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혼돈과 공황 (4)
나 같은 대마법사라도 불사암을 도구화하는 데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질량이 커지면 커질수록 원하는 기능만을 발휘하도록 유도하기가 어려워지고, 출력 그래프 또한 제멋대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무엇보다 자꾸만 스스로 변이를 거듭하는 탓에 기왕 유도해낸 기능을 장시간에 걸쳐 고정시킬 수도 없다.
‘웨스트버튼 그 새끼가 발상 하나는 좋았지.’
웨스트버튼은 작은 불사암 덩어리들을 시체인형의 마소 과급기로 쓰는 응용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훌륭한 발상이고 감탄스러운 지혜였으되, 그조차도 시체인형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함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로 지금으로선 딱 이 정도가 대마법사에게 가능한 불사암 활용의 한계선이다. 미래엔 또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는 이야기.
그런즉 대마법사도 아닌 자들이 불사암의 기능을 고정시켜(정형화) 산업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한다는 건 문자 그대로 꿈속의 꿈이라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영국과 원탁이 합작으로 설립한 위장기업들의 성공사례는 그 거짓된 광채로 온 세상을 다 눈멀게 만들어버렸다.
영국의 옥타 테크가 단기간에 성공사례를 내놓음에 따라, 불사암 정형화의 기술적 난이도가 얼마든지 도전해볼 만한 수준이라는 착각이 들불처럼 번져나간 것이다.
혐오스러운 섬나라가 전 세계에 풀어놓은 독이었다.
지금 불사암 정형화를 연구하는 기관이나 기업들은 불사암의 기능 유지시간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겉보기만으로는 플라즈마 유지시간을 초 단위로 늘려가며 경쟁을 벌이던 각국의 핵융합 프로젝트들과 비슷한 양상이어서, 대중과 정치가들은 비전문가들 특유의 ‘모르면서 안다고 느끼는’ 착각 속에 새로운 시대의 기술경쟁을 진실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경태는 이를 두고 가볍게 평했다.
“그 왜 마법이 돌아오기 전 기후위기 대응이 심각한 안건이었을 때, 많은 정치인들이 막연한 이해만 가지고 뜬구름 잡는 수준의 재생에너지 정책들을 수립했던 거랑 비슷하죠 뭐. 기관투자자들이야 돈을 빨아들일 수만 있으면 알맹이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은 망령들이고요.”
사기를 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전 세계에서 닥치는 대로 불사암 덩어리들을 매입하고, 그것들을 살찌우면서 쓸 만한 샘플이 나오기를 기도한다. 그러다 기도가 통해서 산업적으로 유의미한 능력과 출력을 품은 불사암이 나타나면, 그걸 가지고 공개 시연 행사를 열어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우리 회사가-또는 연구소가-이토록 진보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노라고.
말만 연구개발일 뿐 이렇게 운에만 의지하는 제조방식은, 지난날 핵폭탄 파란 고양이를 빼돌리고 나서 경태가 가르쳐주었던 요즘 세대의 유행어 ‘기도메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복권을 긁는 것과 차이가 없다.
어쨌든, 초 단위의 경쟁을 벌였던 핵융합에 비해, 기능 유지 시간이 평균적으로 일 단위인 불사암 정형화 표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강한 현실화 가능성을 느끼도록 해주는 장치였다.
남은 건 뉴턴도 계산할 수 없었던 광기의 축제를 벌이는 것뿐.
그저 IT 관련 기업이기만 하면 무조건 주가가 폭등했던 닷컴버블 때와 같이, 불사암 가공업 관련 기업들은 거의 반년여에 걸쳐 연일 신고가 갱신 행진을 이어왔다. 수백 수천의 테라노스(Theranos) 워너비들이 상식적인 검증도 없이 투자금을 빨아들여왔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그러한 거품의 8할이 런던 증시에 몰려있었다. 영국 국적의 기업이라고 하면 프리미엄이 붙고, 영국정부와 계약을 했거나 옥타 테크의 협력사인 경우엔 또 프리미엄이 붙었기 때문이다.
이 거품이 꺼지면 당연히 책임론이 비등할 수밖에 없다.
돈을 잃은 투자자들은 일본인들만큼이나 강렬한 분노를 드러낼 테고, 각국의 정치인들은 경제지표 악화의 책임을 모면하고 유권자들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더욱 격렬하게 영국의 죄업을 성토하겠지.
경태가 말했다.
“잘만 하면 이번에 영국의 상임이사국 지위도 날아가지 않을까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부분적으로 긍정해주었다.
“기대해 봐도 좋겠지. 미국 대통령은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니까.”
상임이사국 자격 박탈은 이미 대만의 전례가 존재한다.
유엔 헌장에 관련된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힘의 논리로 진행되었던 당시의 투표에서, 영국은 미국과 대만의 뒤통수를 치고 찬성표를 던졌던 나라였다. 그러니 실제로 영국이 상임이사국 지위를 잃는다면, 자기가 만들어놓은 전례에 자기가 당하는 흥미로운 꼴이 될 것이다.
영국이 상임이사국 자격을 잃는다는 건 곧 미국이 영국을 완전히 버린다는 뜻이다.
내게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한 사실이었다.
‘미국과 영국이 갈라지면 영국의 정보역량은 심각하게 저하될 테니까.’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영국의 감시능력은 여전히 어지간한 국가보다 우월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보다는 훨씬 더 활동하기가 편해지겠지. 특히 주술의 장막 너머에 대한 감시엔 결정적인 균열이 발생할 것이다.
경태 녀석이 빙글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 빅 사이즈 할아버지는 자기 보좌관한테 나토 탈퇴하면 안 되냐고 진지하게 물어봤다는 사람이니, 파이브 아이즈라고 해서 딱히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진 않네요. 형님 말씀대로 기대를 걸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군사와 첩보 양면에서 거의 한 몸처럼 얽혀있는 관계다. 만약 이 관계를 청산한다 치면 미국으로서도 유무형의 손해가 막심할 것이었다.
그러나 백악관 미치광이는 오직 당장의 경제적인 이익만을 중시하는 배금주의의 화신이다. 이 비범한 광인에겐 범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개연성이 있었다.
영국이 보유한 핵이 강력한 억제장치이긴 하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의 테두리 바깥에도 엄연히 다수의 핵보유국이 존재하고 있지 않나.
“그레이스는 당연히 침묵하고 있겠지?”
“예.”
혈관에 각성제의 색채가 도는 수연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주술사 왕의 영향력 안에 있는 여러 주술사들과 국가수반들이 영국을 비난하긴 했지만, 그레이스 본인은 주술사 왕으로서 아직 어떠한 입장도 밝힌 바가 없습니다. 관련하여 형님의 연락을 기다린다는 통지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은 더 기다리지 말라고 전하도록. 연락은 포로들을 심문하고 고래의 상태를 더 안정시킨 다음에나 할 일이다.”
“알겠습니다.”
“사라진 고래와 관련해서는 어떤 말들이 나오고 있나?”
“키요우타마히코의 실종에 대해서는 상반된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고래가 살아서 달아났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고래의 유해를 특정 세력이 몰래 빼돌렸다는 주장입니다. 뒤쪽에서 말하는 특정 세력의 후보군엔 고래보다 먼저 사라진 공중전투함과 그 배후조종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후조종자 설은 현재로선 음모론에 가깝지만 말입니다.”
“주류는 어느 쪽이냐?”
“어느 쪽도 주류라고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대중과 시장의 반응은 고래가 살아있다는 쪽으로 더 기울어있더군요. 공포에 의한 편향으로 보입니다.”
태블릿으로 열람 가능한 자료 중엔 일본 총리가 직접 발표한 브리핑이 포함되어있었다. 각국 기자들로부터 고래가 죽은 게 맞느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받은 총리는, 나중엔 이를 악물고 거의 미치기 직전인 표정으로 되뇌었다.
「바다의 신…… 죽였다고…….」
자료는 실시간으로 갱신·추가되고 있었다. 일본의 어느 방송 채널은 간밤의 참화를 피한 아라카와 강변에서 액신(厄神)을 진정시키기 위한 신토 제례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례에 참석한 어느 여성은 엉엉 울면서 기도했다.
「고래신님……. 이제 그만 죽어주세요……. 설령 저희가 잘못을 했다손 쳐도, 이만큼 벌을 받았으면 됐잖아요……. 모두가 이렇게 빌고 있으니까, 제발 이제 좀 죽어주세요…….」
물 건너 한국에선 대사관을 불태울 기세의 시위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대사관을 둘러싼 군경은 시위대의 압력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였다. 시위대의 한 사람이 커다란 피켓에 니케이 지수와 모 일본기업 주가의 폭락 그래프를 그려놓고 위아래로 붉은 글씨를 써놓은 게 눈에 들어온다.
「영국아! 이게 주식이냐! 일본시장 살려내라 씨발럼아!」
시위는 영국 본토에서도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초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쪽의 시위들은 종교인들이 주축이 된 경우가 많아 보였다. 혹은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기에 단일 세력으로 뭉치기 유리한 종교인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거나.
버킹엄 궁전과 국회의사당 앞에서, 총리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10번지 진입로의 철문 바깥에서, 넬슨 기념탑이 서있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운집한 서로 다른 시위대들은 한결같은 공포와 그 공포로부터 싹튼 분노를 드러냈다.
「정부는 즉시 해명하라! 저 사탄의 피조물 같은 공중전함은 어떤 경위로 탄생한 것인가?」
「몰랐다는 소린 집어치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면, 정부가 투자하는 프로젝트마다 족족 성공을 거둔 게 설명이 안 되잖아!」
「총리는 악마숭배자다! 사악한 보수당이 영국을 사탄에게 바치고 지옥의 지혜를 구한 게 분명하다! 정부는 당장 내각을 해산하고 내각 구성원들과 옥타 테크 경영진의 악마숭배 혐의를 조사하라!」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혼란상이었다.
특히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일본정부가 주일 영국대사관의 경비를 철통같이 강화한 것이었다.
대사관이 침범을 당하면 그만큼 영국에게 보상을 깎을 명분을 내어주는 셈이다. 대사와 그 가족, 또는 대사관 직원들이 죽거나 다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일본정부가 간밤의 재난을 겪고서도 냉정한 판단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흡족했다. 이런 정부라면 앞으로도 합리적인 계산과 추론을 통해 이용해먹을 수 있을 터이므로.
수연이 물었다.
“고래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형님께선 혹시 고래를 길들이실 생각이십니까?”
“한번 시도는 해보려고 한다. 마츠오는?”
“고래가 하늘로 날아오를 때 실신한 후 지금까지도 정신을 거의 못 차리고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심신이 소모되어있던 차에, 극도의 긴장과 흥분으로 탈진해버린 듯합니다.”
“생명엔 지장이 없고?”
“물론입니다. 마츠오가 제공한 언어지식이 쓸모가 있었습니까?”
“그래. 최소한의 소통이 성립하더구나.”
경태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내게 구조를 받고 나서도, 마츠오는 불면증과 경미한 신경쇠약 증상을 보여 왔다. 부모님에 대한 걱정, 오랜 따돌림과 괴롭힘 및 피랍 경험 등이 남긴 정신적 외상, 당장 우리가 피난처 제공을 중단하면 자기 한 몸 누일 데도 없는 불안한 현실 등이 원인일 것이었다.
“그럼 마츠오를 준 조직원으로 포섭하는 쪽으로 진행할까요?”
“가능하다면 그리해라. 그보다, 고래에게 급양을 해줄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염려 놓으십시오. 태평양 남서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원양어선 세 척을 수배해놓았고, 추가적인 수배가 진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벌써?”
“예. 고래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바로 지시를 내렸으니까요. 가장 빠른 배는 1시간 내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참으로 기민한 판단력과 행동력이었다. 정신이 돌아온 고래에겐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급양을 해주기가 조금 곤란하여 대안을 궁구하고 있었건만, 이미 손을 써두었을 줄이야.
“지금 이 바다로 들어오겠다는 어선이 있다는 게 의외로군.”
“돈을 좀 썼습니다. 기존 계약의 파기에 따른 위약금과 위험해역 진입에 필요한 해상보험료 전액을 부담하고, 선주 측엔 감가상각을 고려한 3년 치의 용선료와 제염비용을, 어업회사 측엔 본래 예정되어있던 공급가의 다섯 배를 지불하는 조건이었지요. 선원 1인당 1만 달러씩의 위험수당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비용 따윈 아무래도 좋아. 한데, 무슨 구실을 대어 눈속임을 했지? 우리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을 텐데?”
“대외적으로는 먹이를 풀어 고래를 유인해볼 계획이라고 둘러대었습니다. 고래가 아직 살아있고, 또 봉쇄선 안에 갇혀있다고 가정하면, 허기가 극심해졌을 때 미끼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지요.”
“훌륭하다. 일 처리에 빈틈이 없구나.”
내가 칭찬을 담아 바라보자 수연은 겸손하게 눈을 낮추었다.
“다른 수렵기업들과 엽사집단들, 심지어 일본정부까지도 제각기 미끼를 구하고 있는 만큼, 저희의 행동은 쉽게 묻힐 것으로 판단합니다.”
“좋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지시사항을 입에 담았다.
“국안부의 내 가짜 대자들에게 러시아 내에서 진행 중인 천인계획(千人计划)의 정보를 요구해라. 그리고, 임마누일에겐 내가 예의 그 백지수표를 쓰고자 한다고 전하도록. 이번 일엔 브라츠키 크루그의 힘이 필요할 거야.”
“공중전투함을 수리하려 하십니까?”
“그렇다.”
공중전투함의 무장을 복원하려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고용이 불가능한 수준의 전문가들과 고급 기술자들이 필요하다.
부정부패의 천국인 러시아는 지금의 내가 그러한 인력들을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인력시장이었다.
기술유출 및 간첩 혐의로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후한 조건의 새로운 고용계약서에 사인하고 나를 위해 일할 것인가. 이 같은 양자택일을 강요했을 때 전자를 선택할 멍청이는 없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