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60화 (460/561)

#47. 혼돈과 공황 (6)

전향자들에 대한 심문을 일단락 지을 즈음, 수연이 수배한 첫 번째 원양어선이 GHSS 컨소시엄의 작전 수역으로 진입했다.

수배하는 과정에서 미주의 조력을 받았다는 중국 선적의 원양어선은 갑판 아래 냉장선창의 절반 이상이 비어있는 상태였다. 기본적으로는 정해진 조업일수를 다 채우기도 전에 새로운 계약을 맺은 탓이겠지만, 해양각성체들의 영향으로 어구(漁具)와 선원이 상하는 일이 잦아진 요즘은 선창을 다 채워서 돌아오는 어선 자체가 드물 것이기도 했다.

나는 녹슨 뱃머리에 적힌 선박의 이름을 확인했다.

「해남파 남사 제12선(海南派 南沙 第十二船)」

선창이 다소 비어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어선은 근 2백 톤에 달하는 고등어 및 기타 어종들을 실어오고 있었다. 비각성체 혹등고래가 하루에 섭취해야 하는 최저 열량이 대략 백만 kcal 가량이라 하니, 빠른 회복을 위해 매일 그 세 배를 먹인다손 치더라도 지금 오는 물량만으로 서너 달 동안 고래를 굶기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는 달리 쓸 곳이 없을 때 성립하는 계산이었다. 한낱 낚시꾼들도 여러 개의 낚싯대를 한꺼번에 늘어놓곤 하는데, 고래를 유인하는 시늉을 하면서 너른 바다 곳곳에 미끼를 뿌리지 않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고로 지금 들어오는 물량의 과반은 눈속임을 위해 낭비해야 할 것이었다. GHSS 컨소시엄과 계약을 맺은 하도급 업체들에게도 물량을 배분해주기로 되어있다.

단순히 죽은 생선들을 뿌리는 것만으로는 고래를 유인하는 모양새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하도급 업체들은 원청인 우리의 지시에 따라 그럴싸한 낚시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자연각성체들이 그물에 잡힌 고기들을 빼먹는 건 흔히 벌어지는 일. 그런즉 그물에 미끼들을 담아 소형 고속선이나 제트 바이크 등으로 끌고 다니면 비로소 굶주린 고래를 유혹하는 흉내가 완성된다.

‘조립식 아기들에게 이유식도 만들어줘야 하는데.’

기왕 확보한 원양어선들은 생체전투함에 열량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전용할 수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고래가 먹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생체전투함이 먹어치울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의미에서 수연이 계약을 완료한 3척은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탄수화물의 공급원을 따로 찾긴 해야 할 테지만.

「부우우우우-」

중국어선 측에서 긴 경적을 울렸다. 본디 4~6초 동안 이어지는 경적은 방향을 전환한다는 신호지만, 낡은 대형어선은 딱히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순전히 인사를 대신하기 위해 울린 경적인 모양이었다.

경태가 혀를 찼다.

“거 참……. 배짱이 좋은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군요.”

세계 최악의 해양각성체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해역에 들어와서 괜한 소음을 발하고 있으니, 경태 녀석이 한심하게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쪽에선 물건을 넘겨받기 위해 일본 선적의 소형 어선들을 준비해두었다.

일본엔 일찍부터 조업을 포기한 채로 방치되어온 어선들이 많았고, 이번에야말로 고래가 죽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악착같이 버텨왔던 선주와 선사들 역시 오늘 아침 줄줄이 파산을 맞이했다. 따라서 냉장선창을 갖춘 소형 어선들을 하청업체들 몫까지 마련하는 데엔 딱히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선들 간의 환적과 분배는 해상에서 이루어졌다. 각성능력자 선원들이 힘을 발휘하는 환적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나는 경태 녀석이 내려온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지켜보았다. 숙면을 취했다고는 해도 여섯 시간 가량을 잤을 뿐이라, 졸음을 몰아내며 숨을 돌릴 여유가 필요했다.

나란히 서서 중국 선원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경태는 행동거지가 다소 둔한 선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친구들, 아무래도 바보수술을 받은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다.”

내가 제 추측을 확인해주자 경태가 가볍게 감탄했다.

“과연……. 전두엽을 절개하면 사람 표정이 저렇게 변하는구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좀 신기하네요.”

경태 녀석이 말한 바보수술(笨蛋手術)은 중국이 자국 내 소수민족 각성능력자들에게 조직적으로 행하고 있는 전두엽 절제술(Prefrontal lobotomy)의 별칭이었다. 물론 중국 공안과 국안부에선 바보수술이 아니라 순화수술(純化手術)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당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는 소수민족 각성능력자들은 죽이기엔 아까운데 활용할 방법은 마땅치 않은 인적자원들이었다.

그래서 중공의 제국주의자들은 궁리 끝에 이런 발상에 도달했다.

「이능(异能)을 보유한 불온분자들의 전두엽을 부분적으로 잘 파괴하면, 자아의식이 희미해진 초능력 노동자들을 양산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같은 발상으로 진행된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바로 순화수술이다.

순화수술을 받은 각성능력자들은 고등한 사고나 복잡한 지시의 이행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노동자로, 또 인간 발전소에 동력을 제공하는 동력원으로 쓰기엔 이런 바보들이 최고였다. 특히 후자의 경우엔 그냥 멍하니 서서 시키는 대로 불을 빚고 전기를 뿜어내기만 해주면 그만이니까.

우리가 최초로 입수한 국안부 보고서엔 ‘생산공정’의 수율을 60%까지 끌어올렸다는 내용이 자랑스럽게 포함되어 있었다. 전두엽의 어디를 어떻게 파괴해야 쓸 만한 노예가 만들어지는가에 대하여 그만큼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했다는 의미였다.

이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각성능력자들의 몸에 폭탄이나 극독 캡슐을 심는 쪽이 더 편하지 않나?’

원격 제어가 가능한 처형수단을 체내에 박아놓으면 효율과 비용 양면에서 우수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압제와 독재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 집단인 중공 빨갱이들이 이 간단한 발상을 검토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추가로 입수한 내부 문건들에 따르면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로 반려된 구상이었다.

「당이 통제해야 할 반동적(反动的) 이능보유자들의 숫자는 장차 수백만에 달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만한 규모의 불순분자들을 원격 제어로 다스리려면 대대적인 망락계통(네트워크 시스템) 구축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빨갱이들이 우려하는 건 쿠데타의 가능성이었다.

「누군가에게 이 망락계통의 제어 권한을 일부라도 탈취당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가 누구이든, 망락에 묶여있는 모든 이능보유자들을 즉각 자신의 사병집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당과 국가에 부당한 원한을 품고 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초능력 반동분자 무력집단의 탄생이다.」

또한 근래 당한 일들이 많은 중공 지도부는 외부로부터의 해킹과 테러 위협에 대해서도 한껏 예민해진 상태였다. 문건에서도 광저우와 베이징의 사례를 언급했다.

「광저우 소요 당시엔 해군의 내련망(内联网/인트라넷)에 전뇌병독(电脑病毒/바이러스)이 침투하여 다수의 호위함들이 무력화된 바 있고, 지난 9월 중추절엔 보안이 가장 철통같다고 자부했던 베이징에서조차 물리적인 방식의 계통침입(해킹)에 의해 일부 폐쇄회로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중국의 망락보안을 위협하는 세력은 너무나 많고, 특히 웨이우얼(维吾尔/위구르) 공포분자들과 그들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서방세력의 전뇌침투역량은 백 번을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을 위협이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이 대대적인 뇌수술 시스템의 구축이었다.

「사회주의 조국의 안보가 달린 사안에 경제성을 고려한 타협이 있어선 안 된다. 순화수술에 기초한 대규모 이능인력공급체계는 초기 구축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이 성숙해질 때까지 높은 불량률을 감수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국가안보의 측면에선 이보다 더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 없다.」

문건의 작성자는 우방국들의 투자를 유치하여 초기 구축비용을 줄여보자는 의견을 첨부해두었다. 반정부적 소수민족 각성능력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방국들, 대표적으로 미얀마 같은 나라는 이 프로젝트에 깊은 관심을 보이리라고.

여기에 사용된 기술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과거에도 뇌수술을 통해 불순분자들을 순화시키려는 연구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때는 무가치한 바보들만 만들어낼 뿐이라는 이유로 중단되었던 연구가 지금에 이르러 새로운 계획의 밑천이 된 것이다.

여하간, 이러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덕분에, 지금의 중국은 여러 산업분야와 에너지 공급 인프라에 터무니없이 단가가 낮은 각성능력자 노동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갓 공급을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으로 중국 내 1·2차 산업의 가격경쟁력이 계속해서 높아져만 갈 것은 자명했다.

거짓 대자들에게 듣자니, 중국 국가주석은 이를 이능굴기의 성과로 포장하여 지지기반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평범한 인민들은 가정용 전기를 일정 선까지 공짜로 쓰게만 해줘도 열광적인 지지로 화답할 터였다. 호전될 경기와 낮아질 생활물가는 또 어떠한가.

“형님.”

경태가 내 주의를 환기했다.

“이 틈에 라일라 양에게 전화나 한 통 해주시죠.”

“라일라에게?”

“예. 백이면 백 형님 걱정에 훈련은커녕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중일 겁니다.”

이번 고래사냥에 동행하지 않은 라일라는 본사에서 침투와 잠입, 위장활동에 특화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장차 라일라를 주술의 장막 너머로 침투시킬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라일라의 존재를 모른다. 그리고 칠각기사단의 역량은 주술사 왕의 동군연합 전반에 분산되어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내가 황금기의 눈과 내 조직의 역량으로 칠각기사단의 거점과 그레이스 복제체들의 활동영역을 몇 개만 파악하면, 거기서부터 라일라가 침투해 들어가 중요한 정보를 캐내거나 그 밖의 이득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게 내 기대였다.

나는 경태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웨인!」

스마트폰 액정에 뜬 라일라는, 내 모습을 보기 무섭게 두 눈 가득 눈물이 영글었다.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야……. 다친 곳은 없어?」

“보다시피 멀쩡하다.”

내가 이렇게만 대꾸하자, 경태 녀석이 스마트폰 카메라의 사각에서 요란한 손짓과 함께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나는 경태가 권하는 대로 부드러운 말을 더했다.

“……네가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 전화했다. 내 염려는 말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교육훈련 잘 받으면서 기다리고 있도록 해라.”

「응! 신경써줘서 고마워!」

라일라는 눈물을 닦으며 훌쩍거리는 와중에도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다음 순간,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라일라 뒤의 배경에서 김춘식이가 달려왔다. 허공을 연달아 걷어차며 지그재그로 튀어오는 입체기동이었다.

춘식이는 액정 속의 나를 보고는 끄응 끙-거리며 허공에서 몸을 굴려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강화된 청각으로 내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품새였다. 거듭 몸을 뒤집어가며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검은 개는 라일라의 머리를 밀어내고 저가 화면을 독차지하고 싶은 듯했다.

「아잇, 춘식아! 진정해!」

스마트폰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그레이스 복제체와 유기견이 씨름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기묘한 감정이 심중을 스쳤다.

액정을 슬쩍 들여다본 경태가 빙그레 웃었다.

“형님. 춘식이를 너무 예뻐하시는 것 아닙니까?”

“예뻐해? 내가?”

“예. 저 정도면 세계 도그 어질리티(Dog Agility) 대회에 나가도 바로 각성체 경쟁 전 종목 챔피언을 먹을 기동력인데, 오죽이나 예뻐하셨으면 저렇게까지 회로를 개발해주셨을까요.”

나는 가볍게 눈을 찌푸렸다.

‘이상한 오해를 하는군.’

그저 쓰다듬을 일이 많았고, 쓰다듬는 김에 회로를 개발해주었을 뿐이다. 중요한 부하에게 준 선물이니,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손을 써놓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춘식이를 예뻐한다는 건 명백한 오해였다.

그러나 굳이 오해를 정정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울 터라, 나는 다시금 화면 저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김춘식이. 앉아.”

내 말 한마디에 소란이 뚝 끊어졌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개가 천연덕스러운 낯짝으로 헥헥대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후, 다시 화면의 중앙으로 돌아온 라일라는 잠깐 사이에 진이 빠진 표정이었다.

「평소엔 내 말도 잘 듣는데…… 웨인의 목소리가 오랜만이라 많이 흥분했나 봐.」

스마트폰을 염동력으로 띄워놓고서 숨을 고르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한 라일라는, 이어 내게 간밤의 일을 물었다. 나는 대마법사 둘을 연달아 살해하고 생체전투함을 노획한 경위를 간략하게 줄여 들려주었다. 업무정보 공유에 가까운 건조한 사실들의 나열이었다.

그러나 라일라는 이 짧고 건조한 이야기만 듣고도 주먹을 꼭 쥐고 눈을 빛냈다.

「웨인은 정말 굉장해.」

화면 너머에서 나를 보는 두 눈엔 알기 쉬운 존경과 호의가 듬뿍 녹아있었다.

「나와 내 자매들에게, 원탁의 대마법사들은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은 두려움의 근원이었어. 어머니는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나나 자매들은 그때마다 알았다고 대답하면서도 그 목표에서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지.」

“그랬나?”

「응. 그도 그럴 게, 우리의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인 어머니조차도 원탁을 상대로는 언제나 숨고 자취를 지우는 걸 우선할 뿐이었는걸. 어머니가 마스터 엘름스테드를 살해한 건 최초의 자매가 탄생하기도 전의 일이었고……. 그러니, 우리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을 수밖에.」

그런데, 라며 라일라는 말을 이었다.

「당신과 만나면서 크로우허스트와 웨스트버튼이 당신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뒤로 지금까지 대마법사 셋이 추가로 유명을 달리했어. 전부 당신 한 사람이 해낸 일이야.」

로더필드는 칠각기사단의 보조가 없었으면 잡기 어려웠을 사냥감이다. 그러나 라일라는 그런 사실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인식의 감정적 편향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이었다.

「마치 내가 알던 세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느낌이 들어. 당신만 생각하면, 나를 계속해서 짓눌러온 두려움들이 더는 두렵게 느껴지지 않아. 원탁의 대마법사들만이 아니라, 그토록 엄하고 무서웠던 어머니까지도.」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쉰 라일라는, 곧 다시 눈을 뜨고 달뜬 열기를 머금은 어조로 말했다.

「웨인은 내 새로운 세상이야. 나, 당신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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