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안사르 알라 (1)
예멘으로 떠날 채비를 갖출 즈음, 도쿄 광역권에선 페스트 유행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일일 사망자 수는 아직 두 자리에 머물고 있었으나, 이 발표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단 일본 언론들부터가 의문을 제기했다.
「사망자가 정말로 그것밖에 안 됩니까? 이 자료를 봐주세요! 정부가 자그마치 10만 개에 달하는 시체가방을 주문했다는 내용의 후생노동성 내부문건입니다! 사망자 숫자가 적고 질병의 확산이 잘 통제되고 있다면 어째서 이토록 많은 시체가방들이 필요합니까?! 또 어째서 화장장이라는 화장장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끊이질 않는 겁니까?!」
일본 정부에겐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당시 통계 왜곡과 졸속 대응을 일삼았던 원죄가 있거니와, 성난 고래의 폭격을 맞아 박살 난 대형 병원들은 의료당국의 대응능력을 의심케 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우리는 GHSS 컨소시엄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인도적인 협력을 제공했다. 수연 녀석이 선점해놓았던 항생제 물량은 현 시세의 절반에 불과한-그럼에도 최초 구매가를 기준으로는 수백 퍼센트의 이윤이 남는-값으로 넘겨주었고, 치료가 시급한 중환자들을 스텔라 포르투나의 집중치료병상(ICU)에 받아주기도 했다.
탄자니아에서 평화유지활동을 할 때 한국 정부도 탐을 냈던 최고급 의료설비들과 의료인력들은 지금의 일본 정부로선 거부하지 못할 유혹이었다.
이러한 협력의 대가로, 우리는 대외비로 분류되는 유행양상 데이터와 질병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손에 넣었다. 또한 우리가 받아주는 중환자들은 질병의 진행과 변이를 관찰하기에 좋은 표본들이었다.
일본 정부는 우리와 새로운 비밀을 공유하는 데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일전에 「후나유레」에서 발신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호를 은닉했던 건으로 이미 우리와 한배를 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순 없을지언정 다른 유관단체들보다는 훨씬 나은 접근권한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경태는 스텔라 포르투나에 현장 취재를 요청해온 일본 공산당 기관지의 기자를 홀려 정보선으로 삼기도 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예전에 빅 사이트 통합지원센터에서 총리에게 질문을 했다가 답변을 거부당했던 하루노 스미레라는 기자 말입니다. 애들에게 배경조사를 시켜봤더니, 글쎄 현직 공산당 정책위원장의 외손녀였지 뭡니까. 괜히 그 젊은 나이에 아카하타(赤旗/붉은 깃발) 신문의 총리 전담기자를 맡고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휴민트를 구축하고 싶다는 거냐?”
“예.”
“마음대로 해라.”
일본 공산당은 북한이나 중국의 가짜 빨갱이들과는 계보와 노선을 다 달리하는 빨갱이 집단이자, 중의원과 참의원 양쪽에 걸쳐 오랫동안 원내정당의 지위를 유지해온 뼈대 있는 정치세력이었다.
명색이 빨갱이라고는 해도, 이들 또한 일본의 정당인 만큼 폐쇄적 권위주의와 연공서열, 선거구 세습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정당의 간부 혈족이 당 기관지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면, 그건 정계 진출 및 지역구 세습을 위해 커리어를 쌓는 것으로 보아야 했다. 보나 마나 현직 의원이나 알 법한 정보도 꽤 많이 들어 알고 있을 터. 평범한 기자 따위로 취급하면 곤란할 고급 정보원인 셈이었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정보를 내주고, 때로는 저쪽의 정보를 받아오는 식으로 상생관계를 구축하면 유익할 상대다.
수연도 이 기자를 휴민트로서 괜찮게 평가했다.
“자위대의 기밀 작전정보마저 빼내서 폭로하는 집단의 일원이니, 정보원으로서는 확실히 나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상치 못했던 조력자가 하나 끼었다.
“……그래, 주술사 왕이 보냈다고?”
“그렇사옵니다, 위대한 스승이시여. 소첩(わらわ)은 맥아더 장군선녀님께 내림굿을 받아 도조 히데키 장군신을 모시게 된 하세가와 아키코(長谷川 明子)라고 하옵니다. 이 세상 모든 무격(巫覡)들의 큰 스승 되시는 주술사 왕께서 맥아더 장군선녀의 신내림을 바르고 새롭게 해주셨사온즉, 이쪽(こなた/귀족 여성이 스스로를 낮추는 말) 역시도 황공하옵게도 주술사 왕 폐하의 신계(神系)를 가늘게나마 잇게 되었나이다.”
맥아더를 모신 무당이 제 신딸에게 어째서 옛 일제 A급 전범의 신령을 내려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치광이들의 정신세계를 상식으로 이해하려 들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김연화와 달리 도조의 성을 쓰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아아-”
내 앞에 공손히 꿇어앉은 하세가와 아키코는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이 장엄한 영기(靈氣)…… 이 압도적인 신령함……! 당신께서는 과연 높고 크신 스승께서 자신과 동격이라 하실 만한 분이시옵니다. 위대하신 분들께옵서 미천한 이쪽을 대업의 도구로 삼으셨으니 이 분에 넘치는 영광을 어찌하면 좋으리까.”
이 미친 일본인 무당에게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노출시켜달라는 건 그레이스가 주문한 사항이었다. 나는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날 도울 계획인지를 물었다.
의외로, 일본인 무당에게는 나름 그럴싸한 계획이 있었다.
“주술사 왕 폐하께 새전(お賽銭)을 바치고 은총을 구한 기업가들과 정치인들 중에는 이미 마음을 깨끗이 하여 올바른 믿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있사온즉, 소첩은 그들의 후원을 받아 야스쿠니 선녀라는 무명(巫名)으로 활동하며 세를 키워나가려 하옵니다. 이는 이미 다 약속이 되어있는 일이옵니다.”
망해가는 나라에서도 상위 0.1%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법이었다. 베네수엘라 같은 막장국가에서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그 나라가 일본이라면 어떠하겠는가. 나라가 기울어가는 와중에도, 일본의 부자와 권력자들은 은총화폐를 사서 주술사 왕의 기적을 경험할 만큼 충분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자들 가운데 진지하게 주술신앙을 받아들인 자들이 생겼다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왜 하필 무명이 야스쿠니 선녀냐고 묻자, 하세가와 아키코는 긴장한 와중에도 야심 가득한 음모자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첩이 주어진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이 나라의 우익 세력들은 결코 한 덩어리로 뭉쳐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옵니다. 언젠가는 야스쿠니 신사가 불탄 자리에 신당을 세워 이 나라의 흐트러진 정기를 바로잡고, 몸신을 바꾸어 이 나라의 믿음을 하나로 모으려 하옵니다.”
“몸신을 바꾼다?”
“그러하옵니다. 맥아더 장군선녀가 말씀을 전하기를, 크고 위대하신 스승께서는 도조 히데키가 그저 밟고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한 작은 신령이라 하셨나이다. 허주(虛主)를 씻어내는 굿으로 그를 내보내고 칸야마토이와레히코노미코토(神日本磐余彦天皇)를 받아들여 일본을 진정한 신주(神州)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소첩의 최종 목표이옵니다. 그날이 오면 신주의 신민들은 위대하신 영도자 주술사 왕 폐하를 한마음 한뜻으로 공경하게 되겠지요.”
“……뭐, 잘해보시오.”
더 말을 섞으면 내 감각이 이상해질 것 같아, 나는 무난한 응원이나 던져주고 말았다. 일본인 무당은 이 짧고 의례적인 말을 듣고도 감격에 겨워했다.
우익 세력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마도 그레이스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내린 명령일 터였다. 솔직히 이게 어디까지 가능할까 싶지만, 일본의 보수파 정치인들 중엔 오래전부터 사이비에 빠져있는 자들이 많다 하니 의외로 아주 잘 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본에 남아 상황을 통제할 책임자로는 수연이 가장 적절했다. 그러나 나는 수연이 예전에 흔들리는 표정으로 꺼냈던 말을 잊지 않았다.
「형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제 삶의 유일한 보람입니다. 다만, 근래 들어 형님을 바로 곁에서 보필할 기회가 드물어진 듯하여 잠시 아쉬운 마음이 들었을 뿐입니다.」
이 녀석의 성미에 이런 소리가 쉽게 입 밖으로 나왔을 리가 없다.
‘어지간하면 가까이 둬야지.’
그저 편의와 효율만을 좇는 건 인력관리의 왕도와 동떨어져있는 짓이다.
나는 아덴만 공해상에 별도의 지휘용 선박을 띄워놓고 그쪽에도 원격사무체계를 구축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예멘 출장 자체는 단기간에 마무리 지을 작정이긴 하지만, 그 뒤로 다른 출장 일정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비 지휘체계는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에도 마련해놓았다. 필요한 장비들을 내 힘으로 일일이 운반하여 설치하는 게 일이었다.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에는 경태의 건의로 「페르 아스페라(Per Aspera)」라는 함명을 새롭게 붙였다. 언제까지고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함명의 의미는 ‘역경을 지나서’였다.
나는 페르 아스페라를 예멘 앞바다까지 끌고 갈 요량이었다.
아프리카의 뿔과 소코트라 섬, 그리고 예멘 남부 해안선 사이에 끼어있는 바다는 깊은 칼자국과도 같은 해저 협곡지형이 있어, 수천 톤짜리 생체 전투함을 숨겨두기에 적절했다.
다만 경태와 수연을 비롯한 부하들을 공중전투함에 태우기는 곤란했다. 우선 내부 구획의 정리가 끝나지 않았을뿐더러, 수중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외부와의 교신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까닭이었다.
내 의사결정을 대행할 권한이 있는 참모들은 본사와의 통신접촉을 유지해줘야 한다.
경태는 가벼운 아쉬움을 드러냈다.
“형님과 해저 2만 리를 찍을 기회를 놓치는 게 아쉽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조직 전체를 며칠 동안 방치해둘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럼 나흘 후에 뵙겠습니다. 혹시라도 정시연락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일본 앞바다에서 아라비아 반도 남방해역까지는 장장 1만 3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먼 길이었다. 키요우타마히코의 특기인 가압가속 터널을 최대한 활용하더라도 얼추 잡아 나흘은 소요될 거리.
공중기동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환시장막의 전파차단능력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이고, 플라즈마 역장은 대부분의 레이더 전파를 차단할 순 있을지언정 적외선 방출량이 많아 은밀성이 떨어진다.
후자의 경우 전자기파 주파수에 따른 감쇠율을 실험을 통해 검증해봐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어떤 기술이든 간에, 검증도 없이 실전에 투입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주여.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나흘에 걸친 항해 중엔 콜리어의 마도서 「버금가는 고결함의 봉쇄수도원」을 안정시키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봉쇄수도원에 대한 정신오염 파상공세는 이레째 되는 날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수도기사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구원과 내 존재감을 일치시킨 것이다.
그러나 7일간 파상적으로 되풀이된 정신오염의 대홍수와 향정신성 약물 투여는 한 가지 부작용을 남겨놓았다.
그 부작용이란, 바로 나에 대한 수도기사들의 무거운 의존증이었다.
「저희에게 빛을 내려주소서. 저희에게 구원을 내려주소서.」
본래대로라면 몇 날 며칠을 방치당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정상인 마도서가, 이제는 내가 접속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공황 장애를 일으키는 불안정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 당장은 하루에 최소 한 번 정도는 접속해서 상태를 안정시켜줘야 했다.
마도서를 이용하는 데엔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보통의 책과 달리, 마도서 봉쇄수도원엔 색인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콜리어가 마도서 속의 의식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지혜를 기억하도록 했는지를 모르니, 나로서는 거의 심문에 가까운 방식으로 마도서를 열람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항해기간 내내 마도서를 연구하고, 남는 시간엔 출장 계획을 재점검했다.
예멘엔 오래전부터 네 개의 세력이 할거하고 있었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정통정부이자, 사우디가 오랫동안 후원해온 「대통령 지도력 위원회(مجلس القيادة الرئاسي)」.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최강의 군사집단으로서, 경제력이 높고 인구가 많은 핵심지역을 실효 지배하는 후티 반군 「안사르 알라(أَنْصَار ٱللَّٰه)」.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가 전복을 노리다가 실패하고 예멘으로 도망친 알 카에다의 지파 「아라비아 반도의 알 카에다」와, 그 알 카에다를 구심점으로 뭉친 수니파 광신도들의 연합세력 「안사르 알 샤리아(جماعة أنصار الشريعة)」.
마지막으로 남서부 해안지대를 실효지배하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의 후원을 받는 미승인국가 「남부과도위원회(المجلس الانتقالي الجنوبي)」.
이중에서 가장 세력이 약하고 병신 같은 집단이 바로 내가 도와줘야 할 「대통령 지도력 위원회」, 이하 PLC였다. 빈 라덴이 죽고 나서 오랜 풍파를 겪으며 한물가버린 알 카에다의 일개 지파, 그것도 사우디에서 삽질을 벌이다 축출당한 놈들을 상대로도 세가 밀릴 지경이니, 이보다 더 무능하고 병신 같기도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