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51화 (451/561)

#45. 도쿄대공습 (8)

영국을 외교적 위기로 몰아넣는 데엔, 고의이든 사고이든 왕립공군의 공중전투함이 타국의 대사관을 공격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드물다.

물론 이게 너무 노골적이어선 곤란하다. 어차피 목측(目測) 조준으로 장거리 사격을 하려면 레이저를 발사상태로 유지하며 조준점을 수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고, 현 위치에서 도시 중심가를 공격하려면 대사관 밀집구역이 자연히 사선에 들어오는 관계로, 나는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레이저의 궤적을 통해 내 의도를 감추었다.

이렇게 해도 일말의 의심스러운 정황은 남겠지만, 그 정도는 피해를 입은 당사국들이 알아서 외면할 터였다. 그러는 편이 자신들에게 더 이득이 되니까.

각국 대사관들의 피해가 돋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 외의 부수적인 피해들이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

나는 주일 미국 대사관을 긁고 지나간 레이저를 그대로 들어 올려 전장의 하늘을 베어냈다.

고열 광선의 칼날에 걸린 희생양은 최초의 공중 마츠리를 성공시켰던 거대한 유인용 비행선이었다. 기낭의 선두부가 비스듬히 잘려나간 비행선은 부력을 크게 잃고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선체로부터 고정이 풀린 크립 밸러스트 몇 개가 미끄러져 나오는 게 보인다.

추락한 밸러스트 컨테이너들은 지상의 도로와 건물에 격돌하며 저마다 다른 이상 현상들을 일으켰다. 컨테이너에 들어있던 불사암 덩어리들이 충격을 받아 무질서한 마법적 반응을 방출한 것이다. 각각의 생체질량에 비해서는 대단치 않은 방전과 발화의 섬광들이 번뜩인다.

떨어지는 건 크립 밸러스트들만이 아니었다. 요동치는 선체로부터 튕겨 나온 승조원들 역시 분분히 발버둥치며 낙하했다.

나는 그 사이의 공역에 레이저를 슥슥 휘저어주었다. 광선이 지나가는 공간마다 얼룩 같은 열기가 남았다가 바람결에 흩어졌다.

‘영웅들은 비극적으로 죽어줘야지.’

지금의 일본은 민중을 위무할 수단으로서의 영웅이 절실한 상태다. 그런 의미에서, 도심으로 진격하는 고래를 유인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비행선의 승조원들은 영웅으로 포장하기에 적합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왕립공군 공중전투함의 레이저 공격으로 다수가 죽거나 다친다면, 영국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분노는 더더욱 뜨겁게 들끓어 오르지 않을까?

살아있는 영웅보다는 죽은 영웅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에 좋은 법이다.

나는 영국을 이보다 더 증오할 수가 없는 1억 2천만의 인간들이 탄생하기를 소망했다. 그런 인간들로 가득한 일본은 정말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카드다.

「웅웅웅웅웅-」

레이저 포대들의 구동음이 단락 없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냉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공중전투함이 발사하는 레이저는 사람이고 제트 바이크고 스치는 순간 탄화시켜버리는 수준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전투용 열상 관측장비(IRST)를 탑재한 제트 바이크들은 구조 시도 따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천적을 만난 날벌레 떼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승조원들 가운데 염동력을 쓸 줄 아는 자들도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에서는 허공답보, 영미권에선 윈드 워킹 내지 윈드 러닝이라고 부르는 공중 주법(走法)은 발을 내딛는 순간마다 염동력으로 반발력을 만들어줘야 하는 응용기술이다. 타이밍이 안 맞아도, 힘의 크기가 어긋나도 직주(直走)에 지장이 발생한다. 헛발을 내딛기 십상인 것이다.

그리고 일단 공중에서 한 번 헛발을 내디디면, 그때부터는 당황과 공포가 머리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능공허도(凌空虛道)나 에어로키네틱 서핑 따위로 부르는 염동력 자유비행 같은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염동능력자들의 추락은 항공기의 실속(失速/Stall)에 곧잘 비유된다. 원인이 다르고 대응방법도 다르지만, 둘 다 공중으로부터의 추락이며, 사전훈련에 따라 침착하고 냉정한 대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관념적인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까닭.

점점이 추락하는 승조원들 중에서 그 정도의 침착함을 유지하는 염동능력자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나머지는 그냥 팔다리를 휘저으며 뚝뚝 떨어져 죽었다.

「뻐벙! 뻥! 다다다닷-!」

너른 안개구름 주변에서 다종다양한 화광들이 번뜩인다. 자위대 고사특과가 여러 구경의 대공화기들을 쏴대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 구경의 포탄들은 얄팍한 염동장막에 부딪혀 충격신관이 격발되었다.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공격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위대 지휘부의 결정을 이해했다. 때로는 무의미한 공격이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라는 게 있으니까. 소용이 있든 없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기 유지와 혼란 억제에 도움이 되는 그런 순간이.

자위대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민간인들은 한층 더한 패닉에 빠질 따름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을 더 낭비할 순 없으니, 이런 공격이라도 개시해야겠지. 어쩌면 기적 같은 행운이 찾아올는지도 모르고.

나는 남은 공습을 속행했다.

부수적인 피해가 반드시 치명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평범한 상업지구나 거주구역에 대해서는 긴 그을음의 흉터들만 남겨놓아도 전 세계의 온갖 언론들이 영국을 규탄하기에 충분한 재료가 될 테니까.

스카이트리를 비롯한 주요 랜드마크마다 흉하게 탄화된 자국들을 남기면서, 각국 대사관들이 밀집해있기로 유명한 미나토구(港区) 아자부(麻布) 일대도 틈틈이 지져준다. 내가 각국 대사관의 위치들을 암기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을 대충 지지는 사이에 목표를 탐색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다수의 대사관에 추가적인 피해를 선사했다.

여기엔 당연히 미국, 러시아, 중국이 포함되었다. 프랑스 삼색기가 걸린 건물도 곁가지로 지져주었다. 영국을 제외한 UN 상임이사국들은 하나의 분노로 일치단결해야 한다.

나는 지끈거리던 두통이 미미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건 조금…… 즐겁군.’

공습을 하면 할수록 영국의 고난이 커지는 상황이 만족스럽다. 특히 백악관의 미치광이가 이걸로 얼마나 지랄을 해줄지가 기대된다. 그 미치광이는 정말 좋은 미치광이였다.

사람의 원한과 분노엔 끝이 없다. 주요 대사관들을 다 지진 다음에는 일본인들의 원한을 더욱 사무치게 할 표적 선정에 들어갔다.

천황의 거처인 황거(고쿄)는 나무와 목조건물이 많아 불태우기가 좋았다.

다만 어소(御所)가 자리한 서쪽은 건드리지 않았는데, 이는 혹시나 천황이 아직 어소에 남아있을 경우 살아서 빠져나갈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당대의 천황에게는 아들이 없다. 따라서 태자는 공위(空位)이며, 천황의 동생이 차기 계승권자(황사/皇嗣) 자리에 올라있다.

그런데 이 인간은 사람으로서의 됨됨이가 좀 모자라다는 평판이 많아, 일본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줄 만한 인물이 못되었다.

따라서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가 영국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치기를 바라는 나로서는 현재의 천황을 살려두는 쪽이 이익일 수밖에. 심지가 꺾여 자포자기해버리는 인간들이 많아지면 아무리 많은 증오를 부어준들 소용이 없을 것이다.

황거와 에도(江戸) 성터를 불사른 다음에는, 성터의 해자(千鳥ケ淵)를 사이에 끼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노렸다.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정신적 충격은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장작더미인 까닭이다.

도심의 녹지에 솟아있는 쓸데없이 커다란 기둥문(大鳥居/오오토리이)은 멀리서 보기에도 아주 확실한 화력유도 표지였다. 대각선 방향으로 느릿하게 긋는 광선이 기둥문을 잘라 넘어뜨리며 좌우의 녹지에 불을 질렀다.

고래가 뿌리는 독성 강우는 북풍으로 말미암아 여기까지 닿지 못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과 다르게, 잘 마른 목조 건축물들은 메가와트 급 레이저가 한번 훑고 지나가기만 해도 전소(全燒) 확정이다.

우연을 가장하고자 반경 5킬로미터 정도의 커다란 원 안에서 이리 긋고 저리 긋고 한 광선들은, 도합 아홉 차례에 걸쳐 신사 부지를 가르고 지나갔다. 국가 신토(國家神道)의 정신적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천황과는 미묘하게 사이가 서먹한 신사의 본관이 마치 공습을 알리는 봉화처럼 타올랐다.

이러는 와중에도 같은 해자를 끼고 가까이에서 황거를 마주하고 있는 영국 대사관에 대해서는 일체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했다.

대영제국의 영화가 남긴 유산으로서, 영국 대사관은 다른 나라 대사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넓은 부지를 쓰고 있었다. 이렇게 부지가 넓은데도 모든 화를 피한 것은 일본 대중들의 격노와 불신에 기름을 부어줄 것이다.

이제 아카사카 이궁(赤坂離宮)과 그 후원, 그리고 메이지 신궁 정도만 더 불태우면 내 공습은 거의 마무리된다.

아카사카 이궁은 일본제국 시절에 건설된 천황의 서양식 별궁이다. 오늘날엔 영빈관으로 쓰이지만, 배후엔 여전히 태자의 거처로 보존된 동궁어소가 남아있다. 이미 곱씹었듯, 지금은 태자가 없으므로 마음 편히 불을 질러도 무방했다.

일본의 국보, 네오 바로크 양식의 이궁은 석조 건물이라 레이저 공격만으로는 완전한 파괴가 불가능했다. 다만 지붕에 씌운 청동을 녹이고 창 너머의 내장재를 태우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유리창들은 레이저를 맞는 즉시 벌겋게 달아오르며 흐물흐물 흘러내렸다.

이궁을 불사르다 보니 아까 미처 지져주지 못한 대사관들이 눈에 띄었다. 벨기에 국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걸린 건물들은 탄화된 자국들을 남겨둘 가치가 충분했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엮여있고, 벨기에는 영국이 외교적 중재를 요청할 만한 중립적 우방국이니까.

마지막 표적인 메이지 신궁은 아카사카 이궁을 공격하는 사이에 곁가지로 레이저를 얻어맞았다. 이곳 또한 황거처럼 녹지 비율이 높고 목조 건물 투성이여서, 광선으로 두세 번 슥슥 그어주기만 했는데도 거대한 열류를 방출하는 열원으로 화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에 불과했다.

이는 레이저를 이용한 공습의 장점이었다. 화력투사의 지속력과 속도가 압도적으로 우수한 것이다.

나는 레이저 포대의 사정권 내에 있는 대부분의 녹지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공습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황거와 신궁에서부터 매립지 위에 조성된 임해공원에 이르기까지, 도쿄 중심부 및 항만지대의 큼직큼직한 녹지들이 죄다 불길에 휩싸여 뭉글거리는 연기를 뿜어 올리는 광경. 이러한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도쿄 광역권 전체가 타오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끔 만들었다.

그 착각이야말로 내가 바랐던 바다. 이 광경을 TV로, 또 인터넷으로 접할 전 세계의 사람들은 왕립공군의 공중전투함이 일본의 수도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공습을 가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화재의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형 비행선들과 각성능력자 항공세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힐 불길들이기도 했다.

「휘우우우우우-!」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선명한 고래의 울음소리가 공중전투함의 함체에 닿았다. 그새 폭포의 구체를 다 소진해버린-혹은 어쩔 수 없이 흩어버린-고래가 고통에 겨워 토해내는 울음이었다.

일반적인 포탄이나 미사일쯤은 쇠약해진 고래의 염동력으로도 얼마든지 방어가 가능하나, 염동장막에 걸리지 않는 레이저 공격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고래는 바다를 코앞에 둔 상태였다. 맞은편에 불 꺼진 디즈니랜드가 자리한 바다를. 고래의 힘겨운 공중 유영은 이제 곧 목적을 이룰 것 같았다.

나는 공중전투함을 남쪽으로 움직이며 지속적으로 레이저를 긁어댔다. 기본적으로는 도시 전역에 탄화된 자국을 남기기 위함이었으되, 부수적으로는 고래를 노리는 자위대와 엽사들의 공격을 방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이제껏 내가 지른 불들도 고래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뭉글뭉글 솟구쳐 달과 별을 실종시키는 짙은 연기는 레이더의 성능을 저하시키는 요소였다.

그러나-

「쐐애애애액!」

내 배려가 무색하게, 고래가 바다로 입수(入水)하기 직전, 연기 자욱한 하늘을 가르고 날아든 극초음속 운동에너지 탄두가 고래의 몸통과 꼬리 사이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고래는 거의 추락에 가까운 기세로 해수면에 낙하했다. 크고 거친 물기둥이 치솟는다. 물 밖에는 고래가 남긴 한줄기 비명의 잔향이 남았고, 물기둥이 내려앉으며 생긴 거친 파문엔 고래가 흘린 핏물의 색이 번지기 시작했다.

“…….”

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앞서 내 전투함이 그러했듯, 고래가 입은 관통상은 대단히 깔끔했다. 고래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그리고 지금 뛰어든 바다가 깨끗한 상태였다면 지금 같은 수준의 부상도 어떻게든 회복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지금은 그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파도 아래로 들어간 고래의 유영은 공중에 있을 때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겨워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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