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450화 (450/561)

#45. 도쿄대공습 (7)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피와 고름이 흐른 길들을 따라 그어대는 고출력 레이저 광선들은 여간해선 볼 일이 없는 특수한 형태의 화재를 발생시켰다.

바로 아스팔트 화재였다.

도로의 포장재인 아스팔트는 원래 불이 붙는 가연성 소재다.

그러나 어떤 재난현장에서든 포장도로가 불타는 모습을 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잖아도 높은 아스팔트의 연소점이 돌과 자갈의 혼입 및 자연적인 휘발로 말미암아 더욱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끓는점과 연소점 사이의 간극도 커서, 단숨에 5백 도 이상으로 가열시키지 못하면 그 전에 가연성분들이 증발해버리고 만다. 증발한 기체가 화마에 힘을 실어줄 수는 있겠으되, 어쨌든 도로 자체가 불타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초고열의 레이저는 아스팔트를 불태웠다.

「콰콰콰콰콰콰-!」

광선이 긋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불의 폭풍이 일어났다. 마치 레이저 자체가 폭발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레이저가 목표지점에 부딪히며 발생하는 복사열만으로도 열파(熱波)의 광란이 빚어지는 마당에, 강렬한 연소반응과 기화반응까지 더해지니 내 예상을 넘어서는 반경의 충격파와 화염폭풍이 빚어졌다.

도로에 접한 주택들이 줄줄이 불이 붙고 박살이 났다. 충격파에 찢어진 지붕과 자재들이 뜨거운 상승기류를 타고 날아 멀리까지 불씨를 퍼뜨린다.

철도기지 주변의 주택과 상가들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내가 앞서 일으켰던 공포와 붕괴의 물결에 민간인들도 함께 휩쓸린 결과였다. 그래도 드문드문 낙오자 무리들이 남아있기는 해서, 나는 붓질을 하듯 레이저를 그어 커다란 불의 고리에 낙오자들을 가두었다.

불의 고리 안쪽엔 낙오자들이 화마를 피해 달아날 만한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잔디를 덮지 않은 학교 운동장이나 물을 채워놓은 수영장, 인공 호수를 품은 조경공원 등.

사방에서 불길이 조여 오면, 낙오자들은 결국 몇 개의 한정된 피난처로 모여들게 될 것이다. 낙오자들 사이에 끼어있는 한 줌의 각성능력자들은 피난처의 생존성을 향상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다 죽일 필요는 없겠지.’

도쿄 광역권의 페스트 유행은 이미 확정된 미래다. 마소의 자연적인 감염확산 억제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고로 내 불태우는 방역의 목적은 기본적으로는 페스트 유행 초기의 발병 규모를 조절하여 일본정부에게 초기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을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기왕 도시를 불태우는 김에 겸사겸사 영국정부가 먹을 외교적 엿을 최대한 키워줄 생각도 품고 있었다.

공중전투함의 직접적인 공습으로부터 극적으로 살아남았음에도 흑사병에 걸려 고통받는 생존자들. 이런 생존자들은 방송에 내보내 영국의 외교적 부채를 키우기에 제격이다.

이는 일본 당국도 당연히 떠올릴 생각. 따라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낙오자들을 물리적으로 고립시켜놓는 것이었다. 화생방 대응부대가 피고름 샘플을 채취해간 만큼, 재난당국은 페스트 대책을 완비한 구조대를 보내올 것이다.

거리와 골목을 불태운 다음에는 지표 아래에 화력을 투사했다. 피고름의 일부가 배수구로 빠져 흐른 길들이었다.

「퍼펑!」

하수도엔 메탄을 포함하여 인화성 기체가 고여 있기 쉽다. 나는 그런 곳들을 우선적으로 노려 레이저를 발사했다. 레이저 광선이 맨홀 뚜껑을 녹이고 들어갈 때마다 크고 작은 폭발이 발생했다. 같은 통로상의 가까운 맨홀 뚜껑들이 폭발과 열팽창의 압력에 밀려 포탄처럼 솟구쳐 올랐다.

「후우우우우우웅-!」

폭음의 잔향은 기이한 땅울림에 밀려 사라졌다. 밀폐성이 높은 지저 터널에 격렬한 열팽창의 폭풍이 몰아치자, 긴 터널 자체가 거대한 관악기로 화하여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뚜껑이 날아간 맨홀 구멍마다 살인적인 열기를 품은 바람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이 정도 열기면 쥐나 바퀴, 벼룩 따위를 구워 죽이고도 남을 터였다.

하수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주성이 양호한 배수전용터널엔 지하세계의 주민들이 있었다. 다른 이들이 다 달아나는 와중에도 너절한 세간살이들 사이에 남아있기를 택한 무리들이었다. 나는 이들에게서 삶을 자포자기한 자들 특유의 지독한 무기력증을 읽어냈다.

이들은 일본정부가 결코 대외적으로 내세울 일이 없을 얼굴들이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일본에겐 뚜껑을 덮어야 할 더러운 것들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앞서의 낙오자들과 같은 쓸모가 이들에게는 없다. 지하세계의 다른 주민들이 돌아오면 감염을 퍼트릴 보균자 역할이나 수행하겠지.

나는 피고름 흐른 흔적이 선명한 배수터널에도 고열의 강풍이 몰아치도록 만들었다. 눕거나 주저앉아있던 인간들이 기름을 흘리며 바삭하게 구워지고, 이재민 구호용으로 뿌려진 골판지 침대들이 산산이 분해되어 흩날리거나 불타올랐다.

내가 이렇듯 대놓고 도시를 공격하고 있음에도, 자위대 측에선 아까부터 별다른 추가대응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사실, 열압력 항공폭탄으로 안개장벽을 흩어버리지 못한 시점에서 자위대가 달리 시도할 만한 공격이 없기는 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대, 자위대는 우선 고래에게 모든 대응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얼마 안 남았군.’

얼마 안 남았다는 건 당연히 고래의 이야기다.

마력회로에 가혹한 과부하를 걸고서 지금까지도 회로가 깨지지 않은 게 기적이다. 고래는 여전히 고고하게 천구(天球)를 운행하며 죽음의 비를 뿌리고 있었지만, 커다란 몸 곳곳에선 생체조직 손상과 불사암 증식이 가속화되는 중이었다.

크기가 거대한 동물일수록 암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고, 대형종 고래들은 그러한 저항력의 정점에 자리한다. 그러나 키요우타마히코의 상태는 그런 저항력 정도로 해결될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불사암의 특성이 일반적인 암과 다소 다르기도 하고.

그런즉 고래에게는 이제 곧 더 이상의 전투행동이 불가능해지는 시점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래는 눈을 감은 채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어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왠지 이번에도 고래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인간들이 자신의 죽음을 확인할 수 없는 곳에서 죽으려는 게 아닐는지.

내 짐작이 옳다면 참으로 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휘이이이이…….」

비를 뿌린 만큼 줄어든 물의 회전구체와 더불어, 아까보다 더 낮고 기운 없어진 고래의 노래는 자위대가 대응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근거일 터였다.

고래가 비행하는 주변 공역에선 수시로 다수의 무지갯빛 광륜(光輪)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유독성 호우가 뿌려지는 공간을 여러 줄기의 레이저 광선들이 가르고 지나가며 빚어지는 초현실적인 빛의 산란이었다.

어둠을 몰아내는 빛무리는 갈수록 수가 늘어만 갔다. 점점 더 많은 레이저 줄기들이 물의 구체에 꽂히고 있는 것이다. 고래가 두른 물의 총량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지금, 레이저 집중사격을 통해 수온을 끌어올려보겠다는 발상 같았다.

만약 이게 성공한다면, 열기를 견디지 못한 고래가 한꺼번에 물을 흩어버리도록 유도할 수 있다. 고래가 머무는 공역 인근의 대지는 지독하게 오염되겠으나, 그 정도는 화학물질을 퍼붓기 시작했을 때 이미 각오한 바일 터였다.

일본정부 입장에선 옅고 광범위한 오염보다는 좁고 지독한 오염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래의 방어를 빨리 무력화해야 고래를 더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

고래가 바다로 향하는 지금 일본의 각료들은 고래사냥 실패의 공포에 떨고 있을 터. 이만큼의 피해를 입었는데 고래를 죽이지도 못한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오늘부로 그냥 끝장이다.

「휘잇…… 휘잇…… 흐우우우……」

흐느끼는 듯한 고래의 노래가 짧은 시간 동안 극초음속 미사일의 굉음에 잡아먹혔다. 마하 15의 비행체가 남기는 울림은 행정구역으로서의 도쿄 전체에 울려 퍼질 만큼 사나웠다.

첨예한 형상의 글라이더식 작살 탄두는 회전하는 구형(球形) 폭포를 불완전하게 관통했다. 뚫기는 뚫었으되 급류의 영향으로 탄도(彈道)를 곧게 유지하지 못하여, 구체의 중심에 있는 고래를 맞추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다.

나는 심사가 조금 불편해졌다. 나 스스로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저 고래가 죽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불편한 마음과는 별개로 내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철도기지 주변은 다 불태웠다. 그리고 아비터 단독으로 내렸던 첫 번째 불시착지점 주변은 현재진행형으로 불태워버리는 중이었다. 일본 수도권이 들어선 간토평야는 지형 굴곡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기 때문에, 딱히 수고스럽게 움직이지 않아도 도시 전역이 레이저 포대들의 공격범위에 들어왔다.

몇 개 정(町/행정구역)을 한꺼번에 불태우는 수준의 소각작업은 광역권 남쪽의 하늘을 다소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레이저의 위력을 유의미하게 줄일 정도는 아니었다.

「웅-웅-!」

스마트폰의 진동이 내 주의를 환기했다. 자위관들을 죽여 인형화하거나 전투함의 연료로 삼을 때, 혹시 불가피하게 전투함을 버리게 될 경우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챙겨두었던 스마트폰들. 개중 하나의 액정에 작은 문자수신 알림이 떠있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전파가 어떻게?”

해당 스마트폰은 전투함에 먹인 자위관들 가운데 한 명의 것이었다. 나는 조립식 아기가 이빨로 끊어 뱉은 엄지손가락 첫마디로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했다.

문자의 발신인은 「엄마」였다.

「다이스케. 괜찮니? 다친 데는 없지? 엄마는 네가 너무 걱정이구나.」

들어온 문자는 이게 전부였다. 액정 우상단의 전파강도는 짧은 시간 동안 한 칸에 머물러 있다가 통화권 이탈 표시로 바뀌었다. 공중전투함의 외부 균열과 극초음속 미사일이 뚫어놓은 구멍들을 통해 어찌어찌 전파가 조금 들어와 닿았던 모양이다.

“…….”

나는 단말기를 원래 두었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

내가 첫 번째 불시착지점 주변을 태우는 동안 고래는 두 발의 극초음속 발사체를 더 받아내었다. 두 발 모두 물의 구체를 관통했고, 한 발은 고래의 등에 얕고 긴 자상(刺傷)을 새기기까지 했다. 피부가 두꺼워 출혈은 없었지만, 독기가 더 빠르게 스며들 틈이 벌어진 셈이었다.

물의 저항으로 형상이 뒤틀린 탄두들이 연달아 시가지에 낙하했다. 건물이 부서지고 핏물 같은 먼지가 솟구친다.

이때 작지만 새로운 변수들이 전장 상공에 난입했다. 레이더 반사판(Radar Reflector)들을 줄에 매달고 날아든 환경 미치광이 엘프들이었다. 개중에서도 제트 바이크가 아니라 동력 윙슈트로 날아온 놈들은 아주 독보적인 미치광이들 같았다.

선도기 아래로 길게 펼쳐지는 현수막엔 도쿄에 몰려온 환경주의자들의 구호가 인쇄되어있었다.

「어머니 지구를 위하여! 선량한 고래를 위하여!」

레이더 반사판이라고 해봐야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그저 레이더 반사 면적(RCS)를 극대화하는 구조의 알루미늄 합금 접합물일 뿐.

하지만 이런 반사판들이 좁은 지역에 다수 모이면 레이더 화면에 심한 노이즈가 낀다. 미사일 유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위대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격추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자위대와 일본정부에겐 더 이상 민간인이고 외국인이고 가릴 만한 여유가 없었다.

환경 미치광이들은 곳곳에서 전기 방충망에 걸린 모기들처럼 죽어나갔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 정부로 하여금 시간과 화력을 낭비하도록 만들고 있으니까. 고래는 일분일초가 흐를 때마다 하늘에서의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중이다.

물론 고래가 바다로 들어간다고 해서 곧바로 사냥이 실패하는 건 아니다. 도쿄 만에 치밀하게 깔린 음향감시망과 핵무기가 남아있지 않은가.

‘과연 지금 핵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지만.’

현시점에서 연합임무부대 CTF-W2는 사실상 해체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왕립해군과 자위대가 극한의 대치를 이어가는 와중에 합동지휘본부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리 없고, 고로 일본이 핵무기를 투발하려면 영국을 배제한 미국과의 지휘통신체계를 즉석에서 새로 구축해야 한다. 이 상황에 서두르기엔 너무 까다로운 행정절차였다.

게다가 지금의 도쿄 앞바다에는 포위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포위망의 일각인 왕립해군이 전력에서 이탈했고, 그 왕립해군과 대립하면서 극한상황에 대처하느라 해상자위대의 함선 배치가 엉망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미국 함대는 그 혼란에 덩달아 휘말려 흐트러졌고.

따라서 지금 핵을 쓰려면 아군 함선이 휘말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해상자위대야 그런 각오가 가능하겠지.

하지만 미군은 과연 어떨까?

이제 오염된 피와 고름이 흘렀던 지역은 다 태워버렸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미국 대사관을 향해 레이저를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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