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75화 (475/561)

#48. 안사르 알라 (3)

내가 소코트라 섬 북부 해역을 지날 무렵, 아라비아 해(海) 서쪽의 바다에선 거대한 열대성 저기압(사이클론)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다행히 부하들과 내가 합류하기로 한 지점은 사이클론의 서쪽 반원에 속했고, 사이클론이 오만 앞바다를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으므로 예기치 못한 비전투 손실 따윈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가 예멘 앞바다, 즉 아덴만에 배치한 무장여객선들과 민수용 무장선박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민간 수렵업체들이 임대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번 일을 위해 수고롭게 새로운 유령회사를 세울 필요는 없었다.

석유시대의 종말을 목전에 둔 사우디아라비아는 일찍부터 자국 수렵기업 육성에 투자를 해왔는데, 국가 주도의 기업 육성이 으레 그렇듯 성공사례보다는 실패사례가 훨씬 더 많았다. 사우디 같은 경우는 자국 출신 헌터들이 수렵업계의 고강도 노동에 적응하기 힘들어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방전」이나 「발화」를 구사할 줄 아는 다중각성능력자가 아닌 이상, 헌터에게 주어지는 일감은 매양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며 몸으로 뛰어야만 하는 것들 투성이니까.

우리는 그렇게 실패한 기업들 중 가장 우수한 자산을 보유한 곳들을 골라 넘겨받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사우디 왕실 입장에선 부실자산을 새롭게 투자할 기회가 찾아온 셈.

“위대하신 분이시여. 강녕하신 모습을 뵈오니 저희에겐 더없는 기쁨이옵니다.”

낯선 지역에서 활동을 해야 할 때 가장 장벽이 되는 건 역시 언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 아랍어와 표준 아랍어를 구사할 줄 아는 메리옘과 메리옘의 교육을 받은 그룹 구성원들은 이번 출장에 빼놓을 수 없는 인력들이었다.

물론 이번 출장엔 마무르 패거리의 협력도 받기로 했으나, 그놈들에게만 의지하다간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특히 마무르 그놈은 아무런 악의 없이 예상을 벗어난 사태를 촉발할 혼돈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한다.

“일어나라.”

알라에게 기도하는 자세로 이마를 대고 엎드려있던 메리옘 그룹은, 내 말을 듣고서 공경 가득한 동작으로 일어나 신색을 바르게 했다. 제법 오랜만의 재회인지라, 나를 숭배하는 광신도들은 감격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였다.

‘보통 땐 평범하게 행동하라고 했더니만……’

감격에 넘쳐 한 행동들이니 여기서 바로 꾸짖기는 곤란하다. 나중에 따로 다시 당부해두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다른 부하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조직문화의 건전성을 신경 쓰는 입장에서는 광신도들을 다른 부하들과 같은 자리에 두기가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무장여객선의 갑판을 적시는 중이었지만, 염동장막을 펼칠 줄 아는 부하들에겐 우산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 없는 위구르인들의 보송보송한 머리들을 쓰다듬어주며 경태에게 물었다.

“습격이 있었나? 파편흔이 조금 보인다만.”

경태는 느슨한 열중쉬어 자세로 대답했다.

“예, 뭐. 대략 한 시간쯤 됐습니다. 본격적인 습격까지는 아니고 로켓과 박격포 공격이 있었는데, 전부 요격하긴 했습니다만 파편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죠. 그래도 부상자나 손상된 장비는 전무합니다.”

“그거 다행이군. 날씨가 이래서 레이저의 효과가 떨어졌을 텐데.”

“유대나치 애들이 무기 하나는 기깔나게 만들잖습니까? 제게도 조금은 뜻밖이었습니다.”

이번 출장에서 해상 지휘소 역할을 해줄 이 배, 「알 왈리드 1세」엔 이스라엘제(製) 150kw급 레이저 요격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고정밀 레이저 병기 아이언 빔(Iron Beam)의 선박탑재용 출력향상 모델이었다.

아이언 빔은 개발 직후부터 중동지역 내 특정 국가들을 상대로 판촉을 벌여왔던 물건이다. 비록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종교적인 문제로 상호 미수교 상태이기는 하나, 미국의 우방으로서, 또 피차 이란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이런저런 협력을 이어온 바 있다.

특히나 사우디의 현 왕세자가 국왕 업무를 대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양국 관계가 급격하게 개선되어왔다. 백악관 미치광이가 ‘굴욕적이었다’고 표현했던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 사건 당시엔 이스라엘이 비밀스러운 용역을 제공해주었을 정도로.

그런즉 이스라엘이 사우디에게 첨단 방어무기를 팔아주는 정도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내 생각의 흐름을 짐작했는지 수연이 조용히 말했다.

“이미 샤히디의 이름으로 사우디군으로부터 정비 매뉴얼과 제어 시스템 인티(통합) 관련 기밀자료들을 넘겨받았습니다. 실물 장비는 예멘에서의 일이 끝나는 대로 전손처리를 하고 본사로 이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다.”

이스라엘은 지금 각성능력자 전력을 확충한 하마스를 상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외국에 수출한 레이저 요격 시스템이 사라지는 것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을 것이다.

선단이 거점으로 삼을 항구는 둘이었다. 하나는 미나 알 다바(ميناء الضبة)라는 이름의 작은 석유 수출용 항만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동쪽으로 15킬로미터쯤 떨어져있는 아쉬 쉬흐르(ٱلشِّحْر)라는 이름의 어항(漁港)이었다.

이 두 곳은 대통령 지도력 위원회 PLC의 영역에 간신히 들어있는 위태로운 거점들이었다.

사실 해안을 따라 남서쪽으로 40킬로미터만 가면 거점으로 삼기에 더없이 훌륭한 무칼라라는 이름의 항구도시가 존재하지만, 아덴에 버금가는 이곳은 아랍에미리트의 후원을 받는 남부과도연합의 세력권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서 상석에 착석한 나는 정면의 지도를 보며 혀를 찼다.

‘이 와중에도 힘을 합치지 못하다니. 머저리 같은 새끼들.’

PLC든 남부과도연합이든 안사르 알라의 맹공 앞에 위태로운 처지이긴 마찬가지다. 생존을 위해서는 안사르 알라가 한 방면에 전력을 집중하지 못하게끔 서로를 보조해줘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세력의 조종자인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가는 전황 속에서도 도무지 연합전선을 구축하질 못했다. 둘 다 욕심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남쪽 해협의 통제권을 혼자 다 처먹으려 든다고 이를 갈고 있었다.

핵심 항구인 아덴만 하더라도 한때는 PLC와 남부과도연합이 함께 통제했었지만, 지금은 과도연합이 나약한 PLC를 축출해버리고 단독으로 지배권을 행사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아랍에미리트는 국제법상 예멘의 영토인 소코트라 섬을 무단으로 점령하고 군사기지를 건설하기까지 했다. 섬의 입지를 고려하면 아덴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PLC는 과도연합의 매국노들이 영토를 팔아먹었다고 맹렬하게 비난했으나, 과도연합 측은 약자들의 비난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차피 PLC가 통치력을 회복해도 사우디에 나라를 팔아먹기는 마찬가지일 게 아닌가.

사우디 입장에선 페르시아 만과 아덴 만 양쪽에 걸쳐 아랍에미리트에게 목줄을 잡히는 꼴이니 당연히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한편 아랍에미리트는 PLC와 사우디가 가진 바 실력에 비해 너무 많은 지분을 요구한다고 불만이었다. 중요한 싸움마다 판판이 깨지기만 한 놈들이 욕심만 많다는 것이다.

침몰하는 배 하나에 올라탄 두 욕심쟁이들이 자기를 돌아볼 생각은 않고 서로의 흠결만 물어뜯기 바쁜 꼴이다. 공동전선 구축 따윈 망상에 불과했다.

“어쩌겠습니까. 그나마 서로에 대한 공격 중단엔 합의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죠.”

경태는 “자존심 강한 병신들의 대결” 어쩌고 하며 지도에 레이저 포인터로 광점을 찍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샤히디 그룹이 자기네가 아니라 사우디의 용병으로 참전했다는 사실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사전 통보를 전제로 한 지상작전권과 공중회랑 이용권을 받아냈으니 당장의 활동엔 지장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경태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디까지나 사우디-PLC 연합군이 아닌, 샤히디 그룹에게만 한정된 좀생이스러운 허가이긴 하지만요.”

“결국 공중작전권은 얻지 못한 건가?”

“공격을 받을 경우 방어적인 대응을 하는 것까진 뭐라고 안 하겠다더라고요. 다만 그런 경우에도 자기네 영역과 그 인접지대에서의 공습은 허가하지 않겠답니다. 오폭의 우려가 너무 크다나요?”

지금 예멘 내전에 참가하고 있는 세력들은 어느 세력이든 지상과 공중 간의 피아식별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일선에서 소모품처럼 갈려나가는 보병들은 가진 거라곤 정말 총 하나가 전부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사정이 이러한지라, 하디 대통령 시절의 정부군은 오폭 한 방에 270명의 병력을 갈아먹은 적도 있다.

그러니 거듭되는 오폭에 노이로제가 생겼어도 이상할 건 없다. 죽어나가는 게 대부분 값싼 소모품들이라 쳐도, 그 소모품들의 사기가 전반적으로 꺾이거나 전선에 예상치 못한 구멍이 뚫리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더욱이 우리는 새롭게 전장에 가세하는 세력인 만큼, 전장정보를 경험으로 숙지하고 있는 기존의 근접항공지원 조종사들에 비해 오폭을 가할 확률이 높다고 보아야 합당하다.

양쪽이 똑같이 거지꼴을 하고 있으면 황금기의 눈으로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지……. 애새끼들의 비율과 흑인들의 유무로 구분이 가능한가?’

안사르 알라는 아프리카의 군벌들만큼이나 소년병을 많이 쓰기로 악명 높은 집단이다. 일선 전투원의 절반 이상이 18세 미만의 소년병들이며, 12세부터 모병을 빙자한 징병과 납치를 실시하여 서너 달 가량의 지하드 교육을 시키고서 전선에 투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

이에 맞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홍해 맞은편의 수단으로부터 어린 깜둥이들을 현찰박치기로 사다가 전선에 투입해온 지 오래였다. 수니파 이슬람이 최대종교이고 사람 값어치가 저렴한 수단은 소년병을 구하기에 최적인 시장이었다.

같은 수니파인 아랍에미리트와 남부과도연합 또한 수단에서 애들을 사와 무장시켜 보조전력으로 활용하기는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알 카에다가 중심인 안사르 알 샤리아는 수단이 아니라 소말리아의 알 카에다 지부로부터 흑인 소년병들을 수입해서 쓰고 있었다.

본토에서 징병하는가, 아니면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는가에 따라 전체 전력에서 소년병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 폭으로 달라지긴 하지만, 경태의 말마따나 이 전쟁은 자존심 강한 병신들의 대결이 맞았다.

경태가 지도 위의 광점을 미끄러뜨렸다.

“현재 가장 시급한 건 PLC 정부군이 빈 라덴의 사생아들에게 빼앗긴 알 아브르 지구(مديرية العبر)를 탈환하는 겁니다. PLC 제3군구(軍區)로 들어오는…… 그러니까 사우디에서 예멘 중부로 들어오는 유일한 보급로가 막히는 바람에, 중부 내륙의 핵심거점인 마리브와 거기 있는 군구사령부가 통째로 증발할 위기거든요.”

붉게 빛나는 점은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머무르고 있었다. 교차점 부근은 폭격을 하도 처맞아서 땅이 온통 검게 타버린 상태였다.

교차점으로부터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산악지대를 지나 바다를 향해 빠졌다. 나는 그쪽에 시선을 두고 물었다.

“해상으로부터의 보급은?”

“남쪽 도로도 막혔습니다. 아잔(عزان)을 지키던 PLC 제2산악여단이 어젯밤 알 카에다와 그 친구들에게 박살이 나서 해안으로 쭉- 밀려버렸다지 뭡니까. 장비라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전면적인 패주여서 사실상 궤멸이라고 봐야 합니다. 아홉 시간 만에 50km를 달아났으면 뭐…… 더 말할 필요가 없죠.”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

“더 쓸모없는 놈들도 있습니다. 당장 우리가 거점으로 써야 하는 아쉬 쉬흐르만 해도 알 카에다에게 함락당할 위기라서요.”

나는 아쉬 쉬흐르에 있는 부대기호(단대호)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아쉬 쉬흐르에 주둔하는 부대는 PLC 제27기계화보병여단이라고 되어있었다. 경태는 내 심정을 짐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기계화보병여단이지, 상태를 보면 카자흐스탄에서 절찬리에 털리는 중인 러시아 대대전술그룹들이 선녀로 보일 지경입니다. 가진 거라곤 전술차량 네 대와 트럭 다섯 대, 장갑차 한 대가 전부이고, 가용 병력은 겨우 두 개 중대도 못 채우고 있죠.”

경태를 보조하는 부하가 커서를 움직여 단대호를 클릭하자, 이름뿐인 여단의 처참한 현황이 팝업 창으로 떠올랐다. 여단장은 살렘 알 조위라는 놈이었다.

“알 조위 준장은 아쉬 쉬흐르를 포기하고 미나 알 다바 석유항구로 물러나서 방어에 전념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아쉬 쉬흐르는 주민들 중에 알 카에다에게 포섭된 협력자들이 너무 많아 방어가 어렵다고요.”

“네가 와서 살펴본 바는 어떠냐?”

“굳건이가 출장이라도 나왔다 간 것처럼 남자가 안 보이긴 합니다. 사라진 주민들이 실제로 포섭을 당했을지, 아니면 끌려가기 싫어서 숨었을지는 몰라도 불안요소가 있는 건 사실이죠.”

나는 시선을 기우뚱 기울였다.

“굳건이?”

“아, 우리 형님 굳건이 모르시는구나. 일본이 질투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병무청의 마스코트 캐릭터입니다. 징병과 강제동원의 스페셜리스트죠. 자매품으로는 몸이 불편한 대체복무자들에게 최면을 걸어 현역으로 끌고 가는 게 특기인 슈퍼-굳건이가 있습니다. 요즘은 슈퍼-힘찬이로 개명을 했지만요. 높으신 분들의 작명센스란 참.”

“……아무튼 실체가 있는 우려라는 말이로군.”

“예. 주민들이 딱히 알 카에다가 좋아서 협력을 한다기보다, 정부군은 어차피 패주할 테니 앞으로 곱게 목숨을 부지하려면 미리미리 줄을 잘 서놔야 한다…… 정도의 생각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가 승기를 잡을 것 같으면 대부분은 편을 갈아타겠죠. 이건 알 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한 안사르 알 샤리아 산하의 부족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무슨 소린지 알겠다.”

나는 방침을 정했다.

“우선 아침을 먹고 나서 바다에 깔려있는 감시자들부터 걷어내도록 하지. 그다음엔 점심 먹기 전까지 아쉬 쉬흐르 일대를 정리하겠다. 저녁은 알 아브르 교차점을 탈환한 후 먹도록 하자꾸나. 사람 목을 좀 많이 잘라야 할 테니 튼튼한 칼을 한 자루 준비해 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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