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56화 (456/561)

#47. 혼돈과 공황 (2)

지난밤은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강렬하고 밀도가 높았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중전투함을 탈취하고, 원탁의 대마법사 둘을 연속으로 살해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영생의 별을 전개하기까지 했다.

별의 결계 속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전능감과 결계를 깨고 나왔을 때 느낀 어마어마한 상실감. 그것들은 그 자체로 정신적 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순간들을 다 밀어내고서 오직 고래의 상만이 꿈결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고래의 존재감이 내 무의식에 그만큼 깊게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섀빙턴과 콜리어가 하늘에 뜬 고래와 맞설 때 보여주었던 집요함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금기의 인류가 태양처럼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했다는 것은, 원탁의 교리에서 어떤 경우에도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교의(도그마)다.

그러나 맹렬히 돌진해오는 고래로부터 잠시나마 물러날 수밖에 없었을 때, 섀빙턴과 콜리어는 그 교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황금기의 인류와 일치시켜가던 대마법사들로서는 다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당연했다.

기실 내 머릿속 스승새끼의 유해만 보더라도, 생전에 가끔 같은 맥락의 불안을 느꼈던 기억들이 남아있다. 어쩌면 고대의 인류가 황금시대의 정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비록 입 밖으로 내는 일은 없었으되,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올리곤 하는 그런 의문이었다.

아마 다른 대마법사들도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억눌렀을 뿐이지.

물론 그런 불안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었다. 황금기의 눈으로 아무리 정수를 들여다보아도, 인간을 능가하는 마법적 존재에 대한 기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거의 부재가 곧 실존의 부정을 뜻하는 건 아니니까.’

황금기의 지구는 그저 우주적 존재들의 요람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금기의 정수에 남아있는 기억, 대홍수를 목격한 인간(호모 딜루비 테스티스)이 살았던 세계의 풍경은, 사실 인간보다 앞선 존재들이 모두 마소의 흐름을 따라 우주로 떠나간 뒤의 모습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황금기의 지구에서 승천한 우주적 존재들이, 이 순간에도 거대한 순환에 따라 무한한 별들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이 상상은 그렇잖아도 뒤숭숭한 기분이었던 내게 낯설고 이상한 감흥을 선사했다.

“……하.”

나는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서 비생산적인 사고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끊어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샤워와 환복을 마치고 이동한 회의실엔 내 몫의 식사가 준비되어있었다. 샤워에 앞서 곧 나간다고 문자를 보내놓은 덕분이었다.

내가 앉을 자리 전면으로는 브리핑을 위해 모인 부하들이 도열해있었다. 나는 내 안색을 살피는 조심스러운 시선들을 받아가며 자리에 착석했다. 나무 트레이 옆에 놓인 태블릿엔 이미 브리핑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다들 아침은 먹었나?”

모두가 예! 하고 입을 모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끼니를 거르면 안 되지. 다들 앉아라. 바로 보고를 듣겠다.”

보고는 간밤의 경과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단독행동에 나선 이후엔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또 내가 잠들어있는 사이엔 사태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해적함대 원정전단은 예상보다 경미한 피해만을 입은 채로 전장을 이탈, 필리핀과 파푸아 뉴기니의 비밀 거점들로 흩어져 전열을 재정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가 입은 인명손실은 제로였다.

영국 왕립해군 함대는 여전히 사가미만 남동 해역에 머물며 해상자위대 호위함들과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보통의 함대였다면 대치를 할 때 하더라도 일단 일본 근해는 벗어나려고 했을 것이다. 지상 발사 대함미사일이나 육상 발진 공격기들의 위협을 줄여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왕립해군에게는 핵무기가 있었다. 비록 중국과의 협약에 의거 미사일에 달아 발사 가능한 탄두는 없으나, 도쿄만 일대의 항구도시들은 핵 어뢰로도 얼마든지 타격이 가능하다.

게다가 일본 해상자위대는 연합임무부대(CTF)를 구성하는 3국 함대 중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세력이었고, 사라진 고래와 생체전투함을 찾는 수색임무에도 다수의 함선을 투입한 상태였다. 그런즉 왕립해군 항모전단은 현재의 일본을 상대로 딱히 꿇릴 구석이 없었다. 이쪽 또한 나름 전력을 나누어 생체전투함을 수색하는 중인데도 그러했다.

다만, 승조원들의 정신상태는 물질전력의 우열과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사기가 바닥이라고?”

내 물음을 비서실 소속 부하가 긍정했다.

“예. 일부 승조원들이 가족과 연락을 취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SNS에 관련된 정보들이 풀렸습니다. 중요한 기밀은 무엇 하나 누출되지 않았습니다만, 내부 분위기가 지극히 안 좋다는 사실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보고를 이어가던 부하의 시선이 짧은 시간 내 앞에 놓여있는 접시에 머무른다. 내가 좀 먹으면서 들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차려진 음식은 콘드비프 해시(Corned beef Hash)였다. 삶은 양지머리에 깍둑썰기한 감자와 볶은 양파를 넣어 졸인 후, 그 위로 구운 베이컨과 베이컨 기름에 튀겨낸 계란 프라이를 올린 미국식 칼로리 폭탄 요리. 옆에는 설탕을 탄 홍차가 놓여있다.

‘간단하게 준비하랬더니.’

굳이 따지자면 이것도 나름 간단한 요리이기는 한데, 내가 바랐던 건 전투식량으로 쓰는 고열량 비스킷과 단백질 과당 음료 정도였다. 딱 그 정도가 보고를 받으면서 먹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포크를 들어 입에 음식을 떠 넣었다. 잇몸으로도 씹을 수 있을 것처럼 부드러운 식감의 양지는 내 단독행동이 한창일 때부터 고기를 삶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내 먹는 모습을 본 부하들이 안도와 만족의 색채를 내비쳤다.

이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브리핑이 이어졌다.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정보입니다만, 몇몇 함선에서는 크고 작은 명령불복종 움직임들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HMS 다이아몬드의 경우, 함장 이하 승조원 전원의 합의로 본국에 이번 사태의 해명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여러 채널을 통해 유출되고 있습니다. 그런 채널들 중엔 제1해군경과도 친분이 있는 해군성 위원회(Admiralty Board) 출입기자도 포함되고 있고요.”

“해명이라.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서?”

“룰러 급 공중우세 초계함의 재료가 인간 아기들이라는 루머가 사실인지. 폭주한 공중전투함들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상할 때, 자위대와 대치하며 공중전투함들의 보호를 우선시했던 게 과연 합당한 결정이었는지. 늦었지만 이제라도 실수들을 바로잡아야 하는 건 아닌지 등등…….”

비록 내가 피고름과 낙하물들을 거의 다 불태워버리긴 했으나, 생체전투함의 주재료가 인간 아기라는 사실을 알아낼 단서와 정황증거는 얼마든지 넘쳐났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조립식 아기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또 추락하는 조립식 아기 덩어리들을 목격한 사람만 모아도 어마어마한 숫자가 될 것이다. 자위대와 도쿄시민들만이 아니라, 도쿄 광역권에 닥친 재난을 생중계로 지켜보았을 전 세계의 시청자들까지 세어야 할 테니까.

“이 같은 질문들에 대한 납득 가능한 답변이 금일 정오까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HMS 다이아몬드는 더 이상 본국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통보했답니다.”

공중전투함들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던 영국군 장병들은 임무수행의지가 바닥을 기는 게 정상이다. 나는 한 손에는 포크를 쥔 채 남는 손으로 태블릿을 조작하여 참고자료들을 열람했다.

왕립해군 함대는 승조원들에 대한 정보 통제에 실패했다.

고래사냥은 실로 전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간밤의 도쿄엔 세계 각국의 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와있었고, 그들의 카메라는 도시를 폭격하는 고래와 폭주하는 생체전투함들을 분명하게 잡아냈다.

이를 본 영국 본토의 군인가족들이 항모전단에 있는 핏줄들에게 필사적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거기서 지금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혹시 다치지는 않았느냐. 마지막으로, 자랑스러운 왕립해군이 대체 왜 그런 ‘사악한 일’들을 벌이고 있느냐.

왕립해군 항모전단은 교전이 진행되는 동안 승조원들의 사적 통신을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중전투함들이 실종되고 고래가 사라진 이후로도 그러한 차단을 유지하는 건 무리였다. 장병들 또한 밤을 지새우며 본 것들이 있는 까닭이었다.

결국 왕립해군 항모전단의 장병들은 가족들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접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끔찍한 재난의 심화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간밤의 왕립해군은 누가 보더라도 악역이라 할 세력이었다.

그러니 함대 전체의 사기가 나락으로 처박힐 수밖에.

나는 함선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보여주는 스크린을 보며 생각했다.

‘미군은 뭐……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미 해군의 원정함대는 영일 양국의 대치에 아랑곳 않고 수색작업에만 열중하는 중이었다. 분산 기동하는 함선들의 위치정보에선 자신감과 조바심이 함께 느껴졌다. 누구도 감히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는 자신감, 그리고 사라진 공중전투함과 고래의 흔적을 누구보다 먼저 찾아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미 해군 원정함대의 기동은 자위대의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었다. 자위대를 사실상 경쟁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방국과의 관계나 외교무대에서의 평판 따윈 아랑곳 않고 목전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근시안적 광기. 이는 분명 백악관 미치광이의 지시사항일 것이었다.

물론 미 해군 장병들이라고 해서 사기가 높진 않을 터였다. 자신감도, 조바심도 현장과 거리를 두고 있는 높으신 분들의 것이겠지.

나는 손을 들어 잠시 브리핑을 끊었다. 그러고는 좌중을 모두 둘러보며 물었다.

“우리 애들은 괜찮은가? 분명히 동요하는 인원들이 있었을 텐데.”

내가 기회만 주어지면 공중전투함을 강탈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건 소수의 간부들과 수행인원들만이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 이르러 공중전투함의 폭주가 내 소행임을 모르고 있을 인원은, 적어도 스텔라 포르투나 선단 내부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즉 내가 연출한 거대한 공포와 파괴에 조금이라도 동요하는 인원이 나올 법도 했다.

이게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만약 그런 동요가 전무하다면 그게 오히려 더 큰 문제였다. 조직문화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비율로 ‘상식적인 감수성’을 가진 인원들이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인원들은 조직과 일반 사회 사이의 인지적 유리(遊離)로 인한 사고를 예방해주는 윤활유와도 같다. 냉철한 이성과 추론능력만으로 말썽을 예방하려다 보면 반드시 놓치거나 간과하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어있다.

질문을 받은 참모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묻듯 시선을 교환했다. 오가는 시선들의 끝에서 경태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대부분은 동요고 뭐고 할 겨를이 없었을 겁니다.”

“겨를이 없었다? 왜? 돌아가는 상황이 그만큼 긴박해서?”

“으음, 뭐, 그것도 없진 않겠지만…… 그보다는 형님께서 단신으로 나가 원탁의 대마법사들과 싸우고 계셨던 게 더 컸다고 봐야죠.”

이렇게 말하며 경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기들의 목소리로 울고 피를 비처럼 뿌리면서 도시를 파괴해대는 살덩어리 전투함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죠. 근데 그것보다 더 걱정스럽고 무서웠던 게, 만에 하나라도 형님께서 잘못되실 가능성이었을 겁니다.”

나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그런 표정 지으실 줄 알았습니다.”

내 표정을 본 경태가 하하 소리를 내며 작게 웃었다.

“그래도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하겠습니까. 설령 충성심 따윈 눈곱만큼도 없고 오로지 자기 이익과 생존권만 챙기는 고-얀 잡것들이 있다고 가정해도 마찬가집니다. 형님께선 대체할 사람이 없는 조직의 구심점인데, 우리 애들에겐 조직이 곧 생활이고 생존인걸요. 특히나 지금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고, 보통 사람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위험들이 넘쳐흐르는 세상에선 말입니다.”

“…….”

“지속 가능한 충성은 식사와 생활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게 형님께서 조직을 이끌어온 경영원칙의 기본이잖습니까.”

나는 반쯤 나무라듯이 대꾸했다.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다만, 가볍게 넘겨선 안 될 사안이다. 한동안 인원관리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내가 라즈베리 프로젝트를 왜 기밀로 취급하고 있었던가. 이것도 결국은 비슷한 맥락이다. 조직 내부로부터 균열이 생길 위험은 항시 경계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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