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혼돈과 공황 (1)
부하들과 다시 합류하는 과정에서는 신중을 기해야 했다.
나는 우선 스텔라 포르투나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스텔라 포르투나는 일정 주기로 암호화된 위치정보를 발산하고 있었는데, 이는 해상에 표류시키는 화물의 암호화 위치정보 비컨과 동일한 메커니즘이었다. 복호화 코드를 모르면 전파를 잡아내더라도 무의미한 노이즈에 불과했다.
게다가 위치정보의 앞뒤엔 비대칭적인 길이의 더미 데이터를 붙여놓았고, 발신 주기에도 플러스마이너스 2분의 무작위 오차가 들어간다.
공능법인 개마를 필두로 한 GHSS 컨소시엄 정도면 항시 감시의 눈이 붙어있다고 가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지금처럼 세계 최고액의 현상금이 걸린 고래를 쫓고 있을 땐 더더욱 그러했다. 몇 개나 되는 경쟁업체들이 이쪽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통신단말에 표시되는 스텔라 포르투나의 좌표는 보소반도와 오시마(大島)의 중간 즈음에서 오른쪽으로 5킬로미터가량 치우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미일 연합함대와 헌터들이 보는 앞에서 고래를 빼돌렸던 지점으로부터 3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수역이다.
피곤한 와중에도 만족감이 느껴진다.
‘내 움직임을 예상했군.’
경태와 수연이라면 당연히 내 의도를 읽어냈을 것이다.
다른 헌터집단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고래가 사라진 해역을 수색하는 동안, GHSS 컨소시엄은 대국적인 양보와 역할분담으로 차단선 구성을 맡겠다고 하면 큰 의심을 받지 않고 나를 마중 나올 수 있다.
그간의 활동을 통해 쌓아온 GHSS 컨소시엄의 이미지는 이런 구실이 통할 만큼 긍정적인-기업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나이브한-것이었다.
스텔라 포르투나 아래의 해저지형은 부채꼴로 움푹 파여 있었다. 고래가 숨기에 적합한 지형이라 해저 음향감시선(소서스)이 깔려있기도 한 곳. 그런 만큼 스텔라 포르투나 선단이 차단선 구축의 중심으로 삼기에 자연스럽고, 등잔 아래의 어둠을 이용하기에도 적절하다.
지형의 형태가 형태인지라, 해저면엔 주변에서 쓸려 내려온 모래와 개흙이 가득했다. 나는 생체전투함 내부의 공기를 교환한 후 넙치가 몸을 숨기는 방법과 비슷한 꼴로 전투함을 개흙에 파묻었다. 오래된 비닐 쓰레기들이 짙은 황사처럼 일어나는 흙탕물 사이에서 썩은 낙엽들처럼 나풀거렸다.
이후엔 지향성 음파로 선체를 울리게 함으로써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내가 바로 아래에 있으며, 포로를 먼저 올려 보낼 테니 생물학적 오염을 고려하여 격리수용할 준비를 해놓으라고. 또한 생체전투함의 공기를 지속적으로 순환시켜야 하니 그 준비도 병행하라고.
전향자와 포로들을 이송하기 위해선 먼저 사각지대를 만들어야 했다.
스텔라 포르투나는 선단에 속한 다른 함선을 호출하여 좁은 간격을 두고 뱃머리를 나란히 했다. 해상 보급을 하는 것처럼 꾸며 사각지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15분 정도였다. 나는 상층 갑판에 모아둔 전향자들을 상대로 강한 주의를 주었다.
「지금부터 내 다른 추종자들이 있는 배로 너희를 보내려 한다. 올라가거든 무조건 그들의 통제에 따라 행동해라. 어떤 경우에도 그들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은 불허한다. 이해했나?」
기사들은 내 뜻에 순종했다.
메시아의 권위로 다스릴 수 없는 영국군 승조원들에 대해서는 그냥 죽기 싫으면 알아서 기라고 하고 말았다. 이 이상으로 신경을 쓰기엔 너무 귀찮았다. 아기들의 입을 빌려 말했으니 여간해서는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올라가고 나서도 생체전투함이 자신들의 아래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 테니까.
나는 이들 모두에 대해 제염(除染)을 실시했다. 물에 대한 구속력으로 세척을 하고, 강한 마력의 흐름에 노출시켜 살균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해도 이미 체내로 균이 침투한 보균자들이 많아 격리수용은 필요했다. 이후엔 며칠간 항생제를 투여하며 개개인의 격리 해제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모든 인원들을 옮기는 데엔 다시 10분가량의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위에선 내 또 다른 지시에 따라 공기압축기(Diving air compressor)와 연결된 호스 다발들을 내려보냈다.
스텔라 포르투나에 탑재된 대형 공기압축기는 수십 명의 다이버들에게 공기를 공급하는 동시에 더 많은 수의 실린더들을 충전할 수 있고, 화학적인 유해기체 여과 기능과 산소농도 조절기능도 갖추고 있는 물건이었다.
이런 압축기와 연결된 호스들이 제각기 3백 바(Bar)의 압력으로 공기를 넣고 빼내주면, 생체전투함은 열량이 바닥날 때까지 계속 잠수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한숨 자고 일어날 때까지는 별일 없겠지.
전투함 요소요소에 호스를 물려놓고 선체의 수밀성(水密性)과 내부공기의 흐름까지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전투함의 시동을 끌 준비가 끝났다.
시동을 끈다기보다는 대기상태로의 전환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어쨌든 이는 생체전투함의 안정성과 항상성이 콜레로의 뱀보다 더 우수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는 기술의 우열에 따른 차이가 아니라 설계자의 의도에 따른 차이였다.
‘그레이스는 라일라를 소모품으로만 취급했으니까.’
어차피 라일라를 다시 꺼내줄 생각 자체가 없는데 뭐 하러 시간과 노력을 낭비해가며 불필요한 기능을 추가하겠는가. 괜히 그런 기능을 만들었다가 콜레로의 뱀이 원탁에게 사로잡히기라도 하면 손해가 크다. 라일라는 그대로 적출당하여 온갖 고문과 심문으로 정보를 쥐어 짜인 끝에 실험체로 전락할 테고, 콜레로의 뱀은 원탁의 무기가 되거나 해체 후 재활용될 테니까.
그런즉, 당시 그레이스의 입장에선 괜한 항상성과 안정성을 더하기보다 폭발적인 힘에만 신경을 쓰는 게 이득이었다.
생체전투함을 대기상태로 전환하는 과정은 조립식 아기들을 재우는 과정을 포함했다. 평시엔 구획별 순환 수면을 통해 전투함의 기능을 유지해야 하겠으나, 연결을 끊기 전에는 당연히 전부 재워놓아야 한다.
신경과 회로 연결을 끊자 육체와 영혼의 감각이 내 한 몸으로 축소되었다.
오롯이 내게만 국한된 감각이 어색하다. 그러나 엘의 별을 깨고 나왔을 때와 같은 극심한 상실감은 없었다. 생체전투함과의 연결이 주는 권능감은, 별의 결계 안에서 콜리어를 쫓으며 느꼈던 전능감에 비하면 시시한 수준에 불과했다.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의 마력회로는 출력이 억제된 상태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본적인 생체강화만으로도 수압을 버티기엔 무리가 없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제염을 실시한 후, 물에 대한 구속력을 활용하여 미션 베이(Mission Bay)의 해치를 열고 나와, 전투함을 아래에 두고 수면을 향해 상승했다.
스텔라 포르투나의 현측 갑판에선 참모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움을 막 시작할 때 독한 항생제를 복용한 나는 꼼꼼히 제염을 한 시점에서 격리가 불필요했다. 황금기의 눈은 일말의 오염도 놓치지 않는다.
경태와 수연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실감이 들면서 눈꺼풀이 더욱 무거워졌다. 이제는 정말로 한계가 찾아온 느낌이다.
너무나도 길고 격렬한 밤이었다.
스텔라 포르투나의 갑판에 오르자 경태와 수연을 위시한 참모들이 다가섰다. 나를 보는 모두의 표정에서 피로와 안도와 기쁨과 걱정이 묻어난다.
경태 녀석이 곤란한 듯한 미소를 머금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 의식이 순간적으로 꺼졌다가 돌아왔다. 또다시 선 채로 졸아버린 것이다. 시야가 까맣게 깜빡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양쪽에서 부축을 받고 있었다. 한쪽은 경태. 다른 한쪽은 수연.
“괜찮으십니까?!”
나는 웃음기를 싹 지운 경태의 다급한 물음에 가볍게 끄덕여주었다.
“그냥 피로가 쌓인 것뿐이다. 놔도 괜찮아.”
그러나 두 측근은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하여간, 부하들 앞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목구멍 바로 안쪽까지 한숨이 밀려올라왔다.
“괜찮다니까.”
한숨을 삼키며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 입술을 깨물고 있던 수연이 답했다.
“안 괜찮아 보이십니다.”
수연의 낯빛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이 녀석이 여간해서는 드러내는 일이 없는 진한 감정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내가 출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초췌함이 눈에 잘 들어왔다. 내가 단독행동을 하는 동안 심적인 소모가 심했던 모양이었다. 다른 모든 부하들이 대동소이했으되 가장 심한 게 이 녀석이었다.
아니. 가장 심하다기보다는 평소 기계 같던 녀석이 감정의 원색을 드러내고 있어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고 해야 정확할 듯하다.
수연의 안색을 뜯어보던 나는 손짓으로 경태의 부축을 물렸다. 경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내가 양쪽 부축을 다 물린 게 아니었으므로 일단은 반 발짝 물러나 내 신색을 예의주시했다.
나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수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
수연이 두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온기를 품은 머릿결은 춘식이보다 더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나는 이 녀석의 머리를 거듭 쓸어내리며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니요?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모르겠다. 그냥 이 말을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예.”
시선을 내리깐 수연은 나를 부축하는 팔에 약간의 힘을 더하며 말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로 기쁩니다.”
멀리서 한 줄기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수평선 부근에선 몇 개의 광점이 낮은 고도를 유지하며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눅눅한 바람에선 옅은 화학적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뱃전 너머로는 배를 뒤집고 죽은 물고기들이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도쿄 광역권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이 거리에서도 분명하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일조한 이 밤의 혼란은 날이 밝을 때까지도 쇠함이 없을 것이다.
눈을 붙이기 전에 밀린 보고들 중 중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듣고 몇 가지 지시를 내리려 했으나,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섬기는 두 측근은 한목소리로 휴식이 먼저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주무십시오. 하나하나 일일이 지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말한 수연은, 내 눈을 곧게 들여다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제가 다 처리해놓겠습니다.”
자신을 믿고 쉬어달라는 소리였다.
짧은 망설임 끝에 나는 두 측근의 뜻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지금 내 상태로는 보고를 듣고 내리는 지시들이 멀쩡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지시라고 해봐야 대략적인 방침을 정해주는 수준이겠지만, 그나마도 온전하리라 자신하기 어렵다.
“알았다. 너희에게 맡기마.”
부하들의 걱정이 여전했으므로, 나는 수연의 부축도 마저 물린 후 경호실에 속한 다른 부하로 하여금 내 선실까지 동행하도록 했다. 수연은 내키지 않는 품새로 내 팔을 놓아주었다.
내 선실에 도착한 후엔 환복도 하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눕고 나니 힘이 쭉 빠져서 신발을 벗기조차 귀찮았다. 간신히 알람을 맞추는 게 고작이었다.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쪽이 뜨거운 열로 가득했다. 혈류와 핏줄이 낀 시야에 상부 마스트의 투시도와 구름, 별, 천구(天球)를 덮은 자기장의 변화 따위가 겹쳐졌다.
‘수면 유도를…….’
나는 언제나처럼 마법적인 수면 유도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삑삑- 삑삑- 삑삑- 삑삑-」
알람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
정신이 멍한 와중에 불쾌감이 스멀거린다. 무언가 불합리한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혹여 지금 알람이 울리는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황금기의 눈이 보여주는 밝아진 바깥 풍경은 거짓이 아니었다. 눈을 깜박거리던 나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세운 후 의식이 조금이라도 맑아지기를 기다렸다.
내 기준으로는 굉장히 드문 숙면을 취한 셈인데, 뒤숭숭한 기분이 가라앉질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파편화된 꿈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악몽은 꾸지 않았고, 알람이 울릴 즈음 꾸었던 얕은 꿈들의 잔향이 남아있는 정도였다.
개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빛의 고리를 두른 거대한 고래의 상(像)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