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안사르 알라 (7)
우리가 점령한 교통과 방어의 요지 알 아브르 지구로부터 안사르 알라를 상대하는 최전선인 마리브까지는 어떠한 지형장벽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야 하는 드넓은 사막이 펼쳐져있을 따름.
나는 본디 알 아브르에서 9시간 정도 휴식과 재정비를 거친 후, 밤이 새벽으로 넘어가는 어둠 속에서 공격을 재개할 계획이었다. 산악지형과 사구(沙丘)를 끼고 배치되어있는 방공망을 먼저 싹 날려버리면 적들은 퇴각을 결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알 카에다의 참극을 목격한 안사르 알라가 방어를 굳히는 대신 마리브에 대한 강력한 공세를 걸어오면서 계획이 조금 틀어졌다. 나와 내 부하들은 식사 준비를 하다 말고 긴급출격에 나서야만 했다.
비록 식사를 방해받긴 했지만, 나는 이 시점에서 공세를 결정한 안사르 알라 사령관의 과감함에 후한 점수를 매겨주었다.
‘알 카에다의 붕괴에 충격을 받아 움츠러들 줄 알았더니.’
이 세상에 끝없이 진격만을 거듭할 수 있는 군대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안사르 알라 사령관은 우리가 알 아브르에서 멈춘 것을 두고 작전능력의 한계에 봉착했다고 판단했을 터였다. 알 카에다의 주요 거점들을 순식간에 밀어버린 전투력은 충격적이지만, 그토록 대단한 전투력을 발휘한 만큼 다시 작전을 펼칠 힘을 회복하기까지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그 시간이 지나기 전에 마리브를 함락시키면 사우디-PLC 연합군은 안사르 알라의 영역 동쪽에서 치고 들어올 모든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면 알림 샤히디의 전설적인 전사들이라도 우선 마리브부터 탈환하고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매번 작전을 펼칠 때마다 수백 킬로미터의 사막을 횡단하거나, 알 카에다와 남부과도연맹이 끼어있는 남쪽 산악지대로 멀리멀리 우회해서 들어와야 할 테니까.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안사르 알라가 마리브를 방어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 따윈 없다.
따라서 안사르 알라의 사령관은 극단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와우. 저 새끼들, 도시를 아예 지워버릴 작정인가 봅니다. 과감하기도 해라.」
알 아브르가 봉쇄당한 탓에 상당 기간 차량이 오가지 않아, 생명줄 같은 한 줄기 도로마저 모래바람이 몰고 온 사토에 묻혀버린 사막.
그 사막의 하늘을 고속으로 가로지른 우리가 마리브에서 마주한 것은, 시가전이 한창인 도시의 야경과 그 너머에서 댐 폭파를 준비하는 안사르 알라의 전투공병들이었다.
두꺼운 사력댐의 뿌리 부근엔 탄도탄의 착탄 흔적들이 찍혀있었다. 탄도탄을 이용한 파괴에 실패하자 확실한 처리를 위하여 공병을 투입한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모래사막은 시간당 고작 일이십 밀리미터의 비만 내려도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하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댐을 터트리면 도시고 나발이고 싹 지워버리는 게 가능했다. 예멘 중부 사막지대의 동서를 잇는 단 한 줄기의 도로 역시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쓸려나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리겠지.
그러면 이후 안사르 알라는 동쪽으로부터의 대규모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적이 상대일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민간인들의 희생을 감수한다는 전제하에 이보다 효과적인 방어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뻐벙-! 따다다다닷-!」
양측의 지상 방공세력들은 날아다니는 모든 것들을 격추시킬 기세로 화력을 퍼부어댔다. 무수히 많은 예광탄 줄기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솟구쳐 점점이 까마득해지는 가운데, 항공기의 열원을 포착한 적외선 추적 지대공 미사일들이 때때로 로켓 모터의 섬광과 길게 이어지는 연기 줄기들을 밤하늘에 더했다.
개중엔 간혹 뚜렷한 비행운을 남길 만큼 체급이 큰 미사일이 끼어들기도 했다. 안사르 알라 입장에선 쉽게 쓰기 어려운 고급 무기들. 이는 안사르 알라가 이번 공세에 아주 큰 무게를 두고 있다는 방증이자, 알림 샤히디의 전사들이 선보인 전투력에 그만큼 충격을 받고 자원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는 증거였다.
우리를 겨냥한 대공사격은 마리브 시가지 쪽에서도 무차별로 날아들었다. 경태가 넌더리나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형님! 사우디랑 PLC 애들이 도통 피아식별을 못합니다!」
우리의 기체엔 사우디가 제공한 IFF(피아식별) 모듈이 달려있었다. 그러나 사우디-PLC 연합군은 눈에 보이는 족족 닥치는 대로 쏘아대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약간의 짜증을 담아 지시했다.
“메리옘! 통역해라! 선망에 대기 중인 전 사우디-PLC 통사에게 통보! 알림 샤히디의 전사들이 왔다! 현시각부로 모든 형태의 대공사격을 중단할 것! 이 시간 이후로 대공사격을 하는 놈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겠다! 살아있는 CAS(근접항공지원) 기체들이 있다면 모두 북쪽 공역으로 이탈할 것! 하늘은 우리가 청소한다!”
연합군은 사우디 육군이든 PLC 정규군이든 위에서 아래까지 다 무능한 집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로 교신을 시도했다간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위험성이 있었다.
우리는 우선 댐 폭파를 기도하는 적 공병들부터 신속하게 걷어냈다.
기체의 속도가 실린 중기관총 소사는 방호력이 좋은 각성능력자들이라도 쉽사리 퍽퍽 관통해댔다. 탄자의 중량감에 힘입어 피격부위를 거의 터트리다시피 하는 포악스러운 관통이었다.
완만한 경사의 사력댐 위로 사람이 터진 핏자국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비행으로 내려다보기엔 마치 모기를 쳐 죽인 것처럼 보이는 자국들이.
이 와중에 중간중간 날아드는 미사일들을 요격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다못해 미사일의 진행경로에 얄팍한 염동장막만 전개해도 팍 찌그러져 추락하거나 폭발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혼란스러운 지상은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을 하나하나 포착할 여유가 없었다.
그 외에 넓게 흩뿌린 발화의 열로 교란하거나, 환시장막으로 전파를 흩거나 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방법도 있었다.
무엇보다…….
「드드드등-!」
어지간한 파편탄두의 폭발쯤은 그냥 동체로 받아내도 경미한 피해로 그쳤다.
영국과 원탁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시점에서, 나는 대마법사의 능력을 전보다 더 대범하게 사용해도 무방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부하들이 탑승한 기체에 실험적으로 염동방어술식을 부여한 것은 그러한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말하자면, 제트 바이크 기체를 통째로 아티팩트화한 것이다.
내 부족한 아티팩트 제조능력은 마도서 봉쇄수도원이 보충해주었고, 제조에 필요한 영혼은 스텔라 포르투나가 수용한 중증 페스트 환자들 중 더는 살아날 가망이 없어진 자들을 안락사시켜서 조달했다.
부여한 마법의 핵심 코드는 미국-멕시코 국경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거대 티-호그, 「엘 세르도타도」가 선보였던 점탄성 염동방어를 개량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 연구가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고, 달리 연구해야 코드들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연구 수준으로도 기체의 바이탈 파트에 한해 균질압연강판 기준 약 40밀리미터 안팎의 방어력을 더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이 정도면 웬만한 폭발압력-파편식 탄두로는 파일럿을 다치게 하거나 추진계통을 망가뜨리지 못한다. 제트 바이크는 원래부터 추진계통이 단순하고 집중방호가 적용되어있는 탈것인 만큼, 방어력이 보강된 지금은 날아다니는 장갑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여기에 그저 장점만이 있지는 않았다.
경태는 자신이 체감하는 단점을 주간(晝間)의 경험과 비교하여 말했다.
「음, 이거……! 방어를 켤 때마다 기체가 확연하게 둔해지는군요! 협곡에서보다 더 확실하게 체감이 됩니다! 거기는, 엇, 차, 차, 차! 이렇게 속도를 낼 환경이 아니었으니!」
점탄성 염동방어 레이어(Layer)의 활성화는 필연적인 항력(抗力) 증가를 불러왔다. 방어 결계가 어쩔 수 없이 기체 밖으로 노출되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속으로 기동하는 도중에 염동방어를 활성화할 경우 그 충격만으로 기체가 분해될 수 있을 만큼 강한 항력이었다.
나름 주의해서 술식을 설계했음에도 미처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다. 현재로서는 시속 240킬로미터 이하의 속도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이 가능했다. 술식의 점진적인 활성화는 필수적인 안전조치였고.
감각이 좋은 부하들은 이걸 에어 브레이크(Air brake) 대용으로 쓰며 상궤를 벗어난 곡예기동을 구사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단점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또 하나의 단점은 마력 소모였다.
마소나 마력을 탐지하는 나침반처럼 작고 소소한 아티팩트라면야 영혼을 뜯어 접붙인 회로에 자연적으로 흘러들어오는 마소만으로 작동이 가능하나, 균질압연강판 40밀리미터의 방어력은 그런 식으로는 결코 확보가 불가능했다.
결국엔 방어력에 비례하여 사용자의 마력을 퍼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쓸 만은 합니다! 상황에 따라 켜고 끄는 숙련도가 올라가고 나면! 지금보다도 훨씬 대범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네요!」
일본이 내게 갈겨댔던 규격 외의 순수 운동에너지 탄두 극초음속 미사일과 달리, 안사르 알라가 보유한 대공미사일들은 대부분 파편식 탄두를 쓰고 있다. 탄도탄 요격용이 아닌 이상 대공 미사일은 원래 파편식이 주류였다.
파편의 질량은 가볍게는 1~2그램에서 무겁게는 8~9그램 가량. 탄도탄 파괴용 파편탄두의 경우엔 예외적으로 삼사십 그램 이상의 중량 파편을 흩뿌린다.
요컨대, 보통의 파편들은 대개 비각성자용 소화기의 위력을 능가하지 않는다. 탄두가 폭발하는 순간 발생하는 압력 폭풍은 별개로 쳐야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대공 미사일보다는 차라리 대공포나 각성능력자 보병들의 대공화망사격 따위가 더 위협적인 측면이 있었다.
‘큰 체급의 미사일들은 어차피 날아올 방향이 뻔하지.’
안사르 알라는 알 카에다가 망치를 맞은 유리처럼 깨져나가는 것을 보고서 급하게 공세를 결정했다. 그 말인즉슨, 사이즈가 큰 대공미사일 포대들의 배치를 변경하는 데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한계가 뚜렷했으리라는 뜻이었다.
도로와 지형을 보면 미사일 포대들의 예상 배치범위가 나온다. 체급에 비례하는 미사일의 사거리를 감안할 때, 예상 배치범위로부터 이 전장으로 들어오는 비행경로는 극히 제한적인 진입각을 지닐 수밖에.
내 미사일 감지 및 요격을 용이하게 해주는 조건들이었다.
「콰쾅! 쿠르르릉!」
수 킬로미터 바깥에서 주유소가 폭발하며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압축된 수증기가 백색 파문이 되어 훅 번져나간다. 하늘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안사르 알라 측이 저유고를 터트려 연막차장을 시도하는 모양이었다.
뭉게뭉게 올라가는 검은 연기를 배경으로, 마리브 시가지에선 적아가 마구 뒤섞인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시를 수몰시킬 작정으로 공세를 걸어놓고 시가지에 병력을 투입하는 게 언뜻 미친 짓처럼 보이지만, 안사르 알라의 사령관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냉정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안사르 알라 측이 일선에 투입한 병력은 8할 이상이 비각성자로 구성된 소년병들이었다.
예외라고는 갑작스럽게 사나운 물살이 밀려와도 자기 몸 하나 빼낼 재주가 있는 염동능력자 내지 개인용 추진 장비를 보유한 발화능력자 장교와 고급 부사관들, 근접항공지원을 담당한 제트 바이크 기수들, 그리고 독전대 겸 전선의 소방수 역할을 수행하는 또 다른 정예 각성능력자 집단이 다였다.
한마디로, 안사르 알라는 근 1천에 달하는 소년병들을 산 제물로 바쳐 승리를 얻을 요량이었다.
제물을 받는 건 물론 전능하신 알라다. 시아파 꼴통들의 입장에서, 이 싸움은 수니파 이단자들로부터 시아파의 강역을 수호하기 위한 성전이지 않은가. 죽는 즉시 천국으로 직행할 소년들에게 광신도들이 미안함을 느낄 이유 따윈 없었다.
근접항공지원에 돌입한 우리는 곳곳에서 우군이 패퇴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기갑차량도 거의 없는 비각성자 소년병 집단에게, 각성능력자들이 주력이며 숫자도 더 많고 장비와 화력마저 우월한 방어군이 밀려나는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아이고……. 저걸 또 밀리고 앉았네. 사우디-PLC 연합군의 전투력은 정말 전설이다…….」
각성능력자가 없었던 과거에도, 사우디 육군은 가진 거라곤 총밖에 없는 알보병들을 상대로 기갑부대가 연달아 깨져나가던 약군이었다. 보병과 기갑의 상호협동 같은 기본 중의 기본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평소 수도와 왕궁, 그리고 주요 유전지대 등지를 지키는 최정예 여단들은 천하의 미군조차 그 전투력에 감탄하며 장비와 편제를 벤치마킹한 바 있는 우수한 무력집단들이었으니.
그러나 그런 부대들은 정국이 불안한 지금 사우디 왕세자가 여간해선 전선으로 내보내지 않을 핵심전력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대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수는, 한 줌의 소총병들에게 기겁한 전차병들이 최신예 미제 전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경이로운 오합지졸들의 모임에 불과했다.
이런 놈들이 초능력을 얻었다고 해서 강한 군대로 변모할 리가 있나.
우리가 오기 전의 예멘 전역(戰役)은 옛 일본군의 금과옥조, 「전쟁은 의지와 의지의 대결이다.」가 진리처럼 통하는 전장이었다. 대전차총검술 같은 미친 짓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이 전장을 보았다면 옛 일제의 장성들 태반이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겠지.
나는 전장의 변화를 포착하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적 지휘관들과 독전대가 빠져나간다. 사구들을 따라 화망이 깔려있으니 멀리 쫓지는 마라.”
댐 폭파가 물 건너가고 제공권마저 빼앗기자, 안사르 알라는 퇴각을 결심했다. 소년병들을 미끼로 남겨둔 채 서쪽으로 철퇴하는 기동은 실로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남겨진 소년병들은 자신들이 잘린 꼬리가 된 줄도 모르는 채로 교전을 이어갔다.
뚝뚝 떨어지는 안사르 알라의 이란제 배회탄약들이 어린 소년병들에게 화력지원을 제공하는 가운데, 건장한 성인들로 이루어진 연합군은 지금도 속절없이 밀려나고만 있었다.
“……연합군에게는 그냥 도시를 비우라고 통보하도록! 차라리 내줬다가 되찾는 쪽이 더 빠르고 피해도 적게 생겼군.”
이렇게 말을 전했지만, 연합군은 도시 방어를 포기한 채 물러나는 움직임조차 난잡하고 굼뜨기 그지없었다. 뒤에 총질하는 적을 두고서 질서정연하게 물러나는 철퇴행동은 훈련도가 높은 군대에게나 가능한 일인 까닭.
애초에 댐이 무너질 때까지 연합군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것도 안사르 알라측 소년병들의 역할이었다.
고로 싸움은 알 아브르 방면으로부터 헬기 지원을 받아 저공비행으로 날아온 보병전력이 마리브 동쪽 4킬로미터 지점에 강습하여 지원을 개시하고 나서야 막을 내렸다.
샤히디 그룹은 모두 내 조직의 전투훈련을 이수했고, 그런 샤히디 그룹이 전투기술을 가르치고 이슬람 성전연합이 정훈교육을 분담한 지하디스트들은 일천한 실전경험에도 불구하고 사우디-PLC 연합군보다 질적으로 훨씬 우수한 전력이었다.
나는 메리옘의 입을 통해 전사들을 독려하는 마무르의 외침을 전해 들었다.
「“무상의 천국은 없어요! 돌격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