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안사르 알라 (10)
샤히디 그룹 구성원들의 능력 강화는 순조롭게 완료되었다. 불안을 안고 잠들었던 피시술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정말로 강해진 것에 경악했다.
“오, 알라시여……. 세상에 이토록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영약이 존재했다니…….”
온 수니파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샤히디 그룹 구성원들만큼 할랄 영약을 많이 복용한 집단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아랍 제국(諸國)의 왕실을 포함한 후원자들로부터 그만큼 많은 수량의 영약들을 기부받은 까닭이다.
그간 샤히디가 내게 보내온 암호화 서신-사실상의 활동내역 정기보고-에도 그 같은 영약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먹어도 먹어도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의문과 불만들이었다.
내가 지켜봐온 바, 샤히디 그룹의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각성능력이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줄곧 신경써오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 능력을 가졌느냐보다는 주어진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해냈느냐를 봐야 비로소 진정한 신의 은총을 알 수 있다」는 이슬람 법학자들의 교리해석이 위구르인들에게 힘이 되어주긴 했다. 그러나 신규 지하디스트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보다 강한 능력과 존재감을 지닌 각성능력자들을 자주 대면하게 되니 신경을 안 쓰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영약의 약효에도 보통 사람들보다 민감하고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다.
초조한 마음을 품고 복용하는 약들이 그때마다 눈에 띄는 변화를 주지 못하는데, “불사암의 위험을 줄여준다.” “장기적으로 능력 성장에 도움이 된다.” “약효는 하루아침에 다 몸에 흡수되는 게 아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수양을 하다 보면 반드시 알라의 은총을 받게 된다.” 따위의 막연한 믿음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샤히디는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전보다 더 나를 어려워하며 물었다.
“위대한 스승이시여. 당신께서 주신 영약은 진실로 낙쉬반디의 지혜와 무관한 것입니까?”
낙쉬반디(نقشبندی)는 영성을 강조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교파(수피즘)의 일맥을 의미하며, 그 낙쉬반디의 지혜란 요가수트라에 수록된 회로운용법이나 중의학 및 중국 무학(武學)의 혈도 개념과 흡사한 영성 수행법이었다.
낙쉬반디의 지혜에서 혈도에 대응하는 개념은 라타이프 에쉬타(اللطائف الستة)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몸엔 신성한 힘의 하강을 이루는 다섯 개의 영적 기관이 존재하며, 이 기관들을 통해 내면의 상승을 이룩함으로써 신과 일체화된 「완전한 인간(الإنسان الكام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이슬람 신비주의 교파의 믿음이었다.
많은 할랄 영약들은 바로 이 낙쉬반디의 지혜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었다.
샤히디 그룹의 멤버들은 수니파 신앙을 품고 있으나, 위구르 땅에서 가장 신성한 이슬람 유적지로 통하는 아팍 호자의 영묘부터가 낙쉬반디 계통 종교지도자의 무덤이었다. 영향을 받지 않기도 어려운 노릇.
나는 분명한 부정을 돌려주었다.
“전혀 무관하오.”
“그렇, 군요.”
“하지만 그대들이 이끄는 전사들 앞에선 다르게 말하고 행동해야겠지.”
“그 말씀은 즉……”
“그대와 그대의 사제들은 군사지도자로서만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로서도 일정한 수준의 독자적 권위를 갖추어야 이상적이오. 주류 법학자들에게 이단으로 지목될 수준은 아닌, 그러나 그대들 휘하의 지하드 전사들이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그대들에게 보다 깊게 의지할 만한 교리와 지혜를 선보여야 한다는 말이오.”
이를 통해 꾀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샤히디 그룹 구성원들이 사이비 신앙에 빠져들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는 것. 다른 하나는 순수하게 지하드 전사들에 대한 지배력과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
기껏 내가 지하드 군세를 만들어놓았더니 이맘입네 셰이크입네 하는 호칭을 단 너저분한 종교쟁이들이 빨대를 꽂아 전사들을 빨아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하나하나는 모기가 피 빨아가는 수준의 피해에 불과할지라도, 어느 모기가 질병을 퍼트리거나 모기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거나 하면 귀찮기 짝이 없을 터였다.
“나를 따르는 무하디타가 지속적으로 교리해석을 제공할 거요. 그대들은 그 교리에 따라 전사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되오.”
메리옘의 종교적 연구는 나를 섬기는 광신의 교리 이외에도 샤히디 그룹의 종교적 홍보 및 휘하 전사들의 지하드 교육에 쓰이는 교리해석 및 감독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샤히디 그룹은 그간 메리옘에게 비대면 사상무장 컨설팅을 받아온 셈.
내 말을 들은 샤히디가 망설임 끝에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 무하디타는 어제 홍보채널에 올라온 영상 속의 주인공이 맞습니까?”
“그렇소.”
“그녀는 저희들의 동포입니까? 동포가 맞다면, 혹시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대화를 나눠볼 수 있겠습니까?”
“동포가 맞긴 하오만, 왜 굳이 만나고자 하시오?”
“삿된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위구르 독립의 대의 아래 함께 싸우는 입장에서, 민족을 지탱할 한 기둥이 될 법한 동포가 있다면 친분을 다져두고 싶을 따름입니다.”
나는 가만히 샤히디를 뜯어보았다. 그러나 복면 너머의 메리옘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보기엔 신경계를 물들인 감정의 색채가 애매한 면이 있었다. 침묵이 길어지기 전에, 나는 슬쩍 찌르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왜, 내가 그대의 대체품을 준비해두는 것 같아 불안하오? 그대의 무리에 직접적으로 속하지 자가 그대의 명성에 빌붙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거슬리는 모양이지? 아니면, 그대가 독차지해야 할 서구세계의 관심이 독특한 여성 지도자에게 분산되는 게 불편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정답이었다. 정곡을 찔린 샤히디는 읽기 쉬운 감정적 동요를 보여주었다. 이놈은 자신이 알던 메리옘과 내가 거느린 무하디타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 거짓말은 좀 서툴구려. 민족지도자로서 활동하려면 이런 쪽으로도 스스로를 갈고 닦아놔야 할 거요.”
“송구합니다.”
“전장으로 나갈 준비나 하시오. 오늘도 해야 할 일들이 많소.”
예멘 출장 이틀째의 새벽 공세는 예정대로 안사르 알라의 방공망을 걷어내어 시아파 광신도들에게 진지변환 및 병력 재배치를 강요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자정 무렵부터 전장의 바람은 북동풍으로 바뀌었다. 풍속은 대략 시속 14km 정도. 남동해상의 열대성 저기압이 계속해서 인도양 방면으로 나아감에 따라, 거대한 반시계 방향의 회전에 의해 아라비아 반도 중부 일대의 공기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서 북동풍이 불어온다는 것은 곧 짙은 모래폭풍이 밀려온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예멘과 오만 일대에선 「구바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모래폭풍이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북동풍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에 걸쳐있는 거대한 모래사막을 휩쓸고 내려온다. 메마른 산맥과 협곡들 사이로 평탄한 사막이 움푹 파고든 형세인 예멘의 지형은 이 북동풍의 흐름을 집중시키는 거대한 깔때기와도 같았다.
마리브는 그러한 깔때기의 남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모래폭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한국의 산악지대에 배치된 군인들이 제설작업에 치를 떠는 것처럼, 이곳의 주민들과 군인들은 모래를 치우는 작업에 치를 떨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소량의 비가 내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괴하게 느껴질 만큼 급격한 기상변화였다.
잠시라도 치우기를 게을리했다간 곧바로 도로와 활주로가 사토에 파묻혀버리는 끔찍한 악천후.
이런 악천후 속에선 규모가 큰 지상작전과 항공작전은 미루는 게 상식이다. 시계(視界)는 감소하고, 오폭과 오인사격 가능성은 늘고, 온갖 장비들의 기능 고장도 증가하고, 결정적으로 대기 전체에 충만한 정전기 때문에 기본적인 통신 유지조차 어려워지니까.
소규모 보병 제대들 간의 게릴라성 교전, 혹은 기존에 형성되어있던 고착방어전선 및 요새화 거점에서 병력을 갈아 넣는 소모전이라면 모를까, 그 외의 대대적인 공지합동·제병협동공세는 몹시 무모한 짓이다.
‘탄자니아 때가 떠오르는군.’
탄자니아의 평화유지군 세력이 괜히 그 고생을 했던 게 아니다. 군대와 용병, 민간인들이 뒤섞인 철수행렬은 하나의 고착된 전선과도 같았으며, 현대화된 군대의 강점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광신도들을 상대로 혼란 가득한 개싸움을 벌여야 했잖은가.
한번 시작된 「구바르」는 최소 사나흘 이상 계속된다.
그래서 안사르 알라 측은 적어도 수일간은 정적인 대치가 지속되리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관건은 지상과 공중에 걸친 정예 각성능력자들의 침투를 최대한 막아내며 전선을 재정비하는 것이지, 대규모 공세를 받아낼 일은 없으리라고.
내가 방공망을 줄줄이 파괴하는 동안에도 안사르 알라는 이게 수 시간 내로 개시될 전면 공세의 전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PLC 정부군의 수준을 보면 합리적인 판단이긴 하지.’
전면 공세를 펼치는 데엔 최소한의 머릿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기상재난 속에서 PLC 정부군에게 공세 명령을 하달하면, 각급 부대들이 공격개시선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든 지휘체계가 총체적인 마비상태에 빠질 것이다.
쾌청한 하늘 아래에서 작전을 할 때에도 부대들의 기본적인 위치파악조차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게 PLC의 수준이건만, 하물며 새벽녘의 어둠을 틈타 모래폭풍을 뚫고 전진하는 공세작전이라면 오죽이나 엉망이겠는가. 사령부와 연락이 끊어져 미아 신세에 처하는 부대들이 속출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샤히디가 훈련시킨 지하디스트들 역시 변수가 되긴 어렵다. 개개인의 전투력이야 PLC 정부군보다 우수하다고 치자. 그러나 전선 단위의 종합적인 작전능력은 별개의 영역이다. 알림 샤히디가 아무리 날고 기는 인간이어도 여기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딱 이 정도가 안사르 알라 지휘부의 판단이겠지.
샤히디가 훈련시킨 지하디스트들에 대한 평가엔 필시 안사르 알라가 지닌 사우디인들에 대한 이미지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 상식적이면서 경험적인 판단의 그늘에 기대어 허를 찌르는 공격을 의도했다.
각 부대들의 이동은 비행에 필요한 추력을 염동력으로 대체한 무소음·무발열·무섬광 공중기병 전령들을 이용해 통제했고, 공격개시선에 도달한 부대들 사이엔 총연장이 20킬로미터에 달하는 유선 통신망이 가설되었다.
유선망엔 전의를 고조시키는 언어들이 흘러 다녔다. 샤히디 그룹의 멤버들과 성전연합의 인원들이 수행하는 독전(督戰)이었다.
「“공격 개시 3분 전. 공격 개시 3분 전.”」
「“적의 통신선은 공격 시작과 동시에 끊어질 것이다. 단 한 명도 살아서 빠져나가게 두지 마라. 그래야만 북쪽에서 내려오는 부대들을 각개격파로 잡아먹을 수 있다. 그 모든 부대들이 전멸할 때까지 사나(صنعاء)의 이단자들이 우리의 공격을 눈치채지 못해야 한다.”」
「“위대한 전사 알림 샤히디가 우리와 함께함은 곧 전능하신 알라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과 같다. 우리는 신과 예언자의 이름으로 승리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은 둘 중 하나다. 영광스러운 승리를 누리거나,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천국의 문에 들거나!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용맹하게 싸우라! 알라 후 아크바르!”」
수도 사나 동쪽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방공망 우산이 파괴됨에 따라, 안사르 알라는 불가항력적인 병력 재배치에 들어간 상태였다. 모래폭풍이 부는 동안 재배치를 완료할 심산인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나는 사라왓 산맥 동북부로부터 내려오는 안사르 알라 부대들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지점을 먼저 점령하기로 했다.
N5 국도와 556번 국도가 만나는 곳, 「주프라 전진기지」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이 교통의 요지를 함락시키면 수도 사나로부터 알 하즘(الحزم)을 거쳐 알 부카(الـبـقـع)로 올라가는 축선상의 모든 병력들이 퇴로를 상실한다.
물론 각성능력자들은 길도 없는 산악지대를 통해 철수하는 짓이 가능한 관계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려면 완벽한 봉쇄와 포위섬멸을 통해 적이 최소 한나절 가량은 이 거점의 함락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적 부대들의 정시 보고가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적들은 우리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사르 알라 측이 은밀하게 매설해놓은 통신선들은 내 눈으로 모조리 파악해놓았다.
개중 사나로 이어지는 선을 따 교신 내용을 감청한 덕에, 주프라 기지 말고도 사나-알 부카 축선에 배치된 안사르 알라 부대들의 보고를 고스란히 엿들을 수 있었다. 내 가시거리를 아득히 벗어난 위치의 적황마저 앉은 자리에서 파악하는 편리함이었다.
모래폭풍의 기세가 강한 지금, 통신선만 끊어버리면 시아파 광신도들의 심장부에선 이곳의 상황을 인지할 방법이 없었다. 고로 기지를 빠르게 점령한 후 선을 복구하면, 방금 막 정시보고를 완료한 적 부대들은 통신이 잠시 끊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것이었다.
혹여 알아차리더라도 일시적인 장애가 있었다고 여길 테고.
「공격 개시! 공격 개시!」
중요성이 중요성인 만큼 주프라 기지의 방어는 견고했다. 그러나 나와 내 부하들이 방어체계의 말단 신경과 감각기관들을 모조리 잘라놓은 시점에서, 싸움의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번 싸움에 꼭 샤히디의 휘하에 든 지하디스트들과 PLC 전력을 주력으로 삼을 이유는 없었다. 나와 내 부하들이 주공을 도맡으면 아군의 희생을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며 적을 요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놈들을 내 손으로 수천 명씩 죽여 대면…… 아무래도 입맛이 없어질 거란 말이지.’
시아파 광신도들의 전투부대가 다 그렇듯이, 주프라 기지의 주둔 병력은 절반 이상이 미성숙한 각성능력자 소년병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하드 세뇌교육을 받았고, 일상적으로 마약을 접해왔으며, 사람 죽이기를 명예로 알고 약탈과 강간은 즐거운 놀이쯤으로 여기는 인간적 광기의 순수한 결정체들.
소년병들의 모습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소년병들의 맛이 간 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곤 한다. 그 안엔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사회적 동물의 가장 순정한 본질이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어린 짐승새끼들을 일이백도 아니고 천 단위, 만 단위로 죽여야 하는 전장은 남에게 맡겨놓고 멀찍이 감독하는 정도가 딱 좋다. 내 식생활의 만족도 유지를 위해서나, 부하들의 정신건강과 조직문화의 건전성을 위해서나.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면, 한동안은 꿈에서 영생의 별이 그려진 보육원을 달리며 스승새끼의 목소리를 듣기도 쉬워지겠지. 요즘은 듣는 빈도가 줄어서 좋은 그 지겨운 목소리를.
이런 측면에서 알 카에다와 안사르 알 샤리아는 패는 손맛이 깔끔한 상대였다. 안사르 알라에 비하면 감투정신이 모자란 데다, 사우디 출신 망명자들과 현지 부족들의 연합세력이기까지 한 그놈들은 충격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으니까.
애초에 이 전장은 원래부터 저들의 것이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외주를 맡기는 것도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