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52화 (452/561)

#46. 폐막(閉幕) (1)

현 상황을 기준으로 고래의 생사에 따른 이익을 저울질해보면, 사실 내 입장에서는 고래가 여기서 죽어주는 경우의 기대이익이 살아나가는 경우의 기대이익보다 더 크다.

나는 이곳에서의 일들이 마무리된 후 주술사 왕을 일본 경제의 구원자로 내세울 구상을 짜고 있었다.

신정합일의 절대권력과 은총화폐의 발행권을 손에 쥐고 있는 그레이스는, 주술의 장막 바깥 세계의 시장경제 논리를 무시하는 가격으로 일본에 다양한 천연자원들을 공급해줄 수 있는 존재였다.

대량으로 값싸게 공급되는 천연자원들은 일본 경제가 기사회생하는 데 필요한 마중물의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레이스와 내가 얻게 될 이득은 굵직한 것들만 헤아려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되살아나는 일본 경제의 지분을 대대적으로 확보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 일본이 지닌 각종 기술들을 음양으로 이전받고, 국제무역 감시대상품목(워치 리스트)에 포함된 정밀가공기기들 및 산업생산설비들을 대량으로 도입하고, 기적태환권 레헤마 페드하를 정식으로 국제금융 시스템에 편입시킬 기반을 다지고, 일본 정재계의 전폭적인 협력 아래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를 도구처럼 활용하는 등.

자금세탁의 규모와 편의도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상향되겠지. 정치인들에게 넉넉한 수수료를 떼어주기만 하면 된다.

이 계획에서, 원한을 품은 고래는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변수였다.

물론 긍정적인 작용이 없지는 않다. 주술사 왕의 화물선단은 해상보험이고 뭐고 없이 목숨을 도외시한 채로 왕명을 수행할 터. 고래의 해상봉쇄가 계속되면, 이 나라의 주술사 왕에 대한 의존은 극한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존을 통해 우려낼 이익의 총량이 감소하면 무슨 소용인가. 지속적으로 누적될 선원 손실도 무시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 손실엔 반드시 일정 비율의 각성능력자들이 포함되어있을 테니까.

제아무리 주술사 왕의 선단이라도, 최소한의 자위력조차 없이 바다에 나왔다간 해적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공산이 너무 크다. 보통 산적과 해적을 겸하는 동인도양 및 동남아시아 해역의 무법자들은 소말리아 해적들만큼이나 악명이 높았다.

‘그렇다고 고래를 설득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다이바의 똥물에서 건져온 마츠오는 고래의 언어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털어놓았으나, 그 지식들 가운데 일반적인 의사소통에 활용 가능한 건 「저기」, 「여기」, 「위험」 등등을 포함하여 고작 스무 개 남짓한 소수의 어휘들뿐이었다.

그나마도 의미가 정확하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소, 솔직히 외계인의 언어를 분석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일인데…… 무슨 수로 백 퍼센트 맞다고 확언을 하겠습니까……? 트, 틀리더라도 제 책임이 아닙니다…….”

그래서 몇 퍼센트 정도 맞겠느냐고 묻자, 마츠오는 손가락을 꿈지럭대며 소심하게 답했다.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답답해지는 태도였다.

“90퍼센트? 는 너무 높고…… 대략 한 80퍼센트쯤 되지 않을까요?”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이해와는 별개로, 그 지식으로 무언가를 꾀하고 싶었던 입장에선 한숨이 나오는 수치였다. 내 한숨을 오해한 마츠오는 한층 더 주눅이 든 모습으로,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한 표정으로 변명처럼 덧붙였다.

“과학이라는 게 원래, 원래 이런 겁니다……. 이 분야를 모르셔서 잘 체감이 안 되시겠지만…… 여기까지 밝혀낸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란 말입니다……. 말하자면 월면에 찍힌 암스트롱의 발자국 같은 진보죠……. 행위로서의 발걸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발자국이 어디에 찍혔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내가 이해했으니 그만해도 된다고 하자, 마츠오는 이것도 또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는지 우울함을 담아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아아……. 현직에 있을 때 시간과 예산이 더 있었더라면…….”

여하간, 사정이 이러한 관계로, 고래와 복잡한 대화를 나누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고래가 살아서 나갈 때-혹은 내가 살려서 내보낼 때-의 기대이익이 불확실한 이유이기도 했다.

고래가 살아있을 때의 기대이익은 당연히 고래를 길들여 전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바다의 신이라는 이명이 부끄럽지 않은 고래의 힘을 영국과 원탁을 겨냥하여 투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는 영 실현 가능성이 낮아 뵈는 바람이었다. 극히 제한적인 의사소통능력을 가지고서 고래의 호의를 얼마나 쌓을 수 있을 것이며, 고래의 힘을 쓰고자 할 때 이쪽의 뜻을 어찌 명확히 이해시킬 것인가.

처음 접근을 시도할 때 공격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마츠오의 목숨을 붙여둔 채로 장기간에 걸쳐 고래와의 접촉을 이어간다면 나중엔 보다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해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내 시간을 꽤 많이 잡아먹을 일이기도 하다.

저울의 한쪽엔 고래의 죽음과 확실한 기대이익이, 다른 한 쪽엔 고래의 생존과 불확실한 기대이익이 있다. 마음과 이성의 눈금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오늘을 경험하기 전의 나였다면 갈등이 없었으련만, 지금은 아무래도 미련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아까부터 간접적으로나마 고래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이유였다.

이 또한 피로의 누적에 따른 판단력 저하일까?

내게는 참으로 낯선 일이었다.

나는 좀처럼 내려지지 않는 결정을 고래의 운과 능력에 맡겨보기로 했다. 화학무기에 중독된 채 커다란 관통상을 입은 고래가 자력으로 도쿄만을 이탈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의 상황을 보아 가능한 도움을 주는 쪽으로.

일종의 시험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만한 난관을 스스로 헤쳐 나올 경우, 고래는 자신에게 잠재되어있는 투자가치를 새롭게 증명해 보이는 셈이니까.

과연 제한적인 어휘들만을 가지고 고래의 적의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그러나 고래가 내 도움을 거부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고래의 운이라고 해야겠지.’

고래가 내 도움을 받아들인 치면 그때부터는 치료를 통해 호의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공중전투함이 도쿄 광역권 남쪽 해상에 도달하기까지는 대략 9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손상된 금속 골조들을 원소에 대한 구속력과 마력을 태우는 열로 접합하여, 부족하나마 그럭저럭 속도를 내도 무방한 상태로 만들어놓은 덕분이었다. 나는 전투함 요소요소에 쌓이는 응력과 금속피로의 색채를 봐가면서 추가적인 보강을 진행하고 속도를 가감했다.

내가 목적지를 추정하기 어렵게끔 지그재그로 기동하며 사가미만(灣)으로 나와 버린 까닭에, 대부분 도쿄만 안으로 들어가 있던 3개국의 수상함대 세력은 적시에 나를 따라잡지 못했다. 방향을 꺾을 때마다 공습경보 대상 지역이 달라졌으므로 육상 및 항공자위대의 대응능력도 분산되었다.

나는 사전에 숙지했던 작전해역의 지리정보와 주변 지형을 대조하여 내 위치를 식별했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연륙교 걸린 섬이 에노시마(江の島)일 테고, 왼쪽에서 원양을 향해 뻗어나가는 해안선은 미우라 반도의 서안(西岸)일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비터와 트라운서 양함의 관성항법장치가 아직 신뢰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생체전투함의 마력장에 삼켜진 미우라 반도 서안의 산기슭엔 크고 작은 목장들이 여럿 분포하고 있었다.

조립식 아기들이 영양과 열량을 보충할 기회다.

먹이사슬의 정점인 인간들보다는 역시 가축들 쪽이 더 나은 먹거리였다. 소들에게서 보이는 방사능의 색채는 허용범위 이내였고, 화학적 오염의 색채는 보이지 않았다.

「음무우우우우-!」

염동력의 사슬에 걸린 비각성체 소들이 버둥거리며 낚여 올라온다. 소들은 방전의 그물을 통과하며 즉사했고, 날아오는 도중에 갈기갈기 분쇄되었으며, 그 상태로 마력을 태우는 불에 구워져 조립식 아기들에게 도달했다. 운반 경로 아래의 작은 어촌은 소의 내장과 분변과 피로 이루어진 소나기를 맞았다.

피로로 정신이 산만해진 탓인지, 미국의 음모론자들이 이 광경을 보면 열광하겠구나, 하는 무가치한 감상이 들었다.

생체전투함의 살아있는 구성요소들이 갓 도축한 쇠고기를 포식하는 동안, 나는 전투함 아래에서 파도치는 바닷물을 재료 삼아 대량의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생체전투함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국지적인 대기요란(大氣擾亂)으로 감추기 위함이었다.

비록 목적은 상이하나, 광저우 남쪽 바다에서 웨스트버튼과 싸울 때 행했던 기상 조작을 수백 배 규모로 확장하여 재현해내는 과정이었다.

「우르릉!」

불안정해진 기류와 기압이 갈수록 거세지는 돌풍을 빚고, 해수면에 이는 파도는 실시간으로 높이를 더해갔으며, 하늘은 금세 먹구름이 끼어 구름의 틈새로 번뜩이는 빛과 우르릉거리는 울림들을 토해냈다.

현재의 아비터-트라운서 융합체는 기존에 있던 낙뢰 대책들이 대부분 떨어져 나간 상태였기에, 나는 이온화 도파관 채널을 방어막처럼 둘러쳐 벼락을 흘려냈다. 흘려내는 벼락 줄기들은 생체전투함을 가운데 두고 이리저리 구부러지며 해수면 위에 내리꽂혔다.

해변에 있는 마을은 공포와 혼돈에 휩싸였다. 마을의 규모에 비해 사람의 숫자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는데, 행색들을 보니 요코스카와 요코하마 등지로부터 도망쳐온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이쪽 방면의 간선도로들은 고래나 공중전투함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도쿄 광역권을 벗어나려는 차량들이 워낙에 많아 극심한 체증이 빚어지고 있었다. 승객들이 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무수한 압사와 낙상 사고들이 발생했다.

전투함 주변으로 낙뢰가 떨어질 때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해무(海霧)엔 생체전투함의 그림자가 투영되었다. 전투함의 실제 크기보다 수십 배는 더 거대한 검은 실루엣이었다. 이 그림자를 본 자들은 그 자리에서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지기도 했다.

「딩-동-댕-동-」

전력공급이 끊어진 해변 마을에 소란스럽게 울리던 공습경보가 중단되더니, 순시경보(瞬時警報) 스피커들로부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맑은 음색의 전자음이 흘러나왔다.

「당 지역에서 다음의 기상정보에 주의하여주십시오. 폭우경보, 폭풍경보, 고조경보(高潮警報), 파랑경보(波浪警報). 이상. 방송을 듣는 분들께서는 진정하시고 침착하게 행동하여주십시오.」

통상 시야의 희뿌연 불투명함에 의지하여, 나는 생체전투함을 해수면 아래로 이동시킨 후 줄기차게 수증기와 상승기류를 만들어냈다. 이 작업은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하늘에 두꺼운 비구름이 깔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정도면 되겠군.’

샤오야(小鸦/작은 까마귀) 섬에서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정도 크기의 대기요란이라면 내가 이 위치를 이탈한 이후로도 최소 5분 이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대기요란의 세력이 약해지면 남은 구름과 해무는 북풍에 밀려 남하할 터.

이 정도면 추적자들의 시선을 붙잡아두기엔 충분한 연막이다. 내가 지금껏 안개를 두르고 움직인 만큼, 추적자들은 당연히 남하하는 구름과 해무 속에 공중전투함이 숨어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이는 또한 내 부하들에게 보내는 생존 신호이기도 했다. 웨스트버튼을 살해하던 날 내가 했던 일을 기억하는 경태와 수연이라면, 지금의 국지적 기상이변을 보고서 내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도쿄만 입구의 해저협곡으로 들어가 고래를 기다릴 차례다.

한두 시간쯤의 잠수쯤은 생체전투함 내부에 채워놓은 공기만으로도 무리가 없었다. 수압은 생체강화에 염동강화를 덧씌워서 감당했다. 나는 전투함의 존재감이 해수면 위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마력장을 조절하면서 잠항을 이어갔다. 물에 대한 지배력을 활용한 완전한 무음 항해였다.

속임수를 쓴 보람이 있어, 추적자들의 이목은 온통 사가미만 안쪽에만 쏠려있었다.

도쿄만 입구 부근 해저협곡 상단의 완만한 경사면에 전투함을 착저(着底, Bottoming)시켜놓고서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기를 4분 남짓.

「쿠구구구구구-!」

강렬한 파동이 해저면을 휩쓸고 지나갔다. 만 입구 바로 안쪽에서 발생한 수중 핵폭발의 여파였다. CTF-W2 지휘체계가 마비된 혼란 속에서도 일본이 어찌어찌 미군의 핵 투발을 끌어낸 모양이었다.

협조체계 구축이야 어쨌든, 쏠 기회가 있었다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추가적인 핵 공격의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왕립해군의 함선들이었다. 더는 고래사냥을 이어갈 동기를 잃은 왕립해군 함대가 해상자위대와 대치하며 공중전투함 추적을 우선시하는 중이었으므로, 이들이 휘말리거나 피폭당하지 않게끔 핵 공격을 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도쿄 앞바다에서 소규모 핵전쟁이 벌어질 판이었다.

고래는 거대한 폭발을 등진 채로 만의 입구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고래의 한계였다.

「히우우우……」

잦아드는 노랫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은 고래가 축 늘어진 채 느릿느릿 수면으로 떠올랐다. 긴장으로 수축되어 있던 혈관과 근육이 풀리면서 출혈량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강철의 피라냐 무리들이 핏빛으로 변해가는 물결을 향하여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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