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72화 (472/561)

#47. 혼돈과 공황 (18)

사람이 야생동물과 교감한 사례들을 보면, 한 놈에게 먹이를 주었더니 그놈이 제 무리를 다 끌고 오더라는 경험담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야기의 당사자가 될 줄이야.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다. 혹등고래는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고, 제한적으로나마 무리와 방언(方言)의 경계를 넘어 소통을 하는 개체도 관측된 적이 있으니까. 연구자들은 고래들 가운데 완전한 다중언어 구사자(Multilingual)가 존재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하늘로 날아올라 세계 최대의 대도시를 폭격하던 거대괴수의 이미지는 지금의 순수한 행동과 쉬이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수연은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어쩌면 평소부터 다른 혹등고래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헌터들이 키요우타마히코를 잡겠다고 엉뚱한 고래를 괴롭히거나 상처 입힌 일들이 많았잖습니까. 자기로 인해 동족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커 보입니다.」

키요우타마히코의 출현 이후, UN은 각성체 고래를 함부로 공격하거나 위협하는 행위를 전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UN 산하기관으로 편입된 국제포경협회(IWC)가 현상금을 걸고 「인류가 직면한 중대한 위협」으로 선포한 개체에 대해서만 제한적인 포경이 허용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제한적인 포경마저도 여러 안전규정들을 준수하기로 서약한 회원국의 정규군이나 정부 의뢰를 수탁한 단체가 IWC의 자격심사와 승인을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로는 돈에 눈이 돌아간 무법자들을 막을 수 없었다. 구속력을 강화했다곤 하나 강제력이라 불러주기엔 영 모자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규제를 강화할수록 오히려 더 큰 욕망을 불태우는 자들도 많았다. 인간은 원래부터 금기를 욕망하는 동물이잖은가. 규제가 강해진다 함은 각성체 고래 부산물의 희소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뜻이고, 더 높아진 희소가치는 사람들이 고래 부산물에 품는 환상의 확대와 암시장에 흘러드는 자금의 증가를 낳았다.

암시장의 수요는 절반 이상이 중국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세상이 피해를 보든 말든 알 바 아니다.」라는 굳은 신념을 실천으로 옮기는 인간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고른 분포를 보여주었다.

전 세계의 각성체 혹등고래들이 귀찮은- 때로는 위험한 일들을 겪은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키요우타마히코 덕분에 고난의 총량이 줄었다고 봐야겠지만.’

핵무기를 무더기로 쓰고서도 죽이지 못했고, 바다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 여겼던 내륙에까지 초유의 공습을 가한 해양괴수의 위용엔 가장 겁대가리 없고 이기적이며 근시안적인 초능력 용팔이들조차 자신들을 되돌아보도록 만드는 힘이 내재되어있었다.

이젠 정말로 돌아버린 놈들이 아니고서는 감히 고래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같은 막장인생들로부터도 공공의 적 취급을 받을 테니 더더욱 그러하겠지.

여하간 키요우타마히코는 우월한 기동력과 초장거리 의사소통능력을 활용하여 아픈 동족들을 모아왔다.

「아픔 아니다 해줘.」

이렇게 요구하는 키요우타마히코의 신경계엔 이전까지 관측하지 못한 생소한 감정의 색채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 감정의 정체를 ‘면목 없음’이나 ‘미안함’, ‘송구함’ 정도로 추정했다. 기존의 교류를 통해 추정해놓았던 다른 감정들을 하나씩 하나씩 배제해나간 결과였다.

수연의 의견은 이런 추정을 참고하여 내놓은 것이었다.

내가 이제껏 「아픔」과 「아니다」 두 단어의 조합으로 치료행위를 표현해온 것은 「치료」에 해당하는 단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태로부터 문법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얻은 고래가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서 사용하는 걸 보면, 당초의 내 짐작대로 고래의 언어엔 「치료」라는 어휘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고래들에게 남아있는 외상과 내상, 상흔, 장애 등은 인간의 소행이 아닌 것들도 제법 있었다. 특히 어린 고래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상흔의 형태로 미루어 기습과 무리사냥에 익숙한 다른 해양각성체들의 소행인 것 같았다.

혹등고래 자체도 무리를 이루는 동물이긴 하다. 그러나 무리 구성원 전체가 각성체인 것은 아니며, 특히나 어린 고래들은 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어떤 어미고래가 이미 죽은 자식을 데려오기도 했다.

「우우- 휘우우우우-」

신경계가 짙은 슬픔의 색채로 물든 어미고래는 느리고 몽환적인 곡조로 울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이 고래를 도와 죽은 새끼를 운반해온 키요우타마히코는 주변 바다에 둥글게 흐르는 가압가속 터널의 고리를 만들었다. 소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어미고래의 노래가 멀리까지 퍼지지 않도록 손을 쓴 것이었다.

죽은 새끼는 물의 흐름을 다스리는 키요우타마히코의 힘으로 일정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새끼를 살펴보는 시늉을 한 후에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아픔」 「아니다」 「아니다」

적당한 어휘를 몰랐기에, 나로서는 「아니다」를 한 번 더 붙여 이미 하나의 어휘처럼 쓰이는 「아픔」 「아니다」를 묶음으로 부정해보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다행히 여기선 시간낭비가 많지 않았다. 어미고래야 어쨌든, 키요우타마히코는 새끼가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도 했다. 키요우타마히코가 「아픔」 「아니다」의 뒤에 새로운 단어를 붙여 어미고래에게 전하자, 자식을 잃은 어미는 격렬한 슬픔을 담아 절규 같은 울음을 쏟아냈다.

이로써 나는 새로이 「불가능하다」 내지 「할 수 없다」를 뜻하는 표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위이잇↗ 히우- 휘우-」

혹등고래에게는 장례의식이 없다. 자식의 죽음을 확인한 어미고래가 흐느끼며 떠나가자, 키요우타마히코는 내게로 눈길을 돌리더니 제 주둥이로 죽은 새끼를 가리키며 짧은 노래를 세 번 반복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죽은 새끼와 같은 자세를 취한 후 시체처럼 가만히 있다가, 다시 눈을 뜨곤 다시금 같은 단어를 세 번 더 노래했다.

아마도 이는 「죽음」이나 「죽었다」에 해당하는 단어일 것이었다.

죽은 새끼의 이름일 수도 있겠으나 높지 않은 확률이었다. 키요우타마히코 역시 나와의 의사소통이 더 원활해졌으면 하는 눈치였으니까.

나를 찾아오는 고래 환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었던 질환은 의외로 소화불량이었다.

소화불량의 원인은 위장 내에 축적된 형형색색의 이물질들. 특히 내산성이 강하다 못해 초강산(超强酸/Superacid)에도 녹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경우에 따라 고래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을 만큼 유해했다.

고래들의 위장을 열고 쓰레기들을 긁어내는 과정에선 새로운 지시대명사와 그 지시대명사를 포함하는 완전한 문장 하나를 습득했다.

「이것은 먹이가 아니다.」

쓰레기를 꺼낸 후 고래에게 보여주면서 해주는 말이었다. 첫 시도 당시 뱃속에서 끄집어낸 쓰레기들을 손짓과 몸짓으로 가리키며 「먹이」 「아니다」라고 했더니, 이를 지켜보던 키요우타마히코가 여지없이 문법과 표현을 바로잡아준 것이다.

그 외에 「위험하지 않다」 혹은 「안심해라」, 「진정해라」 정도로 추정되는 문장도 확인했다. 내가 환자의 배를 가를 때 기겁을 하는 보호자 고래들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럴 때마다 키요우타마히코가 끼어들어 보호자 고래를 진정시키며 차분한 노래를 되풀이했다. 정황상 내가 의미를 짐작하기 쉬운 문장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하게 혹등고래 사회의 공중보건의사가 되어버린 게 처음에는 난감하고 당혹스러웠으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상 확실한 교감과 빚 지우기도 없겠지. 언어습득 속도도 예상보다 현저하게 빠르고.’

키요우타마히코의 소개로 나를 찾아오는 고래들 중엔 아픈 곳이 없는 건강한 개체들도 많았다.

이런 개체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많아졌는데, 경태는 이를 두고 “고래들로부터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악수의 요청.”이라고 표현했다.

“여왕님이 지금 「인사해. 얘가 나를 살려준 은인이야. 이제부터 우리는 칭구칭구.」 이러는 건지, 아니면 「얘들아 봐봐. 요 녀석이 바로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개쩌는 인간이야. 아플 때 찾아오면 아프지 않게 해줌. 오옹 오오오옹-」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는 수색범위를 확장한다는 명분으로 스텔라 포르투나 선단을 착실하게 동진시켰다. 그러나 계속되는 고래들의 방문은 자칫 외부에 노출되기 쉬운 불안요소였다.

지능수준이 높은 고래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자기들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그 조치란, 각성체 혹등고래 천여 마리가 참여하는 집단적 교란행동이었다. 그룹을 나누어 차륜전을 벌이듯이 이어가는 교란행동은,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과 키요우타마히코를 은폐해주기에 충분한 규모였다. 내 치료를 받은 키요우타마히코는 특징적인 흉터들이 모두 제거되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외양만으로는 도무지 구분이 가질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인류의 입장에선 고래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단순한 교란으로 보일 리가 없었다.

키요우타마히코와 공중전투함에 대한 수색작업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도쿄 남동해역에서 포착된 고래들의 ‘무력시위’를 앞다퉈 긴급속보로 내보냈다.

「혹등고래들의 대규모 무력시위가 벌써 이틀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재해 긴급사태를 선포한 일본 정부는 수동적인 감시망 유지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해상 수색작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며, 미 해군 또한 어떤 경우에도 고래들을 자극하지 않는 것을 제1의 작전원칙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다시 한 번 도쿄 남방해역에 집중된 가운데, 주요국 정상들은 미·일·영 3개국 함대의 수색작업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안정세를 되찾아가던 세계증시는 새로운 불안 속에서 크게 출렁이고 있으며-」

「현재 혹등고래들이 보여주는 무리행동의 규모는 일반적인 무리행동의 상한선을 아홉 배 가까이 상회하는 것이며, 무리행동에 참여하는 개체들이 모두 각성체라는 점에서 사태의 엄중함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일각에선 사라진 키요우타마히코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용 먹이 살포가 다른 고래들을 불러들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전문가들은 이 주장에 회의적인 입장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각성체 혹등고래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먹이를 먹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SIO의 한 연구원은 “키요우타마히코가 혹등고래들의 여왕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겠느냐.”라는 추측을 제시했습니다. 고래들의 집단행동이 항의성 무력시위인 동시에 지도자 개체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입니다.」

고래들의 이러한 집단행동은 내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누가 알겠는가? 키요우타마히코 이외의 각성체 고래들 중에서도 제국을 사냥하는 내 동맹의 군세에 기꺼이 합류해주는 개체가 나올는지.

「저놈이다! 저놈이 예전에 포경선을 탔던 놈이다!」

공포에 물든 일본 각지에선 포경선단 관계자들 및 그 친인척들에 대한 이지메와 마녀사냥이 숱하게 벌어졌다. 괴롭힘이 끝내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도 여러 건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었다.

고래들을 위무하는 신토 제례에 끌려나와 몰매를 맞거나 공개적인 반성을 강요당하는 자들도 많았는데, 그 모양새는 문화대혁명 당시의 중국에서 일상과도 같았던 인민재판과 공개 자아비판을 꼭 닮아있었다.

인간이 지닌 악성은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으로 발현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전보다 심층적으로 포섭된 마츠오는 강한 연구의욕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내 연구가…… 세상을 구한다……!”

마츠오에게는 내 능력에 대한 비밀이 제한적으로 공유되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고래와의 상호작용 및 의사소통 과정을 설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까닭이었다.

이제까지의 결과만 가지고 연구를 하라고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마츠오의 주도로 고래언어 연구가 계속되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대마법사로서의 내 능력을 그저 감추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마츠오는 나를 이전부터 고래와 제한적으로 소통하며 비극을 막으려 노력해왔던 동물소통 초능력 보유자(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이자 신비로운 환경주의 비밀결사의 정신적 지도자 즈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설마 이런 유아적인 설정이 먹힐까 싶었는데, 이거면 충분하다고 장담하고 나선 경태는 실제로 이 거짓을 아주 쉽게 납득시켜 보였다.

‘경태 녀석의 재주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당하는 쪽이 순진한 것인지…….’

하기야 염동력, 방전, 발화 등 이전 세상에선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던 초능력(원시마법)들이 현실로 나타난 세상이니, 실은 예전부터 동물소통 초능력자가 존재해왔다는 이야기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처지에 따라서는 설득력이 강할 수도 있겠지.

여하간 이 호구에겐 이렇게 말해두었다. “도쿄에서와 같은 비극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병상에서 일어난 마츠오가 사명감을 불태우는 이유였다.

이때 영국에선 일본과 몹시 비슷한 양상의 인간사냥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혼란상 또한 여지없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저놈이다! 저놈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지혜를 얻은 옥타 테크의 연구원이다!」

「죽여라! 불태워라! 목을 매달아라!」

「사탄의 권세에 부역한 사악한 죄인들을 높으신 주님의 재판정으로 보내버리자!」

「노동당은 왜 가만히 있는 거냐! 평소 그렇게 잘난 척 고결한 척 위선을 떨어댄 새끼들이 위기를 수습할 자신이 없어서 몸을 사리는 게 말이나 되냐!」

「국방부도 한패고 정부도 다 한패다! 모조리 부수고 뒤엎어버려! 이 나라는 정화의 불길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이 와중에 영국 총리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뒤를 잇겠다고 나서는 후임자가 없어 총리의 직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처지의 총리이기에 멜 수 있는 총대라는 게 있었다.

「저는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며, 따라서 제가 이제껏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노력을 해왔든 간에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순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래지 않아 역사의 죄인으로서 심판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나 이미 유죄가 확정되었다 한들 저는 여전히 총리의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의무를 방기한다면, 장차 심판대에 오를 제게는 아주 중대한 죄목이 하나 더 추가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절박한 요구에 따라, 저는 여러분께 현시각부로 그레이터 런던 전역에서 인신보호영장(Habeas Corpus)의 효력이 중단됨을 알려드립니다. 이것은 사회질서 회복을 위한 한시적인 조치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영국 전역으로 적용범위가 확대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국민 여러분께서는 정부의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조치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나라가 질서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만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신이시여, 여왕 폐하를 보우해 주소서.」

영국엔 명문화된 법령과 행정절차로서의 계엄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땐 여러 법령들에 분산되어있는 비상조치들을 선택적으로 발동시킴으로써 실질적인 계엄 상태를 만드는 방식을 이용한다.

인신보호영장의 효력 중단은 그러한 실질적 계엄 상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영국 정부는 마침내 치안 유지에 군대를 투입하고 영장 없이 시민들을 구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시로 터져 나오는 군부대의 항명, 그리고 각성능력자가 포함된 폭동세력의 강한 저항은 계엄령의 효과를 반감시켰다.

곳곳에서 연기가 오르는 런던의 풍경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내가 예멘 출장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키요우타마히코에게 더는 인간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후 내 부재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시각자료를 동원해 거의 한 시간 즈음을 시도하고서야, 고래는 간신히 내가 전하려는 뜻을 이해했다. 이 과정에서 「공격」을 포함한 몇 개의 어휘를 추가로 습득할 수 있었다.

고래는 당황과 더불어 매우 강한 미안함과 면목 없음의 색채를 보여주었다. 저가 너무 많은 환자들을 데려와서 내가 질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잔뜩 허둥대는 고래를 상대로 다시금 근 한 시간에 걸쳐 「내 가족들 중 일부는 이곳에 남는다. 너는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뜻을 전하느라 애써야만 했다.

이젠 런던 공략의 마지막 조각이 될 지하디스트 백만 대군을 완성하러 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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