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혼돈과 공황 (8)
내가 스텔라 포르투나로 복귀했을 때, 도쿄 광역권의 남쪽 바다에선 새로운 혼란이 끓어오르기 시작한 참이었다.
혼란의 효시를 쏘아올린 건 해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의 갑작스러운 재배치 움직임이었다. 봉쇄선 내부의 수색에 주력하던 자위대 세력들이 예고도 없이 봉쇄해역을 이탈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의문을 느낀 민간협력업체들이 이유를 묻자, 일본 정부는 태연하게 거짓을 둘러대어 관계자들을 안심시켰다.
「지금 행하는 전력 재배치는 1차적으로는 각 지방의 민심 안정을 위한 조치입니다.」
「현재 해상 및 항공자위대 전력의 9할이 수도권 방위에 집중되어있는 바, 도쿄도를 제외한 나머지 도(道)·부(府)·현(県) 전체에서 불만과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키요우타마히코와 영국 왕립공군의 「후나유레」가 벌써 봉쇄선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제로라고만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오로지 수도권의 안위만을 우선시하며 다른 도·부·현 주민들을 무방비한 상태로 방치해두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후나유레(船幽霊)란 지난밤부터 일본의 온라인에서 SNS 등의 매체들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의 별명이었다.
이 명칭을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덩어리로 뭉친 두 생체전투함을 아울러 부를 이름이 마땅치 않았던 까닭에, 날이 밝은 시점에서는 이미 여러 유관단체들과 언론 매체들이 심심찮게 사용하는 표현이 되어있었다.
일본 언론들이 곁가지로 언급한 배경에 따르면, 후나유레는 본디 옛 에도시대의 괴담에 등장하는 유령선 비슷한 것이었다. 다만 배에 유령에 씐 개념인 보통의 유령선과 달리, 후나유레는 배 자체가 하나의 요괴라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고.
어떤 의미로는 공중전투함의 본질에 닿아있는 명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 일본 정부는, 각지의 불만이 대규모 소요사태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서 자위대 전력을 조기에 재배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기(旣) 제기된 불만의 내용과 같이 고래와 후나유레가 봉쇄선 바깥에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 각지에 재배치된 자위대와 자위대 직계(直契) 일본 수렵기업들은 만약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해당 지역의 수색활동에 전념할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협력업체의 모든 분들께서는 안심하시고 봉쇄수역과 그 인근해역의 수색활동에 전념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일본 정부는 이 발표를 통해 다국적 중무장 용팔이 집단들을 안심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정을 다 아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안내공문이 날아온 건 물론이었다.
어쨌든 고래와 생체전투함이 봉쇄선을 빠져나갔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자라고 봐도 무방한 자위대와 일본 수렵 기업들 일부가 자국 사정으로 빠져주겠다는데, 다국적 용팔이들이 반기면 반겼지 싫어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그로부터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번엔 미 해군 함선들과 미국 국적의 헌터 세력들이 일제히 봉쇄수역을 이탈했다. 재난지원 명목으로 소수의 함선들을 남겨두긴 했으나, 그 함선들은 문자 그대로 지원함들에 불과했다.
「우리는 현시각부로 모든 수색작전을 중단하고 오키나와 기지로 철수하겠다.」
미 해군으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다국적 헌터 집단들은 또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고.
사실 오키나와 기지로 철수한다는 말부터가 조금은 어색한 것이었다. 주일미군 해상세력의 모항은 오키나와가 아니라 도쿄 광역권 남단의 요코스카 해군시설(US Fleet Activities Yokosuka)이기 때문.
해당 시설이 간밤에 고래의 공습을 받긴 했어도, 아예 이용이 불가능할 만큼 망가지지는 않았다. 선박연료의 유출은 제한적이었고, 배를 댈 부두들도 멀쩡히 남아있었으며, 각성능력자들을 투입하면 최소한의 기지기능을 복구하는 데 하루면 충분할 것이다.
나는 회의실에서 미군이 보여주는 움직임을 보고받고 실소를 머금었다. 일본이 처음부터 미국에 정보를 공유해주었다면 서로 보조를 맞춰 자연스러운 이동과 재배치를 선보였을 테니까.
즉 미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본 내부의 기밀정보를 빼돌린 것이다.
“역시 우방국에 대한 감청은 기본이군.”
사실 이 모든 혼란은 내가 불씨를 지핀 것이었다.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가 시나가와(品川)의 철도차량기지에 내려앉았을 때, 탐색을 위해 생체전투함 내부로 진입했던 자위대 수색조원들.
내가 수거해두었던 그들의 스마트폰은 일본 정부를 기만하기에 좋은 미끼였다.
생체전투함 안에서 실종된 자위관들의 스마트폰 신호가 저 멀리 남서쪽 바다에서 잡힌다면, 일본 정부는 이를 과연 어떤 의미로 해석할까? 사라진 생체전투함이 높은 확률로 바로 그 지점에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발상에 따라, 고래에게 먹이를 주러 가기 전, 나는 주인을 잃은 스마트폰들을 제트 바이크 편대에 실어 서쪽으로 보내었다. 명목상으로는 구호물품 긴급 조달을 위한 비행이었으니 의심을 받을 일도 없었다.
스마트폰들은 헤이군토(平郡島) 북단의 공장 폐허에서 잠수정에 실려 남하했다. 나는 잠수정 승조원들에게 세토 내해를 벗어나서 한 번, 다이토 제도(大東諸島) 인근 해역에서 다시 한 번 신호를 노출시키라고 주문했다. 전자는 필수였고 후자는 선택사항이었다.
‘공중전투함이 공기를 보충하러 올라왔을 때 전파가 닿았다고 생각하겠지.’
잠비 사업장에서 건조하는 밀수용 잠수정들은 지속적인 개량과 재설계를 통해 성능이 많이 향상되어있었다.
방전 능력자들과 염동 능력자들이 탑승한 최신형 잠수정이 국제사업부 화물선들의 보조를 받아가며 이동하는 경우, 발각당할 확률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경태가 함선들의 위치정보를 보며 말했다.
“이걸로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를 더 안전하게 보관해둘 수 있게 된 것까진 좋습니다만, 일본 정부의 태도 때문에 일이 좀 꼬일 공산이 있겠네요.”
“태도?”
“우리가 표면적으로는 지금껏 GHSS 컨소시엄 명의로 얼마나 협조를 잘 해줬는데, 지들이 다 해먹겠다고 우리까지 속인 거잖습니까. 이 건으로 업무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우리 카와이한 타마히코쨩이 다 회복될 때까지 이 해역에 머무르기가 곤란해질 수 있죠.”
“흠.”
거기까지는 미처 고려를 못 하고 있었다. 듣고 있던 수연이 의견을 상신했다.
“우리가 자위대 재배치 및 미 함대 이동의 내막을 알고 있음을 전달하고, 연극에 어울려주면서 헌터 집단들의 폭주를 부분적으로 억제해주는 데 대한 대가를 요구하도록 하지요. 십중팔구는 받아들일 겁니다. 그쪽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이 없진 않을 테니 말입니다.”
요는 일본 정부에게 우리가 공범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기업이 떳떳지 못한 수단으로 국가기밀을 입수하는 건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일본의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능력의 유무와는 별개로 청렴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전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잖아도 이미 미국에 기밀이 새어나간 마당이다. 우리가 거래를 시도하면 일본 정부는 그냥 벌어질 일이 벌어졌구나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가벼운 끄덕임으로 승인했다.
“그렇게 진행하지. 그보다 중국 쪽 정보는 갱신된 게 있나? 자위대가 미 해군을 따돌린 걸 보면, 핵무기를 제공할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 모양인데.”
생체전투함은 그 가치 때문에라도 함부로 핵을 쓰기 곤란한 표적이지만, 그렇다고 핵 없이 상대하는 건 만용에 다름 아니다. 일본은 국제공조를 통해 영국으로부터 불사암 가공 원천기술을 뜯어낼 수 있으리라 믿고 있을 테니, 간접적인 핵공격으로 생체전투함을 반파시키는 정도는 충분히 고려할 만했다.
한편으로는 고래와의 조우를 경계해야 하기도 하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고래를 죽였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중일지라도, 바보들이 아닌 이상 실제로는 당연히 고래가 살아있을 경우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고로 일본 입장에서 실질적인 핵 투사력을 확보하는 건 필수였다. 일개 언론에서조차 「후나유레」가 고래를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떠들어대는 마당에, 생체전투함을 추적하면서 고래를 경계하지 않을 수가 있나.
‘지금 일본에 전술핵을 제공 가능한 세력은 중국이 유일하단 말이지.’
인도는 너무 멀어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러시아엔 즉각 투사가 가능한 상태로 준비된 전술핵무기가 없는 까닭이다. 오래전에 예비로 전환된 구 소련제 전술핵탄두들은 정밀점검과 재생작업을 거치지 않고선 사용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현재의 러시아는 외교적인 차원에서도 함부로 손을 잡기 곤란한 상대였다. 러시아의 군사력이 카자흐스탄에서 갈려나감에 따라 러시아의 힘에 짓눌려있었던 여러 국가들이 자유와 해방과 한 맺힌 설치(雪恥)를 노래하고, 각지에서 터져 나오는 이런 움직임들을 유럽과 미국이 암암리에 지원해주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중국이라고 해서 외교무대에서의 입지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와 달리 군사·경제적인 위신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수연이 내 예상을 긍정했다.
“예. 동중국해상에서 CTF-W2의 활동을 경계하던 동해함대와 남해함대가 자위대의 움직임에 호응해주기로 약속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핵무장을 갖추고 있다더군요.”
“일본 정부가 대담한 수를 두는구나.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미친놈을 상대로 줄타기를 시도하다니.”
내가 말하는 미친놈은 백악관의 미치광이였다.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일본 정부가 미 해군을 따돌린 것은 미국과 완전히 갈라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리가 없었다. 영국을 압박하는 데엔 반드시 미국의 지지가 있어야 하니까.
다만 공중전투함과 고래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미 함대가 자위대를 무시하며 독단적이고도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으니, 그 너머에 있는 미국 정부에게 항의를 보내는 것일 따름.
미국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명분에 의지하여 군사력을 투사하고 있을 뿐이라, CTF-W2와 관련된 협약들이 효력을 상실한 지금 일본이 중국에게 명분을 제공하면 사실상 막을 구실이 없다. 일본 정부는 그 사실을 미국에게 상기시켜주려는 것이었다.
요컨대 “있을 때 잘해라.”라는 뜻을 점잖게 담아낸 항의행동이다.
어차피 미국과 중국은 영국 문제에 관해선 손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다. 일본 총리는 그런 부분까지 감안해서 위신과 국익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을 터.
외교에서 힘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그게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상대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치광이 파천황만 아니었던들, 나는 일본 정부의 외교 전략에 좋은 점수를 주었을 것이다.
“아마 여론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겁니다.”
수연이 차분한 어조로 하는 말.
“해상자위대 호위함을 노골적으로 위압하는 미 해군 함선의 항행 영상, 그리고 자기네 대사관이 입은 피해가 일본의 피해보다 우선이라고 밝힌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여론이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직 자위관들과 그 가족들 사이의 통화 몇 개가 추가로 유출되면서 기름이 뿌려졌지요.”
“그래?”
“예. 미국도 결국 영국과 비슷한 놈들이다, 미국은 사실 영국과 한패인 게 아니냐, 신주(神州)의 바다에서 귀축영미를 몰아내자 운운하는 소리까지 나도는 판입니다.”
신주는 신(천황)이 다스리는 나라, 즉 일본을 달리 이르는 국수주의적인 표현이다. 일제 시절의 신국사상을 함축하는 표현이기도 하고.
“아직은 그 목소리들이 그리 크진 않습니다만, 일본 정부로서는 앞으로의 미일 관계와 협력을 위해서라도 불씨가 더 커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을 겁니다. 더불어, 이번 기회에 정부의 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회복해보자는 의지도 깔려있겠지요.”
“백악관의 참모들이 균형을 잘 잡아줬으면 좋겠군.”
이는 내 오롯한 진심이었다. 영국을 압박하는 합동전선에 균열이 생겨선 안 되니까.
“아, 참.”
경태가 막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 돌아오시기 전 IMO(국제해사기구)에서 해상범죄 관련 수사협조요청이 들어왔었습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해상범죄 수사협조요청?”
“그 왜 우리가 「해남파 남사 제12선」과 접촉했잖습니까. 그게 알고 보니 IMO 해상안전위원회 산하 「환태평양 통합 해안경비대 기능 네트워크 소위원회(Subcommittee for Integrated Coast Guard Function Network in Pacific Rim)」가 인터폴과 함께 해적 행위 및 인신매매 혐의로 주시하던 배였다고 하더라고요.”
국제해사기구가 관할하는 통합 해안경비대 기능 네트워크(ICGFN)는 과거엔 아덴만이나 서인도양, 아프리카 근해처럼 전통적으로 해적의 위협이 컸던 해역에만 제한적으로 존재했던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초능력을 쓰는 해적들이 전 세계 모든 바다에서 창궐함에 따라, 국제적인 합의에 의해 여러 해역에 걸쳐 보다 강화된 시스템이 이식되었다. 여기서의 강화란 실질적인 집행능력의 강화를 의미했다.
“그쪽에서 뭐라고 하더냐?”
“대단한 건 아니고, 선원들 중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것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던데요. 혹시 있었다면 목격자 증언 채록을 부탁할 수 있겠느냐고. 또 영상이 남은 게 있으면 그것도 공유 부탁한다고 하더군요.”
중국이 행하는 전두엽 절제 수술은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다. 수술 기법이 정교하기도 하거니와, 시술 대상인 각성능력자들의 회복능력이 일반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까닭이다.
그러니 수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몇몇 피해자들의 신병을 확보한다 한들, 피해자들에게 진술능력이 결여되어있는 이상 정황증거로 중국을 압박해보는 정도가 한계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회신했지?”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큰 진술을 해주긴 어렵다고 했죠. 우리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요. 그쪽도 큰 기대는 없었는지 그냥 알았다고 하던데요.”
경태는 이렇게 답하며 어깨를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