면 사나의 남동쪽으로도 포위망이 형성된다. 표면적인 임무는 차단선을 구성하고 주민들을 위무하며 보급선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사냥감은 암살 우려가 있으니 인근 주민을 소개하라는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고, 가까운 주유소에서 폭탄 테러가 터지자 제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민간기자단의 카메라 앞에서 알라의 전사 알림 샤히디의 선견지명을 칭찬했다.

그러는 사이, 빈 나예프 부대가 주둔한 지점의 풍상(風上) 지대엔 다량의 겨자가스 탄두들이 착탄하고 있었다.

「투발 완료. 표적 집단은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주유소의 폭탄 테러는 사실 안사르 알라의 암살자들이 아니라 내 부하들이 수행한 것이었다. 이는 매캐한 탄내로 겨자가스 특유의 향을 가리기 위한 조치였다.

거친 모래바람 속에서 희미한 겨자 냄새를 맡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일국의 왕자를 경호하는 고 강화계수 각성능력자들을 상대로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가뜩이나 생화학무기의 위협이 고조되어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탄내가 남아있는 동안 시간 간격을 두고 2차 투발, 3차 투발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겨자가스는 쏘자마자 결과가 나오는 즉효성의 무기가 아니다. 막상 노출될 땐 아무 느낌도 없다가, 손쓸 수 없을 지경으로 침투가 진행된 다음에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지효성(遲效性)의 극독이지.

그래서 나는 출장 나흘째의 아침이 밝고 나서야 본격적인 증상 발현에 관한 보고를 받아볼 수 있었다.

「끄륽! 끄르르륵!」

나는 「알 왈리드 1세」의 임시 집무실에서 수연이 내온 커피를 마시며 전자보고에 첨부된 영상들을 감상했다. 환자마다 케이스를 분류하여 나눠놓은 짧은 영상들은 일본산 겨자가스의 효력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자료들이었다.

「켈룩! 크어억! 커컥, 꺽! 꺼거걱!」

전신이 노란 수포로 뒤덮인 환자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나는 기침을 할 때마다 오염된 피와 고름이 방울방울 튀어나왔다. 호흡기에도 화학적 화상과 부종이 발생하여 환자를 질식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었다.

각막엔 육안으로 식별 가능할 만큼 심한 궤양이 생겼으며, 진통제로도 다스릴 수 없는 통증과 가려움증이 환자를 몸부림치도록 만들었다.

겨자가스는 사실 가스가 아니라 미세 에어로졸의 형태이고, 천 재질에도 잘 침투한다. 그래서 환자의 몸은 옷으로 가려져있던 부분들까지도 썩은 포도알 같은 수포로 가득했다. 이런 상태에선 환부에 붕대조차 감을 수 없었다. 수포들을 함부로 터트려댔다간 환자의 예후가 나빠지는 까닭이다.

“만족스럽군. 커피 맛도. 화학탄의 효과도.”

사실 모래폭풍이 부는 사막은 에어로졸 화학병기를 실험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었다. 전하를 띤 미세 입자들이 에어로졸 입자에 들러붙으니까.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무기란 원래 신뢰성이 중요한 것이다. 이번 실험은 일본산 겨자가스가 극한환경에서도 유효한 살상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수연이 손수 내려온 커피의 맛과 향은 굉장히 산뜻한 편이었다. 사나 서쪽의 고산지대에서 재배된 독특한 형상의 원두였는데, 이 동네의 전통방식으로 끓이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했다.

나란히 화면을 보던 수연이 물었다.

“이런 걸 보시면서 드시면 향미가 조금은 덜한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딱히. 항상 보는 사람 몸뚱이보다 특별히 더 흉할 것도 없다.”

“……그렇군요.”

황금기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언제나 이 모양이었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답을 들은 수연은 순간적으로 희미한 낙담의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나 내 말의 어디에 낙담할 구석이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이제 와서 내가 눈깔병신이라는 사실에 유감을 느끼는 건 너무 새삼스럽지 않은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내 물음에 수연은 고개를 느리게 가로저었다.

“그런 건 없습니다. 그보다, 이곳의 일이 다 정리되고 나면 온천에서 잠시 피로를 풀고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온천?”

“예. 아쉬 쉬흐르에서 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알 하미(الحامي)라는 어촌이 있는데, 그곳에 아인 알 라우다…… 그러니까, 「정원의 눈」이라 불리는 작은 온천이 있다더군요. 하룻밤 들러 휴식을 취하시기에 괜찮은 장소 같습니다.”

예멘은 휴화산과 온천이 많은 땅이어서, 마리브로부터 사나까지 진격하는 사이에도 몇 개인가의 온천과 뜨거운 지하수맥을 스쳐가듯 본 바 있었다.

나는 승낙의사를 표했다.

“나쁘지 않겠지. 네 말대로 일을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겠다만. 사나에 대한 화학전은 잘 풀려가는 중인가?”

“별다른 문제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그쪽에서도 지금쯤이면 발병자가 나오기 시작했을 겁니다. 선전 역시 지시하신 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아직은 응답이 없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지요.”

겨자가스는 그 악명에 비해 의외로 치사율이 낮은 독극물이다. 수십 밀리그램 단위의 오염만으로도 사람을 죽이거나 중태에 빠트리는 대부분의 화학병기들과 달리, 겨자가스는 0.01% 이하의 대기혼합비율에서는 가벼운 화끈거림 이외의 증상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나 동남부 외곽지역을 향해 가스를 풀도록 지시했다. 중증도 노출은 이미 실험했으니, 이번엔 경증도 노출 실험을 진행할 차례였다. 또한 이는 농도를 조절해가며 가스를 살포하는 훈련을 겸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전에 계산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실시한 두 번째 화학전의 결과, 대략 23제곱킬로미터 가량의 거주지가 0.02~0.03% 가량의 혼합비로 오염된 공기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예상되는 증상은 국소적인 1도 화상이나 물집 생성 정도가 다였다. 정말로 운이 나쁜 경우엔 결막염이나 일시적인 시력상실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선전선동을 위한 새로운 장작이었다.

「고결한 전사이자 고귀한 왕족인 압둘아지즈 빈 나예프 왕자께서 사악한 안사르 알라의 독가스 공격에 당해 위독한 상태에 빠지셨다. 보라, 사나의 시민들이여. 이 끔찍한 모습이 그대들이 말하는 신의 정의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대들이 믿는 신의 이름은 절대로 알라가 아닐 것이다!」

「안사르 알라가 감행한 반인륜적인 공격은 그들의 샤이탄(사탄)에 가까운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며, 또한 이 전쟁의 대의가 우리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안사르 알라의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있으니 오직 전능하신 알라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을진대, 과연 핵심 전범들이 알라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나로 들어가는 동남쪽 길목에서 바람을 타고 번지는 독이 우리의 명예로운 장교들과 병사들을 해치고 있다. 중독되고 나서 최대 하루까지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 더러운 독은……」

내 지시에 따라 전파납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선전은 이런 식이었다. 주민들에게 대놓고 조심하라는 경고를 전하는 건 지나치게 노골적인 면이 있으니까.

겨자가스에 당한 압둘아지즈 빈 나예프의 흉물스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이쪽이 입은 피해와 이쪽이 느끼는 비탄을 강조하고, ‘사나 동남부에서’ ‘바람을 타고 번지며’ ‘중독 후 최대 하루 동안 증상이 없는’ 독이 이쪽의 피해를 키우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만 해주면, 겨자가스에 경미하게 노출된 지역에서 가벼운 증상들이 발현되기 시작할 때 어마어마한 공포와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되어있었다.

공황에 빠진 주민들은 사나의 안사르 알라 지도부에게 분노를 담아 묻겠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이제 곧 일어날,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들이었다.

한편 샤히디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던 외신들은 안사르 알라의 화학탄 사용 소식을 일제히 속보로 내보냈다. 반응이 빠른 국가들은 벌써 안사르 알라를 규탄한다는 짧은 메시지를 내놓은 상태였다.

나는 백악관 미치광이의 SNS 계정에 샤히디의 이름으로 비밀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존경하는 대통령님께. 지금이라면 당신의 말 한 마디가 아주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 억제를 명분으로 미국의 군사개입을 암시하는 강경한 메시지를 작성해주십시오. 그와 함께 홍해 상공에 무인정찰기 몇 대만 띄워주시면, 그렇잖아도 궁지에 몰려있는 적들은 극한의 위기감에 짓눌리게 될 것입니다. 적들에겐 쏟아지는 국제적 비난들 속에서 당신의 메시지가 참인지 거짓인지 가려낼 여유가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적들의 전의가 무너지면, 당신께서는 다른 비용을 일절 들이지 않고 그저 말 한 마디로 종전에 일조하는 위엄을 선보이시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테러리스트들의 수중에 떨어져있었던 대사관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되찾는 것은 당신께서 미국의 시민들에게 내세울 하나의 치적이 되어주겠지요. 훗날 자서전을 쓰실 때도 즐거운 기분으로 페이지를 채우실 수 있을 테고요.」

「아무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미디어를 통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온 세상에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명예욕-혹은 관심병-이 동한 백악관 미치광이가 호응하여 참모들이 기겁할 메시지를 남겨준다면, 안사르 알라 지도부는 그렇잖아도 절망적인 전황 속에서 미군의 참전 가능성까지 고려하느라 머리가 터져나갈 것이었다.

나는 다 마신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이제 곧 입질이 오겠지. 대통령의 사위에게 성의를 전달하기도 했으니.”

백악관 미치광이의 사위는 뼈대 있는 유대인 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현 왕세자와 친분이 깊은 사이였다.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사건 당시에도 사우디 왕세자의 입장을 대변하여 비밀스러운 중재를 해주었을 정도.

비록 사우디가 경제적으로 몰락하긴 했으나, 개인적인 친분까지 어딘가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백악관 미치광이의 기름추장 어쩌고 하는 발언들은, 무엇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성향에 미치광이 나름의 정치적인 계산이 더해진 결과라고 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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