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61화 (461/561)

#47. 혼돈과 공황 (7)

내가 고래에게 먹이를 공급하러 가기 전, 경태는 내게 포로 및 전향자들의 보다 섬세한 관리를 위한 정보들을 물었다.

각기 다른 주인들을 섬겼던 기사들 사이에 유의미한 성향 차이가 존재하는지. 그들이 무슨 교리를 믿고 어떠한 전례를 실천했는지. 그들을 공연히 자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그 외에 달리 알아야 할 사항은 없는지 등등.

이 과정에서 섀빙턴 가문의 매우 비위생적인 전례를 들은 경태는, 입을 헤 벌린 모습으로 눈을 깜박이며 충격을 드러냈다.

“어, 그럼, 마스터 섀빙턴은 자기 대소변을 좋아했던 겁니까?”

“아니.”

“하지만 분명 배설물 애호가 있었다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잘못된 이해를 정정해주었다.

“놈의 배설물 애호는 본인이 좋아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미친 병신에게도 제 배설물은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었지. 다만 그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조차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신성한 보물이어야 한다고 믿었고, 제 대소변을 얼굴에 처바르면서 기뻐하는 아랫것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확인하기를 즐겼을 뿐이야.”

“음……. 좀 많이 비뚤어진 신 흉내였다고 보면 되겠군요.”

“그런 셈이다.”

내 말을 들은 경태는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대충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들이 기사라고 생각하는 전향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려면, 형식적으로든 뭐든 새로운 기사단을 하나 만들어서 그들에게 소속감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사단이라…….”

“예. 기사단. 형님께 보다 확실히 받아들여졌다는 증거로 말이죠. 원탁의 마스터들은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가문 기사단을 보유한다고 하셨고, 원탁을 배신하기 전의 크로우허스트에게도 충성스러운 가신단과 기사들이 있었을 테니까요.”

여기까지 말한 경태는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스터 섀빙턴을 섬겼던 기사들은 「골든 샤워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게 어떨까요? 아니지. 보다 품격 있는 학술용어를 써서 「유로라그니아(Urolagnia/배뇨 관련 페티시즘의 통칭) 기사단」이라고 하는 것도 괜찮겠군요.”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마무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라.”

“앗. 마무르…….”

경태는 살짝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어획물 2백 톤의 환적을 마친 중국어선 「해남파 남사 제12선」은 들어왔던 항로와는 다른 경로를 택하여 당 해역을 이탈했다. 전두엽이 손상된 노예선원들은 마지막까지도 고급 선원들의 폭력을 동반한 거친 통제를 따르고 있었다.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인형들처럼.

나는 해저로 내려갈 채비를 갖췄다.

“그럼 다녀오마.”

“옙. 고래여왕님과 조심조심 오붓한 시간 보내고 오십시오, 형님.”

……고래여왕?

나는 경태의 헛소리에 굳이 대꾸하지 않고 파도 아래로 진입했다.

수심 1천 미터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한 해저 선상지(扇狀地)엔 개흙에 파묻힌 생체전투함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 잠들어있었다. 선체에 단단히 물려놓은 공기압축기 호스 다발들은 심해의 압력을 이겨내며 꾸준히 공기를 순환시키는 중이었다.

생체전투함과 신경을 연결한 후, 확장회로를 이루는 조립식 아기들을 각성시키는 데엔 대략 40초 남짓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지향성 음파로 스텔라 포르투나에 신호를 보내자, 부하들은 1톤 단위로 나누어 포장한 냉동 고등어들을 파도 아래로 운반해왔다. 염동력을 쓸 줄 아는 부하들이 화물에 붙어 화물과 오염된 바닷물의 분리를 유지하며 일정 수심까지 내려오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물건을 넘겨받아 동일한 형태로 해저까지 끌어내리는 식이었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조립식 아기들에겐 마법으로 해동시킨 고등어들을 구워서 먹여주었다. 아기들의 위장 연결망은 수백 개의 입이 씹어 삼킨 고등어들을 빠른 속도로 녹여 액화된 연료로 바꾸었다.

나는 연료가 충분히 채워진 시점에서 공기압축기 호스들을 분리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마 고래가 사라지진 않았겠지.’

비록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성공하긴 했지만, 내가 그것만 믿고 지금껏 고래를 방치해둔 건 아니었다.

고래의 은신처 이탈을 방지하고자, 나는 디핑 소나(Dipping Sonar/줄에 달아 내리는 형식의 음향탐지장비)를 탑재한 드론 바이크 편대를 출격시켜 수시로 액티브 핑을 쏘도록 지시해놓았다. 은신처 주변 해역에 음향의 창살을 둘러친 것이다.

파장이 긴 저주파는 심해의 바닥까지 닿고도 남는다. 비록 물리적인 장애물은 아닐지언정, 고래는 해저면에 반사된 소리를 듣고 내가 경고했던 수면 위의 위협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었다.

더불어 드론 바이크 편대의 수색 정보는 해상자위대와 미 해군 측에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이는 고래가 은신한 해역으로 엉뚱한 세력이 진입하는 걸 예방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GHSS 컨소시엄의 높은 신인도에 정비례하는 효과였다.

무음에 가까운 수중항행으로 고래의 은신처까지 이동하는 데엔 20분 조금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는 내가 파놓은 공동에 얌전히 남아있는 고래의 모습을 보고 신경을 이완시켰다.

반대로, 고래의 신경계엔 가벼운 아드레날린의 흐름이 나타났다.

이 긴장은 내가 생체전투함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해소되었다.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의 마력장 특성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융합체 안에서 반드시 내가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고 여겼던 모양.

「휘이- 위잇? 우우-」

고래가 무언가 노래를 부른다. 제 염동력으로 물의 진동 범위를 차단해놓은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였다. 하여간, 타고난 지능 수준만큼은 결코 사람의 아래가 아닐 동물이었다.

나는 고래가 보는 앞에서 대량의 냉동 고등어들을 꺼내어 해동시켰다. 그러곤 아직 써본 적이 없는 새로운 어휘를 시험했다.

「먹이」

그와 함께, 큰 동작으로 무언가를 먹는 시늉을 반복해서 해 보였다.

「먹이」 「먹이」 「먹이」

되풀이되는 내 발화를 들으며 커다란 눈을 굴려 나와 고등어 더미를 번갈아 살핀 고래는, 이내 제 염동력을 활성화하여 고등어들을 후루루룩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력회로 곳곳이 봉해져 약해진 염동력으로도 이 정도는 장난처럼 해낼 수 있는 범위였다.

죽은 생선들의 비늘이 해저공동의 인공조명을 반사하여 반짝이는 빛의 물결을 이룬다. 이는 마치 되살아난 고등어들이 고래의 입을 향해 집단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고래는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3톤에 달하는 고등어를 다 먹어치워 버렸다. 사람이든 바다짐승이든 몸이 축났을 때 밥을 잘 먹어야 하는 건 같겠으나, 보는 입장에선 저게 저렇게 급히 처먹어도 탈이 안 나나 싶을 지경이었다.

「위잇- 위잇- 우우우웃-」

잘 먹었다는 인사인지 뭔지, 의미를 모를 노래를 부르는 고래.

앞서 신경을 차단하여 반신불수를 만들어놓을 때 통각 또한 많은 부분이 차단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남아있는 아픔들이 가벼울 리가 없다. 당장 내 눈에 들어오는 신경신호의 물결에도 적잖은 고통의 색채가 섞여있었다.

하지만 고래는 기분이 썩 나빠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재회하기 전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는 훨씬 안정된 생체신호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이 문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하고 도쿄를 들이쳤던 지성체의 대범함인가 싶었다.

나는 한껏 부푼 고래의 위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오랫동안 소화되지 않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고등어 무더기에 짓눌려 부대끼는 게 눈에 띄긴 했지만, 식탐을 부리다 한 번 탈이 났던 춘식이처럼 급체를 한다거나 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치료를 해줄 차례였다.

「아픔」 「아니다」

내가 진동으로 노래를 빚자 고래 역시 짧은 노래로 화답했다.

고래의 응답이 알았다는 의미인지 고맙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모두 녹음해서 돌아갈 요량이었다. 내 발화(發話)와 겹치는 부분이 없는 걸 보면 전처럼 문법 오류를 정정해주려는 건 아닌 듯했다. 애당초, 고래의 언어에 과연 치료행위를 뜻하는 단어가 있을지부터가 의문이기도 하고.

나는 생체전투함의 확장회로에 「생명」과 「침식」을 혼합 장전한 후 고래의 중독과 부상을 돌봐주었다. 아무래도 부상보다는 독성물질 중독 쪽이 치료가 더 까다로웠다.

‘간과 신장을 하나씩 더 만들어볼까?’

일찍이 그레이스가 내게 「태내성형」의 노하우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 미친년은 나더러 내 몸을 마력으로 뒤틀어 자궁을 달아보라고 권한 바 있었다.

발상의 광기를 떠나 가능 여부만을 따진다면, 그것은 마법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범주에 드는 일이었다. 무너진 호르몬 균형을 안정화하고 경과를 지켜보는 데 긴 시일이 소요될 뿐. 없던 장기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는 순식간에 끝내버릴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다.

생체전투함의 지배권을 두고 다툴 때 무수한 눈과 귀와 입들을 빚어가며 감각을 자유롭게 확대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따라서 고래에게 간과 신장을 하나 더 달아주는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것들은 생식기관이 아니니 호르몬 균형에 미치는 영향이 경미하고, 길어봐야 사나흘 가량 쓰다 버릴 외장형 장기이므로 공들여 만들 필요도 없다.

일단 외장형 해독기관들을 달아놓기만 하면 내가 없는 동안에도 제한적인 독성물질 여과가 이루어질 터. 치료기간을 줄이는 것보다는 고래를 안정적인 상태로 만든다는 데 의의가 있는 일이다. 그래야 같은 치료기간을 거쳐도 더 많은 유대감이 쌓일 테니까.

나는 고래의 등 위로 올라갔다.

「휘이? 위우웃-?」

고래는 제 등을 볼 수 없다. 내가 제 사각지대로 사라지자 고래가 짧고 높은 음계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수술에 방해가 될 정도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움직이기가 불편한 몸이기도 하거니와, 생체전투함과 내 몸을 연결하는 신경다발이 고래의 시야 안에서 간접적으로 내 위치를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가 제게 해를 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정도는 있을 것이었다.

‘썩은 내가 조금 나는군…….’

고래의 살갗엔 죽은 따개비와 거북손 따위가 듬성듬성 붙어 부패해가는 중이었다. 본래는 훨씬 더 많은 수가 붙어있었겠으나, 도쿄의 하늘을 가로지를 때 고래가 둘렀던 물살의 수압과 자위대가 퍼부은 화학작용제의 효과로 대부분 떨어져나갔을 것이다.

나는 심해수로부터 추출해낸 순수한 물로 고래의 피부를 고압 세척한 후, 정순한 마력을 쏟아부어 살균을 진행하고,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침식으로 고래의 마력장을 중화한 뒤 두꺼운 살을 쭉 잘라 갈라지게 만들었다.

「서어어어억-!」

피부의 두께가 두께인지라 잘리는 소리가 꽤나 묵직하다. 이미 신경을 끊어놓은 부위인 만큼 별도의 마취는 불필요했다.

전율하는 거인의 술식, 물에 대한 구속력은 수분 함량이 높은 혈액에 대해서도 유효했다. 다소 연비가 떨어지긴 해도 수술 중 피가 새는 걸 막는 데엔 무리가 없었다. 얇은 염동장막으로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면 출혈이 전무한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고래의 동맥과 정맥은 당구공을 집어넣어도 아무 이상 없이 피가 흐를 굵기였다. 나는 동맥과 정맥의 한 부분을 길게 연장시켜 몸 밖으로 빼낸 후, 그 중간의 세포들을 씨앗으로 삼아 새로운 장기들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휘우우우우- 휘우- 휘우-」

고래는 때때로 의미 모를 노래를 불렀다. 의미는 당연히 알 수 없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위험」 「아니다」

「아픔」 「아니다」

「아픔」 「아니다」

「아픔」 「아니다」

이쯤 되면 「아픔」 「아니다」 정도는 치료행위를 진행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법도 했다. 고래는 조금 답답한 기색으로 참을성을 발휘해주었다.

고래가 원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간은 평균적인 성인 남성 다섯 명의 육체를 한 덩어리로 뭉쳐놓아야 비슷해질 질량이었다. 신장은 그보다 작아 성인 남성 한 사람보다 조금 더 무거운 수준이었다.

그것들보다 더 큰 새 장기들과 별도의 노폐물 배출경로를 완성하는 데엔 거의 40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고래의 소화 속도에 맞춰 양분을 뽑아내야 했던 탓이었다.

나는 완성한 임시 장기들을 혹과 유사한 피부주머니로 감싸 고래의 몸 바깥에 달아놓는 것으로 수술을 마무리 지었다.

덤으로, 끊어두었던 신경과 막아두었던 마력회로를 조금이나마 정상화해주었다. 신경과 회로가 트이는 순간, 고래는 높은 음계의 노래로 반응했다. 아마 기쁨과 놀라움이 섞인 표현이겠지 싶었다.

‘희망을 확실하게 체감시켜줘야 앞으로도 얌전히 통제에 따르겠지.’

고래의 등에서 염동비행으로 내려오자 고래의 시선이 내 움직임을 좇는다. 나는 그런 고래 앞에 새로이 3톤 어림의 고등어들을 꺼내어 해동시켜놓았다.

조금 전의 수술을 통해 열량과 영양을 소모하기도 했고, 원래부터 깨어있는 시간의 90%를 먹이활동에 쓰는 동물이며, 소화흡수가 빠른 각성체이기도 하니, 이렇게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서 먹어치울 터였다.

나는 전과 같은 방식, 고래로부터 문법 교정을 받았던 세 개의 노래로 고래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 당시의 상황에 기초하여 추정한 각 발화(發話)의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너는 여기에 있어라.」

「너는 여기서 쉬어라.」

「너는 여기에 있으면 안전하다.」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낯선 감정의 색채로 신경계를 물들인 채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던 고래는, 짧은 침묵 끝에 “알았다.”로 추정되는 예의 그 노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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