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안사르 알라 (13)
수연이 말하는 화학탄은 오쿠노시마의 지저로부터 뽑아낸 옛 일본제국의 유산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과반세기에 걸쳐 땅 밑에 묻혀있었던 겨자가스(Mustard gas)는 아직까지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정순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침 안사르 알라가 결코 혼자서는 죽지 않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니, 사우디군을 상대로 화학무기가 사용되면 그 혐의는 자연히 안사르 알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제조시설이나 보관시설 같은 증거는 나중에 조작하면 그만이지요. 화학탄의 실전 사용 데이터를 확보하기에 좋은 기회입니다.」
나는 당초엔 오쿠노시마산 겨자가스의 실전 사용 데이터를 중국에서 확보하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흑해자당이 당국과의 싸움에서 지나치게 궁지에 몰릴 경우, 흑해자당에게 화학탄을 제공함으로써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것이다. 구체적인 피해 데이터는 국안부를 경유해 뽑아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혁명세력으로부터 사실상 산적과 수적 집단으로 전직한 흑해자당은, 험한 산세와 기나긴 물길에 의지한 게릴라전을 통해 내 예상을 웃도는 생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학무기를 공급하는 건 오히려 균형을 망치기 십상인 짓이었다.
현재 안사르 알라는 샤히디가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를 겨냥해 ‘극도로 치명적인 전략무기 공격’을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짐승이 털을 곤두세운 채 내뱉는 으르렁거림이었다.
내가 보기에 치명적인 전략무기 공격이란 안사르 알라가 평소에 잘하던 짓- 즉 민간영역을 겨냥한 탄도탄 및 순항미사일 테러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았다. 탄두는 당연히 평범한 재래식 탄두들일 테고.
‘이란이 안사르 알라에게 생화학무기를 공급했을 리가 없지. 라흐바르(رهبر/최고지도자)와 대통령이 나란히 치매에 걸리지 않은 이상에야.’
안사르 알라가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에게 충성하는 위성국가라고는 해도, 안사르 알라의 근간인 후티 반군은 언제 어떻게 폭주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광신도 집단이다.
광신도의 생리는 같은 광신도들이 가장 잘 아는 법.
이란 최고지도부는 광신도들치고는 머리가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집단이기도 하니, 한낱 사냥개들에게 미증유의 위기를 불러일으킬 위험한 힘을 쥐여 주진 않았을 것이었다. 대량살상병기는 언제나 확고한 통제 아래에 두어야만 한다.
고로 안사르 알라의 으름장엔 일부러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봐야 했다. ‘저것들이 혹시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이러한 허장성세는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각국 언론들이 방사능 오염 폭탄(더티 밤)이나 생화학탄의 위협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연은 이렇게 조성된 공포 분위기를 이용하자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사우디군인데 설마하니 사우디나 샤히디가 의심을 받겠는가.
「이는 적당한 선에서 교전을 중지할 명분을 굳히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안사르 알라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세력을 남겨둠으로써 사우디가 지속적인 안보 불안을 느끼도록 하는 편이 이익이지 않습니까?」
「화학탄이 터지고 나면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도도 급격히 올라갈 겁니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동네의 시시한 반군 따위가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를 탄도탄에 실어 날릴 능력과 민간인 살상 의지를 겸비한 강력하고 반인륜적인 무장집단과의 싸움으로 주목을 받겠지요. 알림 샤히디의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켜줄 소재라 하겠습니다.」
「이란은 외교적 비난 속에서 계속해서 안사르 알라를 지원하는 데 부담을 느끼겠지요. 최소한 탄도탄 및 순항미사일 공급만큼은 중단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것들이 혹시 우리도 모르게 화학무기를 개발했나……?’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물리적인 공급선 자체의 축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요.」
「이란의 무기 및 물자 지원에서 효율성 제고가 이루어진다면, 향후 안사르 알라의 전투역량은 철저하게 전술적인 부분에만 집중될 것입니다. 즉 사우디가 느끼는 안보 불안이 우리의 철수를 기점으로 과도하게 비등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적어도 1~2년 이내에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우디 왕세자는 자신이 청부한 숙청이 실행된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껏 과시한 군사적 역량만으로도 배신을 막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이런 종류의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지요.」
여기까지 말한 수연은 차분한 어조 그대로 마지막 단서를 달았다.
「물론, 형님께서 내키지 않으신다면 굳이 취하지 않아도 무방한 이익들입니다.」
수연의 단서는 내가 내 심중에 그어놓은 선을 고려한 것이라는 게 뻔히 들여다보였다.
과거 대영제국은 중동지역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대대적인 화학전을 수행한 전적이 있다. 그 결정을 내린 것은 당시 전쟁부 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이었고, 그때 사용된 화학무기가 공교롭게도 내가 가진 것과 같은 겨자가스였다.
화학무기에 관한 처칠의 어록은 화려하다. “반항적인 아랍인들에 대한 실험.” “화학무기 사용에 반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사고방식.” “나는 미개한 부족들에게 독가스를 사용하는 것을 강력히 찬성한다.” “독가스의 사용은 탁월한 도덕적 효과를 발휘했다.” 등등.
자국과 영연방의 군인들을 대상으로도 화학무기 실험을 행한 마당에 한낱 아랍부족들에게 쓰지 못할 이유는 뭐란 말인가.
나는 잠시 내면의 저울을 가늠해본 후 수연의 제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해보도록 하지. 탄은 준비되어있고?”
「예. 언제든 전선으로 추진 가능합니다.」
목표는 왕족과 귀족들로 이루어진 장교들이다. 부수적인 피해라고 해봐야 그들 개개인이 고용한 용병들, 그리고 소속은 정규군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출신 부족에 따라 갈라져 친위대 노릇을 하는 떨거지들이 전부겠지.
이들이 전장으로 기어 나온 것은 샤히디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승리의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함이 첫째요, 가능하다면 샤히디와 친분을 쌓아 사우디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비장의 카드로 쓰기 위함이 둘째다.
왕좌놀음에 취한 이 기름쟁이들을 화학탄으로 죽이면, 그 외의 다른 수단으로 죽였을 때보다 사우디 왕세자가 내놓을 대가가 커질 것이다. 수연의 말마따나, 왕세자는 자신의 청부가 이루어진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을 테니까.
나는 사무적인 대화를 끝으로 통화를 종료하려다가, 일찍이 이 녀석이 보여주었던 언행들을 고려하여 짧게나마 사담을 나누었다.
“원두는 받아봤나?”
「예?」
“여기서 경태가 모아 보낸 커피 원두들 말이다. 네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궁금해하더라만.”
「아…….」
예멘은 과거 커피 생산과 무역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예멘의 농부들은 오랜 세월 이 땅을 벗어난 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아라비카 직계의 품종들을 여럿 길러내고 있었다.
수연이 그러하듯 평소 내게 커피를 타주는 일에 기이한 애착을 보이는 경태 녀석은, 샤히디의 SNS 계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여러 부족들과 움마(신앙공동체)들의 전향 상담에 “당신들이 재배한 가장 우수한 커피 원두 한 자루”를 달라는 조건을 집어넣었다.
나는 중요한 일에서까지 장난을 치지 말라고 가볍게 나무랐으나, 경태는 이게 저들의 전통적인 자부심과 엮여 긍정적인 반응 및 경쟁의식을 불러오리라 장담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샤히디의 계정에 현지에서 받은 커피 맛에 대한 호평이 올라가자, 예멘 현지인들은 외국의 유명인들에게 김치를 먹이고 기뻐하던 시절의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열띤 호의를 드러냈다. 타산적인 아첨과 결이 어우러진 지역·마을·부족들 간의 자존심 싸움은 덤이었다.
들어온 커피 원두들 중 일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에게 선물로 전달되었다. 현지 부족들이 항복과 함께 바친 예물을 나눈다는 명목으로.
나머지는 전량 수연이 머무르는 「알 왈리드 1세」로 후송되었다. 경태는 “불쌍한 우리 누님은 품바 고기도 못 먹었는데 이 정도는 내가 양보해줘야”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주절댔다.
뜸을 들이던 수연이 말했다.
「향미가 인상적인 원두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히라지와 이스마일리 계통인 것 같긴 한데, 일반적으로 접하는 것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더군요. 낙후된 인프라와 내전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있었던 품종들인 모양입니다. 시음을 해본 결과 형님께 올릴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질문과는 살짝 어긋나있는 대답이었다.
“그거 기대되는구나. 페르 아스페라의 상태를 확인할 때 들러서 맛보도록 하마. 그런 건 갓 내렸을 때 마셔봐야겠지.”
「예.」
페르 아스페라의 조립식 아기들은 ‘시동이 꺼진’ 대기 상태에서도 틈틈이 상태를 확인해주어야 했다. 알 왈리드 1세 선단에 포함된 선박들이 공기순환과 연료공급을 보조하게끔 조치해두었지만, 그것만 믿고 방치해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수도 사나에 대한 공격을 속행했다. 안사르 알라를 멸망시키지 않더라도, 예멘 공화국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상징적인 관공서 건물들, 프로파간다와 종교적 권위 확보에 필수적인 두 개의 대모스크, 산악지대에서의 원활한 보급을 위한 국제공항, 그리고 내전 발발 이래 줄곧 폐쇄상태로 방치되어온 미국 대사관까지는 확보해놔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대통령궁을 비롯한 주요 관공서들은 박살이 나지 않은 건물이 거의 없다시피 하나, 그럼에도 그 폐허들은 반드시 공화국의 소유로 돌아와야 했다.
경태는 간단한 유인책을 입안했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믿고 싶은 걸 믿는 경향이 더 강해진단 말이죠. 기도메타가 일상 그 자체인 광신도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노획한 SOI(CEOI의 다른 표현/무선호출부호 및 주파수, 암호화 코드 등을 기록한 군용 통신지침)를 이용해서 거짓 정보를 전달하면 「알라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 이러면서 퍼덕퍼덕 낚여 올라올 겁니다.”
안사르 알라 최고 지휘부는 마리브 일대와 산악지대 북부에 배치되어있던 많은 부대들이 이틀도 안 되어 다 붕괴하거나 궤멸해버렸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저 통신이 두절되었을 뿐, 아직 편제를 유지하며 싸우고 있으리라 여기는 것이었다.
하여 경태는 전멸한 부대들 중 하나를 가장하여 사나로 긴급한 내용의 구조요청을 보내었다. 적들의 습격을 받으며 황무지 한가운데의 건천 협곡을 따라 남하할 계획이나, 개인화기 이외의 장비는 대부분 상실했고 탄약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여서 속히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구조요청을 전달한 것은 「소생」으로 일으켜 세운 한 무리의 시체인형들이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작성된 암호문을 품고 사나로 달려간 이 시체인형들은, 결사의 각오로 적지를 가로질러온 숭고한 전령들로 보이기에 충분한 몰골들이었다.
나와 내 부하들은 이 인형들을 사나 외곽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거리까지 침투하여 풀어놓았다. 내린 명령은 단 하나. 그저 「알라 후 아크바르」를 되뇌며 무조건 앞으로 달려가라는 것.
‘인형들이 미친 것 같아 보여도 꼬락서니를 보고 그러려니 하겠지.’
시간 경과에 따른 SOI의 유효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SOI 갱신은 통신이 유지될 때에나 가능한 것. 고립된 부대들이 갱신 이전의 암호표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형들은 신원 확인이 용이하게끔 생전에 각성능력자였던 장교와 부사관들을 포함시켰다.
인형 전령들의 비장한 죽음(기능정지)에 속은 안사르 알라 최고 지휘부는 지금껏 아껴두었던-사실 출격시킬 기회를 잡지도 못했던-전략 예비대를 내보냈다.
그 예비대란 지형을 가리지 않고 높은 기동성을 발휘하는 다중각성체 낙타 기병대였다. 중화기로 무장하고 반응 장갑을 둘렀으며 허공답보까지 가능한 낙타 기병들은 사막과 산지가 어우러진 지형에선 더없이 강력한 충격력을 발휘하는 무력집단이었다.
나는 이 귀중한 기병대를 대마법사의 힘으로 3초 만에 분쇄해버렸다.
전장으로 삼은 곳은 수도 사나 북부의 넓고 거친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건천 협곡 와디 알 카리드. 전장을 다 뒤덮고도 남을 반경으로 전개한 대마법사의 마력장은 적 기병들의 마소 수급을 틀어막아 한순간에 승패를 결정지었다.
“끅……끄극…….”
메마른 협곡 곳곳에 낙마한 시아파 각성능력자들이 나뒹굴었다. 멈추기 전까지 튕기고 구른 자리엔 붉은 혈흔들이 줄지어 찍혀있었다. 낮은 허공을 시속 140킬로미터 안팎의 속도로 질주하다가, 짓눌린 마력장과 갑작스럽게 급감한 마소 유입으로 인해 균형을 잃고 추락해버린 결과였다.
비유하자면 초저공 침투비행을 감행하던 항공기가 갑자기 엔진이 꺼져버린 꼴이다. 염동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 하나, 비행기처럼 양력을 만들어줄 날개가 없으니 공황에서 빠져나와 연착륙을 시도할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모자란 염동력으로 어떻게든 감속을 걸어 즉사를 면한 기수들은 전체 병력의 5푼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신음을 내뱉는 자들은 그보다 더 숫자가 적었다. 추락과 낙마의 충격이 각성능력자에게도 살인적인 수준이었거니와, 그 충격을 마력장이 억제된 상태에서 받아내야 했던 까닭이다.
낙타의 생존률은 기수들보다는 높은 편이었다. 살려서 프로파간다에 써먹을 만큼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친 바위와 자갈들로 가득한 협곡은 박살 난 시체들과 찢어진 생존자들을 품고서 붉은 핏물을 빨아들였다. 시체와 부상자들의 상처엔 바람에 묻어온 모래먼지가 허옇게 달라붙었다. 전투현장이라기보다는 참사현장에 더 가까운 협곡을 확인한 경태가 감탄했다.
“와. 우리 형님 진짜 먼치킨. 존재 자체가 광역 학살병기.”
“먼치킨? 고양이를 말하는 거냐?”
“아, 우리 형님 먼치킨 모르시는구나. 쉽게 말씀드리면 이건 사기야! 싶을 만큼 강력한 캐릭터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게임이나 만화, 소설, 영화의 파워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주범들이죠. 지금처럼 그 밸런스 붕괴가 즐거운 경우도 있지만요.”
우리가 낙타 기병대 궤멸을 공표할 즈음, 남쪽에서는 아랍에미리트의 재촉을 받은 남부과도연합의 정예, 일명 「보안벨트」 부대가 안사르 알라와 과도연합의 주요 경합지였던 타이즈 시를 완전히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사나 전역을 공포로 물들여 압도한 후 안사르 알라를 협상장으로 끌어내고, 사우디 왕족들의 머리 위로 화학탄을 터트려 예멘 출장을 끝낼 구실을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