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80화 (480/561)

#48. 안사르 알라 (8)

마리브엔 PLC 제2군구 사령부에 속한 여섯 개의 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한 개 여단은 대공방어를 담당하는 방공여단이었으므로, 실질적인 전투부대는 다섯 개 여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다섯 여단들의 실 전력 합계는 단 한 개의 완편 여단을 근소하게 넘기는 수준이었으나, 그래도 규모가 절반이 채 되지 않는 소년병들을 상대로 다대한 피해를 본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었다.

나는 심기가 조금 불편했다. 이놈들의 범상치 않은 졸전 덕분에 부하들에게 제때 밥을 먹이지 못했을뿐더러, PLC 여단들이 털리면서 이번 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성과의 잠재적 최대치가 깎여나간 탓이었다.

아무리 전투력이 약한 군대라 한들 전과를 확대하거나 점령지에 깃발을 꽂고 점령 상태를 유지하는 용도로는 쓸모가 있다. 머릿수를 채워줄 놈들이 없으면 나와 내 부하들이 시아파 광신도들을 박살내고 다녀도 그때뿐인 불꽃놀이가 되기 쉽다.

내가 직접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마무르가 군구 사령부 전체를 물어뜯을 기세로 날뛰어댔기 때문이었다.

“본 알라의 전사는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마무르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유창한 표준 아랍어로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말이 빨라 통역이 따라가기 버거워할 정도였다.

“정말로 그게 최선이었나?! 믿음으로 싸우는 전사이자 풍전등화의 조국을 지키는 군인들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느냔 말이다! 본 알라의 전사는 너희들의 싸움을 보는 내내 가슴이 절로 옹졸해져 협심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이 관상동맥에 끼는 악성 콜레스테롤 같은 새끼들아! 너희는 불결한 돼지기름보다 무가치한 버러지들이다! 왜냐면 돼지기름엔 오메가 쓰리라도 풍부하니까!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이족보행형 암세포들! 시○핑의 똥꼬를 핥느라 혓바닥이 문드러진 중국산 빨갱이 생체 비데들이 너희들보다 훨씬 더 잘 싸우겠다!”

욕을 먹는 PLC의 장군들은 ‘이 새끼는 샤히디 그룹 내에서의 지위가 어떻게 되기에 이러나’ 싶은 표정들이었으되, 지은 죄가 워낙 크고 목숨을 구함 받은 입장이기도 하여 폭언이 이어지는 내내 저자세를 유지했다.

마무르가 제풀에 지쳐 씩씩댈 때쯤, PLC 제3산악보병여단의 여단장 알리 아예드가 못내 분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우리는 거의 한 달 동안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알 아브르를 빼앗기기 전에도 호송대가 수시로 습격을 당했고, 사우디는 각 부대들의 전투지경선 사이를 유기적으로 채워주던 용병들을 예고도 없이 자기네 산악지대로 재배치해버렸지요. 군사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탁상행정으로 명령을 내린 겁니다. 여기에 항공지원까지 확 줄여버리니 병사들의 사기가 남아날 리가 있겠습니까? 알라의 검이 살아 돌아와도 사기를 유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알리 아예드 준장의 말에선 물주인 사우디를 향한 불만이 묻어났다. ‘군사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는 필시 사우디의 국왕 대행 빈 살만 왕세자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충분한 사전협의도 없이 병력을 뺐다면 PLC 지휘관들 입장에선 불만을 품을 법도 했다. 거기에 보급선이 단절되기까지 했으니, 남은 보급물자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를 떠나, 원래부터 낮던 사기가 바닥을 뚫고 지저로 처박히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사우디-PLC 연합군이 그간 안사르 알라를 상대로 어떻게든 버텨온 힘은 하늘에서는 공군이었고 육상에서는 용병들이었다.

외국인으로 구성된 용병들은 보상이 확실한 싸움에 한해서는 우수한 전투력을 발휘했다.

과거의 사우디는 용병 운용에 있어서 하이-로우 믹스(High-Low Mix) 전략을 채택하여, 몸값이 비싼 정예 용병들에겐 전선의 소방수 역할을, 몸값이 싼 용병들은 전선유지를 위해 갈아 넣는 고기방패 역할을 맡겨왔다. 후자엔 수입산 소년병들이 포함되었다.

사실 이런 전략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돈이 넘쳐나서 돈으로 해결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용병들의 전반적인 몸값이 급상승했고, 사우디의 재정은 반대로 악화되어, 과거의 운용방식 그대로 유지 가능한 용병의 규모가 감소했다.

고로 유효한 용병 전력을 본토와 성지 방어로 돌리겠다는 사우디 왕세자의 결정은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것이었다. 당장 국내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언제 왕정이 전복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니까.

이는 전장의 판세를 뒤집을 힘을 가진 정예 근위여단들을 내보내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았다. 군사를 아느냐 모르느냐를 떠나, PLC 공화국군 지휘부와는 우선순위 자체가 다른 것이다.

말하자면, 마지막 희망인 샤히디가 성과를 낼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비겁한 변명이다! 어디 그 불결한 입에 알라의 검을 올리는가!”

마무르는 다시금 입으로 불을 토해냈다.

알라의 검은 기본적으로 이슬람사(史) 최고의 명장인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를 뜻하는 것이었지만, 요즘은 샤히디를 이렇게 부르는 자들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였다.

즉, 알리 아예드 준장은 “우리 처지였으면 너희도 별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은근히 돌려서 꺼낸 셈이었다.

“하여간 선천적으로 열등한 트롤들은 답이 없어요. 차라리 남조선 사이코패스 즐겜충들이 더 낫다. 아군의 트롤링을 이겨내고 싸움을 하드 캐리하는 건 나나 싸장님처럼 알라의 선택을 받은 천재들의 숙명입니다.”

회의의 탈을 쓴 성토의 장을 파한 후, 나와 따로 마주한 마무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는 소리였다. 뜻 모를 단어들이 섞여있었으나 나는 대충 맥락으로 짐작하고 넘어갔다.

“아 참. 우리 빙빙이가 싸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가족들과의 사이가 과거보다 더 좋아졌다고 한다. 일찌감치 전했어야 하는 인사인데 싸장님이 너무 천사 같아서 잊고 있었어요.”

“빙빙이? 그게 누구요?”

“그 별명은 내 어여쁜 네 번째 아내 양쉐빙을 뜻합니다.”

“……별명이 왜 그 모양이오?”

“왜요? 귀엽지 않습니까? 시○핑이 핑핑이니까 양쉐빙은 빙빙이가 맞아요. 본인도 마음에 들어 하였다.”

양쉐빙의 가족들은 얼마 전 국안부의 거짓 대자들과 내 조직 국제사업부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서 탈출했다. 이는 샤히디 그룹의 선전방송 「자유 투르키스탄의 소리」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한 조치였다.

거짓 대자들이 여기에 협력한 건, 양쉐빙의 가족들을 미끼로 삼아 양쉐빙 본인과 샤히디 그룹, 그리고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ETIM)의 독립운동가들을 낚아보겠다는 구실을 대었기 때문이다. 거짓 대자들은 같은 내용의 보고를 올렸고, 국안부를 직접 틀어쥔 중국 주석은 무슨 수를 써도 좋으니 빨리 성과를 가져오라고 채찍질을 해댔다.

‘아직은 안 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샤히디 그룹은 중앙아시아 지역, 그중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하여 정식으로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 당을 계승·흡수할 예정이다. 그래서 샤히디 그룹 같은 애매한 이름을 대외적으로 고집하고 있는 것이고.

간신히 군사적 소강상태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알림 샤히디가 들어온다고 하면 중국 국가주석은 발작을 일으킬 터였다.

바로 그때가 샤히디의 정적이 될 이슬람 꼴통 독립운동가들을 팔아넘기기에 적절한 시기다. 아프간 주둔 중국군 부대들에게 몇 번 패배를 선사해주고, 중국 본토에서도 가벼운 테러들을 터트려주면 원로 독립운동가들의 값을 최고로 비싸게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거짓 대자들은 국가주석의 스트레스성 탈모 진행도에 비례하는 불가침의 권위를 갖게 되겠지.

“가족들과 사이가 좋아졌다니 다행이군. 당분간 양쉐빙과의 사이에 불화가 없도록 주의해서 관리하시오. 그 여자를 내세운 선전방송은 이상할 정도로 인기가 좋으니까.”

양쉐빙의 가족들은 갓 중국을 벗어날 때만 하더라도 양쉐빙에게 강한 애증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피붙이에 대한 애정과 매국노를 향한 증오를.

그러나 요즘 세대의 표현을 빌려 ‘금융치료’를 좀 해주자 증오는 사라지고 애정만이 남게 되었다. 금이 곧 복으로 통하는 문화와 중국 공산당이 망쳐놓은 민도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 변화였다.

“하아…….”

마무르는 손가락 두 개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더니, 본인 스스로를 가리키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싸장님. 내 얼굴을 보고 말씀하십시오. 이 얼굴이 과연 가정불화 따위가 생길 만큼 부족한 생김새인가를.”

“…….”

“싸장님 결혼 해봤어요? 안 해봤으면 말을 마세요. 이 마무르는 네 번이나 해본 숙련자이자 완성된 싸나이다. 숙련된 조교가 말하건대 가정불화는 잘생김이 부족한 자들의 문제입니다. 싸장님은 잘생겼지만 경험이 없어서 모르는 것. 그러니 어서 결혼하여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십시오. 이 마무르는 언제나 친애하는 싸장님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싸장님이 결심하기만 하면 내 여동생은 무료로 제공된다.”

언제나와 같은 마무르였지만, 불화가 없다면 그걸로 됐다.

양쉐빙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잠시 류린페이를 떠올리게 했다.

‘뭐, 부하들이 알아서 잘 다루고 있겠지.’

거짓 대자들이 국안부 내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지금, 인질로서의 린페이에겐 예전만큼의 가치가 남아있지 않았다. 현재의 린페이는 가오닝후이가 공산귀족의 권력으로 언제든 빼앗아갈 수 있는 중국 내 수익사업들의 신용 담보물 정도에 불과하다.

가오닝후이는 린페이에 대한 내 애정이 예전 같지는 못하다고 느끼고 있겠지. 그러나 해외에 애첩을 두고 일 년에 몇 번 정도 만나는 생활은 공산귀족들과 공산자본가들 사이에선 아주 흔하고 일반적인 것이었다.

이는 또한 가족을 해외로 도피시켜놓은 기러기 관료(뤄관/裸官)들의 보편적인 생활양상이기도 하다. 벗을 라(裸) 자를 쓰는 건 본인이 헐벗어가면서 해외의 가족들을 부양한다는 의미이자, 언제든지 옷을 벗어던지고 몸만 탈출할 준비가 되어있는 부패관료라는 이중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국안부의 거짓 대자들은 실상을 알면 중공 내 118만 기러기 관료들이 부러워해 마지않을 만큼 성공적인 기러기 관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거짓 대자들의 충성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바탕이다.

“선전방송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싸장님은 왜 여자를 내세워서 재판을 하고 참수형을 집행했습니까? 여자 손에 죽기 싫으면 항복하라고 겁을 주기 위함입니까?”

“일단은 그것도 있고, 서구 언론들에게 물려줄 사탕이 필요하기도 했지.”

이슬람권의 감성으로는 참수형과 투석형이야말로 “말씀으로 허락된”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사형이다. 그러나 서구적인 감성으로 보면 지나치게 야만적인 형벌이었다.

영상을 활용한 선전 과정에서 후자의 부정적인 인상을 상쇄하려면 서구 언론들이 달리 눈을 돌릴 만한 구석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샤히디 그룹이 장교 겸 재판관으로 여성을 기용할 만큼의 성평등 의식과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서구 언론들에게 물려주기 적합한 떡밥이었다.

하물며 처형당하는 쪽이 원죄가 많은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기까지 하니, 서구 언론들은 처형방식의 야만성에 기꺼이 눈 감는 쪽을 택할 것이었다.

“왜, 불쾌하시오?”

내가 묻자, 마무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쾌해요? 내가 왜요? 설마하니 이 마무르가 「여자에게 죽으면 지옥에 간다」 운운하는 풍문에 휩쓸릴 만큼 무지하고 어리석어 보입니까? 그것은 그저 성공적인 선전선동의 결과물일 뿐이며, 신성한 책에는 그런 말씀이 적혀있지 않아요.”

이어지는 건 짧은 한숨과 혼잣말 같은 긴 탄식이었다.

“쿠르드족이 무식한 다에쉬 놈들이나 겁먹으라고 퍼트린 소문에 너무나도 많은 신앙의 형제자매들이 오염되었다. 이게 좋을 리 없어! 왜 그런 형제자매들은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경전을 적절히 읽고 암기하지 않는 거지? 내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교화를 한다고 해도, 우리 이슬람 세계는 아이들에게 어떤 곳이 되어버리겠나?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아, 이슬람 세계의 앞날은 어둡다!”

우습게도, 나는 마무르의 마지막 말에서 섀빙턴의 최후를 떠올렸다. 그놈은 인류의 미래가 어둡다고 했었지.

이렇게나 미쳐있고 돌아버린 놈들조차 자기들 스스로가 정의롭다고 믿는다. “내가 옳다”는 믿음은 아마도 현생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정신질환일 것이다.

그런 정신질환은 개인의 생존성을 저해한다. 불필요한 합리화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행동 따위에 자원과 기회비용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최적화된 생존성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살고 싶다. 그냥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수명이 한계에 달하는 날까지 누구도 감히 내 안위를 위협하지 못할 불가침의 삶을 누리고 싶다.

“항의하는 놈들이 많은 모양이군.”

내 말에 마무르는 입술을 슬쩍 구부렸다.

“비율로는 낮으나 절대적인 숫자 자체는 제법 많긴 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놈들의 수준은 남조선의 유교 탈레반들과 비슷하다. 이 마무르가 키보드 배틀로 간단히 격파 가능한 쉬운 상대들이에요.”

“……유교 탈레반?”

“그래요. 경전이라곤 읽어보지도 않고서 무자헤딘을 자처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한심한 학생들처럼,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며 명절날마다 유교 경전에도 없는 격식을 따지는 한국의 꼰대 늙은이들. 딱 그들과 수준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감사하십시오. 싸장님의 이해를 돕고자 문화적으로 친숙한 비유를 사용하는 이 마무르의 친절함에.”

“……한국 문화를 제법 잘 이해하고 계시는구려.”

“물론입니다! 나는야 언어의 천재! 언어엔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어요. 한국을 알라께 바쳐진 나라로 만들어 가엾은 한남 한녀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이 마무르에게 현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나를 칭찬하도록 하십시오. 싸장님처럼 우월한 자의 칭찬은 마무르를 춤추게 해요.”

미친놈을 대충 칭찬해준 나는 앞으로도 종교적 민사작전 쪽을 잘 보조해달라는 말로 식전의 대화를 일단락 지었다.

싸움이 지나간 마리브 곳곳엔 눈 뜬 채로 죽은 소년병들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건조한 사막은 낮이든 밤이든 시신이 쉬이 부패하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래서인지 PLC는 시체를 치우는 일에 급하지 않았다. 눈깔병신인 나로서는 어디에 자리 잡고 식사를 하든 시체가 눈에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솔직히 말해, 어린 것들이 무더기로 죽어있는 풍경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내 오랜 악몽에 새겨져있는 보육원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까닭.

수연 녀석이 신경을 써서 추진해준 식단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에서 먹는 식사는 영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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