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65화 (465/561)

#47. 혼돈과 공황 (11)

해남파 남사 제12선이 닻을 내린 부두는 지난밤 고래의 파동 폭격을 맞았던 곳. 그런즉 선원들의 휴식이나 연료보급을 위해서라면 다른 부두를 찾았어야 정상이다.

고래의 파동 폭격과 독성 강우, 그리고 내가 행한 공습의 피해면적을 더하면 서울시 면적의 두 배가 넘어간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도시처럼 이어진 도쿄 광역권의 전체 넓이에 비하면 불과 10분의 1 가량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도쿄도(都)를 포함한 핵심지대의 피해가 커서 문제일 뿐, 광역권의 9할은 간접적이면서도 경미한 피해만을 입었다는 의미.

세계 최대의 대도시권역이 지닌 광활함의 힘이었다.

따라서 배를 댈만한 부두는 달리 얼마든지 남아있다. 도쿄 만에 면한 항만 인프라의 절반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작금의 일본이 처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수용능력의 여유가 넉넉하기도 하다.

게다가 요즈음의 원양어선은 최소 하나 이상의 발화·방전능력자를 고용하기 마련이라 연료 보급이 절실하지도 않다. 아무리 낡은 배라도 최소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엔진쯤은 달아놔야 어획물의 가격경쟁력이 생기는 까닭이다.

하물며 노예화된 각성능력자들을 태운 중국 어선은 오죽할까.

‘그러고 보면 저 배에 해적행위 및 인신매매 혐의가 걸려있다고 했었지.’

사라진 생체전투함과 고래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며, 수중 핵폭발의 잔류 방사능이 다 빠지지도 않은 바다. 그런 바다에 배를 들이려면 그만큼 큰 기대이익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국 어선이 접안한 부두 근처에서 그런 기대이익을 채워줄 장사는 사람 장사가 유일했다. 공권력 부재의 혼란을 틈타 각성능력자들을 조달하는 것이다.

원시마법에 눈을 떴어도, 능력을 활용해 돈을 벌지언정 목숨이 위험한 일은 피하고 있었을 겁 많은 민간인들. 그런 민간인들을 예닐곱쯤 납치하고 빠지면 리스크 대비 리턴이 아주 크다. 겸사겸사 노예시장에 팔아치울 비각성자들도 좀 데려가면 쏠쏠한 부수입이 될 것이다.

만약 괜찮은 거래선이 있다면 직접 사냥을 할 필요조차 없다. 특히 촉법소년 범죄자들의 비중이 높은 한구레(半グレ)의 각성능력자들은 장기적인 이익 따윈 아랑곳없이 사람들을 잡아 팔아치울 개연성이 컸다.

경태도 나와 같은 데 생각이 미친 모양이었다.

“음……. 저것들, 아무래도 사람을 잡아갈 생각 같은데요.”

“국안부 데이터베이스는 조회해봤나?”

“IMO 소위원회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 바로 조회해봤죠. 쟤들이 우리랑 헤어지고서 바로 사고를 치거나 하면 이쪽으로도 조사가 나온다거나 해서 조금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 어선을 소유한 해남파라는 문파기업(門派企业)이 지역 당의 지시로 비밀리에 어로 보호활동…… 그러니까 동남아 해적들이랑 어민들을 잡아다가 뇌수술 공장에 납품하는 일을 하는 건 맞는데, 도쿄에서 상품을 조달할 예정이라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문파기업이란 중국의 이능엽사들이 무림인 흉내를 내면서 세운 기업집단의 한 형태로, 기본적으로는 공산귀족들이 꾸린 기존의 사영 이능엽사병단이나 다른 나라들의 기업화된 헌터 집단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난날 나는 수연으로부터 동남아시아 해상에서 급증하는 해적행위에 대한 보고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이 국내의 불만을 외부의 적에게로 돌려 내부의 단결을 꾀하는 과정에서, 불법조업을 일삼는 중국의 어선들을 표적으로 삼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어민들이 자국 수역으로 진입하는 중국 어선들을 공격한다고 하는데, 두 나라의 관계당국은 이를 방조하거나 은근히 부추기는 모양새입니다.」

「부분적으로는 각성 능력자들이 활약할 무대를 만들어주면서 그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나아가 국민감정을 고양시키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중국이 무림인들에게 해적질을 외주로 주고 있는 데엔 나름의 배경이 갖춰져 있었던 셈이었다.

나는 화면을 보며 끄덕였다.

“그럼 저것들은 신고하지 않은 부업을 뛰는 중인 거로군.”

“그렇겠죠. 납품을 받아주는 병원도 한 패거리일 테고요.”

아이티가 그러했고 다른 여러 나라들이 또 그러했듯이, 재난에 이어 무질서가 찾아온 땅엔 반드시 노예상인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중국처럼 부패한 나라에선 일선 실무진이 상부가 모르도록 딴 주머니를 차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주머니…… 거기에 병원도 한 패거리라…….’

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경태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혹시 뭔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제 생각엔 내버려둬도 괜찮겠지 싶습니다만.”

“증거를 확보해두는 게 좋겠다.”

“증거를요?”

“그래. 쓸 데가 있어.”

“영상 증거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충분하다.”

“그럼 쉽죠. 맡겨두십시오.”

중국인들이 연루된 일본인 인신매매 현장의 영상은 우선 편집을 거쳐 일본의 여론을 격앙시키는 용도로 활용할 요량이었다.

구체적으로 해남파 남사 제12선을 특정하지는 못하게끔, 그러나 거래를 주도한 세력이 중국인들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게끔 편집을 해서 시일을 두고 풀어버리면, 분노의 대상에 목마른 일본인들 사이에선 강렬한 반중여론이 들끓어 오르겠지.

증거를 공개하는 시점은 중국이 대영전선에서 일본 편을 들어주는 대가로 경제적인 지분을 챙겨가는 게 언론보도로 나올 즈음이 좋을 것이다.

‘내가 차린 밥상에 꼬이는 떨거지들은 적당히 쳐내야지.’

이는 주술사 왕으로서의 그레이스가-그리고 그 힘을 휘두를 내가-차지할 지분을 지키기 위한 조치다.

과거의 일본이었다면 인신매매 따위 잠시 시끄럽고 말 사건에 불과했겠으나, 지금의 일본에선 화약더미에 던져지는 불씨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 것이다. 선동은 사람 하기 나름인 일이니. 불이 너무 거세어져 일본과 중국의 협력이 아예 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중국의 과욕에 간접적인 방법으로 제동을 걸고 나면, 다음은 편집을 거치지 않은 원본 영상을 가지고 해남파를 협박할 차례다.

“이 일로 너희의 당과 조국이 큰 손해를 보게 되었는데, 내가 영상 원본을 공개해버리면 너희가 과연 어찌 될 것 같으냐?”라고.

협박과 회유를 동시에 진행하여 비밀스러운 거래를 트고, 내가 뇌수술 공장으로 기능하는 병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이 내게 돌아올 또 다른 이익이다.

물론 내가 이제 와서 살아있는 사람을 상품으로 취급하려는 건 아니다. 인신매매가 조직 문화의 건전성을 해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으니까.

뇌수술 공장을 이용해야 할 세력은 내가 아니라 이슬람 광신도들이다.

예멘에서 샤히디의 명성을 더 높여준 다음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지하드를 이어가며 실질적인 지배권역을 구축할 요량인데, 샤히디 그룹의 통치가 시작됨과 동시에 일반 민중들이 체감 가능한 생활수준의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각성능력자들을 무더기로 갈아 넣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어차피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부도덕한’ 지배세력을 쓸어내야 한다. 그 지배세력에 포함되어있는 각성능력자들을 그냥 죽여 없애버리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

방송에 내보낼 때깔 좋은 교정시설을 마련한 후, 그럴듯한 재판을 거쳐 그간 저지른 잘못들을 10년 즈음의 노역으로 속죄하게 한다는 식으로 발표하면 서구세계에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훼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보탬이 되면 되었지.

‘죄수들의 이상한 모습은…… 그래, 마약중독 금단증상이라고 하면 되겠군.’

황금의 초승달지대에서 마약을 사고파는 놈들이 마약 금단증상을 보이는 게 뭐가 이상한 일일까. 이미 샤히디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씐 서구 언론들은 그럴듯한 장면을 곁들인 발표를 있는 그대로 받아 적을 것이다.

내 구상을 들은 경태가 의문을 제기했다.

“뇌수술 공장 이용은 그냥 국안부 아재들을 부려먹으면 편하지 않습니까?”

“편하겠지. 그러나 그래서는 그들이 나와 샤히디 그룹 사이의 협력관계를 눈치챌 가능성이 있잖으냐. 납품할 인간들의 입을 막는 데엔 한계가 있다.”

“하긴. 그렇겠군요.”

설령 내 거짓 대자들에게 나와 샤히디 그룹 간의 관계가 노출되더라도 거짓 대자들이 내게 등을 돌리진 않겠으나, 이제까지의 믿음에 금이 가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거짓 대자들에게 잠재적인 약점을 만들어주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국안부의 핵심 간부들이 뇌수술 공장에서 미등록 노예들을 생산하는 데 관여했음이 밝혀지면 이제까지 쌓아온 ‘청렴한’ 커리어는 날아가 버리는 셈이다.

중공 빨갱이들 사이에선 멸종한 지 오래인 청백리의 정체성이야말로 내가 거짓 대자들에게 안겨준 가장 강력한 무기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저 편한 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무기를 잃을 가능성을 감수할 이유가 뭔가.

경태가 다시 말했다.

“그나저나,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를 인간들이 참 많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냐?”

“사람을 낚겠다고 저기를 들어간 짱깨 어부들도 어부들이지만, 개인방송을 하는 놈들이랑 환경주의자들, 사이비 종교인들과 주술사들까지 와서 난리굿을 치는 걸 보고 있노라니 좀 어이가 없어서요. 영화 같은 걸 너무 많이 봐서 실감이 잘 안 나나……?”

“…….”

인류의 평균적인 지성이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건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을 통해 수도 없이 증명된 사실이다.

지금의 도쿄에선 그러한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되고 있을 뿐이었다. 수중에선 핵폭탄이 터지고, 하늘에선 유독성의 호우가 쏟아졌으며, 땅에선 피와 고름이 내를 이루어 흘렀던 도시에 온갖 부류의 멍청이들이 파리처럼 꼬이고 있는 것은 지성의 부재 이외의 다른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부분적으로는 경태의 말처럼 영상매체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야생의 위협이 마법의 힘을 품고 새롭게 대두된 이래, 자연각성체를 소재로 삼은 공포·재난영화는 범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수가 쏟아져 나왔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 대해선 쉬이 패닉을 일으키지 않는다. 지능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있어, 이번 재난은 익숙한 광경을 익숙한 매체를 통해 보았을 뿐인 것이다.

도쿄 광역권에서의 페스트 확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은폐하기 어려운 사건이 되어갔다.

미뤄두었던 그레이스와의 통화를 할 즈음엔, 일본 후생노동 대신정무관(大臣政務官)이 방송에 나와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수도권 남서부에서 페스트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문은 현재 정부에서 진위를 검증하는 중입니다. 또한 인터넷에 돌고 있는 여러 사진들은 아직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아무쪼록 정부를 믿고 기다리며 이성적인 판단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여 주십시오.」

「설령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페스트는 항생제만 투여하면 쉽게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며, 저희 의료당국은 조기대응을 위한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고래신의 저주가 퍼지고 있다거나, 히카리노와(ひかりの輪)를 비롯한 사이비 종교인들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했다거나, 쥐를 잡아먹다가 병에 걸린 노숙자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의도적으로 병을 옮기고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명백한 거짓입니다.」

「이 세상에 고래신의 저주 같은 것은 없으며, 히카리노와를 위시한 옴 진리교의 분파들에 대해선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고, 노숙자들은 흩어진 개인들일 뿐 집단적인 반사회 행동을 취할 조직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행로병자 개개인으로부터 병이 옮을 가능성은 있으므로, 수도권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사적인 접촉이 없도록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신정무관의 발표는 표면적으로는 루머들을 하나하나 부정하는 내용이었으되, 시민들의 경계심을 노숙자들과 행로병자들에게로 집중시키려는 음습한 의도가 엿보였다.

만에 하나 폭동이 터지더라도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노숙자들이나 좀 죽고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정부의 위신이 회복되고 페스트 대책이 완비되기 전까지, 민중의 분노는 적정선에서 억제되어야 한다. 이 또한 영국이 원인제공자임을 밝히는 건 그 다음에나 해야 할 일이었다.

화상통화로 대면한 그레이스는 웬일로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몸의 곡선을 드러내기는 해도 노출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나와 통화할 때는 드문 일이었다.

복장만 달라진 게 아니라 분위기도 전과 같지 않아, 나는 혹시 대역이 나선 것인가 의심했다.

내 경계를 쉬이 간파한 그레이스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춰볼까? 내가 대역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지?」

“……그래.”

「그렇게 경계할 것 없어. 나는 그저, 이제부터는 조금 더 진지하게 당신을 대하기로 했을 뿐이니까.」

“진지하게?”

「응. 전보다 한층 진지하게,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어졌거든.」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또 장난질이군.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시간들이 아깝지도 않나?”

「장난이라니. 너무하네.」

그레이스는 맑은소리로 짧게 웃고서 턱을 괴었다. 금빛 앞머리가 스르르 흘러 한쪽 눈동자를 절반쯤 가린다.

「역시 그 눈 때문일까?」

“뭐가 이 눈 때문이라는 거냐?”

「당신은 지금의 당신이 내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일지에 대해 정말 아무런 자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심지어 내 안에도 남아있는 어떤 본능과 감각이 철저하게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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