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54화 (454/561)

#46. 폐막(閉幕) (3)

고래의 출혈을 막고 상처를 봉합하는 데엔 열한 명의 인간이 사용되었다.

응급처치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속속 새로운 인간 가마우지들이 파도를 뚫고 들어왔다. 역시나 잠수능력이 남다른 가마우지들이었다. 나는 이들까지 다 수술재료 겸 비경구영양식으로 써버릴까 하다가, 생환자가 전혀 없어도 말썽이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키요우타마히코의 생사는 당분간 불분명한 상태로 남는 편이 유익하다.

1차적인 응급처치를 마친 다음에는 고래의 기공을 열어 폐의 공기를 교환해주었다.

여기엔 주인을 잃은 공수 양용 제트바이크들이 도움이 되었다. 각각의 기체마다 실려 있는 액화산소 탱크들을 떼어내어 고래에게 순도 90% 이상의 산소 호흡을 시켜준 것이다.

이렇게 인공호흡을 해준 다음엔 고래를 견인하면서 심심도로 잠항하여 해저협곡을 이탈, 남동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경로를 골라 이동했다.

「우우우웅-」

수면에서 쏘아진 저주파 탐색 핑이 해저협곡을 따라 반사되며 메아리친다. 지형의 특성상 교란하거나 차단할 필요조차 없는 무의미한 음파였다.

그저 이쪽이 큰 소리를 내지만 않으면 된다.

마력장 반경을 제한한 와중에 고래까지 끌고 움직이다 보니 속도는 썩 빠를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원자력 잠수함의 최고속도만큼이나 빠르지만, 생체전투함의 잠재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저속이었다.

조용하고 느린 운행 속에선 졸음을 참는 게 고역이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질은 깨끗해졌다. 표층의 오염이 심층까지 침투하는 데엔 다소 시간이 걸리는 까닭이었다. 해류는 표층과 심층의 흐름이 다르고, 수괴(水塊)의 특성도 수심에 따라 상이하여 상하의 교환이 느리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무작정 더 깊게 들어갈 수만은 없었다. 고래의 부상도 부상이거니와, 마력회로에 흐르는 생체강화의 출력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과 비교해서도 3분의 1 이하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 작용하는 압력의 색채와 고래의 상태를 살펴가며 한계수심을 어림했다.

비록 상태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수심 2천 미터까지는 그럭저럭 견뎌줄 것 같았다. 그 정도 깊이까지 내려가지 못하면 추적자들에게 마력장을 탐지당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동시간이 막 1시간을 넘어갈 무렵, 고래의 은신처를 마련하기에 괜찮은 암반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앞서 신뢰성을 확인했던 아비터와 트라운서의 관성항법장치는 서로 1.4해리(海里/노티컬 마일) 정도의 차이가 있는 좌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좌표에 따르면 현 위치는 보소반도(房総半島) 남단으로부터 동남동으로 약 22킬로미터쯤 떨어진 위치였다.

운이 좋았다. 원래는 지금까지 온 거리보다 두 배 정도는 더 움직여야 하리라 생각했으니까.

생체전투함을 정지시킨 나는, 부유물의 움직임으로부터 유속을 추산해냈다.

‘대략…… 초속 3센티미터 정도인가.’

심해의 흐름은 지극히 정적이었다. 원래부터 느렸던 심층순환(深層盾環, deep sea current)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더욱 느려진 데다, 이곳은 순환의 주된 흐름으로부터 다소 벗어난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마법의 시대가 돌아와 온난화 추세를 역전시켜주지 않았다면, 심층순환은 반세기 내로 정지해버렸을 터. 인류는 점점 더 파괴적으로 변해가는 기후와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유속이 느리다 함은 표층의 오염이 이곳에 닿기까지 그만큼 더 시간이 걸리리라는 뜻이다. 오염의 대부분은 보다 속도가 빠른 표층의 해류에 실려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고, 극히 일부만이 이 깊이까지 내려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심해의 절벽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드문드문 분포하는 심해생물들이 진동을 피해 흩어진다. 암반을 파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탁한 이수(泥水)가 화재현장의 연기처럼 부풀어 올랐다.

오쿠노시마에 잠수정 접안을 위한 인공동굴을 만들 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소음과 진동에 개의치 않고 오직 속도만을 중시했다. 이 일대는 작은 규모의 지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발생하는 곳. 진동을 줄인답시고 공연히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작업은 오래지 않아 종료되었다. 잠항심도가 깊어짐에 따라, 아까보다 마력장을 넓게 전개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해저 절벽의 안쪽엔 고래가 수백 마리는 들어갈 크기의 커다란 공동이 형성되었다.

공동은 공기를 가둘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나는 염동력의 관 다수로 수면과 공동을 연결하여 바깥 공기를 끌어왔다.

고래와 공중전투함을 쫓는 세력은 아직 엉뚱한 위치를 수색하는 중이었고, 핵공격 경보가 발령된 해역으로 들어오는 민간상선도 없었으므로 주변을 지나는 배는 전무했다. 이따금씩 마력장을 탐색하는 각성능력자들이 멀리 지나갈 따름. 수면에 뚫린 직경 수십 센티미터짜리 흡기구들을 찾아낼 관찰자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이젠 고래에 대한 처치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나는 우선 고래의 마력장을 억압한 후 신경을 끊어 육체적 운동능력 대부분을 박탈했다. 이어 이동하는 내내 줄곧 관찰해온 마력회로의 특정 구간들을 차단함으로써 고래가 쓸 수 있는 원시마법의 최대출력을 제한했다.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의 확장회로가 아니었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다만 여기엔 한 가지 딜레마가 있었다.

마력회로의 출력을 너무 제한해놓으면, 고래는 이 깊은 심도에서 스스로 숨을 쉴 능력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바깥 공기를 끌어올 때만 하더라도, 공동 안쪽에 작용하는 심해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제법 강한 염동력을 사용해야만 했으니까.

그렇다고 이 심도에서의 생존에 무리가 없는 출력을 허용하면, 고래는 반신불수인 몸뚱이를 가지고도 어떻게든 자력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여기서 고래의 지능과 판단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이 커다란 대가리에 이성이라는 게 들어있다면, 불완전한 몸과 각성능력을 가지고 경솔히 돌아다니려 하진 않겠지. 물 바깥에 그토록 많은 적들이 존재하는 마당에.’

고래가 전장에서 보여주었던 현명함이라면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 터였다.

물론 선결과제는 의식을 회복할 고래를 상대로 최소한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다. 나와 이 장소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또 내가 제 몸을 회복시켜줄 수 있음을 깨달아야 여기서 얌전히 때를 기다릴 게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하는 와중에 찰나 간 의식이 깜빡였다.

……나는 내가 방금 선 채로 졸았음을 깨닫고 어이없음을 느꼈다.

커피.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지금처럼 잔뜩 소모된 상태에서 카페인을 섭취하는 게 썩 좋은 선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경태나 수연 녀석이 손수 내려 오는 커피가 있으면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느린 심호흡으로 나 자신을 다잡았다. 그러곤 고래의 의식을 되살리기 전에 무언가 빠트린 건 없는지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내 상태가 영 좋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의심하며 숙고를 거듭하다 보니, 뒤늦게나마 아주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것을 빠트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조명.’

상황과 환경을 불문하고 모든 걸 닥치는 대로 보여주는 병신눈깔을 달고 있다 보니 간과하기 쉬운 요소가 바로 빛의 부재였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고래를 깨웠다면 대화고 뭐고 해볼 겨를도 없이 일을 망쳤을 것이다.

마력을 태우는 불은 에어 포켓 내부의 조명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마력을 태운다고 해서 산소는 태우지 않는 게 아니니까.

나는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 내부에서 멀쩡한 조명과 커패시터를 찾아 밖으로 끄집어냈다. 고장난 레이저 포대의 전력 시스템으로부터 분리해낸 울트라 커패시터는 이 해저공동 내부의 조명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해줄 동력원이었다.

기왕 하는 김에 나는 더 많은 커패시터를 꺼내어 전기를 이용한 난방장치도 마련했다. 심해의 수온이 워낙에 차가웠으므로, 데워진 공기라도 있어야 고래가 체온 유지에 쓰는 열량이 줄어들 것이었다.

공동을 아예 밀폐시켜버리면 압력도, 온도도 해결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이 공동은 고래의 기준으로는 지극히 협소한 공간. 개방감을 남겨두지 않으면 말썽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고래는 선착장과 유사한 구조로 깎아놓은 수로에 몸을 담그고 있는 상태였다. 수로의 잔잔한 물결은 고래의 눈으로부터 두 뼘쯤 내려간 수위에 머물렀다.

나는 생체전투함에서 뽑아낸 영양액으로 고래의 위장을 채우고, 고래가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 「생명」을 운용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래가 깨어났을 때, 나는 길게 늘어뜨린 신경다발로 생체전투함과의 연결을 유지하며 고래의 눈앞에 서있었다. 고래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근해에서 조우했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길 바라면서.

「…….」

눈을 뜬 고래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다음으로는 손바닥만 한 눈동자를 미세하게 움직여 주변을 탐색했다. 아주 깊고 피로한 잠에서 갓 깨어난 것과 비슷한 상태일 텐데, 사람과는 뇌와 신경계의 구조가 다르다 보니 심리를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고래의 시선은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에 길게 머무는 듯했다.

잠시 후, 고래의 가용(可用) 신경계에 강렬한 긴장의 파문이 일어났다.

나는 진동으로 고래의 언어를 연주했다.

「여기」 「위험」 「아니다」

고래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마츠오가 제공한 언어 분석들이 틀리지 않았기를. 나는 마디마디가 뚝뚝 끊어지는 불완전한 연주를 거듭했다.

「나」 「위험」 「아니다」

「나」 「싸움」 「아니다」

「나」 「아픔」 「아니다」

여기까지 고래의 언어를 모사한 후, 나는 다르에스살람 앞바다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키요우타마히코의 호곡을 재현했다. 비록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내가 단락 없이 연주 가능한 유일한 고래의 언어였다.

이러한 노력들이 통했는지, 고래의 신경계에 번졌던 긴장의 색채가 서서히 옅어졌다. 대신 그와 반비례하여 다른 감정의 색채가 차올랐는데, 나로서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쨌든 즉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위잇↗ 위잇↗ 휘우우우우- 우위이익-」

일이 분 남짓 주변을 살피던 고래가 침묵을 깨고 뭔가 말을 걸어오기에, 나는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 이미 했던 연주를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나, 위험, 아니다. 나, 싸움, 아니다. 나, 아픔, 아니다……. 고래는 두어 차례 더 노래를 부른 끝에 소통을 단념했다. 고래의 가용 신경계엔 내가 이미 한 번 보고 겪어서 아는 답답함의 색채가 번졌다가 사라졌다.

여기는 어딘가. 지금 이 상황은 뭔가. 그때 그 이상한 인간은 왜 갑자기 내 눈앞에 있나. 이 인간이 나를 도와주었나? 이 새끼 이거 또 못 알아듣네……. 당장은 고래가 딱 이 정도로만 생각해주어도 좋았다.

「아픔」 「아니다」

이 두 마디를 강조하듯 연주한 후, 나는 내 영과 생체전투함의 마력회로에 생명을 장전했다. 그러고는 고래에게 과장된 동작을 보여주며, 고래가 느끼는 다양한 통증들을 일시적으로 억눌러주었다.

「위이이잇-! 휘우- 휘우-」

저를 둘러싼 마력장의 변화를 느끼고 다시 긴장하던 고래가 뜻 모를 노래와 함께 놀라움을 드러냈다. 이 놀라움 역시 탄자니아 앞바다에서 보아 눈에 익은 색채였다. 내가 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 처음 보고 들었을 때의 고래가 보여주었던 변화 그대로다. 그때의 조우는 내게도 워낙 강렬했던지라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아픔」 「아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고래에게 내 치료행위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마치 광대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으나 분명히 효과는 있었다.

‘이거, 정말로 길들일 가망이 보이나?’

여기서의 길들이기는 나를 주인으로 따르도록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호의로 나를 대하고, 기꺼이 나를 돕고자 하고, 내 적을 자신의 적으로 인지하는 정도를 바랄 따름.

오늘 분으로 정해놓은 만큼의 치료를 끝낸 후엔, 고래가 보는 앞에서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며 말해주었다.

「저기」 「위험」 「있다」

「저기」 「싸움」 「있다」

「저기」 「아픔」 「있다」

이 행동을 몇 번 반복하니 고래는 내가 전하려는 뜻을 이해한 것 같았다. 아까와는 다른 짤막한 노래를 불렀는데, 나는 이것이 “알았다.”라는 말이리라 추측했다.

이제는 고래를 여기 두고 잠시 떠나야 할 때다.

「너」 「여기」 「있다」

「너」 「여기」 「잔다」

「너」 「여기」 「위험」 「아니다」

내 불완전한 발화(發話)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고래는, 단어보다 긴 세 번의 노래로 응답했다. 혹시 몰라 같은 당부를 반복하자, 고래는 또 동일한 세 개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고래가 부른 노래에서 내 연주와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너」와 「여기」에 해당하는 마디였다. 그 외에도 「잔다」와 유사한 화음이 끼어있기도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이 고래가 혹시 내 발화의 문법적 오류를 교정해주려는 것인가 싶어 고래의 노래를 똑같이 따라 해 보았다. 고래는 이를 듣고서야 비로소 “알았다.”로 추정되는 아까의 그 짧은 울음을 뱉어냈다.

일단 내가 적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나는 고래가 확실히 볼 수 있게끔 느린 발걸음으로 생체전투함에 다시 탑승했다. 아비터와 트라운서를 합치는 과정에서 마력장의 특성이 다소 달라진 만큼, 고래는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를 공중전투함과 비슷하지만 다른 개체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았다.

융합체가 해저절벽의 공동을 빠져나오는 동안 고래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나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생체전투함의 마력장이 빠지면서 내가 제공하던 압력에 대한 보호도 사라졌으나, 고래의 바이탈 사인에 이상이 생기지도 않았다.

배불리 먹여놓고, 망가진 육체의 회복에 대한 희망까지 주었다. 그러니 적어도 하루쯤은 고래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리라 기대해도 될 것이다.

고작 아홉 개의 단어만 써서 어찌어찌 소통을 성공시켰다는 사실이 놀랍다. 마츠오는 기대보다 쓸모가 있는 인재였다.

나는 거리를 둔 채로 3분 남짓 고래를 지켜본 끝에 생체전투함의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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